곽선희목사/누룩 비유! (마13:33/눅13:20-21)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적이
기도 하고 공간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입니다. 이
는 거듭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재림하시
는 시간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왔다고 하는 사실에서 오늘 본문의 출발이 있
고 또한 우리들의 전도 방향이 그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회개하라 천국
이 가까웠다." 즉,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
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계시고 그 말씀이 다시 제자들을 통하여 전파되어갑니다. 이렇게 하
여 전파되는 말씀의 소식은 들려지는 곳마다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말씀은 단순한 지시나 이야깃거리가 아닌 곧 능력 자체입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이
전해지는 곳에는 어두움이 밀려나고 밝은 빛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
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된 사람을 고치신 후에 "내가 하
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
라"고 하셨습니다. 벌써 여기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귀신에 붙들려 허우적거리던 사람이 말
씀의 능력이 들어가면서 귀신이 물러가고 온전한 정신이 될 때에 거기 하나님의 나라가 임
한다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곳에 어두움이 있고 빛이 있음과 동시에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빛이 켜지는 장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말씀과 함께 확장되어 나
가는 그러한 나라의 권세를 말씀하시면서, 쉽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유로 말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누룩 비유는 겨자씨 비유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비유입니다. 그 공통점은 작
고, 적은 것으로부터 점점 크게 확장되어 나간다는 점입니다. 권세의 처음 시작은 작고 미미
하지만 다가오는 날에 크나큰 능력으로 역사 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곧 능력 있는 성장, 권세 있는 확장을 뜻합니다. 그런데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에는 중
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대로 겨자씨 비유는 자체의 성장을
의미합니다만, 누룩의 비유는 밀가루를 변질시켜 누룩 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체의 확
장만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영향을 주어 저들로 하여금 나와 같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
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누룩 비유입니다. 굳이 상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면
겨자씨는 질적인 성장과 확장이라 볼 수 있겠고, 반면에 누룩의 비유는 양적인 성장과 확
장을 뜻한다 하겠습니다.
여기 적은 양의 누룩이 주위의 밀가루 모두를 변질시켜 누룩으로 만든다는 이 사실은 양적
인 성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세계로, 믿지 않는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6:29에서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
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이
거나 그 누구에게라도 "나와 같게 되기를 바란다", 혹은 "나만큼만 행복해 다오"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쩌면 대부분이 그 반대로 "제발 나는 닮지 말아 다오" 하거나 "나같이
살아서야 무엇하겠느냐?"로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인생을 억지로 사
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다른 세상살이는 몰라도 적어도 예수 믿는 것,
내 영적인 생활 안에서는 "나와 같기를 바란다"는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렵게들 설명하지만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는 나를 닮으라는 것이 전도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를 당신도 믿고,
내가 구원받았으니 당신도 구원받고, 내가 행복하니 당신도 행복 하라는 것이 전도의 내용
입니다. 전도는 그렇게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닮으라"는 그것이 전도의 내용
이요 설명이며 방법입니다. 그럴 만한 자신이 없으면 전도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해 보았자 오히려 "당신을 보니 믿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핀잔만 듣게 될 것입니다.
어른들이 실수하는 것 중에 자기는 먹지 않으면서 아이들더러 "너 먹어라", "더 먹어라"한다
던가, 자기는 텔레비전보고 있으면서 아이들더러는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
게 하려면 어른은 잡지라도 들고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 닮으라",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것이 누룩의 비유입니다. 누룩의 본질이 거기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처럼
적은 것이 일단 밀가루 속에 들어가면 부풀어오르기 시작하고, 끝내는 밀가루 전체를 누룩
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이지 않게, 숨겨진 역사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 복음의 역사요, 하나님의 나라입
니다. 이 가루 속에 숨겨진 듯 모르게 들어가서 비밀리에 점점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날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상한 공통점이 하나 있
는데, 그것은 "기독교는 염병과 같다"고 표현한 점입니다. 그래서 대원군 시절에도 기독교를
뿌리 뽑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것입니다. 즉 예수쟁이를 이대로 놔두면 염병처럼 번져 성
한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런 장면을 보신다면 "그래 그것이 바
로 내가 예언한 그 '누룩'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런 전염병은 제발 좀 걸렸으면 좋
겠습니다. 참으로 만연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비밀리에 조용히 소리 없이 들어가는 이 복
음이 큰 역사를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공산 세계에 전도를 하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지
를 고무풍선에 넣어 띄우기도 하고 돈을 주면서까지 여행자들의 가방 속에 전도지를 넣고
있는가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드온 협회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큰 호텔에는 성경책
이 비치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놓여있는 성경책을 읽은 후에 사업상 고민으로 좌절되었던 사람이
용기를 얻게되고, 자살을 꾀하든 사람이 구원을 체험하며 주어진 생을 감격스러워하게 됩니
다. 작은 전도지 한 장, 성경책 한 권으로 말씀이 스며들어서 복음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생각하면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입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젠가 미국 역사에 관한 책을 읽는 가운데 그들 조상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크게 느낀 바
가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조상은 청교도(Puritan)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청교도 정신은 참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미국이 저렇게까지 번영하게 된 것도 다름 아닌 청교도들의
신앙과 경건한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청교도들의 조상은 누구
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조상은 해적의 대명사였던 바이킹(Viking)이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 해적들은 바다와도 싸우면서 해적질을 하기 때문에 노젖는 것을
비롯해서 매사에 생각을 많이 하고 머리가 대단히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머리 좋
은 해적들이 해적의 후예를 어떻게 훌륭하게 이어나갈 것인가를 생각한 끝에 가장 깨끗한
여자를 찾아 결혼을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주위의 여자들은 방탕하고 병이 많아 위험해서 결혼하기가 두렵고 그러한 결혼을
통해 자식을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깨끗한 여자가 누구냐?" 했을 때, 기독교인들
이 깨끗하기 때문에 이제는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기독교 여성들을 마구 붙잡아다가 강
제로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좋은 자식을 낳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자식을
낳게 되면 해적은 해적의 길로 가버리고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머니입니다. 비록 억지로
끌려와 해적의 아내가 되었지만 이 아이만은 신앙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성경을
들려주고 기도를 가르치며 깨끗하게 키우느라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자라온 이들이 청교도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바이킹이 아무리 큰 소리로
칼을 휘두른다 해도 가문은 완전히 여자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이것이 청교도입니다.
여기 나약한 한 여성이 강제로 끌려가 눈물을 흘리며 마지못해 살지만 이것이 누룩이 됩니
다. 해적의 자식을 낳고 그러나 그를 말씀으로 양육시켜 마침내 그가 청교도가 되며 그 청
교도가 미국의 조상이 되고, 오늘의 미국은 세계 역사의 선봉장이 되었다 생각할 때, 역사의
처음 시작에 울면서 끌려가던 나약한 한 여성, 그는 분명 누룩입니다. 차마 죽지 못해 해적
의 소굴까지 끌려갔었는데 그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것이 누룩
이란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보면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 장군의 집에 포로 되어 갔던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인 하녀 하나가 문둥병 환자인 주인 나아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앞에 서게 하고 치유 받게 하며 결국은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
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왕하5:17)라는 결단을 하게 합니다. 이
리하여 시리아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 적은 누룩이 이름 없
이 빛도 없이 조용하게 던져졌지만 마침내는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이루어 온 것입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나라요,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좋은 비유로서의 누룩이
아닌 악의 상징으로 표현된 곳이 대부분입니다. 악한 생각, 악한 행위가 영향을 끼쳐 자꾸만
번져나가는 것을 누룩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 : 1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외식주의로 전염된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이 외식주의자가 되면 율법주의자로 굳어지
게 되고 그 영향을 다른 사람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의 외식주의, 이 누룩을
삼가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5:6∼8에서 나쁜 영향이 퍼져나가는 것을 비교하여 "적은 누
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였습니다. 교회도 그러합니다. 좋지 못
한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말썽이 생기고 오해들이 오고 가며 없어야 할 행동, 나쁜 버릇, 나쁜
사상들이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구
약 성경에 의하면 제물에는 누룩을 섞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룩
을 섞지 않고 발효되지 아니하는 무교병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어있는 것을 출애굽기 13:3,
레위기 2:11, 아모스 4:5 등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께서는 악한 것들을
통하여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악의 상징
인 뱀을 가리키며 뱀같이 지혜롭기를 부탁하십니다. 악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이것이야말
로 전염병처럼 무섭게 번져나갑니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하고 악으로부터 몇 가지 배울 것
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첫째로 악의 지혜가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배우지 않고도 거짓말하는 지혜가 있
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들을 보면 어디에서 배웠는지 어른들이 속아넘어갈 정도로 거짓말을
잘합니다. 이처럼 좋은 일에 지혜롭기보다는 나쁜 일에 지혜가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사회에 펼쳐지는 사건 속에서도 악으로 돌아가는 머리는 놀랍게 돌아가고 뛰어납니다. 언
젠가 경주에 집회차 갔다가 문화 고등학교 교장이신 장로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경주에는 왕릉들이 많이 있고 그 왕릉을 발굴하기 위하여 학계의 권위 있는 교수들이 오랜
연구를 거쳐 발굴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데, 아무리 이론에 맞추어 연구 결과를 비교하며 파
헤친다 하더라도 잘 나오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굴자들은 대학 문전에도 못 가보았지만 막대기로 쓱 찔러 보고는 여기 있다고 하
는데 거기를 파보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굴자들의 괴수를 데려다가 발굴을 시키는
것이 훨씬 빠르고 경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좋은 두뇌를 좋은 일에 쓰면 얼마나 좋겠습니
까? 이처럼 악에는 지혜가 있고 그 정도가 놀랍고 무섭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는 악인은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나오는 일에 있어서도 어떤 경우 지각을 하게 되었을 때 자기보다 더 늦게
오는 이를 보면 그렇게 반갑고 그분이 장로님이라도 되면 더욱 반갑다는 것이지요. 이는 나
처럼 모두가 다 늦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죄인은 죄인을 반가워하고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죄인이기를 바라며, 가능하면 나보다 더
죄인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남이 실수한 이야기를 즐겨 소문내는 사람은 그가 바로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서인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은 나빠지고 자기는 제자리에 앉아서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묘한 보상 심리가 있어서 나쁜 이야기가 잘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남 좋은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나는 낮아지는 것 같아서 차마 그가 좋
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마는 교만이 있습니다. 아무튼 악은 대단한 동료 의식을 가지고 있습
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대로 세상의 인심 중에 술 인심이 제일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비싼
술을 앞에 놓고는 서로 먹으라고 "딱 한 잔만 더"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죄
인의 동료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악한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이 악
해지기를 바라고 있는데, 어찌하여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다 나와 같아지기를 바
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의 악을 위한 노력, 그 바라는 마음, 그 때문에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공산당들은 어디를 가나 특별하고도 획일적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공산당들은 어
디에고 들어가자마자 맨 먼저 하는 일이 탁아소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레닌 때부터 시
작하였고 레닌의 부인은 전적으로 탁아소를 경영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던 아이들에게 빵
을 주기 전 빈 식탁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빵을 주십사고 기도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한다고 빵이 나올 리가 없는데, 그 다음에는 레닌에게 빵을 달라는 기도를 하게 하고
그러는 동안에 빵을 갖다 놓아주었습니다. 이것이 언뜻 보기에는 우스운 사기극 같지만 아
이들에게는 굉장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 회담 시에도 우리측 대표
가 북한에 갔을 때 제일 먼저 보여준 것이 탁아소였답니다. 그리고는 북한 대표들이 남한에
왔을 때 역시 탁아소를 보겠다는 데 보여줄 곳이 있어야지요. 저들에게 비하면 우리 것은
너무 시시해서 보여줄 탁아소 하나가 제대로 없다는 말씀입니다.
공산화를 위한 저들의 노력과 준비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를 만들려
면 어려서부터 훈련되어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규모 있는 탁아소를 대대적으로 꾸려 가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예수를 믿으면서, 자녀들과 후
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넣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였느냐는 말씀입니다. 바
로 여기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악으로부터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어리고 순수해
서 넣어주는 대로 먹고 그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그 때에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아직도 그런 제도가 없고 방법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와 같은 공
산당의 극성, 공산화를 위한 조직과 방법 등 이 모두가 다 누룩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누룩
의 작용을 우리는 반대 방향에서 기독교적으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저들은 소위 세 가지 전체주의(three totality)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택동이 한 말
로서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첫째가 전적인 수락(total
acceptance)이라는 것입니다. 검다면 검은 줄 알고 희다면 흰 것으로 알 것이지 여기에 비판
은 필요 없습니다.
다음은 전적인 훈련(total discipline)입니다. 어디로 인도하든지 군소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면 가는 것이고 오라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적인 위탁(total commitment) 입니다.
내가 나의 것이 아니며 바쳐지고 맡겨진 것입니다. 이들의 이론이 놀랍도록 기독교적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표현으로 한다면 전적으로 아멘, 전적으로 감사, 전적
으로 헌신이 아니겠습니까? 이 원리만 배우고 익힌다면 신앙생활에 더 다른 문제는 일어나
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은 꿈을 꾸어도 공산주의 꿈을 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의 꿈을 꾸는 것이 당연한데, 무엇을 생각하다가 잠들었기에 허황한 꿈만 꾸게되는 것이겠
습니까? 누룩이 들어갔으면 비록 적은 양이라 할지라도 온 인격, 온 가정, 그 누구를 만나든
지 퍼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가 나 같아지기를 바라고 그가 예수 믿기를 바라
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마음도 생기지 않고, 그러한 활동도 일어나고 있지 않
다면 이는 분명 누룩이 들어가지 않았거나 잘못된 누룩이 들어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짜 말씀의 누룩이 내 속에 들어있다면 그 말씀 그대로 있지를 않습니다.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고 역사를 만들고 맙니다. 믿지 않는 가족, 믿지 않는 친구, 그 누구든
믿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 견딜 수 없게되는 것이 누룩입니다. 그리하여 자꾸만 퍼져나
가게 됩니다. 누룩은 반드시 변화시켜 나갑니다. 복음이 들어갔으면 복음화되기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생활화, 복음의 세계화가 기어이 이루어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
상을 예견했던 한 청년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도에 파송된 한 선교사가 원주민 청년 하나를 붙들고 돈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당신 나라
말을 좀 배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끝까지 못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안 믿어도 좋으니 말만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그 청년의 대답인즉
내가 당신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다가는 내가 예수 믿게 되므로 가르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
다. 뿐만 아니라 만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주 만났다가는 예수 믿게 마련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누룩입니다. 여러분! 누룩과 밀가루가 만나면 어떻게 되
겠습니까? 그 어떤 밀가루라 할지라도 누룩 되게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누룩이 잘못 밀
가루가 되지나 않는지 두렵습니다. 있다면 이는 완전히 변질된 누룩입니다. 따라서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누룩과 같다는 말씀은 우리의 신앙, 우리의 현실을 참으로 긍정적으로 인도
해주는 말씀이며, 멈추어질 수 없는 복음의 사역 속에 이미 우리가 적은 누룩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제 누룩의 소중함과 그 놀라운 변화의 힘을 알고, 미래의 놀라운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면 주어진 이 시간은 자신의 누룩을 점검하며 어떤 방법, 어떤 모습
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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