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인물강해/하나님께서 직접 두 번째 지으신 이름 이스마엘 (창 16;1-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7. 9. 10:20

인물강해/하나님께서 직접 두 번째 지으신 이름 이스마엘 (창 16;1-16)

 

하나님께서 직접 첫 번 지으신 이름은 아담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두 번째 지으신 이름은 이스마엘입니다. 우선 이스마엘의 배경을 성경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창세기 16장이 이스마엘의 배경입니다. 이스마엘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뜻입니다. 그 의미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과 같이 번성시켜 주신다고 하셨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현실과 맞지 않았습니다.

아내 사래가 오히려 더 조급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편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가나안 땅에 들어 온지 1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런데 금방 임신하였습니다. 임신하자 말자부터 하갈은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래는 아브람의 허락을 받아 몸종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갈은 견디다 못 하여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도망치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가 하갈에게 물었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그 후부터 하갈은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늘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는 의미입니다.

하갈이 다시 돌아가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하나님이 붙여 주신 대로 이스마엘이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나이 86세였습니다.

 

이스마엘 이야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사래, 하갈, 이스마엘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배후에서 역사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갈에게는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갈은 종입니다. 그런데 임신하였습니다. 주인 사래가 임신 못 할 때 임신하고 나니까 우쭐하여졌습니다. 주인을 멸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잘 되면 교만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사실 조금만 낮추면 편안하고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조금만 양보하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신학교 다닐 때 판자집에 방 하나를 얻어 자취하였습니다. 여동생과 둘이서 살았습니다. 주인 집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전기 계량기를 둘 놓을 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서로 방 한 칸씩 사는 형편이었습니다. 둘 다 어려웠습니다. 그 집은 식구들이 바글바글 대는 데 할 수 없는 방 하나를 세주고 하나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와 동생도 돈이 없으니까 하꼬방 방을 얻었습니다.

할 달 지나면 전기세 고지서가 날라 옵니다. 그 것을 보고 같이 나눕니다. 항상 내가 나눈 것에서 조금 더 냈습니다. 그것을 지금도 잊지 못 한다고 말합니다.

조금 양보하면 다 기쁩니다.

 

최 종찬 교수가 넷 향기에 올린 글입니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아서 물이 한번 기울어지면 돌이킬 수 없듯이, 성품이 한번 놓아지면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물을 제어(制御)하려면 제방으로 제어하듯이, 성품을 제어하려면 꼭 예법(禮法)으로써 제어해야 합니다.

자기를 양보하는 사람은 능히 중요한 지위에 오르게 되나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敵)을 만나게 됩니다.“

 

하갈이 임신하여 아이를 가졌어도 그가 조금만 양보하고 고개를 숙였으니 모든 것이 원만하였을 것입니다. 자기도 잘 되고 자녀도 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를 무시하였습니다.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임신한 몸으로 광야로 나와야 했습니다.

도망치다가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가 하갈에게 물었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그 후부터 하갈은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감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의미가 무엇일가요?

칼빈은 <눈으로 확인하시는 하나님> <나를 살펴 보시는 하나님> 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구애를 받지 아니하시고 어디서나 언제든지 돌보고 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기잡이 배가 국경선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함정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안심하고 고기잡이 하십시오. 우리가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 보아도 보호한다는 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보호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고기잡으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고기 조류를 따라 이동하며 고기를 열심히 잡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적국 배가 나타나서 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도와 달라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연락이 왔습니다.

“가까이 있으니 안심하라.”

그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후 적의 배가 바싹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밑에서 나란히 움직이던 잠수함이 불쑥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적의 배가 도망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안 보이는 곳에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간단합니다.

 

돌아가라.

복종하라.

 

하나님은 원위치 시키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다음과 같은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자손이 번성하여 질 것이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두 번재로 하나님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후손이 들나귀 같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에서 마호멧이 나왔습니다. 들나귀같이 종횡무진 세계를 돌아 다니며 사람을 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원수 국가가 되었습니다.

하갈이 경험한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하갈에게는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였지만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으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하여 사람을 골라내십니다. 모든 대학도 시험을 통하여 학생을 골라냅니다. 심지어 청소부도 시험을 통하여 사람을 골라 뽑습니다. 마귀도 시험하고 하나님도 시험하십니다. 마귀가 시험하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시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은 축복을 주시려고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가혹한 시험이었습니다.

100살에 난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가장 가혹한 시험이었습니다. 차라리 양을 10,000 마리 바치라고 하면 쉬웠을 것입니다. 차라리 아브라함보고 죽으라고 하여도 아들 바치라고 하는 것보다는 나앗을 것입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브엘쉐바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걸어 모리아까지 갔습니다. 두 사환이 먹을 것, 마실 것 그리고 나무를 날랐을 것입니다. 모리아 밑에서 두 종을 쉬게 하였습니다. 데리고 올라가면 이삭을 죽이지 못 하게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나무와 불을 들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데 이삭이 물었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 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요?”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셨어.”

그리고 올라가서 이삭을 결박하였습니다. 그리고 칼로 목을 찌르려고 할 때였습니다. 꼭 영화같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5초만 늦었어도 이삭은 죽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옆에 있는 수양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들 대신 양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이미 작고하신 김 우영 목사님과 금요일 아침마다 식사하였습니다. 거의 20년입니다. 그 분이 쓴 책 중이 이런 책이 있습니다.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

아브라함이 그 때 서두르지만 않았으면 이스마엘이 없었고, 이스마엘이 없었으면 오늘 날 중동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신발을 신고 아브라함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60세 경에 갈데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75세에 하란을 떠났습니다. 85세가 되도록 아들이 없었습니다. 2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당시 종의 자녀는 주인의 자녀입니다. 당연히 종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아내가 제안한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민족이 이루어지는 약속의 아들은 이스마엘이 아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도는 것같지만 마침내 모두를 가루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사라에게는 은총의 하나님

하갈에게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에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라에게는 은총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라는 이미 89세가 되어 경수가 끊어진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90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민족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사라의 믿음이 좋다는 것을 말해주는 말씀은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노아가 그렇게 당대에 최고의 믿음의 소유자였지만 노아 아내의 믿음을 말해주는 말씀도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노아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만 있습니다. 세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외에는 없습니다.

사라는 도리어 혈기가 있는 여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갈이 괴롭힌다고 내쫓았습니다. 잔인한 기질이 조금은 엿보이고 있습니다.

한나와 비교하면 분명합니다.

엘가나가 한나와 결혼하였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 하였습니다. 브닌나를 첩으로 얻었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나를 격동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단 한번도 브닌나와 싸운 기록이 없습니다. 남편을 괴롭힌 적도 없었습니다.

한나와 사라는 구별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별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 할 때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산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금식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서원기도까지 하였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여자였습니다. 술취한 듯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기도하였다는 말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사라는 기도도 하지 않았고 혈기가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에게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은총이었습니다. 사라가 만난 하나님은 은총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사용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총으로 불로 주시는 사람입니다. 사라가 그랬습니다.


이스마엘에게는 추수의 하나님

하갈에게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에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라에게는 은총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에게는 추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마엘은 첩의 아들입니다. 사라로부터 구박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스마엘에게 무슨 죄가 있을가요?

자기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주어진 운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에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갈이 도망갈 때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크게 번성하여 민족을 이루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한 민족이 되는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과 같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나쁜 것이 유전되는 불운도 겪었습니다.

하갈이 사라를 멸시하였습니다(4)

그랬더니 사라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학대하였습니다(6) 추수의 영입니다. 부모가 심은 것을 자녀가 거두었습니다.

부모 때문에 자녀가 잘 되는 경우가 있고, 부모 때문에 자녀가 저주스러운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어머니가 심은 것을 안 좋게 거두었습니다. 부모가 무엇을 심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다리를 떨었습니다. 밖에서는 그렇지 않은 데 집에 와서 식탁에 앉으면 그런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앞에 앉은 딸도 다리를 떨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젊잖게 타일렀습니다.

“숙녀가 그러면 못 써. 행동이 침착해야해.”

딸이 이 말을 듣고 즉각 응수하였습니다.

“아버지도 떨잖아요.”

아버지가 빨리 둘러댔습니다.

“아빠는 약간 운동 부족이라 그래.”

이 말을 듣고 딸이 얼른 말했습니다.

‘이하 동문.“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를 중심으로 가나안 남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후에 애급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12 지파를 만들었는 데 이스마엘은 12 방백을 이루었습니다.

이스마엘 자손에서 마호멧이 나와서 회교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대적이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어머니가 심은 것을 거두는 추수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모두 각각 다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질 때 각각 자기가 만진 대로 코끼리를 생각할 것입니다.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기둥같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배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평평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귀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큰 그릇같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상아 뼈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는 단단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갈에게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에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라에게는 은총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에게는 추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세계적인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고 첫 생일에 축하 행사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서가 특이하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사용하던 테이블 서랍을 열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서랍은 10년 동안 잠가 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궁금하였습니다.

드디어 열렸습니다. 종이 한 장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캄캄하고 어려울 때는 요나를 생각하라.‘

이것이 에디슨의 신조였습니다.

에디슨이 만난 하나님은 어려울 때 늘 도와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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