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인물강해/하나님이 직접 세 번째 지은 이름 아브라함 (창 17;1-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7. 9. 10:21

인물강해/하나님이 직접 세 번째 지은 이름 아브라함 (창 17;1-8)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이름이 있습니다.

첫 번에 하나님이 지으신 이름은 아담이고 두 번째 지으신 이름은 이스마엘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지으신 이름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첫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그 뒷 이야기가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름을 다시 지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 <열국의 아버지>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 가정을 잘 지키는 아버가 된다는 것도 피곤하고 힘든 과업입니다.

 

<아버지가 가장 불쌍해질 때>라는 글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버지가 어느 때 가장 불쌍하다고 느껴지는가요?”

대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야단 맞을 때입니다.

둘째는 아버지가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흐느껴 우실 때입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이기지 못 한 때입니다.

셋째는 아버지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말고 갑자기 나가셔서 혼자 복권을 맞추어 보실 때입니다.“

 

한 가정을 이끄는 것도 아버지에게는 큰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라고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의 아버지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가요?

훌륭한 아버지 조건이 있습니다.

 

1. 공급자

아버지의 우선 역할은 공급자입니다.

공급중에 공급은 물질 공급입니다. 아버지는 우선 가정의 경제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문제를 우선 해결하여야 합니다.

아버지하면 무엇보다도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물질 공급자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보면 물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따라왔습니다. 이를 물권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돈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돈이 따라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하였는 데 하나님의 물질을 아브라함에게 아예 안겨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민자입니다.

갈데아 우르에서 약 1,800 km 거리 가나안으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애급으로 피난가게 되었습니다. 사라는 탈월한 미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서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애급 바로 궁으로 데리고 갈 정도였습니다. 대신에 아브라함에게 보상하여 주었습니다.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창 12;15)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렸습니다. 벌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바로는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고 도로 돌려 보내면서 물질을 더 주었습니다.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창 12;20)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와보니 가축과 은금이 풍부하였습니다(창 13;2)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 지 아브라함 개인이 데리고 있는 있는 사람들이 318명이었습니다(창 14;14)

아브라함은 이민 생활속에서 탁월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우선 가정을 경제적으로 안정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책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공급자입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입니다. 아브바라함 하나 때문에 318명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민족을 조상이 되었습니다.

 

2. 교육자

아버지는 교육장입니다. 가정의 모든 식구들을 바르게 이끌어갈 교육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식탁은 교육장이요, 식사 시간은 교육 시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교육 내용이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행동의 동력입니다.

떠나라고 하면 떠났습니다. 드리라고 하면 드렸습니다. 자녀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할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 17;10-14)

 

할례란 히브리어로 <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물>이라는 말은 <주위를 둥글게 베어내다>라는 뜻입니다. 남성의 성기 귀두 표피를 둘러 싸고 있는 피부를 둥글게 베어낸다는 의미에서 할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된 표시로 할례를 하여야 합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은 자손 대대에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교육자입니다.

 

경주 최부자 이야기는 두고 두고 유명한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최 부자는 경주에서는 유명한 가문입니다. 12대를 내려오면서 300년 동안 만석꾼 가문입니다. 일시 부자는 있어도 계속 흐르는 부자는 보기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이 가문에서는 철학과 경륜이 흐르고 있습니다. 소위 육연(六然)이 이 가문에 흐르고 있습니다.

1. 자처초연(自處初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낸다.

2. 대인애연(對人靄然) 남에게 온화한다.

3. 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낸다.

4. 유사감연(有事敢然)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지낸다.

5. 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 얻었을 때는 담대하게 행동한다.

6. 실의태연(失意泰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한다.

이 가문 후손의 증언이 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매일 아침이면 일어나지 말자 조부님 방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한번씩 붓글씨로 육연을 썼습니다. 물론 조부가 보는 앞에서 썼습니다.

매일 수십년을 쓰다 보니 몸에 익었습니다. 몸에 박히게 되어 17세기부터 경주 최고 부자를 30년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이 집에 가훈(家訓)이 있습니다.

<재산은 1년에 1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이 없도록 하라.>

아버지는 교육자입니다.

 

3. 결정권자

아버지는 결정권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때로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아버지의 결정은 가족들에게는 절대적입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합니다.

나에게 미국에서 와 달라는 청빙서가 왔습니다.

내가 미국 목회를 할 것아냐 한국 목회를 할 것이냐 결정에 따라서 우리 가족의 삶은 온통 달라집니다. 자손들의 운명도 결정됩니다.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에서 살 것인가 가나안으로 떠날 것인가 결정은 엄청난 갈림길입니다.

아버지는 결정권자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결정을 내릴 때에는 자기 생각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한 일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랐습니다.

하나님깨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과 같이 번성시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세계 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애급이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중동전쟁의 불씨입니다. 그 후손중에 마호멧이 나왔습니다. 모슬렘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큰 기독교의 적수가 되었습니다.

기다리고 참았으면 이삭을 주셨고, 이삭만 있었으면 오늘날 중동 사태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결정권자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결정하여야 합니다.

 

어느 자매님이 결혼하였습니다. 10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 하였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부부 둘 다 문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중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자랄 때 가난하였습니다. 딸만 다섯인 집의 막내였습니다. 옷을 사입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언니들 구박이 심하였습니다. 구박을 받을 때마다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 다음에 결혼하면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말이 자기 태를 막고 있음을 주님이 깨닫게 하여 주셨습니다.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태가 열렸습니다.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물으며 살아야 합니다. 혼자 감정적으로 결정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아버지는 결정권자입니다.

 

4. 상속자

아버지는 상속자입니다. 무엇인가 상속하고 하나님게로 가는 분이 아버지입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의 아버지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3가지 상속을 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1. 민족의 약속

2. 땅의 약속

3. 메시야의 약속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녀들은 이 세 가지 약속이 이루어질 줄 믿는 믿음을 상속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상속자입니다. 재산 상속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 상속입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질문이 없었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없었습니다. “어디로 떠날 가요?”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언제 떠날 가요?” “왜 떠나야 하나요?” “이사짐은 얼마나 가지고 가야 하나요?” “언제 돌아 오게 될가요?” 아브라함은 무조건 떠났습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어느 날 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너는 네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잡아 내게 번제로 드려라.” 아브라함은 이렇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아들을 죽이나요?” “하나님! 바꾸어 놓고 생각하여 보십이요. 100살에 난 아들에게 어떻게 칼을 대나요?” “어디서 죽이나요?” “누구와 죽이나요?” “아내에게는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이삭에게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데리고 가나요?” “죽이고 나서 어떻게 하나요?” 아브라함에게는 질문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이려고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칼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3-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질문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몇 분과 함께 둘러 서서 교회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자 집사님 한 분이 내 옷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깨에 루즈가 묻어 있네요.”

다른 여자가 물었습니다. “누구 루즈예요?” 또 다른 여자가 물었습니다. “어제 무엇 하였어요?” 그러나 아내가 말했습니다. “부흥회 안수하다가 묻었을 거예요.” 믿으면 질문이 없습니다. 저희 아내는 나를 믿기에 옷에 루즈가 묻어도 묻지 않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지낼 때가 많습니다. 밤 10시에 집으로 전화하였는 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나는 핸드폰으로 찾거나 받을 때까지 전화하지 않습니다. 쓰레기 버리러 나갔거나 자기 전에 걷기 운동하나보다 생각합니다. 믿으면 질문하지 않습니다. 믿지 못 하면 시시콜콜 캐묻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무슨 말씀을 하나님이 하셔도 묻지 않고 믿는 믿음을 자녀들에게 상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삭도 하나님이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고 한다니까 순순히 묶였습니다. 힘으로 하면 아브라함은 100살이 넘는 노인입니다.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질문이 없었습니다.

“네”

오직 하나였습니다. 옛날의 왕은 절대자였습니다. 어느 왕이 죽으면서 가장 신임하는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게 가장 충성된 신하다. 나는 오늘 죽는다. 죽음의 세계에 네게 먼저 가서 내 길을 닦아 놓거라.”

신하는 절대자 왕의 명령을 듣고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합니까?” “죽고 나서 무엇을 할가요?” 신하는 즉각 자살하였습니다. 왕은 신하에게 절대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절대자입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질문없이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중에 절대자이십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면 절대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면 십일조는 절대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까?” “안식일을 왜 지켜야 합니까?” <대지>의 작가로 유명한 펄 벅 여사 이야기입니다. 그의 어머니 캐롤라인은 네덜란드 청교도 신앙생활의 정신을 이어받은 미국 부인이었습니다. 펄 벅 어머니는 아버지 선교사 사이든스트리커(sydenstricker)를 따라 중국으로 들어 왔습니다. 코가 크고 흰 얼굴, 노랑 머리 서양인이 중국에 없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청강포에 살면서 선교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 때 남편은 다른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집에는 어머니와 세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펄 벅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이라는 중국인 가정부만 남아있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온 동네 사람들은 굶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캐롤라인이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중국인 남자 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는 원인이 있다. 서양인들이 우리 땅에 들어 와서 땅이 부정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선교사 가족을 죽이자 그리고 신에게 바치자. 그러면 가뭄이 끝날 것이다.” 중국말을 들을 줄 아는 가정부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아요. 오늘 죽이러 온 데요. 도울 힘이 없어요.” 캐롤라인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도망가면 끝까지 따라 올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아이들까지 무참히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죽이러 오는 이들을 대접하여라.” 이런 강한 소원이 올라 왔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캐롤라인은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을 재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정쯤 되었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캐롤라인은 가정부에게 차와 케이크를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열린 문으로 그들이 당당하게 들어 왔습니다. 그는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워 옷을 입혔습니다.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서 들어와서 함께 차와 다과를 나눕시다. 맛있게 드세요. 준비하여 놓았어요.” 중국인 한 명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섭지 않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이웃에 사는 여러분을 무서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캐롤라인은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말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해졌습니다. 그 곳에 모인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멋쩍어하였습니다. 조금 후 하나 둘 밖으로 나갔습니다. 캐롤라인은 의자에 주저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 날 새벽 기적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입니다.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따르기만 하면 되고 따르면 기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믿음의 상속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째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많은 사람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가 아닙니다.

1. 공급자입니다.

2. 교육자입니다.

3. 결정권자입니다.

4. 상속자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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