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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은 '원천적 불법.무효=개헌절차도 국민주권도 무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17. 15:12

등록 : 2012.10.16 20:01 수정 : 2012.10.17 08:48

개헌절차도 국민주권도 무시…유신헌법은 ‘원천적 불법·무효’

‘유신 40돌’ 유신체제를 다시 생각한다 ②

올해로 유신체제가 출범한 지 40년이 된다. 물론 1979년의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유신은 7년 만에 막을 내렸지만, 유신체제를 떠받친 유신헌법의 반헌법성과 폭력성은 아직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작동하고 있다. 유신체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유신헌법은 개헌 절차나 내용에서 원천적으로 불법·무효인 규범이다. 우선 유신헌법은 헌법 개정 절차를 무시한 위헌적 개헌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당시 헌법은 개헌을 위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또는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만명 이상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통한 국회 의결을 얻어야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나 국회의원 선거권자인 국민들의 발의는 애초에 없었고 국회 의결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오직 ‘10·17 비상조치’라는 초헌법적 조처에 근거해 구성된 비상국무회의에서 개정헌법안을 발의하고 공고했으며, 이를 바로 국민투표에 넘겨 개헌을 확정해버렸다.

 

유신헌법은 내용에서도 민주국가의 헌법이 보편적으로 갖추어야 할 여러 헌법원리들에 반한다.

 

첫째, 국민주권 원리에 반한다. 유신헌법에 등장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관은 세계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관이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국가목표를 구실로 삼아 통일정책을 심의·의결할 권한을 가진 것 말고도 대통령 선출권, 국회가 발의한 헌법개정안의 확정권 등을 거머쥐었다.

대통령 선출권, 헌법개정안의 확정권은 주권자로서 국민이 가지는 것이 민주국가의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유신헌법은 이 주권의 행사를 국민이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어용기관에 ‘위임’이라는 미명 아래 넘겨준 것이다.

 

 

둘째, 권력분립 원칙에도 반한다. 대통령의 행정권을 견제해야 할 입법부 국회의원들 중 3분의 1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명목적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든가, 건국헌법에서부터 국회에 부여되어온 국정감사권을 삭제하는 식으로 입법부를 무력화시켰다. 대법원장과 대법관뿐만 아니라 일반 법관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하여 말단 법관들까지도 재판에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을 어느 정도 헤아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셋째,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반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합성어다. 이때 ‘자유주의’란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옹호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사상적 입장’을 뜻한다. 유신헌법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삭제하고 축소시킨 대표적인 반자유주의적 악법이다. 신체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재산권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권리들에 대해 이를 삭제하거나 축소시켰다.

 

 

유신헌법은 ‘민주주의’에도 위배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한 대통령 간선제 규정이다. 대통령의 중임 제한 규정을 없애고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고만 규정함으로써 무제한적인 연임을 가능케 했다. 여기에 어용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를 더함으로써 박 대통령이 선거를 통한 민주적 통제 없이 영구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 뒤 5공화국 헌법에도 이어진 대통령 간선제 조항은 1987년 6월항쟁이라는 피의 투쟁을 거치고서야 가까스로 헌법에서 사라졌다.

 

이렇듯 절차로나 내용으로나 도저히 헌법이라 부를 수 없는 유신헌법이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사실상 통용됨으로써, 우리 헌정사에서 7년 동안은 유효한 헌법이 없었던 ‘무헌법의 암흑시대’가 이어졌고, 정치적으로는 ‘민주헌정의 중단 사태’가 계속됐다. 그러면 이러한 암울한 시대의 반복을 막고 그 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국회의 선언과 입법을 통해 유신헌법의 불법성과 무효성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는 전후 독일이 나치헌법을 청산한 방법이기도 하다. 다시는 불법·무효인 헌법이 헌법 행세를 하면서 민주헌정을 중단시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임지봉/서강대 법학과 교수

출처: 한겨레신문, 한겨레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