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박보영 목사 설교

내가 존경하는 인물, 원효-김진홍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2. 7. 11:48

내가 존경하는 인물, 원효(1)

2013-2-6

인터넷이네, 스마트-폰이네 하면서 온 세상이 속도를 더하여 가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깊이의 세계가 상실되고 있다. 빠르기만 하고 깊이가 없으면 마치 모래위에 지은 건물과 같아 위태하기 그지없게 된다. 그렇게 위태하게 되어 나타나는 증상이 각종 성인병과 우울증,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등을 대표로 하는 현대병들이다.

이런 때에 누군가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깊이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에 인생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 전체가 균형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1,500여 년 전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 원효(元曉) 큰스님이다. 원효 선배가 있었기에 우리 겨레의 정신세계가 한 단계 더 깊어졌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역사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원효 큰 스님을 첫째로 손꼽는다. 내가 목사로써 원효 큰스님을 존경한다고 말하니 기독교계에서 가끔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에도 한 모임에서 원효 선배의 공덕을 높이는 발언을 하였더니 어느 목사가 ‘김진홍 스님 언제 불교로 개종(改宗)하셨나요?’하고 힐문하였다.

원효 큰스님은 617년 신라 진평왕 때에 태어났다. 그때는 신라에 불도(佛道)가 들어온 지 100년 남짓한 때였다. 한국의 개신교로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시기였다. 신라 불교는 100년 만에 원효 선배 같은 세계적인 학승(學僧)을 배출하였는데 한국교회는 지난 100년에 그에 버금가는 신학자나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점이 한국 개신교의 약점이자 부끄러운 점이다. 한국 개신교는 100년 역사에 양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성공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큰 교회 10교회 중에 8교회가 한국교회에 있다. 그러나 그렇게 덩치는 커졌지만 그 덩치에 깊이를 더하여 줄 세계적인 학자나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신학도 들은 원효 큰 스님 같은 겨레의 대선배를 배우고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게 된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 원효(2)

2013-2-7

십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다.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였는데 그 대학에 불교학과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과에서 사용하는 교재 중에 원효(元曉) 스님의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반가워서 어떻게 1,500여 년 전에 살았던 한국 스님의 책을 교제로 사용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원효 스님의 저서는 세계 불교의 10대 저서 중에 손꼽힌다고 일러 주었다.

원효 스님이 세월이 흐르면서도 빛을 발하는 것은 그가 생전에 일으킨 4가지 영향력 까닭이다.

첫째 그는 당시에 귀족들과 학자들의 수중에 있었던 불교를 대중화(大衆化)하여 민중불교(民衆佛敎)의 기틀을 닦았다.

둘째 그는 마치 요즘 한국 기독교처럼 여러 종파로 분열되어 혼란을 일으키던 종파불교(宗派佛敎)를 하나로 묶어 통합불교(統合佛敎)를 이루는데 기여하였다.

셋째는 당시에 팽배하던 소승불교(小乘佛敎) 흐름을 대승불교(大乘佛敎)의 흐름으로 전환시킴에 기여하였다. 소승불교는 기독교로 말하자면 개인구원의 흐름이고 대승불교는 사회구원의 개념에 해당한다. 원효는 한국불교의 귀한 전통인 호국불교(護國佛敎)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다.

넷째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종교인들은 자신의 주장과 사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늘 대국주의(大國主義)와 수입사상(輸入思想)에 안주하는 체질이 있다. 그러나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 가던 발길을 돌려 토굴에서 자습자학(自習自學)하여 유심사상(唯心思想)과 회통사상(會通思想)을 전개하여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