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에 새기는 거듭남의 삶! (요 3:1-8)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어느 날 밤에 유대인의 존경받는 관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의 관원이요 율법의 선생이요 당시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 대낮에 당당하게 예수님을 만나러 나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이미 예수님을 이단으로 낙인찍어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와서 주를 직접 만나는 유대인의 관원은 그 관직이 박탈당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가서는 맨 처음 한 말이 이 말입니다. '랍비여! 랍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시지 않고야 이런 기적과 이사와 표적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에 니고데모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종교나 철학이나 의식을 말씀할 줄 알았는데 '거듭나라'고 말씀을 하시니 어떻게 그것을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선생이여 내 나이 이제 백발이 성성한데 내가 거듭 나다니요? 어떻게 내가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가 있나이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할/ ◀제목 소개!▶
영국의 유명한 '죠지 핫트필드' 목사님이 오늘 이 본문으로 본 교회에서 300번 정도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설교가 지루하게 느껴진 성도 한 명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같은 설교를 자꾸만 하십니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거듭나기 위해서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할/
①그렇습니다. 거듭나야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대화의 말씀이 열한 번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 첫번째 대화가 본문에 니고데모와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에 사용되어 있는 말은 단순한 것 같으나 신학사상은 극히 심오하게 나타납니다. 오늘 예수님과의 대화는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몇 일 남지 않은 시기에 대화 이여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개인적으로 또 사석에서 만났던 사람들 주에서 가장 저명한 인사에 해당될 만큼 신분이 높은 그런 사람입니다. /할/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회의원으로 전국에 72여명인 종신제 국회의원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이면서 또한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 당시 유대교의 주요 파벌 중에 하나로서, 주전 2세기에 형성된 집단입니다. '바리새파'라는 이름은 '구별된 자' 즉 '참다운 이스라엘'이란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일종의 시험기간을 거쳐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입단하면 십일조 규정과 정결 규정 등 공동체의 의무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했으며, 이를 통해서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구별된 의인들이라고 자부하고, 또 그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스스로 구별된 참 이스라엘이라고 자부하고 율법 준수와 수호의 열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바리새파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선생이라고 불린다는 것은 그가 율법학자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학자들은 흔히 랍비라고 불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칭호는 공적인 율법 교육을 받아서 정식으로 율법학자로 인정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당시의 율법학자가 지닌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이들은 성경을 포함한 옛 전승들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권한과 책임을 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공식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권위는 절대적이어서 율법과 전승에 대한 그들의 유권해석에는 아무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 /할/ ㉡이런 훌륭한 사람도 거듭남의 진리를 몰랐습니다. 사실 거듭남에 관해 신약성서가 여러 구절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가장 고전적인 구절이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3절과 5절과 11절에 나옵니다.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5절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11절에도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여기서 '거듭남이 무엇이며 어떻게 거듭나는 것이며 왜 거듭나야 하느냐?' 이런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이 세 번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이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거듭남의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할/ ⑴사람은 누구나 거듭나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무엇인지, 수요공급의 법칙이 어떻게 되는지,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되는지, 형법 250조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큰일날일 없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지옥 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큰일이 납니다. 누구라도 '거듭남은 무엇이며, 어떻게 거듭나는 것이며, 거듭남은 왜 필요한가?'를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왜 거듭나야 합니까? 3절 후반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5절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할/ 7절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라는 한 사람과 말씀하고 계시지만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라고 할 때에 원어인 헬라어는 단수가 아닌 2인칭 복수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니고데모야 너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거듭나야 하겠다.'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거듭나야 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믿/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냐?'는 매우 큰 신학적인 주제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세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이 거의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자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다 보니 하나님 나라라고 3절 후반에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대신에 많이 쓴 단어는 '영생'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을 요한이 사용할 때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사람이 현재 영생을 얻고 죽은 후에도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현재도 영생을 얻을 수 없거니와 죽은 후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기분이 나빠 천국에 안 가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도 사람이라 잘못이 있을 수 있는데 목사님과 개인감정이 나쁘다고 지옥에 가시렵니까? 지옥에 가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⑵니고데모는 지위가 높고, 아는 지식이 많아도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입니다. 2절에 보면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께 왔다고 했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밤에 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영적으로 무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밤이라고 하는 의미를 2중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어두운 밤'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낮에 오지 않고 밤 10시쯤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영적으로 어둡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무리 학식이 높고 경륜이 깊고 나이가 많고 권력이 많아도 니고데모는 영적으로 눈 먼 사람이요 캄캄한 사람이요 한치 앞도 나갈 수 없는 어두운 사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공부를 많이 했어도 학위가 많아도 높은 권력을 가졌어도 돈이 많아도 또 오랜 동안 종교생활을 했을지라도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할/
②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즘은 거듭난다는 말을 교회에서보다 세상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듯 합니다. 사람이 겉모양만 조금 바꾸어도 거듭났다고 하고, 회사나 기관이 무엇을 조금만 개선했다고 하면 심문 방송에서 그 단체가 거듭났다고 떠듭니다. 하지만 이 말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 쓰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런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여기 '거듭난다'는 말을 다른 말로 '중생'이라고 합니다. 중생이란 단어가 성경에 나타나 있는 곳을 찾아보면 딛3:5절에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나와 있고, 벧전1:3절에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와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벧전1:23)라고 두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거듭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을 '중생하지 아니하면'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인데, 왜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라고 번역했을까요? 이 구절을 원문에서 두 단어로 되어 있는데, '출생'이란 뜻과 '다시' 또는 '위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위로부터 출생한다'는 말이 됩니다. 즉, 생명의 근원은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나는 것이라는 의미로써 '거듭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남의 본질은 '위에서, 하늘에서'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 하늘에서 역사하실 때 거듭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거듭남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육신이 바뀌어 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했습니다.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이나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는 것을 거듭난 것 같이 말하고, 매일 같이 술을 마시던 술고래가 술을 끊고 안 마시는 것이 거듭남으로 생각을 합니다만 그러나 거듭남은 이런 일부분의 변화가 아닌 온전한 변화요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근본적으로 죄인인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 사탄의 자녀였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이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물이 온도의 변화에 따라 기체가 되고 고체가 되고 액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화학적인 변화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할/ 외형적인 변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새롭게 바뀌는 것이 꼭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 전혀 새롭게 바뀌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영으로 거듭날 때 육도 거듭날 수 있고 영으로 거듭날 때 우리의 삶에 진정한 만족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일은 너무나 신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머니 뱃속의 아이가 '모태에서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모르듯이 중생은 하나님의 손에서 신비롭게 태어나는 부분입니다. 이 중생의 경험은 어떤 분은 갑자기 오기도 하고 어떤 분은 천천히 거듭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아멘!/ ㉤중생의 단계가 여러 가지이나 근본적인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⑴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⑵가슴을 치며 통회 자복하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⑶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고 주님을 내 생활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결국 중생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 와서 회개하며 주님을 우리 생활 가운데 모시는 삶을 말합니다. /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거듭남도 믿음의 역사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거듭남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멘!/ ㉥거듭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⑴죄 사함이 거듭남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용서받은 의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에 의지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이 거듭남은 아닙니다. ⑵신분의 변화가 거듭남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우리는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⑶개종이 거듭남은 아닙니다. 개종이란 종교를 바꾸는 것입니다. 불교를 기독교로 바꾸었다고 하여서 거듭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거듭남으로 가는 길이지 거듭남 자체는 아닙니다. ⑷변화가 거듭남은 아닙니다. 이것은 거듭난 자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가요? 유명한 세계적인 전도자 'T. L. 오스본'목사님은 '한 사람이 거듭났다거나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때에는 새로운 영적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1: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니라' /아멘!/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씨'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무엇인가? 씨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본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본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씨입니다.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은 하나님의 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닭은 꼬끼옥 거리고 고양이는 야옹거리며 개는 멍멍 하면서 짖어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배웠나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닭에게는 닭의 씨가 있고, 고양이에게는 고양이 씨가 있고, 개에게는 태어나서부터 개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와 말을 유심히 본 적이 있습니까? 소는 앉았다가 일어설 때에 뒷다리부터 일어섭니다. 그런데 말은 앉았다가 일어설 때에 앞다리부터 일어섭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나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소의 씨가 들어 있습니다.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말씨가 들어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순간 하나님의 씨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성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됩니다. /할/ 그래서 하나님의 씨를 받기 전까지는 죄를 짓지만 하나님의 씨를 받은 다음부터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것이 거듭난 상태요, 이것이 거룩의 상태입니다.' 달걀이 한 번 태어나서는, 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살아 움직이는 닭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두 번 태어난다'는 뜻이고,'새로 태어난다'고도 합니다. /할/ ③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할/ 서울대학교는 서울 대학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이 완비되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성령의 나라이기에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비자를 받지 않고는 미국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비자는 성령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물로 씻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씻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출30:20절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여기서 회막은 지금의 성전, 즉 교회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씻지 않고 회막에 들어가면 즉시 죽었습니다. 또 엡5: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죄를 씻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보혈로 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보혈의 능력으로 죄 씻음을 받습니다. 엡1: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히9: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계1:5절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엡5:26절에서는 말씀으로 비유했고, 벧전3:21절에서 세례로 표현했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그렇습니다. 여기 '물'은 세례를 의미합니다. 세례는 예수 죽음, 내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을 의미합니다. 고후5: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롬6:8절에서는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고 또 예수와 함께 살았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옛날 나, 옛사람인 나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나도 예수로 다시 태어났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가 내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책임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성령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역사는 바람처럼 신비하다고 했습니다. 바람은 신비한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신비하다고 해서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람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바람에 대해서 잘 이해도 못하고 바람은 참으로 신비해도 바람이 불고 존재한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붕이 날아가고 나무가 쓰러지고 쓰나미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심령을 깨뜨려 새롭게 변화시켜 거듭남의 능력을 주십니다. /믿/아멘!/ ▶오래 전에 한국 한 외딴 섬에서 일어났던 한 작은 사건을 감동적이라고 KBS에서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서 방송해 준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육지와 이 섬이 다리도 많이 놓고 배도 오고 가는 길이 좋아져서 날마다 드나들고 괜찮습니다. 4-5십 년 전에는 일주일에 한번 교통이 왔다 갔다 하는 섬이 그득했습니다. 그런 외딴 섬에 낯선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생전 보지 못한 사람이 섬에 나타나니까 섬사람들에게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야?' '모르는 사람이야' '누구 집에 왔대?'하고들 궁금해합니다. 그때 그 사람이 섬사람들을 모아놓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나는 목사입니다. 여러분에게 전도하려고 이 섬을 찾아왔습니다.' 자기를 소개한 뒤에 전도를 했더니 생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어떤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바람에 사람들이 교회당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목사님 옆으로 날마다 몰려들고,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젊은이들은 이 젊은 목사에게서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받아보려고 섬이 뒤집힐 만큼 주일날이 요란스러웠습니다. 그런 어느 날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난데없이 형사들이 들이닥쳐서 설교하는 목사를 체포하는 겁니다. 섬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여보시오! 아니, 당신들 누군데 우리 목사님을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겁니까?'하고는 몽둥이를 들고 와서 형사들을 구타하는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너희들 누구야? 우리 섬의 귀하신 목사님을 너희들이 왜 이러는 거야?' 아주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 때 목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 조용하십시오. 형사들이 나를 잡으러 온 것은 옳은 일입니다. 이제 제 신분을 밝히겠습니다. 저는 죄를 짓고 이 섬으로 도망 온 죄수입니다. 죄수의 신분을 숨기려고 가짜 목사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이렇게 목사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아버지가 목사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도 많이 아버지를 보아서 흉내 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짜 목사를 하다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내가 기독교가 말하는 성령 체험을 하고 진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청산하고 여러분을 향한 목회를 계속 하고 싶어서 제가 연락을 해서 이 형사 분들이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죗값을 마치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 내가 진짜 목사로 여러분과 함께 영생의 진리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만나요' 실화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나도 모르게 가짜 목사로 시작했는데 진짜 성령 체험을 하고 진짜 목사가 됩니다. /할/
④사도 바울은 거듭남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 '그리스도 예수 안'은 구원받는 조건과 단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만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으면 새로워 질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멘!/ 또 '그리스도 예수 안'은 믿음과 말씀의 안을 의미합니다. 믿음 안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할/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거듭나고 새로워집니다. ▶오래 전에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군대에 입대하여 부대장인 박중령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자꾸만 집안의 물건이 없어지는 것을 알게 된 박중령은 그 버릇을 고치기 위해 고재봉을 헌병대로 넘겨 감옥에 보냈습니다. 고재봉은 7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았습니다. 마침내 감옥에서 나온 고재봉은 한 밤중에 도끼를 들고 부대장의 집으로 들어가서 일가족 6명을 도끼로 쳐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죽임을 당한 부대장 일가족은 박중령의 가족이 아니라 새로 부임한 이덕주 부대장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엉뚱한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고재봉은 그 자리에서 붙잡혀 또 다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에서 안국선 집사에게 전도를 받게 됩니다. 안집사는 고재봉에게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해들은 고재봉은 성경책을 손에 받아 들었습니다. 그때 무서운 살인자였던 고재봉의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고재봉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너무나 악독한 죄임을 깨닫고 통곡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좀 더 일찍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을 가슴 치며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교도소 안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서 수감되어 있던 모든 사람들을 구원시켰습니다. 그는 사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꼭 예수님을 믿으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평안하게 천국으로 갔습니다.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입니다. /할/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옥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받고 모욕을 받으셨던 김근태 전 의원께서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시자 그분을 고문했던 전 경감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돌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지금은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목사가 되어 목회 할 자격이 있는가?'가 문제였습니다. 기독교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 질문에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목사가 되어 목회 할 자격이 있는가?' '그럼 나는 자격이 있어서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뿐만 아니라 세상에 자격이 있어서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할/ 김근태 전 의원을 고문했던 그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 사람이 전에 고문했다는 악독 경감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목사의 자격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할/ 저는 이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새로워 질 수 없는 존재가 새로워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사랑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죄인의 죄를 속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할/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가 있습니다. 거듭난 삶은 어떤 삶인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새로워집니다. 정신도, 몸도, 영도, 생활도, 모두 새로워집니다. 이렇게 새로워진 우리가 거듭난 우리가 더욱더 새로워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⑴생각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가장 복된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건들은 모두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고 나쁜 생각을 가지 사람들은 나쁜 물건을 만들어 냅니다. 저 김정은 일당들을 보세요! 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최고의 살상무기인 핵을 만들어 가지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헛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는 나라입니다. /아멘!/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만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육신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생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내 생각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생각 속에 온갖 잡념이 가득 찬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옳은 생각과 옳은 마음을 간직해야만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복음의 진보를 이루는 해로 정했습니다. /할/ ⑵보는 시각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옳게 보고, 바르게 보고, 정확히 보는 시각이 중요합니다. 매사를 옳게 볼 때 오해가 없고 편견이 없고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게 되면 정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시각의 굴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을 뿐 아니라 잘못 보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멘!/ 여러분,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봅시다.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믿음으로 보고 꿈을 가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불란서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공부방에 알프스 산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폴레옹의 사진을 보면서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감도 갖게 해 준다고 합니다. /할/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한밤중에 밖으로 불러내서 은구슬 금 구슬을 뿌려 놓은 것과 같은 환상적인 밤하늘의 뭇 별들을 보이면서 약속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환상을 주시려고, 꿈을 갖게 하시려고, 꿈의 영상을 환상 속에서, 생각 속에서 익어가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믿/ 그래서 우리는 꿈을 지니고 환상을 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시각을 새롭게 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아멘!/ ⑶언어를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서양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Good morning' '좋은 아침입니다'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입버릇처럼 무의식중에 기지개를 켜면서 내뱉은 말이 '아리고 죽겠다'입니다. 하는 일 조금만 어려워도 내뱉는 말이 '죽고싶다'입니다. 부부가 다투다가 너무 쉽게 내 뱉는 말도 '우리 갈라서자'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말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말은 은연중에 자신에게 암시를 주는 힘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그 암시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말을 하는데 진지해야 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할/ 최면학에서 잠이 오지 않는 사람에게 '잠이 온다, 잠이 온다' 하고 암시를 주면 곧 잠이 오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같은 암시를 최면학에서는 '힌트'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장가가 나온 것입니다. '잘 자라 잘 자라' 하면 아이가 금방 잡니다. 또 '너는 바보다'하고 어린아이에게 자주 힌트를 주면 그 아이는 진짜 자신을 바보로 믿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마다 소망적인 자기 암시의 설교를 하면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긍정적인 신앙인들이 되어 갑니다. 저는 소망적인 메시지만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아멘! 아멘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⑷바른 의식, 옳은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골3:9-10절에서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할/ 고후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인생은 바른 의식 속에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⑸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후6:14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이 '의'이며, 그것을 어기는 것이 '불법'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통해서 의롭게 여김을 받은 자들이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그래서 마7:13절에 예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할/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빛 된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의 인도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악한 영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사람들과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벨리알은 사탄이나 적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어찌 우상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가증스러움과 하나님의 노여움만 더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네가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변해야 가족도, 친척도. 세상도 변합니다. /할/ ⑹거듭난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을 내신 첫 번째 목적입니다. 예배의 사전적 의미는 '초월적 존재 앞에 경배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찬양하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라고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인 예배시간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그 이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헌금을 드리는 것 이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겨야 합니다.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 따르는 헌신이어야 합니다. 롬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는 그분의 사랑 때문에 헌신하고, 사랑 때문에 시간을 드리고, 사랑 때문에 물질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였기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자처했습니다. 예배는 이런 사랑의 심정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삶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아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계명은 사랑입니다(요13:34-35).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게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는 예배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는 이웃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모두 한 형제요 한 자매입니다. 때로는 울렁거리며 때로는 침몰하는 것 같은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족보다 더 질긴 사랑의 울타리는 없습니다. 가족이기에 용납되고 가족이기에 덮을 수 있습니다. 바로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가족입니다. 좀 못 마땅해도 덮고 사랑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삶은 희생하며 남을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마20: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마23:11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할/ 주님께서 주신 '재능, 재산, 은사, 기술'을 가지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아멘!/ 벧전4:10-11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서로 봉사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우리들 자신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교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사용할 때 축복과 기쁨은 더 커지고 커집니다. /믿/ ㈃복음을 전함으로(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입은 말함으로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욕하고 불평하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말'을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리(복음)를 말하라고 하십니다. 진리를 안다면 당연히 전해야 합니다. 행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 그렇습니다. 생명 살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사모님과 권사님이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마치고 돌아와서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사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바라보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뜻깊은 절기에 거듭난 성도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전도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는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롬10:13-15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할/ 우리 모두 거듭난자의 바른 삶을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3년 3월 10일 대예배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