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스크랩] “이제 주님 앞에 설텐데... 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4. 24. 13:04
[스크랩] “이제 주님 앞에 설텐데... 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정말 눈물겨운 간증이며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사건입니다.
...
저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은 모태신앙이 아니셨지만
하나님께 목회로 헌신할 정도로 무척 뜨거운 분이셨습니다.

정말 능력있는 기도의 간증들을
어렸을 때 아버님으로부터 많이 듣곤 했습니다. (신비한 체험)

그러나 어머니는 모태신앙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신학을 하시면서
목회길을 가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처음에 지방에서 목회하실 때에는 같이 동참하셨지만
그곳에서 많은 생계문제로 고생하시면서
목회길을 반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 많으셨고
그중에 교육열이 유난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목회에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길을 가셨고
어머니는 자신이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자녀들 대학을 다 보내겠다고 하시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셨습니다.(장사)

그 과정에 아버지도 목회를 쉬고
한때 아버지까지 장사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생횔교적부 직업란에 '목사'라고 쓰실 때에는
아버지가 참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야할 길을 가지 않는 것으로 고통스러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후에 학교 교목을 하시면서
교회에서는 교육목사님으로 계셨습니다.

간단한 글로 요약해서 썼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목회에 도움을
전혀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방해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머님이 50대에 들어서면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지난 날들을 회개 하시면서
이제라고 주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셨습니다.

그 후로 어머님은 모든 면에 새사람으로 바뀌셨습니다
그후 몇년이 흘렀는데 어머님이 병원에서 자궁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머님은 투병하시면서 너무도 성령이 충만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항상 부흥회처럼 찬양과 기도가 그치지 않았고
하나님이 어머니를 꼭 살려주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제라도 살려 주시면 교회를 개척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몇년만 기회를 주시면,
아니 1년이라도 살게 해주신다면 주의 일을 할텐데...."
라고 말씀하시면서 기회를 주시기를 너무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이 다 되신 것을 느끼셨습니다
"내가 이제 하나님앞에 설텐데 주님께 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
라는 말씀만 계속하셨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자녀들도 애착이 없으셨고
오직 "하나님 앞에 설텐데 ....."
"하나님앞에 설텐데......"
하시면서 지나온 세월을 너무도 후회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앞에 작은 헌신이라고 드리고 싶어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자신도 조금이나마
경험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진통제를 거절하셨습니다.

진통제 없이 암투병을 하시는 어머님을
우리 자녀들은 정말 보기 힘겨웠습니다.

어머님의 허락만 있으면
진통제를 놓을 수도 있는 간호원 언니도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하셨고
순간순간 고통으로 잠을 거의 못 주무셨습니다.

저희들이 사정사정하며
제발 진통제를 맞으시라고 간청해도 요지부동이셨습니다.

3개월의 암투병을 부들부들 떠시면서
고통을 참아내고 계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견디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어머님은 이 찬송가
"날 위하여 십자가에 중한 고통 당하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라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를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다 외울 정도로 늘 듣고 부르곤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은 나와 언니가 있는 앞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시면서
"내가 이젠 정말 못참겠구나 진통제를 맞아야겠다"라고 하시면서
끝까지 견디며 붙들었던 끈을 놓으셨습니다.
그때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언니들은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고 진통제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밖에서 크게" 엄마!"라고 부르면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어머님은 숨을 깊게 내리 쉬시더니
제가 보는 앞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몇초 후면 어머님의 몸에 진통제가 들어오는 순간이었는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순간 어머님을 부르셨습니다.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소천하셨을 때 어머님은 58세였습니다.

어머님이 주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머님은 주님 앞에 겸손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주님! 전 주님께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전 주님께 마지막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할수 없는 약속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값없이 받은 은혜에 얼마나 감격을 하셨을까?

기도하면서 갑자기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출처 :  사랑이라
[스크랩] “이제 주님 앞에 설텐데... 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정말 눈물겨운 간증이며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사건입니다. 

저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은 모태신앙이 아니셨지만  
하나님께 목회로 헌신할 정도로 무척 뜨거운 분이셨습니다. 

정말 능력있는 기도의 간증들을  
어렸을 때 아버님으로부터 많이 듣곤 했습니다. (신비한 체험) 

그러나 어머니는 모태신앙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신학을 하시면서  
목회길을 가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처음에 지방에서 목회하실 때에는 같이 동참하셨지만  
그곳에서 많은 생계문제로 고생하시면서  
목회길을 반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 많으셨고  
그중에 교육열이 유난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목회에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길을 가셨고  
어머니는 자신이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자녀들 대학을 다 보내겠다고 하시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셨습니다.(장사) 

그 과정에 아버지도 목회를 쉬고  
한때 아버지까지 장사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생횔교적부 직업란에 '목사'라고 쓰실 때에는  
아버지가 참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야할 길을 가지 않는 것으로 고통스러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후에 학교 교목을 하시면서  
교회에서는 교육목사님으로 계셨습니다. 

간단한 글로 요약해서 썼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목회에 도움을  
전혀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방해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머님이 50대에 들어서면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지난 날들을 회개 하시면서  
이제라고 주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셨습니다.  

그 후로 어머님은 모든 면에 새사람으로 바뀌셨습니다  
그후 몇년이 흘렀는데 어머님이 병원에서 자궁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머님은 투병하시면서 너무도 성령이 충만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항상 부흥회처럼 찬양과 기도가 그치지 않았고  
하나님이 어머니를 꼭 살려주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제라도 살려 주시면 교회를 개척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몇년만 기회를 주시면,  
아니 1년이라도 살게 해주신다면 주의 일을 할텐데...." 
라고 말씀하시면서 기회를 주시기를 너무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이 다 되신 것을 느끼셨습니다  
"내가 이제 하나님앞에 설텐데 주님께 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
라는 말씀만 계속하셨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자녀들도 애착이 없으셨고  
오직 "하나님 앞에 설텐데 ....."  
"하나님앞에 설텐데......"
하시면서 지나온 세월을 너무도 후회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앞에 작은 헌신이라고 드리고 싶어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자신도 조금이나마  
경험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진통제를 거절하셨습니다.

진통제 없이 암투병을 하시는 어머님을  
우리 자녀들은 정말 보기 힘겨웠습니다.  

어머님의 허락만 있으면  
진통제를 놓을 수도 있는 간호원 언니도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하셨고  
순간순간 고통으로 잠을 거의 못 주무셨습니다.

저희들이 사정사정하며  
제발 진통제를 맞으시라고 간청해도 요지부동이셨습니다.

3개월의 암투병을 부들부들 떠시면서  
고통을 참아내고 계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견디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어머님은 이 찬송가   
"날 위하여 십자가에 중한 고통 당하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라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를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다 외울 정도로 늘 듣고 부르곤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은 나와 언니가 있는 앞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시면서  
"내가 이젠 정말 못참겠구나 진통제를 맞아야겠다"라고 하시면서  
끝까지 견디며 붙들었던 끈을 놓으셨습니다. 
그때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언니들은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고 진통제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밖에서 크게" 엄마!"라고 부르면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어머님은 숨을 깊게 내리 쉬시더니  
제가 보는 앞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몇초 후면 어머님의 몸에 진통제가 들어오는 순간이었는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순간 어머님을 부르셨습니다.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소천하셨을 때 어머님은 58세였습니다.

어머님이 주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머님은 주님 앞에 겸손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주님! 전 주님께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전 주님께 마지막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할수 없는 약속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값없이 받은 은혜에 얼마나 감격을 하셨을까? 

기도하면서 갑자기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사랑이라

출처 :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들
글쓴이 : 예수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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