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우리 아이들을 신앙으로 키워야 합니다! (잠 22: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5. 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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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신앙으로 키워야 합니다! (잠 22:6)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우리나라 옛 전래동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색시가 시집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루는 밥을 짓다 말고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오늘은 바빠서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했더니 물이 부족해서 밥이 탔다며 이것은 자기의 잘못이라 위로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감격하여 더 눈물을 쏟았습니다.
  부엌 앞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정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늙어서 근력이 떨어져서 장작을 잘게 패지 못했기 때문에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했습니다.
  그 때 이 작은 소동을 들은 시어머니가 와서 이제 내가 늙어서 밥 냄새도 못 맡아서 밥 내려놓을 때를 알려주지 못했으니 자기 잘못이라고 며느리를 감싸주었습니다.
  이렇게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두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합니다. 가정이 화목은 다른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족이 마음 상할까봐 그 잘못을 마치 스스로가 행한 것처럼 배려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할/
  ▶이렇게 화목한 가정과는 달리 가정불화로 인해서 고민하는 어떤 중년의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오셔서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줄까? 너의 소원이 도대체 무엇이냐? 세 가지의 소원만 내가 들어주겠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는 대뜸 생각지도 아니하고 자신의 첫 번째 소원을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지금 저와 살고 있는 아내를 제발 좀 천국으로 데려가 주시고, 그 대신 새 아내를 제게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정불화로 인해 아내가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생각되었으면 대뜸 첫 번째 소원을 그렇게 아뢰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소원대로 그의 아내를 데려가셨습니다. 그런데 죽은 아내의 장례식을 하는 날, 문상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죽은 아내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안됐습니다. 그 귀하신 분이 이렇게 일찍 돌아가시다니요? 그 분은 다른 사람들 모르게 이런 좋은 일도 하시고, 저런 좋은 일도 하시고, 참 귀한 일을 많이 하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아내에 대해서 칭찬하는 말을 가만히 듣다보니까 자기 아내가 죽은 것에 대해서 정말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넌지시 하나님께 이렇게 아뢰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무래도 그 사람은 죽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니 도로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아내가 죽었다가 도로 살아났습니다. 세 가지 소원 가운데서 이미 두 가지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하나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깊이 생각해도 자기의 마지막 소원을 투자할 만큼 값진 것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10:12).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미움을 버리고 모든 허물을 덮은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할/
  ▶드라이브를 즐기던 어느 부부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서로 말도 않고 썰렁하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심기가 상한 남편이 방향 등도 켜지 않고 차선을 확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트럭 운전자가 휙 지나가며 창문을 열고 이렇게 소리 질렀답니다.
  '야 이 머저리, 병신, 얼간이, 쪼다야! 운전 똑바로 해' 이 말을 듣고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그런데 당신에 대해 어쩜 그렇게 잘 알지?'
  남편은 더욱 기분이 상했으나 꾹 참고 계속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차량 밖으로 개 한 마리가 얼쩡거리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기분이 상해 있던 남편이 차를 세우고는 아내에게 빈정대며 말했습니다.
  '어, 저기 당신 친척이 있네? 반가울 텐데 인사나 하시지?' 그러자 아내가 자동차 문을 열고 나가더니 그 개를 향하여 공손하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셨어요? 시 아주버님 차안에 당신의 못된 동생이 있어요' 그렇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입니다. /아멘!/ 화목한 가정은, 부모와 자식이,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며 용납해 주는 가정인줄 믿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달을 잘 보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제목 소개!▶
 
  오늘은 어린이 날로 한국교회가 다 함께 '어린이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이끌던 색동회가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가짐으로써 시작됐습니다. 그 후 일제의 억압으로 중단됐다가, 해방 후 5월 5일로 날짜를 바꾸어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1957년에 '어린이 헌장'을 공포하고, 1975년에 '국가 공휴일'로 정하게 됨으로써, 오늘과 같은 어린이날로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어린이날을 지키게 된 것은 어린이를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는 것을 뜻합니다. 전통사회의 유교문화 속에 무시되고 억압되던 어린이를 소중한 인격체요, 당당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재발견하게 됐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어린이날을 지키는 것은 다시금 어린이를 소중한 존재로 재확인하고, 더욱 사랑으로 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재발견한 것은 그 명칭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원래 어린이에 해당하는 제대로 된 명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애새끼, 자식놈, 딸년, 아들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투리로 '어린아, 얼라, 어린놈, 어린 애기'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다 1920년에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해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
  어린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란 어린 아이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서 나이가 어린 아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더 나아가 존중하며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래서 이 어린이라는 명칭은 이미 어린이를 인격체요, 소중한 존재로 재발견하고자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린이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소중한 인격을 가진 인격체로 재발견해야 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한 내일의 주인공으로 재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고 돌보며 지켜주어야 할 우리의 분신으로 재발견해야 합니다. /할/
  '칼릴 지브란'의 시집 '예언자'는 한 때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이 시중에 '아이들에 대하여'라는 부분이 어린이의 부모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아이들은 그대를 거처 이 땅에 온 것 뿐, 그대가 창조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그들 자체의 삶을 살아 갈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그대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생각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아이들처럼 되기에 힘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들처럼 만들려 하지 말라.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은 줄 수 없다.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활, 아이들은 화살이다. 사수이신 하나님은 그대들을 힘껏 당겨 아이들을 먼 미래로 쏘아 보내신다. 하나님은 활인 그대들도, 화살인 아이들도 사랑하신다.'
  그렇습니다. 어린이날을 즈음하여 그리고 어린이 주일을 지키면서 우리는 어린이들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다짐이 필요합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활인 우리를 통해 저 먼 미래로 쏘아 보내실 화살이라는 점을 확실히 깨닫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①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입니다.(시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⑴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기업'은 재산이요, 사업입니다. 자식은 재산이고, 사업입니다. 사람들은 '이 농사, 저 농사 중에 자식농사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자식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맞습니다. 자식은 기업이요, 사업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로마에 '코멜리아'라는 귀부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장군이며 존경받는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미망인이 되어 자식 삼남매를 정직하게 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여인을 존경했습니다.
  하루는 유명한 정치가가 세상을 떠난 기일에 많은 장관 부인들이 그 집에 와서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야기 중에 '누구의 보석이 가장 비싼 것인가?'를 서로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마지막에 코멜리아라는 귀부인에게도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밖에 나가서 자신의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데리고 들어와 이들이 자신의 가정의 보화라 말했습니다. 자신의 손에 있는 보석만을 자랑하던 사람들이 부끄러워 모두 소리도 없이 도망갔다고 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의 참 보화, 참 재산, 참 사업, 참 기업이 자녀임을 믿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⑵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상급입니다. 자식은 자기의 수고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는 상급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자녀가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얻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께로부터 상급을 받아온 것입니다. 상급으로 받은 자식을 상급 되게 하려면 바로 키워야 합니다. 자녀를 상급 되게 키울 책임이 부모에게 잇습니다. 물론 자식을 부모 마음대로 키울 수 없습니다. 키워지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으로 키워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의 아들 어거스틴을 눈물의 기도로 그를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자식이 없어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더니 사무엘을 얻게 되고 그를 하나님께 바치니 그가 사사요, 선지자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자녀는 상급 중의 상급입니다. 자녀는 노벨상보다 큽니다. 자녀는 잘만 키워놓으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할/
  ⑶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힘입니다. 재산이 많아도 자식이 없으면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지 못하고 가난해도 자식이 주위에 있으면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도 자식은 힘입니다.
  시127:4절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화살은 옛날에 전쟁터에서 쓰던 무기입니다. 그때에는 화살이 굉장히 중요한 무기입니다. 그러니 젊은 자의 자식은 무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도 잘 키워야 힘이 되고 무기가 되지 잘못 키우면 자기 아버지를 화살로 쏘고 어머니를 화살로 쏘게 됩니다. 잠10:1절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여러분, 자식 때문에 근심하고 자식을 걱정거리로 키우면 안 됩니다. 우리의 자식들을 믿음의 방패로 키워야 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존재는 우리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선물들을 우리가 어떻게 길러야 하겠습니까? 미국식으로 자유롭게 기르는 것이 더 좋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전통적인 한국식으로 엄하게 키우는 것이 더 바람직할까요? 미국식으로도 말고, 한국식으로도 말고, 오직 성경 적으로만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두 아들은 불량한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경건한 짓으로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자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 제사장은 자기의 두 아들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해서 너의 두 아들을 나보다도 더 중히 여기느냐?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느니라'(삼상2:30)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이 우상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법궤를 들고 나가서 싸우다가 법궤도 빼앗기고 그들 마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자식을 잘못 키우니까 복이 아니라 화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할/
  ▶6,25 동란 때 어느 가정에서 아들이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했습니다.
  '얘야, 네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서 너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그러니 너는 어디를 가든지 매일 새벽5시가 되면 우리가 너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무릎꿇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해라'
  아들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전쟁터가 얼마나 위태로운 곳입니까? 언제 목숨을 잃을는지 알지 못하는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까 쉽게 유혹된 길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는 전쟁터에서도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느 날 밤중이었습니다. 그는 보초를 서게 되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습니다. 불현듯이 그의 마음 속에 부모님의 얼굴이 선하게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부모님이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계시겠구나! 지금도 나를 위해서 말씀 그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고 계시겠지'
  그러면서 그의 마음 속에 진한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어떤 힘에 이끌려서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부모님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경건하게 기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자기의 머리 바로 위로 총알이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 순간 무릎을 꿇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면 영락없이 그는 그 총알에 맞아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의 부모가 그 아들을 경건하게 신앙적으로 바르게 잘 키웠기 때문에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멘!/
  부모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자녀를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가르쳐야 될 책임이 부모에게는 있습니다. 세상 지식으로 가르치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우리의 자녀가 이 땅에서 잘 되고 또 장수할 수 있습니다. /믿/

 

  ②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자녀를 성경 적으로 키우는 것입니까?
  ⑴자식들에게 바른 교육이 그들을 축복 자로 만듭니다(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웨슬레의 어머니인 수잔나 여사는 탄광촌에서 가난한 광부들을 돌보는 가난한 목사의 사모였습니다. 그녀는 열아홉의 자녀를 낳아 열세 명을 키웠는데 탄광촌에서의 생활이 어찌나 어려웠든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능력이 없어 그녀 자신이 직접 교사가 되어 엄격한 가정교육, 종교교육을 시켰습니다.
  수잔나는 매일 '가족성결기도회'를 열고 기도회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예들아! 너희가 누구냐?' 그러면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너희를 위대하다 했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예, 우리는 지금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누가 시켰느냐?' '우리를 위대하게 쓰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시켰습니다' /할/ 교육이 중요합니다. /아멘!/
  ⑵우리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한번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교훈을 듣는데 애 어머니들이 '예수님, 예수님'하면서 그들이 아기를 데리고 와서 아기의 머리에 예수님의 손을 얹고 축복안수기도를 해달라고 합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이 '여자들이 주책이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자기 아들딸들만 복을 빌어 달래! 에이 얌체들아 시끄러워' 하며 이들을 물리쳤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고 마19:14절에서 말씀하시고 어린아이들 하나 하나에게 간절하게 축복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또 한 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조용한 시간에 '선생님 세상에서는 돈이 많고 세력 좋은 사람이 잘났다고 뽐내는데 천국에서는 누가 크나이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우리 12제자들이 최고겠지. 그 중에서도 아마 내가 최고 일거야!' 이런 자만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자기 앞에 세우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분명하게 결론을 지으신 다음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마18:6절에서 말씀하시면서 어린아이들의 생명의 존엄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멘!/
  여러분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생명을 어른들의 영혼보다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거짓이 없고 진실 된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합니다. 변명이 없습니다. 꾸미지도 않습니다. 나타내지도 않습니다. 속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의 소유자들을 찾으시고 믿음의 주인공으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믿/
 
  ③부모들은 자식들을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⑴우리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도 엄연한 인격체입니다. 예수님이 어린 아이들을 가리키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18: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그만큼 우리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어리다는 것과 우리가 그를 낳아주고 길러주었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기분, 감정, 인격을 무시해 버리고 짓밟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 자녀의 마음 속에 상처가 남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자녀들이 언제 부모 때문에 상처를 가장 많이 받을 것 같습니까? 아마도 제 생각에는 부모가 자녀 앞에서 화목하지 못하고, 싸우고 다툴 때 가장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가 깊어집니다.
  ▶오래된 고전 예화입니다.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느 부부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방에 들어가서 숨을 죽인 채 거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마음 졸이며 듣고 있습니다. 부부사이에 점점 더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급기야 화를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옆에 있는 가스밸브를 틀었습니다. 그리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습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아파트 안에 불길이 크게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방안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면서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아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습니다. 나와서 보니까 거센 불길이 아파트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아들은 엉겁결에 창문을 열고서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아무개야!'라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따라 창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아버지는 홧김에 불을 지르기는 했지만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세 사람이 다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다 무사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버지는 제비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비처럼 날아서 땅에 사뿐히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는 날라리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잘 날았겠습니까? 훨훨 날아서 땅에 사뿐히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도 안 죽었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사람이 살다 보면 부부지간에 의견이 갈리고, 싸울 때가 왜 없겠습니까?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가금씩 제 아내하고 싸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적인 차원에서 부부지간에 다툴 일이 있다 할지라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잠시 참자는 것입니다. 적어도 아이들 눈앞에서만큼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또 어머니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평안히 유지될 것입니다. /아멘!/
  ⑵신앙적인 인물로 키워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유산은 신앙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믿/ 엡6:4절에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습니다.
  교양과 훈계는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행하는 교육적인 행위입니다. 굳이 이 두 가지를 우리가 구분한다면, 교양은 주로 예방 적인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훈계는 주로 치료적인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
  우선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아니하도록 미리 예방 적인 차원에서 교양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활용한 예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던 한석봉의 어머니입니다.
  ▶석봉이가 어린 시절 글공부를 위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석봉이는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글공부를 중간에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인들 왜 사랑하는 아들이 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일부러 엄하게 대합니다. '석봉아! 내가 불을 끌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떡을 쓸겠다. 그리해서 네가 이기면 오늘밤 여기서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이 길로 돌아가거라!'
  어머니는 불을 껐습니다. 캄캄한 가운데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석봉이는 글을 썼습니다. 뒤에 불을 켜보니까 어머니가 썬 떡은 가지런하게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석봉이가 쓴 글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결국 석봉이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금 글공부를 위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왜 어머니의 마음인들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밤새도록 울며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엄격함이 있었기에 한석봉은 뒤에 명필로써 이름을 떨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어리광을 받아주면 아이는 바르게 자랄 수가 없습니다. 예방적인 차원에서 교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또 치료적인 차원에서 훈계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잘못된 것을 미리 잡아주어야 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양에 어느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면회를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별의 입맞춤을 하는 순간에 아들이 어머니의 혀를 세게 깨물어 상처를 주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서 몹쓸 놈이라고 꾸짖었습니다. 그 때 아들은 이렇게 항변을 했습니다. '내가 지금처럼 사형수가 된 것은 우리 어머니의 책임이 큽니다. 내가 어릴 때 옆집에 가서 탐나는 물건을 슬쩍 훔쳐올 때 어머니는 뻔히 알면서도 나를 타일러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내가 원하는 물건은 사람을 해쳐서라도 가져야 직성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형수가 된 것입니다.' /할/
  여러분! 부모에게는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바르게 키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잘 사는 것보다도 바르게 살도록 키웁시다. 잘 사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은 엄연히 틀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바르게 살도록 가르쳐야 됩니다.
  인기 있는 사람과 존경받는 인물은 다릅니다. 탕자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돈이 많을 때는 친구가 많고,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니까 인기도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돈 많은 사람과 권력 있는 사람은 늘 조심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인기가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잘 살기보다는 바르게 살도록 가르쳐주고, 또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존경받는 인물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르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양육시키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교육열이 높습니다. 부모가 굶을지언정 아들딸들에게 공부시키는 것은 너무도 훌륭한 일입니다. 이 교육열 때문에 우리나라가 선진대열에 한 발짝 성큼 내디딜 수가 있었습니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합니다. 음악도, 미술도, 삶의 이데올로기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세계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한 시대를 빛내었던 '아브라함 링컨'은 '나의 위대한 스승도, 나의 위대한 학교도, 나의 위대한 도서관도, 하나님의 성경이었다.'고 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성경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딤후3: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생명을 얻게 해 줍니다. 요20:31절에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성경은 한 마디로 인생의 구원의 안내서요, 모든 문제의 해결의 키요, 축복 받는 비결이 다 들어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아무리 피곤해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성경을 읽지 않는 날이 한 번도 없었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할/
  유대인들은 맨 먼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공부와 예배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의 교육의 진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아멘!/


  ▶잠깐 이스라엘 민족이 자녀를 키우는 법 다섯 가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태어나는 날부터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십계명을 읽어줍니다. 아이가 태어난 첫날부터 말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성경을 읽어주는 것이 자녀 양육법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도 그의 부모가 키운 기간은 젖먹이 때뿐입니다. 모세는 어머니의 젖꼭지에서 떨어지는 날에 나일 강가에 버려져 바로 공주의 손에 넘어가 애굽 궁궐에서 학문과, 무예와, 인격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나이 40이 되기까지 애굽 궁궐에서 살면서도 애굽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학문을 배웠으나 애굽의 죄악이 그의 인격에 때묻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의 교육이 모세의 인격을 통째로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아멘!/
  ㈁책임감 있는 교육을 시킨답니다. '너는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보던지 안 보던지 충성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받았던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갔지만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책임감 있게 잘함으로 축복을 받아 일개 노예 신분으로 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협동정신을 키워줍니다. '형제끼리 힘을 모아라! 친구끼리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상술이 과히 세계제일임을 들어서 잘 압니다. 그들은 상술 뿐 아니라 동족간에 우애가 굉장합니다.
  미국의 경제계는 유대 계가 잡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 큰 돈줄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100사람 중 한 사람이 부도를 내고 거지가 되면 99집에서 그 사람이 망한 원인을 조사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그 사람의 자본금이 백만 불이었다면 모아서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네가 이번에 망한 원인은 이런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 봐라'고 지도해 주면서 돈을 이자도 없이 준다고 합니다. 망하면 또다시 모아주고 그러다가 잘되면 주었던 100만 불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세계 속에 흩어져 살지만 거지가 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협동정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멘!/
  ㈃부자 되는 교육도 시킵니다. 돈을 악착같이 벌어서 함부로 쓰지 말 것과 어린아이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안수를 해 줍니다. '하나님 부자 되게 해 주옵소서! 물건을 주옵소서!'
  여러분 하나님 앞에 자식을 축복하는 것 엄청난 축복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식들에게 안수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재벌 되게 하옵소서! 물질 뿐 아니라 믿음도 재벌 되게 하옵소서!' /할/ 여러분, 물질만 재벌 되었다가는 그 물질 관리 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재벌 되어서 그 물질을 하나님이 지켜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천대받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교육하며 키웁니다. '너희는 천대받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되고 어디를 가든지 대접을 받아야 한다. 너는 이스라엘 선민이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명심하라. 하나님의 백성이 천대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받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시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교육은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요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아무리 세상 적으로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이 지옥 불에 떨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부모는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공부, 공부, 공부', '대학, 대학, 대학'만을 외칩니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들은 잘합니다. 그러면서도 그저 대학만 들어가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산에 가면 산삼이 있고, 바다에 가면 해삼이 있고, 집에 가면 고삼(高三)이 있다.' 집에 고3학생이 한 명만 있어도 전 가족이 비상히 걸립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대학에 떨어졌다고 해서 가슴 아파하고 금식하면서, 내 사랑하는 자녀의 영혼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금식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내 자식이 대학에는 붙고, 지옥에는 떨어져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에게 제대로 신앙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부모된 우리가 바른 신앙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함께 모리아 산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삭의 등에는 나뭇짐을 지었습니다. 나뭇짐을 지고서 산을 올라갈 정도였으니까 이미 이삭의 나이는 20세 정도로 청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았으니까, 지금은 120세로 늙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에는 횃불과 칼이 들려져 있습니다. 이삭은 올라가는 도중에 아무래도 마음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번제에 쓸 불과 칼은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에 못질하는 질문입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예비하시리라' 
  드디어 산에 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아들 이삭에게 진실을 밝혔을 것입니다. '아들아, 용서해라. 사실은 사흘 전에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셔서 너를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 너는 죽어줘야 되겠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이런 말을 듣고 어떻게 했겠습니까? '아버지, 웃기는 소리 그만 하세요. 날 잡아서 제사를 드려요? 정말 아버지는 사람도 아니네요.' '이놈아, 너 하나님의 말씀을 감히 거역할 것이냐?' '아이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일랑 아버지나 잘 들으세요' 그러면서 스무 살 난 청년이 120세 된 노인을 밀어 뜰이면 그냥 넘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달아나면 무슨 재간으로 그를 붙들겠습니까?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결박을 당했습니다. 이삭은 단위에 그대로 누웠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가 있겠습니까? 평소에 아버지 아브라함과 또 어머니 사라가 아들 이삭 앞에서 바른 신앙의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니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더라. 하나님이 죽으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내가 죽어야지' 이삭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보고서 바른 신앙을 배워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부모된 우리들이 늘 신앙의 바른 본을 보여줄 때,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적으로 잘 클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전 세계에서 가장 정치가 바로 되어 있고 선진국이며 신사의 나라가 영국입니다. 민주주의가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원래 신사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영국은 원래 바이킹, 즉 해적이었습니다. 북 게르만족이라고 하는데 A.D. 8세기에서 10세기에 노르웨이, 덴마크, 영국의 템즈강 지역을 점령했고, 앵글로색슨족과 함께 영국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이 바이킹들이 머리가 대단히 좋았습니다. 훌륭한 후손을 키우기 위해 고민하다 훌륭한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나 교육적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 여성들을 도둑질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억지로 끌려와서 해적들의 아내가 되었지만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훌륭하게 양육시켰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해적이었지만 어머니의 훌륭한 교육으로 아들은 신사가 되어, 오늘날 영국이 신사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교과서였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와서 세운 학교가 있습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톤'은 모두 이들이 성경공부하기 위하여 세운 학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최우수 대학이 되었습니다. 이 학교들이 300년 간 미국의 교육을 주도하고 세계 선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성경공부는 최고의 공부요 천재 교육입니다. /아멘!/
  ⑶이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기도하는 신앙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기도한 자식은 절대로 버려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생활자체가 기도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위대한 사건을 창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녀들을 위하여 많은 것을 투자합니다. 학원에 보내고, 피아노 교습소에 보내고,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물질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앞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물질의 투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투자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잘되는 비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⑷부모가 자녀들에게 효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효도는 부모가 죽어서 제사를 잘 드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실 때 부모에게 잘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세상에 무식한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들은 부모에게 제사도 안 지낸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식들에게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지상명령으로 내리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사생활 30년도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하면서 사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까지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네 대신 잘 모셔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하신 계명을 따라 죽은 자에게는 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부모님께는 정성스럽게 절도합니다. 해가 바뀌면 세배도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추모예배를 드립니다. 음식을 차려놓고 절만 안 하지 그 날 온 식구가 다 한자리에 모여 고인의 생존시를 회고합니다. 그때 바로 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밤입니다. 고인이 살아생전에 교훈하신 말씀은 다시 새기는 날입니다. /믿/
  여러분 우리 모두 부모에게 효도합시다. 특별히 우리 젊은 사람들은 꼭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효도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이요,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의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부모와 같이 사랑하십니다. 아버지 하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이요, 축복의 근원이요, 신비의 근원입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왔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거짓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진실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친구간에도, 진실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메마른 세상에서 오직 거짓 없고, 진실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녀들이 잘 되기만을 바랍니다. 그것이 부모의 희망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수고와 봉사 희생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을 자식이 효도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요, 모든 사회도덕의 기초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할/ (2013년 5월 5일 어린이 주일 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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