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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우리를 권고하시나이까? (시 8:3-5)
▶1908년 어느 날 저녁 한 중년의 신사가 영국 런던에 있는 한 정신과 의사의 진료 실을 찾았습니다. 신사는 극도로 수척해있었고 또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있었습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불안하고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디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는 것이 지긋지긋합니다. 제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을 것 같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후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특별한 병에 걸린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신경쇠약 증세입니다. 일상 생활로부터 한번 벗어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겐 웃음이 필요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즐거움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오늘밤 런던극장에 가서 그리말디의 희극을 보고 실컷 웃도록 하십시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사람입니다. 그의 연극을 보고 웃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당신을 치료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의 말을 들은 환자는 계속 슬픈 표정을 지으며 약부터 먼저 달라고 고집을 부립니다. 의사는 환자를 달래면서 자기의 말대로 하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는 말하기를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그 그리말디올시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기쁨과 감격에 넘쳐 다른 사람에게 이 감격을 전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감격은커녕 짜증과 괴로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 은혜 받은 성도들, 그들은 한결 같이 기쁨과 감격에 넘쳐 살았습니다. 우리보다 환경이나 여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어떻게 살았습니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고난과, 끊임없는 핍박 가운데서도 마음은 더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에 넘쳐 있었습니다. 감옥에서도 토굴 속에서도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능력으로 주님을 섬겼고 그 능력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들의 감격과 기쁨을 오늘 우리도 회복해야 합니다. /믿/아멘!/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신앙인의 감격의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감격입니다. 그는 이 시편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벅찬 감격을 노래하면서 우리에게 감격의 신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창조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1절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1,9) 다윗은 첫 절과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람이 어떤 존재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바울도 롬12:1-2절에서 예배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할/ 그렇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비로소 시작이 됩니다. /믿/ 그렇습니다. 다윗은 지금 온 세상에 가득 찬 주님의 아름다우심과 그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온 우주에 넘치는 하나님의 솜씨를 보고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감격하고 있습니다. /할/ ▶어느 신인 미술인의 전시회장에 사람들이 그림을 감상합니다. 신인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칭찬보다는 혹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구성이 틀렸다느니, 명암 처리가 돼먹지 않았다느니, 주제 설정이 엉성하다느니, 비판을 늘어놓고는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한 여인이 미술관에 들어오더니 그림 한 점 한 점 앞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면서 그림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과 너무도 대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젊은 미술 인을 어려운 가운데서 오늘까지 키워 낸 홀 어머니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그림 한 점 한 점을 눈물 없이 그냥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감격 없이 그냥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그 아름다우신 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를 볼 줄 모릅니다. 꼭 멀리 경치 좋은 곳에 가야 비로소 '참 아름다워라'하고 찬송을 부릅니다. 지금 다윗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달과 별들을 보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늘이요 달이요 별들입니다. 지금은 공기가 오염이 되어 그 아름다움을 쉽게 볼 수 없게 된 것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옛날에는 밤이 되면 으레 사람들은 창을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달이 떠 있고 무수한 별들이 어둠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달과 별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보라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달과 별이 우리로 하여금 보라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것임을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달과 별은 우리가 보라고 하나님 거기 지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솜씨를 생각하고, 거기 새겨진 하나님의 이름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것입니다. /할/ 하나님 지으신 자연 세계를 보십시오. 그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숨결이 있고 그 아름다운 하나님의 솜씨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찬송가 78장 2절에는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자연을 보면서 순간, 순간 하나님의 솜씨 앞에 감격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멘!/ 본문의 다윗은 창조에 감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다윗은 밤하늘의 달과 별들을 보았습니다. 거기 하나님의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달과 별들을 바라볼 때 참으로 무한히 넓고 광대한 하나님의 세계를 본 것입니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넓은 우주, 그 중에 지구 한 모퉁이에 내가 있습니다. 무한한 우주 앞에 나라는 존재는 참으로 적고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이 작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넓은 우주에서 내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의 초점이 된다는 사실 앞에 지금 감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고 신비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다윗이 또 하나의 감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할/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이 넓은 우주에 내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나를 생각하시며 나를 권고해주십니까?' 이런 감격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할/ ◀제목 소개!▶
①주의 창조의 세계를 감탄하는 다윗(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다윗의 시는 체험과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외롭게 양을 치면서 밤하늘에 영롱히 빛나는 달과 별빛을 보았습니다. 은하수의 강을 보았을 것이고,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았고, 한 낮의 강렬한 태양을 보았으며, 저녁노을을 보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대자연을 보면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을 것입니다. 대자연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 앞에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엄한 우주의 신비 앞에 우리 인간의 모습은 초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할/ ▶1808년 비엔나에서 오라트리오 천지창조가 연주되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작곡자 '하이든'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 당시 그는 몹시 늙고 병이 들어서 자기가 앉아있는 의자를 잡아당길 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연주가 끝난 다음 감격한 청중들은 기립하여 '하이든'에게 갈채를 보내고 환호성을 쳤습니다. 그러자 관계자가 하이든에게 일어서서 답례를 하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하이든은 그 갈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자세로 일어서면서 큰 소리로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된 것이지, 내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외치며 의자에 앉다가 실수하여 뒤로 넘어지고 기절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말이 결국 하이든의 마지막 말이 되었답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 바로 여기에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줄 아는 여기에 늘 새롭게 솟아나는 진정한 감격이 있습니다. /믿/아멘!/
②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4) ▶어느 부부가 아이가 없어 갓난아이를 데려다가 양녀로 삼고 잘 키웠습니다. 그 아기는 어느덧 여대생이 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딸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자기가 고아라는 사실과 부모들이 친부모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큰 충격을 받고 부모들에게 반항하며, 자기 자식도 아닌데 애지중지 길러준 것은 위선이라고 폭언까지 하면서 가출을 해버렸습니다. 부모는 너무 마음이 아파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사랑을 딸에게 바로 전할 수 있을까?' 고심했습니다. 사방에 수소문하여 딸의 거처를 알아내 찾아가 보니, 딸은 없고 방안의 어지러운 물건들이 방탕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술병과 소지품들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어 부모의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어머니가 방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냉장고에 먹을 것을 가득 채워 놓고 편지 한 장을 남긴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귀가한 딸은 방 구석구석에서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아 어머니가 왔다 가셨구나' 그러나 고개를 가로 젖고 부정합니다. '다 필요 없어 위선이야' 그러나가 어머니가 쓴 편지를 읽다가 그만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나 우리는 네가 필요하단다. 우리는 너를 끝까지 사랑한단다. 날마다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와 다오' 이 편지에 마음이 녹아버린 것입니다.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낳지도 않은 자기를 이렇게 사랑하는 그 사랑은 보통 부모가 자기 자식 사랑하는 그 사랑보다 더 큰사랑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는 아무런 자격도 없는데 사랑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이관대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가?' 그는 크게 뉘우치고 돌아와서 정말 부모님을 사랑하는 착한 효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죄지은 인간을 구속하시려고 독생자 외아들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해 보세요! 사도 바울이 그 감격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도 이런 감격과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오늘 다윗의 감격을 보세요! 다윗의 감격이 오늘 나의 감격이 되여야 합니다. 이 감격 속에 감사가 있고 충성이 있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이 감격 잃을 때 주님을 향한 사랑도 충성도 감사도 희미해집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할/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후견자이며, 자비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킬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 대한 최상의 예우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밤만 되면 '하이드'라는 흉악범이 나타나서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온 동네를 약탈하는 통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의 보안관이 범인이 잡혔으니 구경 오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주민들은 그 흉악범을 보기 위해 동네의 광장으로 모였고 드디어 불빛 속에 가면이 벗겨지고 범인은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 순간, 주민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그 범인의 모습이 흉측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바로 그렇게 존경받는 '지킬박사'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가장 잘 그렸다는 영국의 단편작가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겉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렘17:9)이라고 했습니다. 강한 듯하나 너무나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보다도 못한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지진과 태풍 앞에 인간의 오만과 노력은 너무나 초라하고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최고의 지혜는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할/ 다윗은 자신의 실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격적인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여기 '사람이 무엇이관대' 이 말속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을 둘 대상이 아닌데' 그런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 대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시니 이상하다는 말입니다. 그 구체적인 표현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생각한다는 말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관심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상사병은 한 사람에게 미친 병입니다. 자나깨나 먹으나 굶으나 오직 한 사람에게 모든 생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어느 누구도, 어느 무엇으로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 그 병을 일으킨 당사자만이 고칠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죽음도 불사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을 생각하셨던지 자신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우리를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또 생각한다는 말은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사49:15절을 보면,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16절에는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손바닥에 새기면서까지 나를 잊지 않으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잊지 않습니다. 내 이름을 잊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그 이름이 새겨진 존재입니다. /할/ 얼마나 대단한 존재입니까? /아멘!/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권고하십니다. 여기 '권고'라는 말은 '파카드'라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조심스럽게 충고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폭군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대화의 파트너로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권고에 대하여 우리가 몇 가지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⑴우리도 지혜로운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잠12:15절에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잠19:20절에는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할/ 어떤 종목의 스포츠이든, 전문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반드시 코치가 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선수에게도, 세계선수권 1위의 선수에게도 반드시 코치가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에게 왜 코치가 필요할까요? 이미 세계 최고의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선수들이 왜 다른 사람의 조언이 필요할까요? 그럼 코치들의 실제 기량이 그 선수들보다 뛰어나다는 말일까요? 물론 세계최고의 선수와 코치가 실제 겨루면 현역 선수가 이깁니다. 만일 코치가 더 경기를 잘한다면, 코치 자신이 선수로 나와 뛰었겠죠. 하지만 코치는 해당 선수의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조언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코치는 전문가로서 해당 선수에게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합니다. 또한 코치는 해당 선수가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 위하여 어떤 전략으로 경기에 임해야 하는지도 계획합니다. 예를 들면 '마라톤'이라는 42.195km를 뛰는 육상 경기에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뛴다고 승리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닙니다. 어느 지점이 가장 힘든 지점인지, 어느 지점에서 속도를 내고, 어느 지점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해야 하는지 등의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할/ 만일 적절한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해당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어느 스포츠든, 좋은 선수와 좋은 코치가 만나야 훌륭한 성적을 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스포츠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의 경영자들도, 국가의 지도자들도 다양한 조언자들을 늘 곁에 두고 있습니다. 고문, 자문, 컨설턴트 등의 직함은 다양해도 그들이 하는 일은 결국 매 한 가지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조언자들을 한데 모아 '연구소'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 기업, 단체들은 대규모의 연구소들을 건립하여 첨단 전략을 생산하는 '싱크탱크'를 만듭니다. /할/ 솔로몬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권고'는 '조언, 즉 도움을 주는 말'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은 지혜로운 자의 특징을 '조언을 듣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멘!/ ▶'퓰리처'상을 수상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고가 '조지프 핼리넌'의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가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그는 무려 20년 동안 사람들이 실수한 이야기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일에 임하며, 무엇보다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타인으로부터 꾸준히 받아야 한다.' 이처럼 아무리 높은 학식과 지혜를 가졌다 할지라도, 주위의 조언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좀 모자라다 할지라도 주변의 조언을 잘 들으면,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위대한 일을 해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분야, 어느 위치에 있든지, 주변에 지혜로운 조언자들이 많아야 자신의 직무를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잘 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주위로부터 유익한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남들의 말에 귀를 막고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 고집하면,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봉착하거나, 때로는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할/
⑵우리가 하나님의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을 만드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만큼 이 세상을 잘 아는 분은 없습니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도 우리 하나님만큼 잘 아는 분이 없습니다.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마르틴 베를레' 씨가 쓴 '나는 정신병원으로 출근한다'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현대 기업을 '정신병원'에, 기업의 CEO를 '정신병원 원장'에 비유하며, 기업들이 온통 미쳤다고 고발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베를레 씨는 원래 '직장에 잘 적응하는 법'과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몸값을 높여라'(2004), '직장생활 잘하는 법'(2008), '연봉 협상의 기술'(2010), '직장인 심리학'(2010) 같은 책들을 출판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를레 씨는 이제 그 직장들이 '미쳤다'고 고발합니다. 기업의 생태를 잘 아는 전문가조차 현대 기업을,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할/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성경을 통해 이 험난한 세상을 뚫고 나가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수천 년 된 고대 문서일 뿐이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이 말씀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도 효력 있는 진리의 말씀이다'라는 뜻입니다. /할/ 구약성경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재산이 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농사로 백 배의 결실을 맺게 해주셨고, 그는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가축까지 거느린 거대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를 시기한 그 땅의 왕 아비멜렉은 이삭을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이삭은 쫓겨 난 땅에서 자신의 가족과 가축들을 위하여 새 우물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역의 목자들이 몰려 와서 그 우물을 놓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삭은 다투지 않고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 우물을 팠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지역 주민들이 몰려와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삭은 다투지 않고 또 다시 그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그 지역주민들은 더 이상 이삭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왕 아비멜렉은 직접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26:28,29). 그리고 아비멜렉은 이삭과 평화협정을 맺었습니다. /할/ 아무리 사람들이 사악한 잔꾀를 써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자를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늘의 조언'을 받는 자를, 이 세상이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는 당장은 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끝내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이 됩니다. /할/ QT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조언'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펴 들고, 그 말씀을 근거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약1: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할/
⑶우리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 역시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있을 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드로는 수십 년 간 미디안에서 목축업을 하면서, 제사장의 직분까지 감당하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즉 그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행정과 인사(人事)' 분야의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방문한 다음날, 이드로가 가만히 지켜보니, 사위 모세가 하루 종일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판을 일일이 간여하고 있었습니다. 답답해진 장인 이드로는 사위 모세에게 조언을 하였습니다. '이래서는 자네도 백성도 견딜 수가 없네. 이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정당하지도 않네. 우선 능력과 신앙이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각각 1,000명, 100명, 50명, 10명씩을 담당하도록 세우게. 그리고 그들에게 자네의 권한을 대폭 위임하게. 그러면 자네는 아주 중요한 일만 처리하면 되고, 그 결과 이 백성들과 자네가 모두 행복하게 될 걸세' '행정과 인사' 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가졌던 이드로는, 이미 그 당시에 현대 경영이론을 꿰뚫고 있었던 셈입니다. /할/ 이 때 모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장인의 말을 경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민족을 훌륭하게 이끌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여러분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전문가들의 조언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현재 많은 공공기관과 금융기관들이 콜 센터를 설치하여, 일반 국민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서점,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하여 엄청난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업가들은 남의 것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⑷우리도 충언과 고언(苦言)할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남에게, 심지어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조차 '기분 나쁜 소리'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지적하는, 자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주변에 아부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에게 진심으로 뼈아픈 충고를 할 사람은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런 고언, 즉 '쓴 소리'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이상, 그런 쓴 소리를 외면한 대가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의 쓴 소리를 거부하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정치가들, 사업가들, 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충언이나 고언'을 듣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강대한 국가나 기업도 쓴 소리를 외면하는 이상, 오랜 기간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한때 막강한 파워로 떠오른 유럽 연합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전문 금융가들의 충언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부 '유럽연합' 국가들이 겪는 금융위기는 경제 전문가들의 쓴 소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지적입니다. /할/ 선민 이스라엘을 보세요! 구약의 선지자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심 어린 쓴 소리를 하는 분들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말을 철저하게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당장은 듣기 힘들더라도,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친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지적을 몸에 좋은 '양약'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잠3:7-8절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할/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리더는 칭찬을 받으면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상반된 의견을 듣고, 토론을 나누고, 여러 대안을 모두 모색해야,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의사결정의 첫 번째 규칙은 반대의견이 없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달콤한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결단코 경영에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솔직한 평가를 듣지 않는 리더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임금들은 하루에 네 번까지도 젊은 경연 관들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였습니다. 아침에는 '조강(朝講), 점심에는 '주강(晝講), 저녁에는 '석강(夕講),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밤에도 다시 경연 관을 불러 '야대(夜對)'를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철저하게 검증하려는 조선왕조 임금들의 노력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할/ 다윗이 사울 왕의 질투 때문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 방랑하던 때에,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현대식으로 말하면) '경비 아르바이트'를 뛴 적이 있습니다. 바로 '나발'이라는 사람의 양떼를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무리들은 나발의 목자들과 양떼들을 맹수와 도적들로부터 밤낮 정성껏 보호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양털 깎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무리들이 '아르바이트 대금'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청년 10명을 나발에게 보내어 정중하게 대가를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불량한' 주인 나발은 그들을 모욕하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다윗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칼을 빼 들었습니다. 그리고 4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의 집을 향하여 진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 앞에 예물을 바치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며 늘 보호해 주시지 않습니까? 나중에 당신이 왕이 되었을 때, 이런 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오명을 쓰지 마십시오. 두고, 두고 후회하시게 될 것입니다'라고 충언을 했습니다. /할/ 그제야 자신의 성급함을 깨달은 다윗은 그녀의 사려 깊고 진심 어린 충언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돌아갔습니다. 이후 나발은 열흘쯤 뒤에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주변의 고언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나중에 후회할 일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훌륭한 사업가가 되려면 쓴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주변에 늘 '올바른' 고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두어야 합니다. 정치인들뿐만 아닙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할/ ③다윗은 인간의 인체의 신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할/ 그렇습니다. 인체의 신비는 신묘막측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를 분석해 보아도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머릿속에 지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영적으로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주와 독대 할 특권이 사람 이외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피조물에도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기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의 천사라는 말 원어를 보면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하나님입니다. 나를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다음 가는 피조물로,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인간이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창조물을 인간에게 확실하게 맡기신 것입니다. 창1: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할/ 그리고 6절 이하의 말씀대로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습니다. 모든 우양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들을 우리로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워 주셨다'고 했습니다. 본래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 사무엘 선지자를 시켜 양을 치던 목동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목동이 왕이 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머리엔 영화와 존귀의 왕관이 씌워졌고 통치권이 주어졌고 부귀가 주어졌습니다.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사실 앞에 다시 한번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 /할/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과 존귀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을 헤아려보십시오. 하나님 나를 택하셨고 부르셨고 거듭나게 하셨고 구원해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해주셨습니다. 하늘 나라의 왕자들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우셨습니다. /할/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은 현재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에서 더 큰 영광으로 영원히 계속된다는 데 더 큰 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누리는 현재의 기쁨이나 감격도 좋은 것입니다만 장차 영원한 나라에서 누리게될 영광과 존귀와 기쁨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비길 수가 없습니다. 나를 향한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 그 큰 축복에 감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우리 신앙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고되게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천국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일제시대 때 주기철 목사가 온갖 고문을 다 당하면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죽기를 한하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러니까 일본경찰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죽으려고 하느냐?' 그때 목사님이 짤막하게 대답합니다. '나에게는 그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순간 숙연해지더라고 합니다. 그 나라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신앙인으로 하여금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씀하기를 '그 나라가 없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아멘!/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이라는 책은 참 유명한 책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알아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천국에 이르는 길'(天路歷程)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파멸의 도시'를 떠나서 외롭게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가는 동안 숫한 장애물을 만납니다. 가다가 '절망의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좁은 문'을 힘겹게 통과하기도 합니다, '허영의 시장' 거리를 지나 '고난의 산'을 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음의 어두운 강'을 건너서 마지막 종착지인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길이 '천로역정'이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 그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피땀 흘리고 관심 두고 살아간 사람들이 가는 나라요, 그 나라에 뜻을 두고 오직 한길만 걸어간 그리스도인들만 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천국입니다. 아무나 갈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눅10: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을 훈련하시고 그들을 전도대로 파송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은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를 할 때 주님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비행기를 탈 때도 탑승객명단에 내 이름이 있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내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경우 출32:33절에서 '주의 기록하신 책'이라고 했고, 사4:3절에서는 '이름이 기록된 모든 사람'이라고 했고, 단7:10절을 보면 '심판을 베푸는 책들이 펴 놓였더라'고 했습니다. 신약의 경우 눅10:20절을 보면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했고, 계3:5절을 보면 '생명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20:15절을 보면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 지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계20:12절을 보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3:20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을 향하여 부르심에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순례자들입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관대' 이런 축복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삶도, 봉사하는 삶도, 기도하는 삶도, 전도하는 삶도 최선을 다 할 때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성경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아멘!/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워주는 월계관은 나무 잎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썩게 됩니다. 월드컵을 금으로 만든 것이니까 시들거나 썩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그것도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믿/ 이제 우리 모두 구원의 감격을 간직한 체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2013년 5월19일 대예배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