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삿 7;1-8
어느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는 데 벽에 붙어 있는 글이 눈에 띄였습니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식사하면서 내내 이 말씀을 곰씹게 되었습니다. 교회로 돌아 와서도 이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도중에 기드온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드온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마더 테레사의 <한번에 한 사람>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나는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한 지 한번에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못 하였다면 나는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 하였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바울만큼 줄어 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번에 한 사람씩.
오늘 이야기로 들어 갑니다.
강대국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몹시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와서 가지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정성껏 양을 길러 양털을 만들어 놓으면 와서 가지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스라엘은 힘이 없어서 미디안 군대가 와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했습니다.
힘이 없으니 대항할 수도 없었습니다. 왕도 없던 시대입니다. 지도자도 없었던 시대입니다.
어느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라를 살려야 할 때였습니다. 그 때 기드온이라는 농사꾼이 있었습니다. 미디안이 보는 데서 밀타작을 하면 또 와서 빼앗아 갈가 두려워서 포도주를 짜는 틀속에 들어가서 몰래 밀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기드온이 놀라서 말했습니다. 농사꾼에 지나지 않는 자기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큰 용사라고 하니까 너무도 놀라서 물었습니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삿 6;13-14)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4)
기드온은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양털을 가지고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한번은 양털만 젖고 땅은 말라있는 증거이고 다음 날 다시 한번 보여주신 증거는 반대로 양털만 말라 있고 땅은 젖어 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하나님만 믿고 나가서 군사를 모집하려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32,000명이 싸우러 나가 겠다고 모여 들었습니다. 32,000명이 모레산 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
그래서 기드온은 32,000명 앞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미디안과 전쟁을 하러 나가려고 한다. 적은 메뚜기같이 많고 낙타떼같이 수를 셀 수가 없다. 마지막 길인지도 모른다. 전쟁이 두려운 사람들은 돌아 가라.” 기드온이 소리지르자 22,000명이 두려움을 느끼고 떠났습니다. 10,000명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그리고 물 마시는 것을 보고 군사를 뽑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10,000명을 데리고 하롯샘으로 갔습니다. 모레산에서 흐르는 샘물이 흐르는 냇가였습니다. 목이 마른 그들은 모두 개처럼 엎드려서 물을 정신없이 마셨습니다. 그러나 300명이 적을 살피면서 물을 손으로 떠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300명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다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300명 용사를 데리고 미디안을 치러 나갔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이 본문을 놓고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원병이 선택병은 아니다.” “32,000 지원병중에 선택병은 300명이다.”
“지원병은 많았다. 그러나 선택병은 적었다.”
"지원하였다고 다 선택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쓰셔야 쓰임받습니다. 하나님은 300명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 가요? 한 마디로 이들은 풀을 베면서 들판의 끝을 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무슨 의미일가요?
1. 집중
풀을 베는 사람은 앞에 있는 풀을 베기에 앞에 있는 풀만을 보아야 합니다. 들판 끝에 있는 풀을 보지 않습니다. 경치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기드온을 따라는 사람들이 집중하여야 할 것은 꼭 하나입니다. 미디안 적들의 동향을 살피는 것입니다. 미디안 군대를 이기려고 모집된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32,000 명중에 22,000명은 전쟁보다는 생명에 집중하여 돌아 갔습니다.
사실 32,000명은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날 군대를 모집하듯이 억지로 징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진하여 나온 사람들입니다. 애급에서 나올 때 군사수만 60만명이 넘게 나왔습니다. 지금은 가나안에서 정착하고 살고 있으니 100만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조금 후 다윗이 통일 왕국을 만들고 인구를 조사하니 150만명 가량 되었던 것같습니다.
100만명 넘는 군사수 가운데 나라를 살려 보겠다고 지원한 이가 32,000명이었습니다. 30 대 1이었습니다. 그 중에 300명 용사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라를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이들이었습니다.
좋은 일에는 빠지고 어려운 일에는 나서는 이들이 100여만명 중에 32,000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다 칭찬받을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하려는 사람은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목적보다 다른 곳에 집중하는 22,000명은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10,000 명 남았습니다.
300명과 9,700명이 갈라졌습니다. 둘 다 집중하였지만 무엇이 집중하였느냐는 달랐습니다. 9,700명은 자기들의 목마름에 집중하였습니다. 개처럼 엎드려 물마시는 데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일차원적인 욕구 채우는 데에만 집중하였습니다. 당장 목마른 것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300명은 자기 사명에 집중하였습니다. 적군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살피면서 물을 손으로 떠마셨습니다. 자기들의 목마름보다 전쟁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모레산 밑에 있는 물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나는 그 곳에 가서 물을 마시지는 않고 양말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곰곰이 생각하여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주마등과 같이 떠올랐습니다. 이 곳에서 이런 일이 오래 전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개 무량하였습니다.
자기 사명에만 집중하는 기드온 300명 용사들을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사명을 잊지 않는 사람이 용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농사꾼 기드온이 전쟁을 하러 가자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인 것입니다. 누가 나팔을 불던지 상관없습니다. 목적만 거룩하면 사명감을 느끼는 이들이었습니다.
32,000명이 같이 사명감을 가지고 나왔지만 두려워서 22,000명이 탈락하였습니다. 사명보다 육신을 생각하는 9,700명이 불합격되었습니다. 오직 300명 용사만 남았습니다.
늘 내가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잊지 않는 이들이 300명 용사였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수많은 애국자들이 독립투쟁을 하여 우리 나라를 도로 살려 냈습니다.
그 때 유명한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김 용환(1887-1946)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난봉꾼으로 그리고 도박하는 데에는 그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도박꾼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그는 재산이 많았습니다. 땅부자였습니다. 18만평이 그의 소유였습니다. 시가 200억 정도였습니다. 이 많은 전답과 재산을 모두 놀음판에서 없앴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오직 딸 하나였습니다. 시집갈 때 해줄 돈이 없었습니다. 사돈댁에서 장롱을 사주라고 돈을 주었습니다. 그 돈도 놀음판에서 날려 버렸습니다. 나중에 깜짝 놀랄만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김 용환은 놀음꾼이 아니었습니다. 난봉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돈은 모두 독립투사에게 갔음이 밝혀졌습니다. 일본인의 눈을 피하려고 놀음판에 가서 모두 잃은 것처럼 위장하였습니다. 땅을 팔아 놀음판으로 갑니다. 그리고 항상 뒤로 돈을 빼돌렸습니다. 임종할 때였습니다. 독립동지들이 죽어 가는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만은 만주로 그 많은 돈을 보낸 것을 말해도 되지 않겠나?” 그는 죽어가면서 말했습니다.
“선비로 당연히 할 것을 하였는 데 무슨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거절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1995년에서야 비로서는 건국 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였지만 나중에는 백일하에 다 들어 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직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집중하였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습니다.
전쟁하는 사람은 잠시 목마름 때문에 물만 보지 않습니다. 해야할 일에 집중합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있는 아이가 주먹을 쥐고 펴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피려고 하여도 실패하였습니다. 모두가 포기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손을 펴지 못 하고 주먹만 쥐고 있는 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며칠 후 그 아이는 죽었습니다. 이제 주먹을 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궁금하여 손을 펴 보았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사진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어 엄마 사진에 그렇게 집착하였던 것입니다. 그 사진을 누가 빼앗아 갈가 두려워 주먹을 결사적으로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누구도 말릴 수 없습니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을 보지 않고 앞에 벨 풀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300명 용사는 오직 적들에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할 일에 집중할 때 일의 용사가 됩니다.
2. 도전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도전한다는 말입니다. 앞에 있는 풀만 베는 것이 아니라 들판 끝까지 벨 것을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기드온과 300명 용사들은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고 도전하였습니다. 300명이 한 나라 군대를 이긴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는 말은 도전입니다.
<로마인의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로마가 온 세계를 지배할 때였습니다. 여기 저기 장군들을 보내어 점령하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전쟁에 패하더라도 결코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패하고 싶은 장군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이기려고 합니다.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가피하여 졌다면 최선을 다 하였는 데 졌다는 것을 인정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로마가 강성하게 된 이유중에 하나입니다.
도전은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것을 도전이라고 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업무입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맡깁니다. 기드온과 300명 용사들은 도전하였습니다. 300명으로 국가적인 전투를 하는 것은 도전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삿 6;12)
들판의 풀들을 다 베려고 하는 것은 도전입니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을 하였다면 그 일이 작은 일이라도 도전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남편은 사진 찍어 작품을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업이 없습니다. 건달같습니다. 밤낮 놀러 다니는 것같습니다. 항상 경치 좋은 곳만 찾아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관광만 하는 것같습니다. 아내가 뼈꼴 빠지에 양품점을 경영하면서 가정 경제를 이어가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카메라입니다.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카메라는 군인의 총과 같은 것입니다. 어느 날 남편은 카메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작가용 카메라라 대단히 비싼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말도 못 하고 실망에 차있었습니다. 아내가 알았습니다. 아내는 빚을 내서 카메라를 사주었습니다. 남편은 감격하였습니다.
“여보! 그 카메라 잘 잃어버렸어요. 이제 사진찍기는 그만 두고 취직해서 돈 좀 벌어 와요. 저 혼자 고생하잖아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작은 도전이었습니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 끝을 보지 않습니다.
기드온과 300명 용사들은 도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하였습니다. 도전에 근거는 믿음이었습니다. 도전의 배경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들을 풀을 베면서 들판의 끝에 도전하는 도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3. 믿음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습니다. 이는 믿음을 말합니다.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농사군이 전쟁하자고 외쳤습니다. 32,000명이 모였습니다. 기드온은 믿음을 가지고 확신있게 외쳤습니다. 자신 만만한 지도자를 사람들은 따르게 됩니다.
기드온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증거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두 번은 강조입니다. 이미 언급한 양털 증거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 끝을 보지 않습니다. 끝까지 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무섭게 나가는 사람입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몇 년전에 미국 뉴올리언스에 하리케인이 강타하였습니다. 순식간에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간 순간적 사건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도망하려고 달려도 하리케인의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삼켜 버리는 무서운 하리케인이었습니다.
어느 집에 물이 차올랐습니다. 어머니는 급한 나머지 어머니는 어린 아이를 엎고 주변에 가장 높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 곳에 모였습니다. 물이 주변에 다 잠겨서 무슨 건물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이 건물이 교회다. 우리는 교회 옥상에 있다.” 이 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 교회 지을 때 건축 헌금을 하셨지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양계장을 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교회 출석은 잘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헌금할 줄 모르는 이였습니다. 하루는 담임 목사님이 조용히 타일렀습니다.
“우리의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수입의 10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 도로 드려야 합니다. 자매님의 달걀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여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더니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 이제부터는 주일에 닭이 알을 낳은 것은 모조리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리겠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수 백개의 알을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양계업이 잘 풀려 갔습니다. 십일조 달걀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십일조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점점 줄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은 다시 정중히 십일조를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닭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에 주일에는 알을 낳지 않습니다.”
그의 양계업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을 보지 않습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기드온과 300명 용사는 300명이라는 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편이 이길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풀을 베는 자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지금에 충성하면서 앞으로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풀을 베는 자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있습니다.
1. 지금 하는 일에 집중니다.
2. 들판 끝에 도전합니다.
3. 믿음으로 다 점령할 것을 믿고 나갑니다.
다시 한번 외칩니다.
“풀을 베는 자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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