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강문호목사/조금 달라도 크게 보인다. (창 13:1-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1. 7. 08:04

강강문호목사/조금 달라도 크게 보인다. (창 13:1-13)


세 가지 이야기로 말씀의 문을 열려고 합니다.

첫째 이야기
올림픽에서 마라톤은 꽃중에 꽃이요, 핵심중에 알맹이입니다. 그런데 일등과 이등 차이는 불과 1, 2분 차이입니다. 그러나 온 세계 사람들은 이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일등만 이야기합니다. 조금의 차이지만 크게 다릅니다.
조금 달라도 크게 보입니다.

김 해종 감독 이야기
미국에서 한국 목사로서는 처음으로 감독이 된 목사님이 계십니다. 김 해종 감독이십니다. 그 분의 초대를 받아 전 미국 감리교 목사님들 쎄미나에 주강사로 초대 받아 다녀 왔습니다. 김 감독이 관리하는 교회가 800 개 정도입니다. 년말에 각 부담금 징수 상황을 보고하는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거의가 100% 완납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교회가 103%였습니다. 3%를 더 냈는 데 눈에 띄였습니다. 그래서 불러서 왜 내라고 하는 것보다 3%를 더 냈느냐고 물었습니다.
<95만원 책정되었기에 100만원 냈지요>
조금 다른데 크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한번 실험을 하여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막 돌아 왔는 데 배재 동문회에서 동문회비 4만원을 내라는 통지가 왔습니다. 5만원을 냈습니다. 동창회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4만원인 데 목사님은 어째서 5만원을 내셨나요?>
<채워서 냈을 뿐이지요>
<모두 4만원이라고 적혔는 데 목사님 이름 옆에만 5만원이라고 적혀서 전화로 확인하는 r것입니다>
조금 달라도 크게 보입니다.

삭개오 이야기
삭개오라는 사람이 여리고에 살고 있었니다. 그는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키가 작았습니다. 전설로는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려서 난쟁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유명한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았습니다. 사람이 인산인해였습니다. 그는 너무나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삭개오만 보았습니다. 내가 지나가도 특이한 삭개오만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간절함을 보시고 삭개오게 다가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말을 듣고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았지만 삭개오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조금 달라도 크게 보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이 가장 좋은 사람을 아브라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조금 다른 것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크게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땅을 떠날 때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롯과 객지생활을 같이 하였습니다. 애급에서 큰 재물을 같이 모았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부자가 되었습니다. 2절에 무엇이 풍부한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아브라함과 롯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정착하였습니다. 그 곳은 아브라함이 고향 갈데아 우르를 떠나 처음 정착하였던 곳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서 다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롯도 양과 소가 많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롯도 짐승이 많은 데 물과 풀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과 롯의 종들이 물과 풀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6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6)

그 때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8-9)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하자 롯은 재빨리 좋은 땅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으로 이주하여 헤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이야기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1. 말이 조금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분쟁속에서 말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 말은 아브라함에게 대표적인 말입니다. 이 말을 하면 빨리 아브라함이 생각납니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
이 말을 들으면 노 무현이 생각납니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로다>
성철 스님이 생각납니다.
<인생은 갈대다>
파스칼이 생각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남다른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처주는 말이 아니라 감싸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위로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듣지 않는다고 말을 막 하여서는 안 됩니다.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도배를 다시 하려고 하였습니다. 도배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몰라서 같은 평수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도배를 다시 하려고 하는 데 도배지를 지난 번에 도배할 때 몇 개 사셨요?>
<12개요>
그래서 12개를 사서 도배하고 나니 2개가 남았습니다.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왜 두 개가 남지요?>
그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도 두 개 남았어요?>
하도 기가 막혀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12개 사셨다고 하였어요?>
<분명히 몇 개 샀느냐고 물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직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골탕먹이는 말을 하여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입을 열면 항상 좋은 말을 하고 편안한 말만 하였습니다. 말 잘하지 말고 잘 말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20년을 목회하시다가 잠간 귀국한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목회한 교회에서 설교를 마쳤습니다. 교회 문에서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미국이 좋은가 봅니다. 10년은 젊어 보이네요. 얼굴도 나이 답지 않게 팽팽하네요. 미국 목회가 재미 있나보지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서 교회 건물 모퉁이를 돌아 서자 여집사님과 마주쳤습니다. 그 집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10년은 늙어 보이네요. 미국에 가서 고생 많이 하셨나 봐요. 주름살도 많군요>
목사님은 마음이 좋지 않아서 가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모퉁이를 도는 사이에 20년이 늙었구먼. 1분 동안 주름살이 그렇게 많이 생겼나?>
그 사람 말을 듣고 나면 평안하고 기뻐지고 용기가 나야 합니다. 그 사람 말을 듣고 나면 짜증이 나고 분노가 생기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말이 조금만 달라도 크게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입술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2. 마음이 조금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남과 마음이 조금 달랐습니다. 그 것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든 비결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물질보다 평화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롯의 종과 아브라함의 종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앞으로 그대로 두면 롯과 자기 싸움으로 확대될 것같은 분위기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8-9)

아브라함은 다투지도 말고 다투게 하지도 말자고 말했습니다. 평화스러운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는 아브라함의 작은 마음이 큰 사람이 되게 된 비결입니다. 평화스러운 관계는 양보에서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만 빼놓고는 다 양보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라고 하나님이 하시니 떠나고, 이삭을 바치라고 하니까 바쳤습니다. 신앙에는 타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양보하는 미덕을 보였습니다.
양보가 무엇입니까?
손해보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양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조카 롯아! 너는 나만 따라 다녔다. 그리고 네가 받은 축복도 다 나 때문에 받은 축복이다. 너는 나 아니면 국물도 없다. 내가 먼저 땅을 고를 테다. 너는 젊었으니 아무 땅이나 개척하거라. 나는 이제 나이가 많으니 일하기가 무섭다. 좋은 땅을 내가 가지는 것 양해하거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물질적으로 항상 자기가 손해보는 쪽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살다가 그 곳이 유황불로 망하게 되니까 빈 손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 다음부터 롯은 아브라함에게 얻어 먹고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후 롯은 성경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욕심을 부리고 차지한 사람은 사라지고, 양보하고 손해본 아브라함은 역사에 길이 빛나는 믿음의 조상으로 등장하였습니다.
평화를 원하면서 양보하는 조금 다른 마음이 크게 돋보이고 있습니다. 조금 달라도 크게 보입니다.
지하철에 할머니가 올랐습니다. 지팡이를 짚었습니다. 자기 몸 하나 관리하기 힘들어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대학생 앞으로 갔습니다. 자리를 내줄가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때까지 희희덕대며 떠들던 대학생이 갑자기 자는 척 하였습니다. 태연하였습니다. 한참을 지나 그 대학생은 <이제는 할머니가 내렸겠지> 하는 마음으로 눈을 살며서 떠났습니다. 그 때까지 할머니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 대학생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끝까지 개겨 봐>
망신이었습니다. 양보가 미덕입니다. 반대 이야기도 있습니다.
퇴근 시간이라 전철은 초만원이었습니다. 모두 퇴근길이라 지쳐있었습니다.
기차가 도착하자 모두 자리를 맡으려고 수라장이었습니다. 피곤하니까 다 앉아서 가고 싶어하였습니다. 행동인 빠른 사람은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행동이 느리거나 노인들은 서있었습니다.
막 떠나려는 지하철에 꼬부랑 할머니가 타면서 말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다들 그러니? 어째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할 생각을 도대체 안 해? 요즘 어찌된 일인지 허리가 예전 같이 않아. 오래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에구구…>
비교적 큰 소리로 누가 자리를 양보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중학생 한 명이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고맙다>
<그런데 할머니. 저… 이 지하철이 두 정거장을 지날 때까지만 앉아 주세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웃었습니다. 할머니도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그러나 두 정거장 지나자 꾀제제하고 초라한 할머니가 탔습니다. 중학생은 소리를 지르면 불렀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한 손에는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미 다 닳아 꽃무늬가 일그러진 블라우스를 입었습니다. 색깔이 다 발하였습니다. 남색 고쟁이를 입었습니다. 얼굴에 깊게 주름이 파였습니다. 이미 다 파마는 다 풀어졌습니다. 고무줄로 머리를 묶었습니다.
중학생은 어머니를 데리고 할머니 앞으로 오더니 말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두 정거장이 지났습니다. 자리를 내어주십시오>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참. 별일을 다 보겠구먼. 이 자리 학생이 전세 냈어? 여기 학생 자리라고 이름이라도 써 놨냐구!>
학생이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은 이 분은 저의 어머니십니다. 지금이 아니면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아버지는 얼마 전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중이예요. 어머니가 집안의 모든 일을 하시고 계시죠. 아침에는 시장에 나가 텃밭에서 기른 나물을 파시고요, 저녁에는 구슬을 꿰는 일을 하시고…. 하루 동안 저의 어머니가 일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지하철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그 자리를 미리 맡아 두었던 거예요. 할머니! 양보해주세요. 저의 어머니가 단 몇 분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게 자리를 내주세요>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그냥 앉으라고 권하였습니다.
주변 모두가 이런 아름다움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양보가 있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작은 양보가 크게 돋보이고 있습니다.

3. 영이 조금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돋보이게 된 결정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작은 행동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중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

아브라함은 그 곳으로 이주하자 말자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두 단어를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이 두 단어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반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삶은 반복입니다.

  <반복이 끊어지면 끝입니다>

밤낮 그 예배가 그 예배인 것같아도 계속 반복하여야 합니다. 반복이 끊어지면 죽음입니다. 심장은 일생동안 다른 일을 하지 않습니다. 두근두근 하면서 계속 피를 온 몸에 공급하는 일을 합니다. 다른 일을 해도 중단해도 안 됩니다. 평생 한 가지만 반복합니다. 위는 평생 음식을 받아 드려서 소화시켜 내려 보내는 일의 반복입니다.
이는 평생 씹는 일의 반복입니다.
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세끼 계속 먹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밥에 싫증을 느끼면 이미 공동 묘지가 가깝다는 증거입니다. 자동차를 타면 바퀴는 폐차 처분되는 순간까지 계속 굴르는 일만 합니다.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반복이라고 짜증내지도 않습니다.
반복이 두려워지거나 반복이 되지 않으면 끝장입니다. 성막 쎄미나 어느 덧 206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200번 이상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복이 이어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서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조금 다른 것이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께 단순하게 예배를 반복하는 작은 행동이 하나님께는 크게 보였습니다.
영적으로 조금 다른 것이 크게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곳으로 가든지, 언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하였습니다. 어디서나 무엇을 하거나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기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세계적은 재벌들의 공통된 고백이 무엇인지 압니까?
놀랍게도 <행운>(Lucky)라는 대답입니다. 안 되는 이의 공통적 고백이 무엇인지 압니까?
아무리 노력하여도 불운하였다는 고백입니다.
예를 들면 Circuit City의 앨런 워츨이란 사업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등에 바람을 업고 사업 신장의 가속페달을 밟은 것이다>
등에 바람이 잘 불어와야 잘 달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 보통말로 행운, 세상 사람 말대로 재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남보다 헌금을 적지만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크게 보인 이가 있습니다. 두 렙돈을 하나님께 드린 과부입니다. 예수님은 정성스럽게 두 렙돈을 바치는 과부를 보시고 가장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남보다 조금 더 기도를 하십시오.
남보다 조금 더 봉사하고 섬기십시오.
남도바 조금 더 열심을 내십시오.
작은 다름이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조금 달라도 하나님은 크게 다르게 보셨습니다.
말하는 것이 조금 달라도 하나님은 크게 보셨습니다.
마음이 우리와 조금 달라도 하나님은 크게 보셨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와 조금 달라도 하나님은 크게 보셨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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