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고 있습니다.(39절)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가 습관이 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새벽기도를 하신 분이십니다.(막1:35) 산 기도도 많이 하셨습니다.(눅6:12) 벳세다 광야의 오병이어 큰 기적을 이루신 다음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무슨 일이든지 기도가 습관이 되신 분이셨습니다. 사람의 행동은 90%가 습관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습관을 만들 수 있고 버릴 수 있는데, 좋은 습관이 있고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좋은 습관이 들어야 합니다. 1)예배시간도 일찍 나오는 습관 2) 앞자리에 앉는 습관 3) 어디든지 앉으면 기도부터 하는 습관 4) 밥 먹을 때에도 습관이 잘 되 있는 사람이 기도부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생활이 습관이 안 된 사람은 막상 다급한 상황에 봉착했으면서도 어떻게 기도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본시 기도가 체질화된 사람이 위기의 상황 속에서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지, 기도에 익숙치 않는 사람은 조급한 마음에 기도가 나옵니까? 엄벙덤벙 어설프게 덤벼들다가 엉뚱하게 좌충수를 두거나 실기하기 쉽상입니다. 예수님은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아니 땅에 엎드리셨습니다. (41절)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기도는 서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박할 때는 무릎을 꿇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의사의 예리한 관찰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져 피방울 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 평범한 때는 평범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범한 상황 속에서는 필사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삶이 절박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가 우리 가정이 또 내가 개인적으로 만나는 삶의 모습이 절박하다면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기도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분이 있다면 예수님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기도하셨습니다. 보통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한번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결사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렇듯 습관을 좇은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1. 시험을 물리치는 능력을 얻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40절)고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46절)고 하셨습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기도하면 제일 싫어하고 기분 나빠합니다. 마귀를 기분 나쁘게 만들려면 열심히 기도하면서 기도가 습관화되고 체질화되면 됩니다. 그러면 감히 마귀가 덤벼들지를 못합니다. 기도는 마귀를 항복시키고, 마귀를 때려잡고, 마귀에게 원수 갚는 최고의 무기인 것입니다. 마귀는 기도소리를 제일 싫어하고, 기도회를 싫어하고, 기도실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마귀가 집요하게 찾아서 시험을 거는 대상이 누구일까요? 불신자들은 건딜 필요 없이 그냥 내깔려 둡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그토록 찾아다니는 대상이 누구인가? 마귀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찾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마귀가 시험을 걸려고 손을 못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보통 위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가 기도하지 앉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따라다닌다니까요. 그러니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무척 위험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지 않는 제자들을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 경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하였으나”(31절) “가라사대 베드로야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 부인하리라” 베드로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걱정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완전히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제2의 은총을 주시고 재기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훗날 베드로는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벧전4:7) 여러 가지 시험에 노출되어 있는 인생들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약1:2)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란 여러 가지 색깔이라는 뜻입니다. 형용 색색의 시험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가정적인 시험, 직장에서의 시험, 사업장에서, 교회에서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은 소극적입니다. 기도의 소극적인 축복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적극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고 시험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란산 주님의 기도는 이런 기도의 정신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의 고통을 수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밀은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가라사대 아버지여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눅22:42)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자기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만 언제나 자기 뜻이라는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합니다. 기도란 시험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의 방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한 공동체, 한 교회, 한 민족을 위해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신데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이 놀라운 계획 하나님의 뜻들이 왜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기도할 때에 천사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43절)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시는 데 천사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도왔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면 천사들이 몰려오고 바빠집니다. 천사들은 성도들의 기도를 향단에 담아서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계시록5:8) “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봐조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계8: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에 천사들이 향로를 가지고 와서 우리의 기도를 담아서, 하늘 보좌 앞으로 올라가셔서 하늘 앞에 올려 놓습니다. 하늘 나라의 향이 가득한데 그것은 성도들의 기도이다. 구약의 성소를 보면 성소 안에는 떡 상이 있고 일곱 촛대가 있고, 향단이 있습니다. 떡 상은 예수의 말씀을 상징하고, 일곱 촛대는 성령을 상징하고, 향단은 우리 기도입니다. 성소 안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
출처 : 에벤에셀
글쓴이 : 주향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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