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2013년의 추수 감사절! (시 50:14-15/2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1. 17. 08:16

2013년의 추수 감사절! (시 50:14-15/23)

 

  요즘 사람들이 살기가 굉장히 힘이 듭니다. 어떤 글에 보니까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라고 물으면 보통 네 가지 대답이 나온다고 합니다. 첫째는 '그럭저럭 삽니다.' 둘째는 '마지못해 삽니다.' 셋째는 뭐라고 대답하는 줄 아십니까? 셋째는 '죽지 못해서 삽니다.' 그러면 넷째는 '그냥 살아요.' 여러분은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쁜 일이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또 하나는, 기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그리고 세 번째는 역경 중에서도 여전히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할/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작품마다 주인공을 통하여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의 입을 통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리어왕'에서는 리어왕의 입을 통해 감사에 관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식은 뱀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찌른다.'
  리어왕이 이 말을 하게 된 배경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리어왕이 나이 80이 되자, 다스리던 땅을 세 딸에게 나눠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한 뒤에 그 사랑의 크기만큼 땅을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먼저 첫째 딸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이 아비를 얼마나 사랑하니' 그러자 맏딸은 눈치를 채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제 목숨보다 아빠를 더 사랑해요. 아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어요.' 리어왕은 그 말에 감격하여 땅의 ⅓을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둘째 딸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둘째 딸 역시 마음에도 없는 준비된 답을 했습니다. '제게는 아빠말고는 사랑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아빠는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예요.' 그 말을 믿은 왕은 또 자기 왕국의 ⅓을 둘째 딸에게 주었습니다.
  이제 왕이 속으로 가장 사랑하던 셋째 딸 차례입니다. 그래서 가장 요지인 나머지 ⅓을 주려고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딸은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제가 아빠를 사랑하는 건 맞지만, 아빠만 사랑한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제게는 남편도 있고, 또 제 사랑을 나눠 받아야 될 자녀들이 많답니다. 아빠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빠만은 아니에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진 왕은 셋째에게 주려고 했던 땅을 첫째와 둘째에게 나눠주고 말았습니다.
  이제 계획대로 하야를 한 뒤 얼마 뒤에 맏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웬일입니까? 아버지를 그토록 사랑한다던 맏딸이 아버지를 모질게 박대하고 성에서 내쫓아버리는 것입니다.
  이 때 리어왕이 배은망덕한 마음에 이 말을 한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식은 뱀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찌른다.' 그렇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은혜를 베푼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뱀의 날카로운 이빨 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찌릅니다. /할/

 

  ①벌써 올 한해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뜻깊은 감사절에 우리 자신의 신앙을 한번 확증하는 중간 정검이 필요합니다.
  고후13: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⑴'내가 바른 예배자로 살았는가?'를 정검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에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됩니다. 건강한 신앙 생활의 제일 조건은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사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예배가 찬송입니다. 그렇게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로 시작하여 예배를 드리다가 하늘 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예배를 드리는 존재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가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수가성 우물가에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히브리어로 '아바드'인데 이 말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예배입니다. /아멘!/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잘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들이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자로 살겠다는 목적이 출애굽의 사건입니다. /아멘!/
  출3:12절에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예배)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할/
  ▶그렇습니다. 예배란 한 마디로 하나님께 나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얼굴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격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감사를 보이는 것입니다. /아멘!/
  ⑵'내가 바르게 헌금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정검해야 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습니다. 특별히 십일조는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헌금입니다. 드리나 안 드리나 보시려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쌓을 곳에 없도록 주시려고 점검하시는 헌금이 십일조입니다. /할/
  ▶성경에는 중요한 열쇠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의 열쇠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그 믿음이 열쇠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16: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기도'의 열쇠입니다. 기도는 지금도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는 지금도 응답됩니다. 마7: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을 잘 지킴으로 하늘 보고를 여는 '순종'의 열쇠입니다. 신28:12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물질 축복의 문을 여는 '십일조'의 열쇠입니다(말3:10).
  ▶성경에는 '열십'자로 시작하는 정신이 세 가지 나옵니다. '십계명 정신', '십일조 정신', '십자가 정신'이 그것입니다.
  '십계명 정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십일조 정신'은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정신입니다.
  '십자가 정신'은 인류의 죄를 청산하시려고 갈보리언덕 십자가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우리의 생명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정신입니다.
  ▶십일조에 대하여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말3:10-12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 중에 두 마디가 우리를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하늘 문을 열고' 그리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는다' /할/ 그렇습니다. 십일조 이야기는 돈 이야기가 아니라 축복의 이야기입니다. 믿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십일조는 축복의 종자씨앗입니다. 여러분, 어부는 절대로 그물을 팔지 않습니다. 농부는 아무리 어려워도 종자 씨를 먹지 않습니다. 화가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붓을 없애지 않습니다. 목수는 망치와 대패는 어디를 가든지 가지고 다집니다. 어떤 이발사는 6.25때 가위 하나만 들고 다니면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위는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성도는 십일조만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아멘!/
  ⑶'나는 믿고 기도하는 사람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사실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인생에 승리자가 됩니다. 기독교는 기도하는 종교입니다.
  루터는 말하기를 '가장 작은 인간이라도 무릎을 꿇고 있으면 가장 강한 사람이 된다. 가장 약한 기도라도 가장 강한 마귀를 이길 수 있다.' /할/
  렘29:12-13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애인을 찾고, 중년들은 돈을 찾고, 노인들도 명예를 찾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애인도, 돈도, 명예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데 있습니다. /믿/
  여러분, 근본적인 인생의 갈증, 불안, 근심, 걱정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디서 왔습니까?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합니까? 이 인생의 근본문제는 하나님 없이는 절대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대상28:9절에 보면 다윗이 솔로몬에게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다윗 임금이신 아버지에게 이런 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솔로몬이 그 후에 그의 잠언 서에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외쳤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기에 그들을 하나님은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은 만나지 못한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열심히 수십 년 간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 설교를 듣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했지만 하나님은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형식적인 성도가 많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찾으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기도하다가 음성으로 만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는 '너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믿/
  기도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무슨 부탁을 하려면 우선 대통령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지 않고는 부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도하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신년 새해 우리 모두 기도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⑷'나는 전도자로 살고 있는가?'를 정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도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은 전도입니다.
  마28:18-20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를 보내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관심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 구원받는 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전도는 한사람을 교회로 데리고 와서 교회를 부흥시키자는 차원도 아닙니다. 전도는 그 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걸음이 '어찌 그리 아름다우냐'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 중에는 온통 세상을 구원하고 영혼들이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받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믿/아멘!/
  ⑸오늘 주제입니다. 나는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를 정검해야 합니다.
  살전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씀은 '믿음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은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믿음으로 감사하는 생활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는가?   ㈁주의 종에게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는가?
  ㈂부모님에게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는가? ㈃환경 속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는가?
  ▶복음성가에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란 곡의 배경 이야기가 은혜롭습니다.
  작곡가 김석균씨는 뇌성마비 장애자인 한 자매임과 여러 해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는 교제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 자매로부터 감동적인 편지를 받았습니다.
  가난한 한 집사님이 이사를 했습니다. 셋방살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녀석이 둘이나 있었습니다. 어찌나 장난이 심한 녀석들이든지 신발을 사주면 한 달을 채 신지 못했습니다. 신발이 그러는데 옷이야 뭐 말할 게 있겠어요? 아무리 빨아대도 도무지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사한 다음 날 큰 마음먹고 중고 세탁기 한 대를 샀습니다.
  세탁기를 가지고 대문을 들어서다가 그 집 주인 부인을 만났습니다. 집주인이 '웬 세탁기입니까?'라고 묻자, '네, 중고 세탁기 한 대 샀습니다. 애들이 워낙 번잡스러워서 당할 수가 있어 야죠? 아니 글쎄, 얼마나 뛰어다니는지 신발이 한 달을 못 가요 글쎄'
  그 순간 집주인 아주머니가 갑자기 울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는 너무 당황했습니다. '내가 멀 잘못했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집 남편이 나오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부인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6살 난 아이가 있는데 지금껏 걷지도 못해요. 이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 걷게 해보는 게 저희들 소원입니다.'
  그 가난한 집사 님은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말한 다음 방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이들의 신발을 빨리 닳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을 불평한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작곡가 김석균씨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할/

 

  ②추수감사절의 배경을 알아보자!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성경적인 근거요, 다른 하나는 청교도들에 의하여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⑴성경적인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를 보면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이 있는데 가을 추수 후 수확을 수장한 후 지키는 절기인 수장절이 오늘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23:16).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이미 3대 절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출23:14절에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는 유월절(무교절)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출애굽 할 때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 인방에 바르고 쓴 나물과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먹으며 출애굽을 준비하는 절기였습니다.   
  둘째는 오순절(맥추절)로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과 첫 번째 수확하는 곡식인 보리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로 우리가 드리는 맥추 감사절입니다.
  셋째는 초막절(수장절, 칠칠절)로서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들과 포도와 무화과 추수를 감사하며 또 출애굽하여 가나안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지내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킬 때에는 광야로 나아가 초막을 짓거나 텐트를 치고 한 주 동안 그 안에서 조상들이 겪은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 보내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이라는 단어는 소출을 위하여 포도밭에 초막을 지은 것에서 유래되었고, 또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던 사실을 되새기기 위하여 가나안 땅에 새로운 장막을 짓고 그 곳에서 7일 동안 거처하며 지키므로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또 이 때 모든 곡식이 창고에 수장되어 있으므로, 일명 '수장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할/
  ⑵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있습니다.
  오늘 세계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저 미 대륙을 찾아갔던 청교도들의 감사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이미 미국을 향해 떠나기 전에, 영국의 종교박해 때문에 1609년 네덜란드로 제1차 순례의 길을 떠났던 순례자들입니다.
  그들은 '암스테르담'과 '레이던'에서 12년 간이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도 그들이 바른 신앙 생활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또 카톨릭의 박해를 받습니다. 그 후 그들은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갔으나(1620. 7. 20)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수장령을 발표하고 저들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다시 미국을 향하는 새로운 순례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메이 플라워'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나아갔던 땅 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원래는 '북버지니아'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이미 영국의 왕권이 거기까지 미쳐서 그곳에서도 바른 신앙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겠다는 것을 먼저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허드슨 강 유역, 그러니까 오늘의 '뉴저지' 지역에 자리를 펴려고 지명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는데, 선장이 거기의 항구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이 사람들을 속이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65일 항해 끝에 '플리머스'라는 장소에 배를 정박하고 사람들을 내려줍니다.
  이들은 아메리카의 지형을 모르니까 '여기가 허드슨 강이 있는 뉴저지 지역이겠거니' 생각하고 내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102명이 도착했는데 1년이 지나면서 반수 이상이 풍토병과 영양결핍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옥수수 씨를 얻어다 심고 경작해서 석 달 먹을 양식을 수확해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처음 한 것이 예배당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번 잘 믿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그래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자' 그래서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가서야 자기 집들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했습니다. 저들이 허드슨 강가로 가려고 했었는데, 거기는 당시에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을 찾는다고 탐험대를 조직해 그곳에 와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성이 난 원주민 인디언들이 백인이면 무조건 잡아죽였는데 가장 극심하게 전쟁을 치렀던 장소가 바로 뉴저지 지역이었습니다.
  만약 원래 가려고 의도했던 그곳에 배를 정박했다면 전혀 무장하지 않은 이 청교도들이 십중팔구 인디언들에 의해 죽었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사람의 거짓말까지 사용하셔서 그들을 살 수 있는 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길은 그 역사 배후에서 계속 준비하셨습니다. 애굽에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기 전에 요셉을 먼저 보내 준비시키신 하나님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 눈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추수감사절,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추수감사절 예배로 드립니다.
  그 후 1789년 초대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 승리와 헌법제정을 축하해서, 11월 26일(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이날 전 미국인들은 교회에 모여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서로의 축복과 감사를 기원하였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1921년부터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할/

 

  ③감사가 무엇인가?
  여기 '감사'라는 말에 해당하는 우리말 표현은 '고마움'입니다. 이 '고마움'이라는 말은 명사로 '고맙게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동사로 '고맙다'라는 말은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말에서 '감사라는 뜻은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자어를 풀이해 보면 감사는 '느낄 감'(感)과 '사례할 사'(謝)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마움을 느끼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사례 즉 표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감사하다'는 말이 '야다'입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찬양하다, 고백하다.'라는 말로도 쓰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감사는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노래로든 물질로든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감사는 관계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상대방이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었습니다. 내가 소중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내가 그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상대가 구체적으로 그것을 받고, 기뻐할 수 있게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감사입니다.
  노래가 불려 져야 노래이듯이, 그림이 캔버스에 물감으로 표현되어야 그림이듯이, 감사도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표현되어야 합니다. 찬양으로, 입술의 고백으로, 몸의 헌신으로, 그리고 헌금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아멘!/
  ⑴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까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종은 칠 때까지는 쇠붙이에 불과하지 종은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드러날 때만 사랑입니다. 복은 감사할 때까지는 복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믿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대답입니다.
  ⑵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시103:2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해야될 민족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사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건설에 있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된 것은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한국의 교회 부흥과 경제 부흥이 함께 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회 부흥이 끝나니까 경제 발전이 멈추고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냥 보면 안됩니다. 우리들은 역사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봐야 됩니다. /할/
  ⑶감사는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캐나다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당대에 거부가 된 '깁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 물방앗간 심부름꾼으로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던 그에게 마침내 산림 20만 에이커와 철도 280 마일을 소유하는 부자가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기자가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는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며 매사에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기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답니다. '그거야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때 깁슨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못됩니다.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진리이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할/
  ⑷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어떤 부잣집 주인이 가마꾼들에게 '개가 집을 나갔으니 개를 좀 찾아오너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가마꾼들은 '주인님, 우리는 가마를 메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개 찾는 심부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거절했답니다. 그러자 주인이 이렇게 지시했답니다. '그래? 그럼 내가 개를 찾을 테니 너희들은 가마를 메라'
  하루 종일 들로 산으로 다니며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또 나갔으나 헛수고만 했고, 사흘째 되는 날까지 찾았으나 힘만 들고 고생만 했습니다. 그제 서야 가마꾼들이 '주인님, 개는 저희가 찾을 테니 주인님은 앉아 계십시오.'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 인생의 문제는 어리석음에서 옵니다. 판단을 잘못하고, 생각을 잘못하고, 그리고 꾀를 잘못 내는데서 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⑸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신16:12절에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찌니라'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피땀 흘려 농사를 지었지만 모든 소득은 주인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모습과 이스라엘의 한탄을 보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힘껏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빼앗는 자가 없었습니다.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은혜를 입은 사람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할/

 

  ④다시 한번,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시100: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그'라는 말이 네 번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절대 보호, 절대 사랑,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는 축복'입니다. /할/
  ⑴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에 이 자리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⑵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고전6:19-20절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⑶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⑷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아멘!/

 

  ⑤창조주 하나님께 우리가 어떤 감사를 해야 합니까?
  ⑴넘치는 감사를 하라! 골2: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⑵입으로 감사하라! 엡5:4절에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많은 은혜를 입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⑶마음으로도 감사하라! 골3:16절에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습니다.
  ⑷물질로 정성껏 감사하라! 출23:15절에 '하나님은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잠3:9-10절을 보세요!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할/
  ⑸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으로써 감사하라! 시50:14절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했습니다.
  ⑹표현으로 감사하라! 감사는 마음으로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감사한 마음이 진실하고 묵직하고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다 그 고마운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면 더욱 좋은 감사가 될 것입니다.
  운동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겼을 때 그 자리에 앉아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을 볼 때 어색하게 보였는데 요즘에 와서 보면 참 좋게 보이기도 하고 한편 대견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용기 있는 모습이고 표현하는 고백적인 모습입니까. 백 편의 설교보다 더 은혜가 됩니다. /할/
  ⑺깨닫는 감사를 하라! 신앙 생활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이 주는 진정한 힘은 어디에서 주어지는가 하면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사람이 깨닫게 될 때 거기서 힘이 나오고, 거기서 자발적인 동기가 발생되고, 모험심과 전진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용기가 발생되고, 기쁨과 감사한 마음이 자리잡게 됩니다.
  눅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고침을 받은 후에는 그 중 한 사람만이 찾아 와서 감사를 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상종하기를 꺼려하던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렇게도 무시를 받고, 죄인 취급을 받고, 짐승 취급을 받고 살던 그 사마리아 사람만 다시 찾아와서 정중하게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모두 양반처럼 행세하며 교만하게 살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문화인이고 누가 도리를 아는 사람이고 누가 깨닫는 사람입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홉은 모두 어디 갔느냐?' 그래서 깨닫는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세진 것을 오랜 후에까지 기억하고 생각하고 고마워하고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그것은 쉬운 것 같지만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값은 이 같은 은혜를 아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도리를 알고 느끼고 갚는 데 있습니다. /아멘!/
  ⑻그런데 감사는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숨은 그림 찾기' 놀이가 생각이 납니다. 그림 속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하나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그리고 꼼꼼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고추, 망치, 열쇠, 지갑, 오이, 잠자리...'
  감사가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 안에 하나님께서 참 많은 감사 거리를 담아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건성으로 들여다보면, 하나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꼼꼼히 찾아보면, 그 안에서 많은 감사 제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나를 사랑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밀하게 나를 위해 역사하셨구나!' /할/
  ▶기적적으로 암을 치유 받았다는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하루는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의사 소견으로는 이제 병원 치료는 무의미하니까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을 털어놓습니다. '하나님 저는 나름대로 믿음으로 살려고 그렇게 애써왔습니다. 주일 한 번 어겨본 일 없고, 교회 봉사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왔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위암에 걸려 이렇게 일찍 죽어야 합니까?' 기도한다고 하나님 앞에 서면 이런 불평과 원망을 절규로 쏟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언젠가 들었던 담임목사님 설교 한 부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드리는 기도를 우선적으로 들으십니다. 그래서 응답 받는 기도는 감사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원망을 멈추고 기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억지로라도 감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일이 없지만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아니 딱 하나 감사할 것은 감사하려고 몸부림치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놀랍게도 성령의 감동으로 감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할 것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 용서 받은 것, 복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 여기까지 순탄하게 살아왔던 것, 좋은 교회 만나 신앙생활 할 수 있었던 것... 그러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더욱 뜨겁게 기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감사로 기도가 깊어지던 어느 날 온 몸과 마음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더니 병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할/
  이분이 간증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감사가 암을 고쳤습니다. 감사가 내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복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감사를 잃어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감사의 힘을 경험하지 못하고 삽니다. 아니 감사의 힘조차 모르고 삽니다.
  ⑼믿음으로 감사하라! 성경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엄청난 복입니다.
  D.L.무디는 '당신 자신을 믿어 보라.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을 믿어 보라. 어느 날 죽거나 이별하게 될 것이다. 명예나 돈을 믿어 보라. 어느 날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그러면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할/
  ▶감사는 믿음의 척도입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깊은 감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감사하는 삶이 있기에 믿음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시50:14-15절을 보세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할/
  ⑽감사가 없는 심령은 그 속에 하나님의 축복을 채울 길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심령은 돈이 있어도 불평이고 없어도 불평입니다. 그 심령은 관심을 기울여 주어도 불평이고 관심이 없어도 불평입니다. 같은 물이라도 젖소가 마시며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됩니다. 똑같은 사건 속에서 감사가 없는 심령은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나 감사가 있는 심령은 기쁨을 발견하고 감사합니다. 환경이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사를 드림으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할/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는 것이 삶의 최대의 지혜입니다. 특히 어려울 때 감사해야 진짜 감사입니다. 어려울 때 한번 감사하는 것은 일이 잘될 때 백번 감사하는 것보다 가치 있습니다. 사람은 실패를 죽기보다 싫어하지만 실패를 잘 요리하면 성공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감사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환경이 어떠냐?'의 문제가 아니라 '감사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느냐?'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길이 막힐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하나님의 축복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의 분량은 곧 행복의 분량이다.' /할/
  ▶성경에 옥합을 깬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순전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서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 이 향유를 낭비하는가? 팔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을 텐데...'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칭찬했습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 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여인의 마음을 잘 이해 못했지만 우리는 이 여인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너무도 감사했던 것입니다. 자기 삶이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는 어떻게 표현해도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옥합을 깨뜨린 것입니다. /할/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가진 너무도 소중한 것을 내어놓아 이것을 하나님께 바쳐 감사를 표현할 때 사람들은 '그 돈이 있으면 다른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너무도 소중한 몫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어거스틴은 고전13:13절에 '믿음, 소망, 사랑이 세 가지가 우리 삶에 항상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기록되었는데 나에게 한 가지 더 추가하라고 한다면 '감사'를 넣겠다고 했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응답이요,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이요, 믿음의 행위입니다. 진정한 감사를 할 때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안정된 삶을 살고, 축복의 문을 여는 주인공이 됩니다. /아멘!/
  ▶'돈 베이커' 목사님이 쓴 '감사 요법'이란 책에 보면, '감사는 환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감사가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어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나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감사해도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상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미남미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가난해도 부자 이상 행복해 질 수는 있습니다. 감사하면 장애가 있어도 정상인보다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감사하면 얼굴이 못생겨도 미남미녀보다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할/ (2013년 11월 17일 추수감사절예배)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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