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세요! (출 15:22-2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 19. 13:35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세요! (출 15:22-27)

 

  본문의 배경을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향하여 전진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430년의 종살이를 청산하고 애굽을 출발, 홍해바다를 육지처럼 걸어서 나온 스릴이 그들의 행진을 더욱 감격스럽게 했습니다.
  그때에 그 감격을 모세는 노래를 지어 후손들에게 남긴 장이 본문 1-18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19-21절에 보면 해방의 감격! 홍해 바다를 갈라주신 하나님의 오묘하신 능력 앞에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이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다시 한 번 홍해의 기적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멋있고, 통쾌한 장면입니까?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 육지 같은 길을 여시고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뒤를 바짝 추격해온 애굽의 군대를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홍해에 다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사면초가에 벌벌 떨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고 외쳤습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의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바로 군대가 수장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살이가 사면초가에 부딪힐 때, 하나님의 새 창조의 역사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절대 새로운 길이 있습니다. /아멘!/
  홍해의 기적을 감사하며 미리암이 소고를 잡고, 모든 여인들도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소고는 작은북으로 '덤브링'입니다.
  그 당시 유대 풍속은 공식 석상에서 여자의 목소리는 금지시켰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죄가 여자를 통해서 들어 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와 여자는 인구수에도 빠졌습니다. 그런 풍속의 배경 속에서도 여인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노래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범국민적으로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인도하심으로 홍해바다를 육지같이 건넨 이스라엘이 수르광야에 들어와서 삼일 길을 걸었으나 마실 물이 없어 또 다시 원망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다시 행군하여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드디어 그 곳에서 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들은 서로 다투어 그 물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도저히 그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소리치기를 '마라, 마라' 즉 '쓰다, 쓰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스라엘은 또 다시 원망이 시작됩니다. 홍해를 건넜던 감격을 잊지 못해 민족의 대 합창을 부른지 3일 만에 그들은 또다시 원망의 대 합창으로 바꿔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환경을 보며 지도자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믿음의 사람 모세는 그 환경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능력의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해결의 방법으로 한 나무를 지시하여 던지라고 합니다. 그대로 순종하여 던졌더니 쓴 물이 단물로 바뀌어 이스라엘이 목마름을 해결했습니다. /할/
  그 다음에 또 보면 마라를 지나고 나니 엘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림은 샘이 있고 종려나무 숲이 우거진 곳으로 사막의 오아시스입니다. 그곳에 이스라엘 회중이 장막을 치고 잠시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과제입니다. 저는 언젠가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구출하시고 홍해의 위기에서도 기적을 베풀어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연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연단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원리와 방법을 적용하십니다. 오늘 이 문제를 같이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멘!/

 

  ①광야에서 '마라' 쓴 물을 만난 이스라엘!(22-23)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감사를 끝난 뒤 모세를 따라 3일 길로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수르 광야는 술 광야로 불렀으며 민33장에서는 '에담 광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곳은 메마른 사막입니다.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향하였다'는 말은 하나님의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서 앞으로 사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사흘 길을 간 것이 자기 마음대로 간 것이 아닙니다. 불기둥을 따라 간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봅시다. '물을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가는데도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고, 도대체 되는 일이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일 수입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이스라엘이 도착한 곳이 어디입니까? 마라입니다. 이 마라는 처음부터 마라가 아니고 뒤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들이 그곳에 도착해보니 물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다투어 물을 먹어보고는 소리를 지릅니다. '마라, 마라, 쓰다, 쓰다'는 뜻입니다. 즉 '마라'는 '쓰다, 고통스럽고, 괴롭고, 근심스럽고, 슬프다'는 뜻입니다. 물을 보고도 못 먹으니 정말 기가 찹니다. 오히려 물이 없는 곳보다 고통이 더 큽니다.
  마라의 쓴 물은 오늘날 광야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우리의 문제입니다. 수천 년 전의 문제로 끝나는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저와 여러분이 광야 길을 걸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마라의 쓴 물이며 환경입니다.
  ⑴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도 인생의 쓴 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쓴 물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을 쓴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더 나아가 마음속의 미움, 원한, 절망, 좌절, 열등의식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 등을 쓴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만사가 형통하고 장애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도 마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봅시다. 하나님께서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강권적인 역사로 그 꿈이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애굽과 주변 국가들을 7년 흉년 중에 구원하였으며 특히 히브리민족을 하나님의 인큐베이터와 같은 애굽의 고센 땅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고, 인간적으로 보면 총리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입니다. 그의 생애는 분명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의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했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고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약 13년의 세월을 마라의 쓴물을 통과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⑵그렇습니다. 마라는 광야 여정의 과정입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시 통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쓴 물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풍성하고 더 고상하고 더 신령한 차원의 인생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마라의 쓴 물을 통과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광야의 백성들에게는 마라가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이었고, 요셉의 생애에 있어서 종살이와 옥살이는 총리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고난이 더 풍성한 인생을 위한 과정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고난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5:3절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벧전4:12-13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했습니다. /할/
  ⑶과정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의 종살이 옥살이로 요셉을 판단할 수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라의 과정을 보고 그들의 여정 전체를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마라의 쓴 물을 먹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그것으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또 지금 자기 자신이 마라의 쓴물 앞에 있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단지 과정일 뿐입니다. /믿/아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마라라는 과정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⑷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함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자신을 마라로 밀어 넣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웃시야 왕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유다의 왕이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국가를 잘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국가 경제는 발전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 국가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 후반부는 좀 비참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던 그에게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사장 권에 도전을 하게 됩니다. 분향하는 것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구별된 사역인데 교만하게 분향하려고 들어갔다가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게 되고 죽는 날까지 별궁에 거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웃시야의 마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습니다. 교만하여 스스로 마라의 쓴 물이라는 웅덩이에 빠지고만 것입니다. /할/
  ⑸어떻게 보면 교회는 '마라'입니다.

  여기에서 세상 것을 써야합니다. 아직까지도 세상 것이 달다고 느낀 사람은 홍해를 건넌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애굽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허무는 더 큽니다. 세상의 부귀는 소금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체험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마라'와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맛이 어떠합니까? 우리는 계속 단물만 마십니까? 아닙니다. 오늘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삶에도 쓴 물이 나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의 한 성자는 '인생은 고해와 같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고통의 바다로 비유한 것입니다. 석가는 인생을 생로병사의 순환이라고 설파했습니다.
  룻1장을 보면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는 그의 남편 엘리멜렉과 함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베들레헴의 흉년을 피해 풍년이든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이국 땅 모압에서 남편이 죽고 두 아들마저 죽는 비극적인 일을 당합니다.
  맏며느리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둘째 며느리 룻과 함께 빈손 들고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나오미의 심정은 그야말로 '마라', '죽을 맛'입니다
  룻1:20절에 나오미가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베들레헴 성읍 사람들이 '이가 나오미가 아니냐' 하고 맞을 때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고 합니다. 
  나오미란 이름은 '기쁨, 행복한 여인'이란 뜻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말씀의 집 베들레헴을  떠났다가 인생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마라 인생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며누리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그의 후손 가운데 다윗을 낳는 위대한 할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속에 마라의 쓴 물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달게 만들어 주는 관문이 됩니다. /아멘!/ 쓴맛을 알아야 단맛을 압니다. '고진감래'란 말이 있습니다. 쓴 것을 모른 혀는 단 것도 모릅니다. 세상이 쓴 줄을 알아야 하나님의 은혜가 단 줄을 압니다. 세상이 허무한 줄 알아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마라를 잘 통과하면 엘림에 도착하게 됩니다. 엘림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2014년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②인생길에 마라의 쓴 물을 만나면 원망하고 다투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습니다(24).
  어거스틴은 '고통과 섭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한다. 모든 사람이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다. 똑같은 미풍이 불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수많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첫 번째 문제가 홍해였으며 두 번째 문제가 마라의 쓴 물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문제들이 줄을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렸습니다. 어찌 보면 광야 생활은 문제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평생 문제 속에서 삽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옵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시 문제가 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문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는 문제마다 개입하셔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홍해를 만났을 때는 갈라지게 하셨고, 쓴 물을 만나니 단물로 바꿔주셨고, 적이 나타나면 물리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모른 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도 개입하셔서 도와주시는 분이시며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만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제든지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반응은 늘 부정적이었습니다. 본문에서도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⑴원망은 자기를 죽이는 일입니다. 원망하면 마귀가 그 사람을 물게 되고 그 결과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민21장에 보면 백성들이 길로 인하여 모세를 원망합니다. 사실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원망하고 있을 때 불 뱀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기 시작합니다. 그 일로 많은 사람들이 뱀의 독으로 죽었습니다. 뱀은 마귀를 상징합니다. 원망하던 사람들이 뱀에게 물렸다는 것은 원망하면 마귀에게 물린다는 말입니다. 독사에게 물리면 고통을 당하게 되고 잘못하면 죽을 수 있습니다. 원망하면 마귀에게 물리게 되고 영적인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잠19:3절에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사람이 원망합니다. 무슨 섭리와 뜻이 있는지 장차 무슨 일이 다가올지 미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원망 죄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 원망합니다.
  ⑵그러나 원망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나무에 피는 꽃이고, 불행은 불평의 나무에 돋치는 독버섯과 같습니다.
  여러분, 고생한다고 해서 원망하지 마십시오. 대개 고생한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고생 끝에 목적을 달성해야 고마운 마음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추위에 떨어본 사람이 태양의 고마움을 느낍니다.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이 밥 한 그릇의 고마움을 더 잘 압니다. 갈증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 시원한 물 한 그릇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인정에 굶주린 사람이 사랑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망하는 버릇 때문에 꿈에도 잊지 못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⑶여러분, 원망하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악화됩니다. ▶이웃과의 관계도 악화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성이 깨어집니다. 기쁨이 떠나고 기도가 막히게 됩니다. 마5:23-24절에서 주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은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원망 불평 가득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 마음으론 예배도 기도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할/

 

  ③지도자 모세는 원망을 들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25)
  모세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마라의 쓴 물 앞에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누구든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따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지만,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어떠한 쓴 물이 있습니까? 어떠한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답답한 일을 당했습니까? 사람에게 따지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믿/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오래 전에 노태우 전대통령이 감옥소를 향하는 날 정치인들에게 '갈등과 고뇌를 가슴에 안고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모세의 기도를 보면 '백성들이 불평과 원망과 불신을 고스란히 자기의 가슴속에 담아 두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부르짖었다'는 말은 '간절히 소리내어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기도를 누가 했습니까?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도 소리 질러 주님을 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르짖는 기도를 주님은 결코 외면하신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걸음을 멈추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 죄에 빠졌으나 모세는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쓴 마라를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쓴 물을 본 것이 아니라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는 반듯이 응답이 동반됩니다. /아멘!/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렇습니다. 기도는 분명히 응답이 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면서 '그 나무를 꺾어 마라 쓴 물에 던지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나무를 꺾어 물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변했습니다. 어떻게 변했습니까? 쓴 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할/ 실패가 성공으로, 약함이 강함으로 바꿔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삶에 지쳐 괴로워하는 인생들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십니다. 본문은 '한 나무를 던졌더니 그 물이 달아졌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 길의 쓴 물을 단 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한 나무를 물 속에 던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나뭇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나무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유월절의 어린양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주셨고, 이 쓴 물을 달게 하는 나뭇가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아멘!/
  대부분의 주경 학자들은 나무자체에 썩은 물을 고치는 성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과 그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 마라의 썩은 물을 고쳤다고 해석합니다. 모세의 순종이 돋보입니다. /아멘!/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지시한 나무는 누구를 상징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를 상징한 것입니다. /할/ 주경 학자 '베이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평과 불만의 쓴 물을 달게 만드는 마라의 나무'라고 했으며, '메투헨리'는 '십자가는 모든 고통을 주는 쓴 물을 달게 하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십자가상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뭇가지를 물 속에 던졌을 때, 물이 달아졌습니다. 우리 인생의 쓴 물을 달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밖에 없습니다. /믿/
  ▶우리 인생을 열어보면 모든 쓴 문제, 죄악의 쓴 뿌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을 쓰게 만듭니다. 그래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단코 쓴 인생을 달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잠시 돈을 써보고 즐거움을 누려보지만 잠시 있다가 다 사라지는 겁니다. 나뭇가지가 그곳에 던져졌을 때 비로소 물이 달아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심령에 찾아오시고 내 가정에 찾아오실 때, 우리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오시면 우리 죄를 다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2).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왕의 아들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왕자입니다. 그에게는 엄청난 권세와 특권이 이미 부여되어 있습니다. /할/
  ▶어떤 권세인가?

  ⑴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권세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것을 내 것으로 누릴 특권이 있습니다.
  ⑵하나님께 도움과 보호를 청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⑶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권세입니다. 아무리 쓴 물도 명하여 단물이 되게 하는 권세입니다.
  ⑷믿음으로 명령하는 것은 이루어지는 권세입니다.
  ⑸모든 것을 소유하고 살 수 있는 권세입니다. /할/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는 대단한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권세도 있고 하나님의 소유를 상속받을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달라고 기도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빈손이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채우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실 것을 누릴 권세가 있습니다. /믿/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왜 하나님이 법도와 율례를 정했는가?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게 하여 먹은 후에는 자유 방종한 생활을 하면 안 되므로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 법대로 살아 갈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맞습니다. 삶에는 어떤 룰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시험하실 새' 여기 시험한다는 것은 계속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그 여부를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시험하는가? 순종하는 자에게는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는 믿음이 없는 것을 깨닫게 하여 회개시켜서 마침내는 복을 주시려고 시험하십니다. /믿/

 

  ④우리는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26)
  ▶인도네시아 에디 목사님이 길거리 한 불량아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러자  하나님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의 얼굴이 분노로 가득 차더니 '그 하나님 내가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불량아가 되었고, 그 상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에 질 겁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은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이 아픔의 연속인 이유는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사랑을 받아드리기 힘듭니다. 손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반가워서 손을 덥석 잡으면 그 것이 아픔이 됩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관계에서 방어적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힘들어집니다. 자기보호를 위하여 방어적이 됩니다.
  우리들은 너무나 자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내가 의도하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내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참 걷다가 힘이 든 할머니가 '영감, 나 좀 업어 줘'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내키지 않았지만 나중에 들을 잔소리가 겁이 나 할머니를 업어주었습니다. 업혀 가던 할머니가 조금 미안했던지 '나, 무겁지?'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그럼, 무겁지'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할머니가 '왜?'하고 되묻자 할아버지는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을 깔았지, 간은 부었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할멈, 다리가 아파. 나 좀 업어 주라' 할머니가 갈 때의 일도 있고 해서 할아버지를 업어주었습니다. 이에 미안한 할아버지가 '나, 무겁지?'하면 자기를 따라할 것 같아서 '나 가볍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가볍지'라며 '머리는 비었지, 입은 싸지, 허파엔 바람만 잔뜩 들었으니까 가볍지'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땅도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모두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쓴 물을 단물로 바꿔지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여호와 라파)'라고 하나님 자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할/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를 향하여 주신 당부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라,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의를 행하라, 주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라' 그리하면 너희들의 모든 질병은 내가 치료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왜 이 시점에서 주십니까? 한마디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을 때 너희들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듯이 너희들이 내 말에 청종하고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면 너희 건강의 문제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경청하는 삶이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와 말씀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요, 결국 영적 건강과 전인적인 건강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복된 자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계명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치료하고 우리에게 하늘나라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처방전입니다. /믿/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치유하십니까? 그분은 치료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요약해 이렇습니다. /아멘!/
  ⑴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십니다.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그 말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들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이 같아야 섞일 수 있고 본질이 다르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되면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하는 순간 사람들의 영은 죽게 되었고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사람의 영은 병든 정도가 아니라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치료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의 영을 치료하십니다. 요5:25절에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영혼이 치유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⑵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의 한 여인을 찾아가셨습니다. 그 여인은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며 살았던 여인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함께 살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여인을 주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그 여인은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진정한 목마름을 해결 받았고, 주님을 만난 그 여인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 온 동네를 다니며 주님을 소개했고, 치유 받은 한 여인의 헌신으로 온 동네가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할/
  ⑶인간의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십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인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고치신 그 하나님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할/
  ▶세계 3대 테너 가수 중에 한 명인 '호세 까레라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41세에 '라보엠'의 주역으로 어느 날 연습하다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실려가 보니 백혈병입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인생이 거기서 끝나는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주시면 나의 남은 인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그가 십자가를 붙들었습니다. 그 삶에 백혈병이라고 하는 쓴 물이 다가왔지만, 십자가를 붙잡고 그는 그 쓴 물을 이겼습니다. /할/
  골수이식 수술도 받고, 항암치료도 해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전 재산을 팔아 가지고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만들고, 그리고 공연하는 모든 수입을 거기에다 넣어서 세상에 백혈병으로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백혈병과의 싸움을 통해서 나보다 남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할/
  ⑷인간의 인격을 치유하십니다.

  삭개오를 보세요! 그렇게 돈만 알던 수전노 그 인생이 예수 만나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눅19:8절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그렇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주님은 우리들의 맹물 같은 인생을 단물 같은 인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믿/할/
  ⑸우리의 가정을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성경에 보면 큰 구원의 역사가 있을 때 가족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홍수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때 하나님은 노아만 구원받게 하시지 않고 노아의 가족들을 함께 구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의 관영 함으로 멸망할 때도 보면 롯과 롯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리고가 무너질 때도 구원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입니까? 기생 라합과 라합의 가족들입니다. 행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
  예수를 믿으면 가정이 치유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변하면 그가 가는 곳이 변하고, 그가 하는 일이 변하고, 그가 속한 공동체가 변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파괴가 심각한 이 시대에 진정으로 가정을 살리고 치료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아멘!/
  ▶어느 교회 전도 왕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한 공기업의 중역을 지낸 분인데. 퇴직금 갖고 친구와 동업을 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집안이 기우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두 딸이 가출을 했습니다. 셋째 아이는 병들어 죽을 지경입니다. 부인은 이혼하자고 달려듭니다.
  좌절한 나머지 집을 뛰쳐나가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자 생활을 시작합니다.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는데, 어느 날 부인의 친구가 찾아와 그에게 전도를 합니다. 그의 부인도 벌써 주님을 영접하고 변화되어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부부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제멋대로 살았던 과거를 통회하고 회개했습니다, 그 후 그 가정이 하나 하나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부부가 화해하고, 가출했던 딸들이 돌아오고, 나중에 명문대 졸업하고 카이스트 박사가 됩니다. 죽는다고 했던 셋째 아이도 치유 받았습니다. 쓴 물 같은 가정이 단물 같은 가정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 분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다 보니 전도 왕이 됐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할/
  ⑹환경을 치유하십니다.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은 사람만 치유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도 치유하십니다. 사43:19절에 보면,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환경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환경도 고쳐주실 것입니다. /아멘!/
  ⑺국가도 치유하십니다.

  우리는 덴마크라는 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국토라야 남한의 반도 안 되는 땅이요 인구라야 4-5백 만 명이니 서울시 인구의 약 삼분의 일쯤 되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1600년대에는 그 유명한 바이킹족으로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에 의해 바이킹족은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전쟁 배상으로 가장 비옥한 땅인 '딕'이라는 지역과 '홀스타인'이라는 지역을 하나는 독일에서 다른 하나는 오스트리아 내주고 말았습니다. 남은 땅은 모래땅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돌아온 병사들은 술 먹고 도박하고... 그냥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땅엔 지하자원도 없습니다. 자연 기후도 좋지 않습니다. 토지도 사막뿐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이제 우리는 끝났다'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있을 때, 전쟁에서 돌아온 패잔병중 공병상사 '달라스'라고 하는 청년이 한 손에 성경 들고 한 손에 괭이 들고 군중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친애하는 덴마크 국민 여러분, 칼로 잃어버린 우리의 조국 괭이로 찾읍시다. 해적 질로 잃어버린 도덕, 성경을 통해 찾읍시다.'라고 외쳤습니다.
  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룬두비'목사입니다. 그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덴마크 사랑'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누구하나 거들떠보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어려운 그 땅을 살리려고 나무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나무 심어 안되면 저 나무도 심어보고, 저 나무 심어 안되면 또 다른 나무 심어보고, 그러다가 어느 산골에 있는 이름 없는 나무를 심어 조림하고, 조림하다보니 그 땅이 옥토로 변해, 옥토가 되니 그 땅이 초원이 되어지고, 초원 따라 낙농을 해서 소를 먹여 세계적으로 우유와 버터와 치즈를 만들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소득 높은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할/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룬두비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했습니다. 술과 노름으로 인생을 허비하던 청년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한 손에 성경 들고, 한 손에 괭이 들고' 일을 하기 시작해서 그런 역사를 이루어 냈답니다. /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게 되면 국가적으로 안정이 되고 건강할 때가 있었고, 국가적으로 병들고 불안정한 때가 있었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이 건강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좋을 때는 국가도 건강했고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병들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면 국가적으로도 병들고 불안정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병든 국가도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신앙이 좋았던 왕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국가적으로 가장 건강하고 왕성하던 시기입니다. 반대로 극악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에는 국가적인 고통이 계속되었습니다. /할/
  ⑻하나님은 무엇으로 치유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치유하십니다.

  세상이 고장나서 치유가 필요하게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죄를 도말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마다 치유가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또 말씀으로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을 살려내시고 치유하십니다. /할/ 그리고 성령으로 치유하십니다. 행10: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리고 사랑으로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영적인 죽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강권하심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4: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아멘!/

 

  ⑤마라가 끝나는 곳에 엘림의 오아시스가 기다립니다(27).
  쓴 물을 단물로 고치신 하나님의 기적을 목격한 이스라엘이 계속 행군하여 엘림이라는 곳에 이르니 그곳은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곳에는 시원하게 솟아나는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70주가 우거져있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엘림'은 비가 자주 왔고 개울과 샘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특히 이곳은 물샘 12개와 종려 70주가 있었는데 물샘 12개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종려 70주는 이스라엘 70장로를 상징합니다. 이는 온 나라와 성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 길에도 마라와 같은 쓴 고통이 있습니다. 쓴 인생이 있고, 쓴 사건이 있고, 결핍과 빈곤도 있습니다. 고통도 있고 근심도 있고 절망도 있고 실패와 좌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처럼 불신하고 원망하면 안 됩니다.
  ▶어느 마을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형제의 아버지는 심한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날마다 술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그러한 아버지를 향해서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 매일 매일의 일과였습니다.
  2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두 형제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큰아들은 어느 의과대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술주정뱅이였던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며 금주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술주정뱅이였던 자기 아버지의 뒤를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그도 역시 심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폐인처럼 되어서 병원신세나 지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둘은 자기들의 현실을 앞에 놓고, 똑같이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술주정뱅이인 내 아버지 때문에...' 그러나 형은 마라에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마라를 탈출했습니다. 엘림을 바라보고 그곳으로 힘차게 전진했습니다. 결국은 엘림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은 마라에 걸려서 넘어졌습니다. 마라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마라의 고통으로 우리의 삶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엘림의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그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2014년도를 위해 '여호와 이레'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아멘!/  (2014년 1월 19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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