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한성진목사/나아만 장군으로 본 죄론 (왕하 5:1-14)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 4. 07:50

한성진목사/나아만 장군으로 본 죄론 (왕하 5:1-14)

 

본문은 문둥병(한센씨병)에서 고침을 받은 나아만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고치시지 못할 질병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에게서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죄론에 대한 모형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 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이 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회개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면 참된 평안을 안겨다 주십니다. 이렇게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죄의 문제의 해결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죄악의 모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죄란 무엇일까요?
 

1절에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했습니다.
 

나아만에게서 우리 인생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기 나아만을 소개하는 낱말이 약 다섯 가지가 나타납니다. 즉 아람왕의 군대 장관,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 아람을 구원한 영웅, 큰 용사 그리고 문둥병자입니다. 그의 이름 '나아만' ( 나아만)은 '기쁨, 즐거움'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중요한 것은 그는 문둥병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이름에서 그가 얼마나 그의 왕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대상이었는지 생각나게 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본래적인 신분은 하나님의 형상과 영혼을 가진 최고의 창조물이요 하나님 앞에서 기쁨의 대상이었으며 세상을 다스리도록 임무가 부여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시조가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비참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에서 인간의 죄병의 모형을 봅니다. 문둥병이 성경에서 죄의 모형으로 쓰였다는 것 뿐이지 이 병은 오늘날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병일 뿐 아니라 천병은 아니라는 점에서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어원상으로 볼 때=문둥병( 차라아트)은 '더럽다, 부정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죄는 더럽고 부정한 것임을 성경은 300여회 이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렘17:9).

 

 

그런데 죄의 문제란 인간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1. 죄의 문제는 크고 존귀한 용사여도 안됩니다.

1절에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결코 인간의 공로와 행위로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갈2:16,롬7:24)

 

2. 죄의 문제는 금과 은으로도 불가능합니다.

5절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와 의복 열벌을 가지고 가서" 했습니다.
벧전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했습니다.

 

3. 죄의 문제는 권력으로도 불가능합니다.

6-7절에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했습니다.
성왕 다윗도 범죄했습니다(왕하5:6, 7).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들도 범죄했습니다.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운 자는 없습니다.

 

4. 죄의 문제는 종교적인 의식으로도 안됩니다.

11절에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했습니다.

죄는 신부 앞에 고해성사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아야지 사람 앞에서가 아닙니다.

 

5. 죄의 문제는 선지자의 권능으로도 불가능합니다.

10절에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했습니다.
엘리사가 나와 보지 않음은 죄는 선지자의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음을 상징하고자 함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6. 죄의 문제는 세상의 의나 도덕이나 철학으로도 불가능합니다.

12절에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주님의 은혜로 거룩해지는 것보다 세상 방법이 더 현명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산 속에서 도를 닦는 사람들이 성스럽게 보일지 모르나 모두 헛된 일일뿐입니다. 요즘 장경동 목사가 한 말로 불교계에서 떠들고 있지만 "쓸데없는 것을 하지 말고 스님들도 빨리 예수를 믿어야 된다." 는 말이 어디가 틀립니까?

그러나, 죄의 문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1.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2-3절에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했습니다.

 

이 작은 계집종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거나 겸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말씀은 겸손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불가능합니다. 자기 방법도 아니요 율법도 아닙니다. 1500년간 이스라엘이 율법의 의를 실험해 보았으나 오직 예수 공로가 아니고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성취하신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믿으라 하면 믿고, 담당하셨다고 하면 담당한 줄 믿고, 십자가에 못 박앗다 하시면 못 박은 줄 믿고,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했다 하시면 속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온전한 믿음으로 복음을 나에게 적용시켜야 합니다.

14절에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했습니다.


 

요단강은 회개의 세례를 베풀던 곳입니다. 이처럼 회개하고 예수 믿는 자에게 용서가 주어집니다. 요일5:8에 성령과 물과 피는 하나라고 했는데 그 기능에서 모두 죄를 없앤다는 뜻입니다. 즉 피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칭의를(히9:12), 성령은 성도를 죄성에서 벗어나 중심에서 변화되게 함을(롬8:9, 롬8:1), 그리고 물은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까지도 변화시키는 회개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요단강에서 일곱번 씻었는데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온전히 믿음으로 적용시켜야 합니다. 조금이 아니라 온전히 믿으세요. 그래서 보혈을 믿고 담대히 아버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늘 충만하여 변화적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확고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17절에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했습니다.


 

문둥병에서 고침받은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흙을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구했습니다. 성경에서 둘은 흔히 증인이나 증거의 수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확실한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흙을 구했습니다. 이 흙은 자기 생명을 구해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지상에 사나 심령은 천국 땅에서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 속에 이스라엘의 흙 즉 천국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4. 자범죄는 늘 회개하므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18절에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했습니다.


 

나아만이 왕을 모시면서 본의 아니게 립몬 신당에서 머리 숙임에 대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왕을 모시고 머리 숙여야 하는 이 일은 죄는 죄로되 본의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상에게 절한다면 회개하고 다시는 범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이 말에서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지상에 사는 동안 본의 아니게 범하는 자범죄의 처리입니다. 우리는 약함으로 범죄할 때마다 죄를 고백하므로 회개하여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파에서는 이미 용서 받았으니 어떤 자범죄라도 고백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법적 용서와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와는 달리 취급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보혈을 믿고 양심에 확신을 가져야 하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을 슬퍼하는 인격적 고백은 성령 안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5. 근신하며 신앙생활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나아만이 어떻게 문둥병에 감염되었는지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을 보면 문둥병의 원인을 말씀합니다.

민5:2에 "모든 문둥병환자와 유출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 격리를 말씀한 것을 보아 접촉이 가장 큰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원인을 보면 스스로, 부스럼, 화상, 접촉 등을 통해서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죄병도 근본은 원죄(벧전1:18)로 말미암지만 타인의 영향과(고전5:6, 고후6:14, 잠5:8) 환경적인 악조건을 통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격리시키도록 했는데 이처럼 세속의 요소를 멀리하며 사는 것이 죄의 오염에서 피하는 길입니다. 그렇지 않은 롯이 소돔에 살면서 얼마나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습니까?

 

그리고 문둥병의 병징으로 보면 잠복기 권태기 오한 발진 피부질환 무감각 궤양 신체기능정지 떨어져 나감 몸전체파괴 사망이라는 수순으로 진행합니다. 죄병의 징후도 신앙생활에 나태가 최초 징후입니다. 그 후 신앙의 권태가 오고 기쁨이 사라지며 신앙을 멀리할 결정적인 구실이 생기면서(오한) 양심도 무디어지고 신인식도 무디어지며, 형식적으로라도 유지되던 신앙의 행실이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결국은 주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여기서 깨닫는 교훈은 신앙생활의 나태가 우리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입니다(벧전5:8). 흔히 단체로 여행하다 보면 하나님과 교통함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이 때 느끼는 것은 심령이 무디어진다는 것입니다. 더 진행 되면 마음에 시험이 발생하고 그 마음의 시험은 외부로 표출되어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나태를 가장 경게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영적으로 근신하여 충만해 있다면 죄악의 시험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우리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속죄를 믿으십시다. 그의 은혜로 변화 되십시다. 그래서 어린이 새 살처럼 새로운 복된 심령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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