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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절망을 극복하는 길 (시 107:1-2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4. 13:06

절망을 극복하는 길 (시 107:1-22)



이 시간에 [절망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인생은 대부분 절망의 감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인생은 솔로몬의 말대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소망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 척 콜슨이 감옥생활을 경험하고서 ‘본 어게인(Born Again)’이란 책을 썼는데 그는 죄수들 사이에 세 가지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 종류는 절망에 빠져 자기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자신의 몸을 해치는 사람들, 둘째는 낙심하여 자기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셋째 종류는 감옥에서 나갈 날을 기다리며 기회 있을 때마다 나가서 운동을 하는 유형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서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까? 절망을 극복하려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7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B.C. 586-538)에서 돌아온 이후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노래하는 찬양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수많은 굴곡을 가진 역사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바벨론 포로 시기입니다. 나라는 망했고 백성들은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희망 잃은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얼마나 좋았든지 시편기자는 꿈꾸는 것 같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금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하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게 되었습니다. 절망이 극복 되는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그럼 우리의 절망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2-3절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해주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동서남북 각지에 흩어졌던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절망에서 극복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사랑과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늘의 백성으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놀라운 일을 하셨어요. 이 사실을 믿어보세요. 절망은 사라지고 소망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청년 시절 제가 절망 중에서 소망을 구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라. 그러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혀질 것이다.” 그 말씀이 맞아요.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2:4-7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하셨어요. 그러므로 내 생명이 하늘에 있고, 내 이름이 하늘에 있고, 내 주소가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6-7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이스라엘이 애굽과 광야에서 부르짖을 때 거할 성에 이르게 하신 것처럼 백성들은 포로생활 가운데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절망을 몰아내시고 해방을 주셨습니다.

13-14절에도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했습니다.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강한 놋문과 쇠빗장을 깨뜨려주셨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그래서 위대합니다. 그래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능력의 기도입니다. 능력 받으려면 부르짖어야 합니다. 은사 받으려면 부르짖어야 합니다. 묵상만 해서는 평생 방언의 역사는 볼 수 없습니다. 부르짖을 때 비전을 주시고, 부르짖을 때 해결을 주십니다. 절망은 마귀가 주거든요.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귀가 물러갑니다. 우리 성도들 이번 수련회에 다 참가하셔서 간절히 부르짖는 믿음 배우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처녀가 성중에서 겁간을 당하면 당한 자까지도 처벌했어요. 처녀가 사람이 있는데도 부르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르짖어야 세상에게 당하지 않는다는 교훈입니다. 부르짖으면 사는데 부르짖지 못하니 원수에게 잡혀 먹히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도 부르짖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정상회담 분위기 속에 평화 평화하지만 지금 북한의 적화전략은 쉴사이 없이 전개 되고 있습니다. 국가는 간첩 잡는 일을 그쳤고 나라의 중요한 요소 요소에 북한이 심어놓은 좌익세력이 포진해 여론을 주도해 나가고 있으며 북한의 실상을 말하거나 나라를 염려하는 한 마디를 하면 벌떼와 같이 달려들어 거반 죽여 놓습니다. 지난 번 국정원장이 나라의 위기를 말해도 국정원장을 비웃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실상을 아는 정치인들도 실체를 말하면 왕따 당해 자기 기반이 무너질까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습니다. 철부지 같은 이상주의 이 정권이 국민과 합의 없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저에게는 이번 회담이 염려스럽기만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며 세계선교할 후손에게 물려 줄 반듯한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절망을 극복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절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10-11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7절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깨달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자기 잘못입니다. 근본적인 회개 없이는 기도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난국에 처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침공했을 때나 A.D. 70년 로마가 침략했을 때 아무리 부르짖어도 소용 없었습니다. 그 자체만 보고는 하나님이 과연 계실까 의심이 들지만 회개 없는 부르짖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절망의 흑암과 사망과 곤고와 쇠사슬에 매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썩어 냄새가 난다면 그것부터 치워야 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도 간혹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즉시 깨닫고 회개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어리면 회개할 줄도 모르고 회개할 것도 없다고 하고 회개하라고 하면 나에게 무슨 감정이 있나 하고 오해부터 합니다. 신자도 불신자도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신자는 회개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가 기도 중에 하늘나라에 갔는데 사단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그러더랍니다. “하나님, 여기 천당에 온 사람들은 그렇게도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용서하시어 천당으로 오게 하시면서 나는 한 번밖에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신 줄 아세요? “사단아, 네가 언제 나에게 용서를 빈 일이 있느냐 ?”하시더랍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이 멸망당함은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입니다. 회개는 우리 문제를 바꾸고 우리 인생을 바꾸어놓습니다.

12절의 말씀처럼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겸손하지 못하면 절망이 옵니다. 잠29:23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욥22:29에도 “사람이 너를 낮추거든 교만했노라고 말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해지면 하나님께서 가득한 은혜로 우리를 회복시켜주십니다.

4. 말씀으로 돌아와야 절망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19-20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기 ‘위경’이란 ‘웅덩이, 무덤’이란 뜻으로 시험의 함정에 빠져 죽을 위기를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을 말씀을 보내 위경에서 건지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너를 구해주리라 하셔도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영원불변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의 것이요, 붙드는 자의 것입니다. 유라굴라 광풍 속에서도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5) 말했던 바울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에 두신 것은 말씀의 사람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광야의 결핍과 위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서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신8:3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절망은 성경을 안 보니까 오는 것입니다. 말씀 영양소의 결핍입니다. 사람은 한 가지의 영양소만 결핍 되어도 큰 병이 옵니다. 가령 마그네슘 한 가지만 부족해도 눈까풀이 떨리며 뇌질환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머리카락을 채취해서 성분검사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잘 먹고 사는 것 같아도 재배와 유통과 가공과 조리 과정에서 좋은 영양소 다 버리고 심각한 영양결핍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영적 영양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망은 무엇인가 부족해서 옵니다. 말씀이 부족하거나 찬송이 부족하거나 겸손이 부족하거나 사명에 부족하거나 부족해서 와요. 하나님의 계명에 하나라도 버리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제대로 될 수 없단 말입니다.

말씀을 통해 영의 눈이 열리면 절망은 사라지고 두려움도 사라지고 소망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려고 도단성을 포위했을 때(왕하6:14-17) 육신의 눈만 밝은 사환은 놀랐지만 엘리사는 그보다 강하고 많은 하늘의 군대가 도단성을 두른 것을 보았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스탠다드 오일회사는 이집트에서 독점적으로 기름을 뽑아내는 유명한 정유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성경을 믿고 대박이 터진 회사입니다. 이 회사가 이집트에서 석유를 뽑아내게 된 동기가 있어요. 그것은 성경 출애굽기 2장에 모세의 부모가 갈대 상자를 역청(아스팔트)으로 바른 것을 보고 이집트에도 석유가 있다는 힌트를 발견하고 챨스 휫샤트라는 지질학자를 보내 조사하여 석유를 발견해 낸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으면 그 말씀이 우리를 절망에서 구원해 줍니다. 말씀에 서서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감사하고 노래하시기 바랍니다(22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절망 가운데 계십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깊이 살펴보세요. 구속의 사랑을 기억하세요. 부르짖는 기도를 하세요. 회개하세요. 말씀에 서세요. 찬송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셔서 절망을 물리치고 참 소망을 여러분에게 안겨다 주실 것입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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