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멀고 먼 산간오지나 외딴 섬이라 할지라도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지난 5~60년대의 시골만 하더라도 전깃불이라고는 아예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요즘같은 길고 긴 겨울밤이 찾아오면 아예 일찌감치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쩌다가 한 번씩 학교에서 내어 다 준 받아쓰기 숙제를 어두운 밤에 할 경우에는 호롱불만큼 소중한 것이 없었다.어둠을 밀어내고 밝은 불빛을 뿜어내는 호롱불은 한겨울의 추위마저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이제는 추억속에 꽃을 피우는 마음의 호롱불이 되었지만 호롱불은 사금으로 만든 호롱병속에 기름을 넣고,여기에다가 솜을 이용하여 실처럼 가늘고 동글하게 만든 심지를 밖으로 뽑아올려 맨 꼭대기에 성냥불을 그어대면 타오르는 불이 바로 호롱불인것이다.
밤에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호롱불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듯이 좀 더 밝은 불빛아래 공부를 하기위해 호롱불을 눈 앞에까지 바싹 당겨 오다보면 실수로 호롱불을 엎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되면 호롱병속에 들어있던 기름이 쏟아져나와 책하고 공책을 흥건히 적셔대기 일쑤였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어머니께서는 그런 나를 절대 가만 두지 않으셨다.공부도 잘 못하는 주제에 아까운 기름을 엎질렀다며 얼마나 야단을 치셨는지 모른다.
호롱불에 쓰이는 기름은 석유다. 장날이 되면 아버지는 망태기를 짊어메고 장을 보러 가셨다. 닷새만에 열리는 오일장터는 부잣집의 큰 잔칫날처럼 언제나 시끌벅적하였다. 마을이 황매산 자락의 중턱에 위치한 돌때미에서도, 돌이 많기로 소문 난 붉은바우에서도, 삿갓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갓산에서도, 아니 이 보다 멀고 먼 방앗골이나 심지어 미끼에서도 사람들은 장을 보기위해 장터로 우루루 몰려 나왔다. 시골만의 독특한 생활에 필요한 물건으로 인기를 많이 끄는 이불이나 의류, 각종 농기구나 주방기구들이 있지만, 호롱불에 쓰이는 석유도 만만찮게 비중을 차지하였다. 지금은 이미 다목적 댐속에 잠겨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지만, 그 당시에 석유를 팔던 가게는 한적한 신작로를 비스듬히 끼고있는 버스종점 입구에 있었다. 그곳에 가면 늘 얼기설기 녹이 슨 크다란 기름통이 한 두어 개쯤 앞 마당에 나뒹굴고 있었으며, 임꺽정처럼 수염이 너스부레한 아저씨가 주인으로 계셨다.
이곳에서 아버지는 기름을 사 오셨다. 큰 댓병에다가 한 가득 기름을 사 오시면, 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보관을 하셨다.그런 곳을 시골사투리로 말하자면 실겅이라고 불렀다.석유는 값도 비쌀 뿐아니라 농촌에서는 손쉽게 구입 할 수없는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머니한테도 호롱불은 참 귀중했다.하얀 눈이 내리는 밤 늦은 시간까지 어머니는 호롱불빛아래에서 헤진 양말이나 옷을 꿰메며 바늘질을 하셨다.가끔씩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시기도 하고,당신의 노래가락에 감정이 흘러넘쳐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셨지만 바느질만큼은 한 점 흐트러진 점 없이 꼼꼼히 하셨다.
뭐니뭐니 하여도 일 년중에 호롱불의 위력을 어김없이 발휘를 하는 때를 말한다면 음력설이 가장 압도적이다.인 새벽에 일어나신 어머니와 아버지는 부엌칼로 하얀 가래떡을 하나같이 비스듬한 각도를 유지한 채 참으로 곱고 예쁘게 썰었다.스악 스악 하며 가래떡을 썰어내시는 소리에 잠을 깨어 바라보면, 어린 나의 눈에 비친 호롱불빛은 바로 어머니의 영롱한 눈빛이요 아버지의 초롱한 눈빛이셨다.
세월이 흐른 어느날, 마침내 우리 집에도 호롱불이 사라지게 되었다. 고 박대통령의 농촌살리기운동의 일환으로 시작 된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마침내 이 멀고 깊은 산골동네까지 전깃불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얀 백열전구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은 밝고 환해서 좋긴 하지만 호롱불같은 은은한 정감을 찾을 수가 없어 나는 싫다. 초갓집의 낡고 허스름한 미닫이 문 사이로 비치는 호롱불빛만봐도 가슴이 설레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호롱불이 오늘 밤 내내 애절토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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