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직 판사도 궤변이라 비판한 ‘원세훈 판결’
현직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5)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 이범균(50) 부장판사를 언급한 것이다. 옆방의 판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법원의 문화다. 그런데 일선 판사가 다른 판사의 사건 심리 결과를, 그것도 법원 내부 전산망을 통해 공개적으로 평가했으니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글을 올린 김 판사는 이 판사의 대학 직계 후배이자 사법연수원 4년 후배다. 그만큼 판결 내용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김 부장판사는 대선개입 무죄 판결을 ‘궤변’이라고 못박았다. 법원은 국정원의 활동이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면서도 이런 행위에 목적성·능동성·계획성이 부족한 만큼 선거법에서 규정한 선거운동으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관여를 넘어 선거개입이 되려면 더 치밀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이를 두고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형식논리”라고 평했다. 술 마시고 핸들을 잡기는 했으나 음주운전을 할 목적이 없었고, 능동적으로 한 건 아니며, 미리 그럴 계획을 세운 건 아니기 때문에 음주운전은 아니라고 판정하는 거나 매한가지인 모순을 꼬집은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2013년 9월부터 법치주의가 죽어가기 시작했다고 봤다. 이때는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한 때다. 그때 “모든 법조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게 김 부장판사의 진단이다. 진실을 밝히려던 검사들은 다 쫓겨났고, 감추려는 검사들만 승승장구했다. 김 부장판사는 원세훈 판결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그 때문에 김 부장판사는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이 가득한 판결”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재판부 내심의 의사까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법원의 내부 인사가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그만한 정황과 관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사법부 수뇌부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글이 올라온 지 3시간 만에 삭제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사법부의 공정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원세훈 판결을 놓고 법원 내부가 치열하게 토론하는 장을 마련하는 게 국민의 불신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국정원 사건이 항소심에서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이 내려질 수 있도록 담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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