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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월호 참사, 26살 <한겨레>의 반성과 다짐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5. 15. 10:55

 

[사설] 세월호 참사, 26살 <한겨레>의 반성과 다짐

한겨레 등록 : 2014.05.14 18:50수정 : 2014.05.14 20:55

세월호와 함께 한국 언론도 침몰했다. 우리 언론이 이렇게까지 국민에게 불신받고 질타받은 적이 있었던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기레기’(기자+쓰레기)로 불린 기자들은 멱살이 잡힌 채 취재 현장에서 쫓겨났고, 방송 카메라는 내동댕이쳐졌다. 한국 언론의 부끄럽고 참담한 자화상이다.

 

자업자득이다. 정확한 보도보다는 언론사 간 속보 경쟁 속에 오보와 자극적인 보도를 남발했고,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기사는 애써 외면했다. 사고 초기에 ‘학생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신속한 구조가 이뤄질 수 있는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했고, 사고 이후에는 자극적인 보도로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까지 했다. 그런 언론은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한 흉기나 다름없다.

 

 

세월호 통해 한겨레도 거듭나야

 

<한겨레>라고 이런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언론에 비해 정부의 책임을 밝히는 데 더 주력하고, 선정적인 보도는 최대한 자제했다고 자평하지만 독자들의 시선이 그리 따뜻하지 않았음도 잘 안다. 다른 언론과 완전히 차별화되지 못하고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한다.

 

26년 전 오늘, 1988년 5월15일 한겨레는 또 하나의 신문이 아닌 전혀 다른 신문을 표방하며 국민과 첫 인사를 나눴다. 당시 권력의 부단한 간섭과 규제에 순응했던 기성 제도언론은 진실을 전하기보다 권력과 한편이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고, 국민은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대변해주는 완전히 새로운 언론을 원했다. 한겨레는 그런 국민의 부응에 힘입어 26년 전 오늘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창간 이후 줄곧 한겨레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 그리고 민생을 위해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음을 감히 자부한다. 비민주적인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끈을 놓지 않았고, 남북 화해와 통일 지향적인 보도를 지속했으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비록 우리 사회를 온전히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한겨레는 일관된 목소리를 끊임없이 냄으로써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주요한 구실을 해왔다. 수구정권의 끊임없는 견제와 보수 일색인 열악한 언론 지형 속에서도 한겨레가 이렇듯 적잖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한겨레를 믿고 사랑해준 독자와 국민 덕분이다. 깊이 감사드린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한겨레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음을 절감한다. 한겨레가 다른 신문과 뭐가 다르냐고 질책하는 독자들도 적지 않다. 또한 상당수 국민이 한겨레 이외의 일부 대안매체에 더 관심을 보인 것은 한겨레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이는 전혀 다른 언론을 지향했던 한겨레가, 그토록 경원시했던 기성언론의 한 축이 돼가고 있다는 조짐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창간 취지와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무서운 경고다. 국민의 이런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26년간의 성과에 자족했다간 한겨레의 미래가 결코 보장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에 26살 한겨레는 국민의 무한한 신뢰를 받는 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자 한다.

 

우선, 언론의 기본은 무엇보다 진실 보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진실하지 않은 보도는 단순히 사실 전달을 잘못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국민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한겨레는 ‘신뢰도 1위 신문’이라는 지금까지의 외부 평가에 자족하지 않고 진실 보도를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이다. 창간 당시로 돌아가 ‘우리 사회의 진실을 알려면 한겨레를 봐야 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모든 취재·편집 역량을 한겨레 기사의 신뢰도 향상에 쏟아붓고자 한다. 국내 언론 사상 처음으로 ‘오보를 했을 때 1면에 정정기사를 게재하겠다’는 방침도 이를 위한 자그마한 디딤돌이다.

 

또한 국민과 독자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따스한 온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언론이 되고자 한다. 그동안 한겨레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등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차가운 머리만 너무 앞서고 뜨거운 가슴은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면서도 진정으로 피해자들과 아픔을 같이하면서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린 뒤 보도했는지 자문해본다. 독자와 국민과의 공감 속에서 매서운 비판과 함께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보도하는 한겨레가 되려 한다.

 

 

세상의 진실을 담는 온-오프 미디어

 

디지털시대로 급변하는 언론 환경도 한겨레 앞에 놓인 무거운 숙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대부분의 독자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을 통해 사고 소식을 보면서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다. 세월호 참사는 신문의 시대가 가고 디지털의 시대가 눈앞에 왔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한겨레가 26년 전 전혀 다른 ‘신문’으로 태어났듯이 이제는 또다시 전혀 다른 ‘디지털언론’으로 탈바꿈할 것을 약속드린다.

 

밀려드는 바닷물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과 아직까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억울하게 숨져간 희생자들과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와 함께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