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추억 / 서경림
이제는 나이도 들고 몸도 쇠약해져 지난날의 추억들이 아득히 멀어져가지만, 박정권에 의한 유신독재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고 있다.
나는 이십대와 삼십대를 폭압적인 박정권 밑에서 숨죽이며 보냈다. 대학생일 때에는 반항도 하였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저자세를 반대하며 데모와 함께 단식투쟁도 하였다.
오늘날에 와서 밝혀진 바와 같이 성노예나, 원폭피해자와 같은 문제가 협상과정에서는 언급조차 없이 지나갔는데, 그 당시 그것을 알았다면 더 강열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잘못 맺어진 조약이 후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는 오늘날의 한-일 관계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좀 더 보람있는 군생활을 하고 싶어 해병대 장교가 되었다. 유능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의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명에 의해 베트남전에도 참전하였다.
1969년 9월, 3선 개헌안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남은 것은 국민투표로 그것을 가결시키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해병사단 예하대대에서 인사장교를 맡고 있었다.
대대의 사병들이 영내에서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사무를 처리하는 임무가 인사장교에게 부여되어 있었다. 열흘 동안 중대 행정병들을 도닥거리며 노력한 결과, 모든 사병들이 빠짐없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투표 전날, 대대장은 사무실에 투표소를 함께 설치하며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투표소는 누구도 볼 수 없게 천으로 잘 가리어져 비밀투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대대장은 사단 본부에서 급한 회의가 있다고 하여 올라갔고, 나는 모든 투표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퇴근하였다.
이튿날 출근하였을 때, 대대본부의 분위기가 사뭇 굳어 있었다. 대대장은 내가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기를 기다리지 않고 퇴근하였다고 난리였다. 우람한 체격에 억센 주먹이 금방 내 아구로 날아 올 것 같았다.
어저께 아담하게 설치된 투표소는 간 곳이 없고, 탁자위에 투표함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안락의자에는 중대장이 앉아, 그가 보는 앞에서 찬반투표를 하고 투표함에 넣게 되어 있었다.
대대장은 중대장들을 집합시켜 놓고, 사단 본부에서 참모들이 투표 독려차 내려올지 모르니 항상 대기하고 있을 것을 명하였다. 덧붙여 그는 ‘국가의 녹을 먹는 자는 각하의 뜻을 따라야 한다’ 고 힘주어 말했다.
그 날도 아무 탈 없이 평온하게 지나갔다. 다만 해병들 중에는 중대장을 등지고 서서 투표하고, 그것을 접어 투표함에 넣는 용감한 자들도 있었다. 중대장은 그것까지 보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대대장은 어제 회의에서 절대 다수의 찬성표가 나오도록 하라는 명을 받았을 것이고, 그가 나에게 공연히 화를 낸 것은 공포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한 의도였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박정권은 역사의 교훈도 잊고 있었다. 이승만정권이 ‘사사오입개헌’으로 종신집권을 도모하다가 4-19혁명으로 붕괴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권력욕은 역사의 교훈마저 짓밟고 지나갔다. 권력욕의 화신은 막장까지 가서야 끝나게 되어 있었다.
5년 6개월 만에 겨우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고향 제주에서는 아내가 어린것들을 데리고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대학원에 복학한 후, 전공과목을 법철학에서 상법으로 바꾸었다. 법철학은 정당한 법질서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아주 중요한 실천적 과제인데, 점점 독재화의 강도를 더해가는 박정권 치하에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하여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1972년 10월27일, 오지 말아야 할 것이 드디어 오고 말았다. 유신이란 괴물이 드높은 헌법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천지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아직도 쓸쓸하고, 씁쓸하고, 소름이 끼치던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를 통해 그 마각을 드러내었다. 터무니없이 뻔뻔스럽고 강력한 긴급조치에 의해 유신헌법에 대하여 입만 잘못 놀려도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것을 각오해야 했다. 생각을 해서도 안 되었다. 너무 골똘히 생각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비판적인 말이 튀어나오게 마련이었다.
긴급조치는 법이라고 할 수 없다. 꼭 이름을 붙인다면 정글의 법칙(the law of the jungle)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칙이 통용되는 사회에 있어서는 구성원은 눈치가 빠르고 수장의 비위를 잘 맞추어야 한다. 게다가 수장의 변덕에도 잘 대비를 해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유신시절에 나는 연구실과 집, 그리고 바닷가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있는 듯 없는 듯 소리없이 보냈다. 그래서 해코지를 당하지 않았다. 강의할 과목내용도 유신을 들먹거릴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그래도 ‘사법살인’ 에 의해 꽃다운 생명들을 빼앗긴 인혁당사건의 희생자들에게 동병상린의 아픔을 느꼈다.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밖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또 다른 이들이 본보기로 희생되었을 것이다.
전태일의 살신성인, 유신에 당당히 맞서 싸웠던 장준하 선생, 이러한 분들의 부단한 용기에 힘입어 인권은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바로 세우고 정리해야한다. 바로 세운 역사를 통해 배워야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올바로 세우지 못한 역사는 그 모습대로 재연될 여지가 많다.
유신의 망령이여, 이제는 깨끗이 정리되어 불가피하게 사라져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잔학성이 우리의 잠재의식에 남아 어느 순간에 반대자나 사회적 약자에게 발호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역대 신곡문학상 수상자 작품 / 엄현옥 (0) | 2014.11.07 |
---|---|
[스크랩] 역대 신곡문학상 수상자 작품 / 김지헌 (0) | 2014.11.07 |
[스크랩] 역대 신곡문학상 수상자 작품 / 김이경 (0) | 2014.11.07 |
[스크랩] 역대 신곡문학상 수상자 작품 / 김재훈 (0) | 2014.11.07 |
[스크랩] 역대 신곡문학상 수상자 작품 / 남지은 (0) | 2014.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