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스크랩] 역대 신곡문학상 수상자 작품 / 김재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1. 7. 14:49

 

돌과 사람 / 김재훈

 

 

석불이 웃는다. 저 입가에 번지는 은은한 미소는 깨달음의 희열일까.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나도 따라 웃고 있다. 하나같이 둥글둥글하고 넉넉해 보이는 석불들의 얼굴이다.

 

용인 양지면에 있는 옛돌박물관의 정원에는 이런 석불 말고도 비석・석등(石燈)・맷돌・다듬잇돌 등, 돌로 만든 생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천여 평의 대지에 일만여 점의 돌이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이 누군가의 무덤을 지켰을 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 같은 석인(石人)들이다. 숲 속 정원에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서 있다.

 

돌이 인간의 삶에 이처럼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둘은 서로 인연이 참 깊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 역사와 더불어 여러 가지 도구로 사용되어 온 돌,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집도 성벽도 흙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문명의 발전단계를 구분하는 석기시대라는 개념도 없을 것이다. 돌이 있어 인류문화는 더욱 빛을 발하고, 그 흔적이 후대에까지 오래 전해진다. 기원전 삼천 년경부터 세워졌다고 하는 영국의 ‘스톤헨지’를 비롯하여 그리스 로마의 건축물 등, 유럽의 유적을 보면 그들의 문화는 돌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돌을 사용함이 어디 삶의 영위에 꼭 필요한 실용성을 위한 것뿐이랴. 그것으로 훌륭한 조각품도 만들어낸다. 하지만 돌은 어디까지나 돌일 뿐이다. 돌로 아무리 인물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낸다 해도 그것의 무정함은 어찌할 수 없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야기는 신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인간은 유정한 것의 대표요, 돌은 무정한 것의 대표다. 그러기에 돌은 인정도 눈물도 당연히 없다. 돌처럼 차가운 사람이란 말도 바로 그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며칠 전 퇴근시간 무렵이었다. 전철을 탔는데 그 안에서 느꼈던 분위기가 바로 저 석인(石人)들 같았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하루 종일 일에 지쳐 심신이 피로해진 때문일까, 사람들은 말이 없고 무표정했다. 눈을 감고 있거나 무언가를 바라보며 제각각 깊은 상념에 빠져 있는 듯했다.

 

차가 고속버스터미널 역에 이르자 인파 속에 나도 함께 내렸다. 부지런히 앞만 보며 출구를 향해 나가는 사람들. 이런 와중에 한 할머니가 계단에 앉아 있었다. 양손에 껌 몇 봉지를 들고 연신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나이가 구십이 다 돼 보이는 할머니였다. 얼굴엔 깊은 주름살이 덮였고 몸은 왜소했다. 사람들을 보며 계속 뭐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물밀듯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어도 할머니의 손에 쥐어진 껌은 처음 그대로였다. 다시 잠잠해진 층계. 할머니는 벽에 몸을 기댔다. 찬 공기에 몸의 괴로움보다 마음이 더 춥고 공허할 것 같았다.

 

할머니의 집은 어디이며 이 할머니를 돌봐줄 사람은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저 연세의 할머니에게조차 아무런 배려를 할 수 없는 것일까. 짠한 생각에 자꾸만 눈언저리가 젖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다.

 

연말이 다가온다. 이 겨울을 저 차디찬 바닥에서 견뎌야 하는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말을 하는 것이 할머니를 더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냐. 할머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당한 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할머니에게 하루 세 끼의 끼니걱정이라도 하지 않도록 사람들의 인정이 마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학은 발달하고 사는 것도 더없이 윤택해졌지만 인심은 점점 각박해져만 간다. 석인이 따로 있지 않다. 인정 없는 사람이 바로 석인이 아니겠는가. 돌처럼 차가운 사람은 이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지가 않다. 내남없이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게 석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다음에도 할머니를 그 자리에서 볼 수 있으려나.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 때는 좀 더 생기 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기대해 보고 싶다.

 

석불의 자비로운 미소가 넘쳐나는 세상, 지나친 바람일까.

 

 

출처 : 수필과비평 작가회의
글쓴이 : 노혜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