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인자가 온 것은?(3)/대속물로 주려고(마 20;2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1. 25. 07:38

인자가 온 것은?(3)/대속물로 주려고(마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나요? 예수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예수님의 입으로 분명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4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1.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2. 섬기러 오셨습니다.

3.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

4. 풍성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오늘은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세상은 "대속물 법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모든 행동, 모든 물건에는 대속물이 필요합니다.

시계를 사려면 시계값을 지불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대속물입니다.

심으면 거두게 됩니다. 거두기 위하여서는 대속물이 있어야 합니다.

 

대속물이란 헬라어로 <뤼트론>이라고 합니다. 이는 해방하다’‘결박에서 풀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속물인 짐승을 대신 죽임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대신 죽이는 동물을 대속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대속물로 오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점은 대속물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대속물이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란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온 인류의 대속물 즉 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부산 택시 운전기사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집사님입니다. 어느 분이 핸드폰과 지갑을 두고 내렸습니다. 그대로 경찰서에 갖다 주었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시간은 돈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내어 경찰서앞에 택시를 세워두고 신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후 경찰서에서 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영업을 중단하고 경찰서로 갔습니다. 지갑 주인이 경찰과 함께 있었습니다. 경찰이 말했습니다.

"지갑에 40만원이 들어 있었다는 데 30만원을 빼고 10만원만 가지고 왔지요."

집사님은 억울하였습니다. 시간을 내어 신고하고 지갑을 찾아 주고 도둑놈으로 몰리고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하여도 지갑 주인은 분명히 40만원이 들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은 당당하기에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30만원 꺼낼 생각을 하였으면 무엇 때문에 10만원 남기고 신고할 가요? 차라리 지갑을 버리고 40만원 다 갖지요. 나 이제 택시 회사에 가서 부산 택시 기사들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앞으로 택시에서 지갑을 보거든 절대로 신고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지갑 버리고 돈이 있으면 모조리 가져야지 정직하게 신고하면 억울한 일 당한다고 말하겠습니다."

가만히 이 말을 들은 경찰이 진실을 파악하였습니다. 결국 진실이 이겼습니다. 거짓말한 지갑 주인은 혼나고 내쫓겼습니다.

진실에는 인정이 따라 오게 됩니다. 이것이 보상입니다. 진실을 대속물로 지불하면 그 댓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모든 것에 댓가가 있습니다. "대속물의 법칙"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예수님의 목숨은 우리를 구원시켜주는 대속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생명을 가지고 와서 대속물로 우리를 위하여 지불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기 전 구약에서 대속물은 소, , 염소, 비둘기이였습니다. 흠없는 숫컷이 대속물입니다. 수건벗고 보면 예수님입니다.

구약은 짐승이 죽고 신약은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르웨이의 어느 교회 종탑에는 양과 십자가를 같이 조각하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교인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 교회를 지을 때에 건축비가 부족하였습니다. 기술자들을 모두 돌려 보내고 교인들이 몸으로 봉사하며 짓고 있었습니다. 기술이 없는 한 사람이 종탑위에서 일하다가 떨어졌습니다. 모두가 죽은 줄 알고 달려가 보았더니 살아 있었습니다. 마침 양떼들이 종탑밑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양위에 떨어져서 양이 죽고 그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 양이 죽어야 사람이 사는 구나!”

그렇습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구약을 의미하는 양과 신약을 의미하는 십자가가 같이 조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속 제물은 양이지만 신약의 대속제물은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다방에 손님을 만나려고 가서 앉아 기다리는 데 다방 여자가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목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시나요?”

아니요.”

그런데 왜 십자가를 목에 걸었나요?”

예뻐서요.”

십자가는 목에 거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지는 것이예요.”

가끔 십자가가 등쪽으로 갈 때도 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4가지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는 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네 가지 면에서 대속물이 되셨다고 풀어주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히브리서를 신약속에 구약이라고 한다면 이사야서는 구약 속에 신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중에서도 특별히 53장은 신약중에 신약이요 예수님에 대한 예언중에 예언입니다.

신학자 켐벨 몰간은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다."

신학자 델리취는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골고다 십자가의 현장이다."

칼빈은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력서다."

사람들은 평안을 좋아하는 데 예수님은 고난을 자초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밝게 살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어둠속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받으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더 살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그만 사시고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위에 있기를 바라는 데 예수님을 친히 낮아 지셨습니다.

사람들은 앞서 가기를 원하는 데 예수님은 친히 섬기셨습니다.

사람들은 쌓아 놓으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모두 없애셨습니다. 예수님은 4 가지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허물의 대속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허물이 무엇입니까?

모르고 지은 죄를 허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까지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찔리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종종 이렇게 기도합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모르고 지은 죄가 허물입니다. 이런 허물을 위하여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 허물까지 짊어지고 죽으신 대속물이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허물 때문에 찔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의 허물을 없애 주시려고 찔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창에 찔리고, 가시에 찔리신 것은 우리 허물을 대속하시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시골 농부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부인은 늘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에 같이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 닭장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서는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푹 쓰러졌습니다. 죽어 있었습니다. 농부가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저 머리에 난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이 암탉이 몸에서 피를 다 빨아먹었습니다. 어미 닭은 족제비가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죽었습니다.”

때를 놓지지 않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 저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느라고 십자가 고통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는 데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죄악의 대속물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예수님은 허물의 대속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죄악의 대속물도 되셨습니다. 허물은 모르고 지은 죄입니다. 죄악은 알고 지은 죄입니다.

예수님은 온 몸이 고난으로 몹시 상하셨습니다. 가시 면류관으로 머리가 상하셨습니다. 채찍으로 온 몸이 상하셨습니다. 못 박힘으로 손과 발이 상하셨습니다. 창에 찌름으로 옆구리가 찢어져 가슴이 상하였습니다.

그가 상함은 바로 우리의 죄악을 위함입니다. 죄악의 원어는 원죄입니다. 우리의 원죄때문에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죄를 씻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평화의 대속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은 우리 허물을 없애는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죄악을 씻는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징계를 받았습니다. 빌라도에게 징계를 받으셨습니다.가야바에게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로마 병정들에게 끌려가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자청한 고난이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 이야기입니다.

조조가 중원 원정에 나섰습니다. 중원이라는 곳을 점령하기 위하여 수많은 군사들을 출동시켰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싸움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본국으로부터 보급품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수 만의 군대가 하루 먹는 음식만도 산더미같았습니다. 다시 보급품이 올 날은 아직 멀었는 데 전쟁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군대가 굶어 죽게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밥을 못 먹게 되면 기운이 없어지고 기운이 없어지면 전쟁에서 지게 되고, 전쟁에서 지게 되면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조조는 병참 참모를 불러 군인들에게 먹을 것을 대폭 줄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군인들 사이에서 폭동이 날 정도 불만이 팽배하여졌습니다.

이제 죽도 밥도 안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조조는 병참 참모를 불러서 공개적으로 사형을 시켰습니다. 죄목은 군량미를 빼돌려 팔아 먹었다는 죄목입니다.

병사들의 불만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전쟁에 승리한 후 조조는 병참 참모 가족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보상을 주었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희생 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군사들과 나라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병참 참모가 죽었기에 평화가 온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죽으셨기에 평화가 왔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병의 대속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우리 병을 고치기 위하여 대속물이 되셨다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약 3시간동안 채찍에 맞으시고 약 9시간동안 피가 흘렀습니다. 이는 병고침을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고난을 자초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17절에서 예수님은 병을 짊어 지셨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8;17)

 

예수님은 우리의 병도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채찍에 우리 대신 맞으셨습니다.

덴마크의 윌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안과 의사였습니다. 눈 병을 고치는 데에는 그를 따라 올 사람이 세계적으로 없을 정도로 안과계의 최고 전문의사였습니다. 윌리 의사는 캐서린 부드의 전기를 읽고 감격하여 복음전도를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캐서린 부드는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드 아내입니다. 사회사업가이며 불붙는 전도자였습니다.

그가 의사직을 포기하려고 하자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돈도 포기하고, 명예도 버렸습니다. 선교사가 되어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습니다. 졸업 후 선교부로 가서 선교사로 파송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마침내 그의 소원대로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 곳은 눈병환자가 매우 많은 곳이었습니다. 인구의 5분의 1이 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큰 안과 병원을 설립하고 전도를 목적으로 토인들의 눈병을 치료하여 주면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30년 간을 봉사하고 노령으로 은퇴하였습니다. 네델란드 여왕은 그에게 그 나라 최고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의술과 주님이 함께 하시는 신유가 겸한 선교는 폭팔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고침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윌리도 그들 대신 병을 짊어 지며 살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채찍 때문에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음을 믿으면 수많은 고침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 똑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장례식을 할 때 친구들이 무엇이라고 말해주면 좋겠습니까?”

한 사람이 먼저 말했습니다.

휼륭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까운 사람 죽었다.”
마지막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장례식에서 이런 말을 듣기 원합니다. ! 움직인다.”
사람들은 병들어도 모두 고침받고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모든 병에서 나음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네 가지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허물의 대속물

죄악의 대속물

평화의 대속물

병의 대속물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전북 익산에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20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혼자서 식모살이, 막 노동을 하면서 모든 653만원을 모았습니다. 생명과 같았습니다. 평생 고생하면서 모은 돈입니다. 알뜰 살뜰 모은 돈입니다. 할머니는 은행에 저금할 줄 몰랐습니다. 집에 두면 잊어버릴 것같아서 어디 갈 때면 꼭 가지고 다녔습니다. 때로는 머리에 이고 다녔습니다. 허리에 차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속옷에 넣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늘 이 돈을 처리하지 못 하여 오랫동안 고민한다는 말을 듣고 익산 경찰서 신흥 파출소 박중렬 경장이 할머니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은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저금하라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벌벌 떨면서 말했습니다.

은행에 뺏기는 것 아니요?”

경찰이 사기치는 것 아니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경찰은 설득시키느라고 혼났습니다. 간신히 저금을 시키고 통장을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 우리의 병, 우리의 슬픔을 다 짊어지고 죽으신 것을 믿고 그 분의 십자가에게 감격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축복합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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