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2014.11.25ㅣ주간경향 1102호
[유인경이 만난 사람]의료전문 변호사 신현호 “의료소송 환자과실 70%나 인정 이기기 어렵고 이겨도 속빈강정”
병원을 가는 목적은 분명하다. 아픈 데를 치료하고 고치러 간다. 그러나 병을 고치기는커녕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올 때만큼 가족에게 황당한 경우도 없다. 이런 비극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최근 가수 신해철씨의 사망을 계기로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의사에 대한 불신도 불신이지만 막상 의료사고를 당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대처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료사고의 정확한 숫자나 유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의료사고가 여전히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의료소송은 ‘달걀로 바위치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해마다 의료사고는 수만건 넘게 일어나지만 의료소송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의료소송 건수는 1000여건을 넘어섰을 뿐이다.
신현호 변호사는 의료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활발하게 기고와 방송활동을 하는 의료전문 변호사다. ‘존엄사 사건’으로 알려진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을 담당해 연명치료나 존엄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의료사고 전문 25년 경력의 신 변호사를 만나 의료사고 시대에 무사히 살아가는 법을 물었다.
의료사고나 소송이 많아지는 거 같습니다.
“연간 최소한 1만건 이상의 의료분쟁이 발생하고 그 중 10% 정도가 의료소송을 벌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3년 의료사고 소송은 1003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료사고인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죠. 의료사고 분쟁 해결은 의료 공급체계에 따라 나라마다 다릅니다. 사보험인 미국은 분쟁에 있어 배상액도 엄청납니다. 반면 공산국가에서는 행정제도에서 배상액을 지급하니 숫자로 단순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 미국에서 조사를 해보니 의료사고가 병원당 평균 2건 정도였는데, 전체 병원의 15%가 전체 의료사고의 5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항상 사고를 내는 병원에서 또 사고를 내는 거죠. 결국은 의사 개인의 실수보다는 병원 시스템의 문제라고 봅니다.”
의료사건은 승소율이 매우 낮다면서요.
“환자가 원고인 사건의 승소율을 보면 완전 승소하는 경우는 2~4% 정도입니다. 다른 소송에 비해 승소율이 매우 낮습니다. 부분 승소 등 전체 승소율은 55% 정도입니다만 내용은 완전히 속 빈 강정입니다. 의료사고로 소송을 내면 보통 환자 측 과실을 70%나 인정합니다. 형식적으로 이겨도 보상액이 적어 변호사 소송비용을 내면 거의 남는 것이 없습니다. 1990년대에는 원고 승소율이 70%까지 늘었는데 2000년 들어서 원고 입증 책임을 강화시키면서 30%까지 낮아졌다가 2010년부터 다시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의료소송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요.
“사실 확증이죠. 피해자가 자신이 어떤 이유로 어떤 피해를 입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렵습니다. 대부분 선 처치, 후 기록이라 진료기록이 부실하거나 조작하는 경우도 많아서 객관적 사실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CCTV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몇 년 전 지방 국립대병원에서 모 대학 교수가 주사 쇼크로 사망했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주사 1시간 전에 부작용에 대해 환자 가족에게 설명을 했다고 했는데 CCTV를 확인하니 1시간 전에 의사나 간호사가 다녀간 흔적이 없더군요.”
대부분의 의료소송에서 의사의 설명이 없거나 부족했다고 하는 게 주요 쟁점 중 하나가 아닌가요.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은 사실이 입증되어도 위자료가 1000만~2000만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물론 사망사고일 경우 더 올라가기도 합니다. 요즘 성형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미용성형이 급증했지만 의사들이 수술할 필요가 없거나 수술 후 후유증이 있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종아리 퇴출술이라고 해서 흔히 무다리라고 불리는 다리를 날씬하게 만드는 시술이 있습니다. 마취제를 주사하고 혈관강화제를 다시 주사하는데, 혈관과 신경을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식물인간이 되거나 다리신경이 마비된 경우도 있어요. 이럴 경우 전손해배상이라고 해서 의료와 정신적 배상을 같이해야 하는데, 이런 판결이 극히 드뭅니다.”
식물인간이 되어도 혹은 평생 우울한 삶을 살게 되어도 의료사고 배상은 너무 적던데요.
“그건 의료행위가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의 경우 자신을 위해 운전하다 낸 사고이지만, 의료사고는 환자의 질병이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숭고한 일을 하다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사고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원이 법적 개입을 자제하거나, 하더라도 의료진에게 기본적으로 온정적이 되는 겁니다. 또 우리 의료수가를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데 보상이나 배상을 의사에게만 부담시키는 것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법원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인수과실책임’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의사란 직업을 인수했을 때는 생명을 다룬다는 책임을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거든요. 2006년부터 건강보험수가에서 진료비의 0.15%를 떼어 사회적 품앗이 형태로 기금을 조성했어요. 병원이나 의사의 개인 책임이 아니라 진료비 자체에서 떼어놓은 돈으로 의료사고 보상비용을 일부 충당해야 한다는 거죠. 사실 이제 의료사고 보상비 체제도 달라져야 합니다. 똑같은 하반신 마비를 당해도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라면 산정액도 많고 금방 처리됩니다. 대형보험사의 자동차보험 등이 다 계량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의료사고는 입증도 어렵고 입증이 되어도 보상범위가 너무 다양하고 시간도 걸리며, 무엇보다 기준이 없습니다. 의료사건 항소율이 일반 사고의 두 배에 이르는 것도 그만큼 법원의 판결에 불만이 많고 배상이 적기 때문이죠.”
어려운 의대를 나온 똑똑한 의사들이 왜 의료사고를 많이 낼까요.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인구 1만명당 의사 수가 가장 적습니다. 항상 많은 환자를 봐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되지요. 우리나라 의대나 의료체계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의대에서도 우수학생들이 요즘은 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고령화에 어울리거나 큰 위험이 없는 전공과목에 몰린답니다. 정작 수술을 할 외과에는 지원도 안 하고 지방병원에서는 전문의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지금보다 3~4배 정도 의사 수가 늘어나야 하고 임상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진도 더 늘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국방의학전문대학을 만드는 등의 방법을 모색할 때입니다. 이 정부에서 의료분야를 신성장 동력을 위한 창조경제 분야로 주목했는데, 인력을 양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공허한 구호일 뿐입니다.”
병원이나 의료진이 너무 전문가의 자존심을 내세워 자신들의 실수를 덮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요.
“그렇죠. 의료사고 특성상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됩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 두면 이후 비슷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만, 병원들이 대부분 사고를 숨기고 공개하지 않는 탓에 다른 병원에서 유사한 의료사고가 똑같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단에서 2000년 이후 대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의료소송으로 판결된 의료소송 277건을 분석한 결과 약 30%는 예방 가능한 사건이었거든요. 신해철씨 사고의 원인이었던 장유착 수술도 전체의 10%는 천공 가능성이 있고, 0.8% 정도는 패혈증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의료진이 사전에 인지하고 대처했더라면, 또 이 같은 부작용에 대한 사전 설명을 환자 보호자에게만 했더라도 관련 사고는 예방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입니다.”
정부가 의료사고에 책임이 있나요.
“아직도 우리 정부는 어떤 유형의 의료사고가 자주 발생하는지, 한 해 몇 건이나 발생하는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사고에 대한 신고나 보고체계가 허술해 각 의료기관이 사고를 숨기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죠.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가 의료현장에서 빈번한 의료사고의 유형이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똑같은 의료사고가 되풀이되거나 의료사고 다발 의료기관이 별다른 제재 없이 영업을 계속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고 신해철씨의 경우 그나마 고인과 그 지인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가수’여서 이렇게 여론화되었지만 일반인들로서 의료소송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의료사고를 미연에 막는 것이 중요한데, 환자나 가족이 어떤 점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우리가 병원에 갈 때는 치료를 하러 가지 사고를 당하거나 죽으러 가진 않죠. 그래서 의사가 가족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라거나 수술 도중에 나와서 ‘동의서에 사인해달라’고 하면 당황하거나 자포자기해서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우선은 진료기록과 CCTV, 의사와의 대화 녹음, 목격자 확보 등이 우선입니다. 그 자료를 갖고 전문가와 상의한 후에 대응해야 하는데 소송보다는 합의나 협의가 이상적입니다. 일차적으로 병원과 합의되지 않으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한국소비자원에 신청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직접 소송은 가장 마지막 방법입니다. 법적 다툼은 2년 이상(평균 26.3개월) 걸리고, 비용도 1심에만 500만원 이상이 들어가니까요.”
의료전문 변호사를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아직까지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0년 2월 25일 오후였어요. 당시 저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판검사에 임용되지 못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별 사건 수임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찾아와 자기 여동생이 국립의료원에서 심장수술을 하다 뇌사상태에 빠졌다며 소송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별로 바쁠 일도 없어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들어줬지만 의료사건에 대한 경험이나 의학상식이 없어 ‘자신이 없다’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분이 찾아와 병원 측에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라며 ‘설명의무 위반’으로 소송을 하자고 하더군요. 제가 법대에 다닐 때는 교과서에 실리지도 않은 개념이어서 못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그분이 ‘다른 변호사를 찾아갔지만 만나주지도 않고 들어주지도 않는데 1시간을 들어준 변호사는 당신이 처음’이라며 꼭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공부를 하고 자료를 찾아 결국 2년이 지난 후 승소판결을 받고 1억2000만원의 배상금도 받아냈습니다. 그걸 계기로 의료사고 분야에 집중했지요. 지금은 변호사만이 아니라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 5명을 채용해 대부분 영어나 전문용어로 된 진료기록 번역, 시간대별 타임테이블 만들기 등을 시도해 전문로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의료사고가 급증하는데 왜 대형로펌에서는 의료사고 전담팀을 많이 안 꾸릴까요.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면 김앤장 등 대형로펌에서 벌써 팀을 만들었겠죠. 화우 등에 의료팀이 구성되어 있지만 의료변호는 전형적인 중소기업형입니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이에요. 또 시간도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이상 걸리고 흔히 출격횟수라고 불리는 법정에 출석하는 횟수도 너무 많고, 승소해도 보상액이 적어 수임료나 성공보수비도 많지 않습니다. 저도 의료사고만으로는 못 먹고 삽니다. 고향인 가평군의 고문으로 행정소송도 담당하고 다른 사건도 맡아서 사무소 비용을 충당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왜 의료사고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습니까.
“보람이 크니까요. 누군가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해줬다는 보람, 또 다른 의료사고의 위험을 내가 막았다는 만족감, 사명감이 큽니다. 의료인들과 대척점에 서서 송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수년 뒤 그들 모두가 한 번쯤은 ‘그때 많이 배웠다’는 말을 건네옵니다.”
신현호 변호사는 변호사협회와 대법원, 각종 병원을 다니며 자문과 강의를 한다.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의료사고가 줄면 수입도 줄 테지만 그가 꿈꾸는 사회는 더 많은 의사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하고, 의사와 환자들이 서로 믿는 신뢰사회라고 한다. 그 ‘신뢰사회’가 정말 빨리 왔으면 좋겠다.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특히 의료소송은 ‘달걀로 바위치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해마다 의료사고는 수만건 넘게 일어나지만 의료소송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의료소송 건수는 1000여건을 넘어섰을 뿐이다.
신현호 변호사는 의료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활발하게 기고와 방송활동을 하는 의료전문 변호사다. ‘존엄사 사건’으로 알려진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을 담당해 연명치료나 존엄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의료사고 전문 25년 경력의 신 변호사를 만나 의료사고 시대에 무사히 살아가는 법을 물었다.
의료사고나 소송이 많아지는 거 같습니다.
“연간 최소한 1만건 이상의 의료분쟁이 발생하고 그 중 10% 정도가 의료소송을 벌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3년 의료사고 소송은 1003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료사고인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죠. 의료사고 분쟁 해결은 의료 공급체계에 따라 나라마다 다릅니다. 사보험인 미국은 분쟁에 있어 배상액도 엄청납니다. 반면 공산국가에서는 행정제도에서 배상액을 지급하니 숫자로 단순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 미국에서 조사를 해보니 의료사고가 병원당 평균 2건 정도였는데, 전체 병원의 15%가 전체 의료사고의 5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항상 사고를 내는 병원에서 또 사고를 내는 거죠. 결국은 의사 개인의 실수보다는 병원 시스템의 문제라고 봅니다.”
의료사건은 승소율이 매우 낮다면서요.
“환자가 원고인 사건의 승소율을 보면 완전 승소하는 경우는 2~4% 정도입니다. 다른 소송에 비해 승소율이 매우 낮습니다. 부분 승소 등 전체 승소율은 55% 정도입니다만 내용은 완전히 속 빈 강정입니다. 의료사고로 소송을 내면 보통 환자 측 과실을 70%나 인정합니다. 형식적으로 이겨도 보상액이 적어 변호사 소송비용을 내면 거의 남는 것이 없습니다. 1990년대에는 원고 승소율이 70%까지 늘었는데 2000년 들어서 원고 입증 책임을 강화시키면서 30%까지 낮아졌다가 2010년부터 다시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의료소송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요.
“사실 확증이죠. 피해자가 자신이 어떤 이유로 어떤 피해를 입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렵습니다. 대부분 선 처치, 후 기록이라 진료기록이 부실하거나 조작하는 경우도 많아서 객관적 사실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CCTV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몇 년 전 지방 국립대병원에서 모 대학 교수가 주사 쇼크로 사망했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주사 1시간 전에 부작용에 대해 환자 가족에게 설명을 했다고 했는데 CCTV를 확인하니 1시간 전에 의사나 간호사가 다녀간 흔적이 없더군요.”
대부분의 의료소송에서 의사의 설명이 없거나 부족했다고 하는 게 주요 쟁점 중 하나가 아닌가요.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은 사실이 입증되어도 위자료가 1000만~2000만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물론 사망사고일 경우 더 올라가기도 합니다. 요즘 성형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미용성형이 급증했지만 의사들이 수술할 필요가 없거나 수술 후 후유증이 있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종아리 퇴출술이라고 해서 흔히 무다리라고 불리는 다리를 날씬하게 만드는 시술이 있습니다. 마취제를 주사하고 혈관강화제를 다시 주사하는데, 혈관과 신경을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식물인간이 되거나 다리신경이 마비된 경우도 있어요. 이럴 경우 전손해배상이라고 해서 의료와 정신적 배상을 같이해야 하는데, 이런 판결이 극히 드뭅니다.”
식물인간이 되어도 혹은 평생 우울한 삶을 살게 되어도 의료사고 배상은 너무 적던데요.
“그건 의료행위가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의 경우 자신을 위해 운전하다 낸 사고이지만, 의료사고는 환자의 질병이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숭고한 일을 하다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사고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원이 법적 개입을 자제하거나, 하더라도 의료진에게 기본적으로 온정적이 되는 겁니다. 또 우리 의료수가를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데 보상이나 배상을 의사에게만 부담시키는 것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법원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인수과실책임’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의사란 직업을 인수했을 때는 생명을 다룬다는 책임을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거든요. 2006년부터 건강보험수가에서 진료비의 0.15%를 떼어 사회적 품앗이 형태로 기금을 조성했어요. 병원이나 의사의 개인 책임이 아니라 진료비 자체에서 떼어놓은 돈으로 의료사고 보상비용을 일부 충당해야 한다는 거죠. 사실 이제 의료사고 보상비 체제도 달라져야 합니다. 똑같은 하반신 마비를 당해도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라면 산정액도 많고 금방 처리됩니다. 대형보험사의 자동차보험 등이 다 계량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의료사고는 입증도 어렵고 입증이 되어도 보상범위가 너무 다양하고 시간도 걸리며, 무엇보다 기준이 없습니다. 의료사건 항소율이 일반 사고의 두 배에 이르는 것도 그만큼 법원의 판결에 불만이 많고 배상이 적기 때문이죠.”
어려운 의대를 나온 똑똑한 의사들이 왜 의료사고를 많이 낼까요.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인구 1만명당 의사 수가 가장 적습니다. 항상 많은 환자를 봐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되지요. 우리나라 의대나 의료체계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의대에서도 우수학생들이 요즘은 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고령화에 어울리거나 큰 위험이 없는 전공과목에 몰린답니다. 정작 수술을 할 외과에는 지원도 안 하고 지방병원에서는 전문의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지금보다 3~4배 정도 의사 수가 늘어나야 하고 임상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진도 더 늘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국방의학전문대학을 만드는 등의 방법을 모색할 때입니다. 이 정부에서 의료분야를 신성장 동력을 위한 창조경제 분야로 주목했는데, 인력을 양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공허한 구호일 뿐입니다.”
병원이나 의료진이 너무 전문가의 자존심을 내세워 자신들의 실수를 덮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요.
“그렇죠. 의료사고 특성상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됩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 두면 이후 비슷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만, 병원들이 대부분 사고를 숨기고 공개하지 않는 탓에 다른 병원에서 유사한 의료사고가 똑같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단에서 2000년 이후 대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의료소송으로 판결된 의료소송 277건을 분석한 결과 약 30%는 예방 가능한 사건이었거든요. 신해철씨 사고의 원인이었던 장유착 수술도 전체의 10%는 천공 가능성이 있고, 0.8% 정도는 패혈증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의료진이 사전에 인지하고 대처했더라면, 또 이 같은 부작용에 대한 사전 설명을 환자 보호자에게만 했더라도 관련 사고는 예방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입니다.”
정부가 의료사고에 책임이 있나요.
“아직도 우리 정부는 어떤 유형의 의료사고가 자주 발생하는지, 한 해 몇 건이나 발생하는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사고에 대한 신고나 보고체계가 허술해 각 의료기관이 사고를 숨기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죠.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가 의료현장에서 빈번한 의료사고의 유형이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똑같은 의료사고가 되풀이되거나 의료사고 다발 의료기관이 별다른 제재 없이 영업을 계속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고 신해철씨의 경우 그나마 고인과 그 지인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가수’여서 이렇게 여론화되었지만 일반인들로서 의료소송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의료사고를 미연에 막는 것이 중요한데, 환자나 가족이 어떤 점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우리가 병원에 갈 때는 치료를 하러 가지 사고를 당하거나 죽으러 가진 않죠. 그래서 의사가 가족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라거나 수술 도중에 나와서 ‘동의서에 사인해달라’고 하면 당황하거나 자포자기해서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우선은 진료기록과 CCTV, 의사와의 대화 녹음, 목격자 확보 등이 우선입니다. 그 자료를 갖고 전문가와 상의한 후에 대응해야 하는데 소송보다는 합의나 협의가 이상적입니다. 일차적으로 병원과 합의되지 않으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한국소비자원에 신청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직접 소송은 가장 마지막 방법입니다. 법적 다툼은 2년 이상(평균 26.3개월) 걸리고, 비용도 1심에만 500만원 이상이 들어가니까요.”
의료전문 변호사를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아직까지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0년 2월 25일 오후였어요. 당시 저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판검사에 임용되지 못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별 사건 수임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찾아와 자기 여동생이 국립의료원에서 심장수술을 하다 뇌사상태에 빠졌다며 소송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별로 바쁠 일도 없어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들어줬지만 의료사건에 대한 경험이나 의학상식이 없어 ‘자신이 없다’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분이 찾아와 병원 측에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라며 ‘설명의무 위반’으로 소송을 하자고 하더군요. 제가 법대에 다닐 때는 교과서에 실리지도 않은 개념이어서 못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그분이 ‘다른 변호사를 찾아갔지만 만나주지도 않고 들어주지도 않는데 1시간을 들어준 변호사는 당신이 처음’이라며 꼭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공부를 하고 자료를 찾아 결국 2년이 지난 후 승소판결을 받고 1억2000만원의 배상금도 받아냈습니다. 그걸 계기로 의료사고 분야에 집중했지요. 지금은 변호사만이 아니라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 5명을 채용해 대부분 영어나 전문용어로 된 진료기록 번역, 시간대별 타임테이블 만들기 등을 시도해 전문로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의료사고가 급증하는데 왜 대형로펌에서는 의료사고 전담팀을 많이 안 꾸릴까요.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면 김앤장 등 대형로펌에서 벌써 팀을 만들었겠죠. 화우 등에 의료팀이 구성되어 있지만 의료변호는 전형적인 중소기업형입니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이에요. 또 시간도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이상 걸리고 흔히 출격횟수라고 불리는 법정에 출석하는 횟수도 너무 많고, 승소해도 보상액이 적어 수임료나 성공보수비도 많지 않습니다. 저도 의료사고만으로는 못 먹고 삽니다. 고향인 가평군의 고문으로 행정소송도 담당하고 다른 사건도 맡아서 사무소 비용을 충당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왜 의료사고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습니까.
“보람이 크니까요. 누군가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해줬다는 보람, 또 다른 의료사고의 위험을 내가 막았다는 만족감, 사명감이 큽니다. 의료인들과 대척점에 서서 송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수년 뒤 그들 모두가 한 번쯤은 ‘그때 많이 배웠다’는 말을 건네옵니다.”
신현호 변호사는 변호사협회와 대법원, 각종 병원을 다니며 자문과 강의를 한다.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의료사고가 줄면 수입도 줄 테지만 그가 꿈꾸는 사회는 더 많은 의사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하고, 의사와 환자들이 서로 믿는 신뢰사회라고 한다. 그 ‘신뢰사회’가 정말 빨리 왔으면 좋겠다.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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