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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의 시 [김정남]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2. 4. 17:28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의 시 [김정남]

  다산연구소 14.12.0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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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32 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의 시
김 정 남 (언론인)

  아도르노는 나치가 유태인을 가스실에서 독살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브레히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를 가리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서정시를 쓸 수 없는 까닭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 내게 오만처럼 생각된다. /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어찌 나치 독일 시대뿐이랴. 우리들의 1970년대, 80년대도 바로 그런 시대였다. 문학평론을 하는 유종호는 이러한 시대에 쓰여지는 서정시란 “고약한 생존의 치욕에 대한 변명”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애써 모른 척하고, 압제자에 맞서 두 눈 부릅뜨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싸우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작가회의 40년

  지난 11월 18일로 한국작가회의가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1974년 그날 오전 9시 50분, 광화문 비각 뒤 의사회관(당시 문인협회 사무실이 있던 건물) 계단에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이름으로 ‘문학인 101인 선언’이 발표되었다.

  한국작가회의가 탄생할 이 무렵은 긴급조치하의 유신시대였고 문학의 수난시대였다. 문학인의 창작 자체를 사실왜곡으로 몰아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 가두고 법정에 세우던 시절이었다. 법정에서는 때아닌 문학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때 김지하, 양성우, 김명식, 송기숙 등 긴급조치 위반 사건의 변론을 준비하고 또 변론요지서를 숨죽여 쓰던 기억이 새롭다. 한국작가회의는 이처럼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탄생하였다. 그때 신경림이 쓴 시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당대 제일의 서정시인이라 할 신경림이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쓴 시였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농대 축산과 4학년이었던 김상진이 학내 시국성토대회에서 자신의 양심선언을 발표하면서 할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1년 전태일에 이은 장렬한 죽음이었다. 그 죽음은 민주화의 길이 목숨을 건 투쟁이어야 한다는 것을 예시하는 사건이었다. 그는 자신이 작성한 양심선언을 읽어나가다가 할복하는데, 나는 그 때의 그 비장하고 처절했던 과정을 이신범이 구해온 녹음을 통해 들었다.

  김상진은 4월 12일 오전 8시 55분쯤 서울대학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의 덜컹거리는 침대 위에서 영면했다. 당연히 김상진에 대한 추모열기가 전국으로 번졌고, 대학가 곳곳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그 해 4월 30일 베트남이 패망하자 박정희 유신정권은 관제 안보궐기대회를 여는 등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5월 13일에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여러 긴급조치 내용들을 종합편성한 결정판이었다. 이 긴급조치가 발동된 지 9일 만에 그에 정면으로 맞서 터뜨리고 나온 것이 서울대의 ‘오둘둘(5월 22일)’사건이었다. 이날, 서울대에서는 ‘김상진 열사 장례집회 있음’이라는 쪽지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순식간에 1천 명이 모였다. 그러나 이 집회는 상당히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김근태와 신동수가 신경림을 찾아와 이 집회에 쓸 조시(弔詩)를 부탁했고, 신경림은 「곡(哭) 김상진」이라는 시를 써줬다. 이 시는 집회 당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서울대학교 학우 일동의 이름으로 뿌려졌다. 이 집회는 긴급조치 9호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이 매우 컸다. 김근태와 신동수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쫓기는 몸이 되었다.

신경림의 잃어버렸던 시

  40여 년을 끌고 다니던 내 보따리 속에서 그때 그 유인물이 나왔다. 원작자인 신경림에게도 없는 잃어버린 시를 찾아낸 것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 신경림의 그 잃어버렸던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네 목소리는 바람이 되었다.
     어둠으로 덮인 온 나라의
     강과 산과 마을을 누비며
     짐승처럼 서럽게 울부짖고 있다

     네가 흘린 피는 꽃이 되었다
     말라 죽은 나뭇가지 위에 골목 진흙탕에
     숨죽인 우리들의 팔뚝 위에
     불뚝 불뚝 일어나는 숨결이 되었다

     친구여
     이 어두운 땅에도 봄이 왔구나
     네 시체를 밟고 사월이 왔구나
     네가 뿌린 피를 밟고
     다시 사월이 왔구나

     민주주의여, 아아, 자유여 정의여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사월이 왔구나 친구여
     너의 죽음으로
     잘린 우리들의 혀가 되살아나리라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울리는
     저 우렁찬 목소리로
     막힌 우리들의 두 귀가 뚫리리라
     눈 앞을 막은 안개가 걷히리라

     이제 우리들의 목소리도 바람이 되었다
     어둠을 뚫는 우렁찬 아우성이 되었다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는 노랫소리가 되었다

     친구여 잘 가거라
     너는 외롭지 않다
     네 뒤를 따르는 피의 노랫소리가 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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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이 사람을 보라 -어둠의 시대를 밝힌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