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나에게 하늘의 불을 주옵소서! (왕상 18:20-4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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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늘의 불을 주옵소서! (왕상 18:20-40)

 

  엘리야의 기사는 왕상17장부터입니다. 그는 누구인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엘리야는 길르앗의 디셉 사람으로 북 이스라엘의 최고의 선지자로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선지자입니다. 그는 엘리사의 스승이며 이스라엘의 최고의 예언자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15: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돌단을 쌓고 제물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횃불이 내려와서 지나 다녔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레9:23-24절에 보면 모세가 성막을 만들어 놓고 제물을 올려놓았을 때에 하나님이 불을 주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대하7:1-2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첫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으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 하고'
  ▶행2:1-4절에 보면 교회가 시작될 때에도 불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할/
  ▶오늘 본문 내용도 불의 이야기입니다. 38절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는 지라' /할/ 우리가 불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불입니까?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성령 받기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불을 주십니다. 이 불을 받아야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  ◀제목 소개!▶

 

  ①본문의 배경을 먼저 알아보자!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이 죽자 나라가 두 동강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었습니다. 남 유다는 400년 간 20명의 왕이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 중에 8왕은 선왕으로 하나님 앞과 백성들에게서 존경을 받았으나 12왕은 하나님 앞에서도 악했고, 백성들에게도 박했습니다.
  또한 북 이스라엘은 240년 간 이어졌는데 19왕이 모두 나쁜 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왕 가운데 31명이 하나님 앞과 백성들 앞에서 아주 악한 왕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악했던 왕이 바로 아합 왕입니다.
  왕상16:30절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또 31절에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더 나아가 32절에는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33절에서도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합왕은 아무튼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서 가장 악한 왕으로 금메달 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가? 아합의 부인 이세벨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남녀 모두를 합쳐서 가장 악한 사람을 뽑는다면 이세벨이 단연 금메달입니다.
  엘리야는 바로 악한 왕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아합이 정권을 쥐고 있을 당시 아람나라가 끊임없이 공격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아람나라의 공격 위협을 막아 보고자 시돈왕의 딸 이세벨과 정략적인 결혼을 했는데 이세벨은 인물이 잘났고, 절세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시집을 오면서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우상을 다 가지고 왔습니다.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가지고 와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을 한 사람, 한사람씩 죽이기 시작하여 하나님의 종을 많이 죽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들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그곳에는 갈멜산이 있었는데 이 산은 아주 전망이 좋고 광활한 산이었습니다. 이 갈멜산상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도 헐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되자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과 선지자들이 아합왕과 이세벨을 피하여 숨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때 본문의 주인공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 당당히 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그에게 예언을 했습니다. '당신이 만약에 회개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우상을 다 철거하고 이세벨을 처형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이제부터 하늘 문을 닫고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도망하여 숨었습니다. 그 이후에 아합 왕은 3년 6개월 동안 엘리야를 찾으려고 눈에 붙을 켜고 온 병력을 동원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수배를 내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것은 오직 엘리야의 예언 때문이라고 믿고 그 가뭄의 원인을 엘리야에게 돌렸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릿 시냇가로 갔습니다. 왕상17:3절에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런데 보십시오! 말씀대로 순종한 엘리야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5-6절에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 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할/
  그런데 그릿 시냇가도 그 가뭄에 말라버리니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어 3년 6개월을 지내게 했습니다. 9절에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과연 사르밧에 갔더니 그 과부가 나무를 하고 있습니다.
  10절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12절에 보면 '나뭇가지 두엇을 주어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아주 딱한 형편입니다. 그런 과부에게 하나님의 종이 무슨 요구를 합니까? '물을 달라'고 요구하고 물을 가지러 가는 그녀에게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 오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그녀의 총 재산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그러니까 지금 이 과부는 자살 직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필이면 왜 이런 집으로 인도하십니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있습니다. 순종과 믿음을 시험해보시고 복을 주시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믿/ 엘리야는 자신에게 떡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14절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한 그 과부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16절에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하루도 부족함이 없이 하나님은 엘리야와 과부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아멘!/
  이제 오늘의 본문인 왕상18장으로 넘어옵니다. 3년 6개월이 지나고 나니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1절에 '엘리야야 이제 나가서 아합 왕을 만나라'고 지시했습니다.
  엘리야는 그때 그런 상황에서 아합을 만나는 것은 기름통을 가지고 불 속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인줄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이런 순종이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할/
  아합 왕이 엘리야를 보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17절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그럽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담대히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요, 당신이 이 나라의 하나님의 종들을 다 잡아 죽이고, 하나님의 제단을 다 훼파하지 않았소! 오늘 나하고 결판을 합시다. 당신이 믿는 바알과 아세라 신상이 참신인가? 아니면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참신인가? 대결을 해 봅시다. 당신의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신 제사장 400명 도합 850명과 나와 한번 겨룹시다.' 그렇게 해서 엄청난 대결이 붙었습니다(19).
  결단의 장소는 갈멜산입니다. 그리하여 그 날 만조백관이하 모든 백성이 구름 떼처럼 모였습니다. 엘리야는 홀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갈멜산상에 섰습니다. 저쪽은 850명의 제사장들과 만조백관들과  많은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먼저 나가서 군중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내용은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겠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거든 그를 좇을 것이요, 바알신이 참신이거든 그를 좇을 것이니라.'
  엘리야의 이 설교는 비단 옛날 갈멜산의 무너진 제단 터에서만 외친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크게 고막을 울리는 말씀인줄 압니다. /아멘!/ 그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설교를 마친 다음 엘리야는 그들에게 제안을 한 것입니다.
  '너희 850명과 나 하나님의 종 엘리야 한 사람이 갈멜산에서 각각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되 불이 임하는 제단이 참 하나님 것을 증명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850명은 바알의 제단을 쌓았고, 엘리야는 다 무너진 황폐된 하나님의 제단을 눈물을 흘리면서 열두 돌을 취하여 다시 수축했습니다. 특별히 엘리야는 하나님의 제단 위에 소를 잡아서 각을 떠놓고 옆에다 도랑을 파고 물을 길러다가 채워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다 말려버렸습니다. /할/ 모든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고 외치기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서야 깨닫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 참 신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 850명을 붙잡아서 기손 시냇가에서 모두 처형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영적인 의미를 함께 찾아보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아멘!/

 

  ②기근에 처한 그들에게 엘리야는 결단을 먼저 요구하고 있습니다(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그들이 바알 섬기기를 좋아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들은 바알이 '물질과 돈과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물질을, 쾌락을 앞세우면 그것이 곧 바알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신앙은 양다리 작전이 아니라 외로운 선택입니다.
  ⑴엘리야는 그들에게 '결단의 신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은 두 사이에서 머뭇거려서는 안됩니다. 신6:4-5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고, 마10:28절에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할/
  여호수아의 신앙의 결단을 보세요 수24:14-15절에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것이라 너희 열조가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아멘!/
  ⑵여러분은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였을 때, 뒤에 조선 태종(太宗)이 된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이었지만,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던 정몽주의 뜻을 떠보려고 읊은 시를 하여가(何如歌)라고 합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혀 산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 까지 누리리라'
  이에 대해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를 지어 대답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결국 정몽주는 이 시를 짓고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사주한 자객에 의해 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정몽주는 충절의 인물로 높게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이 '하여가'의 신앙이 되어서는 안되고, '단심가'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무엇이 바른 신앙의 길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할/

 

  ③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 전쟁을 선포했습니다(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즉 영적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전쟁을 선포해야 승리합니다. 전쟁은 안하고 있는 사람은 마귀하고 휴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불을 받아 마귀에게 선전포고해야 합니다. 갈멜산에 불이 임하면 늘 마귀의 권세에게 밀리는 사람이 믿음으로 굳게 서서 나갈 것입니다. 늘 세속과 타협만 하는 사람이 이번에는 단호하게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⑴엘리야가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도전할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사람들이 다 악하던 때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행하고도 그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많은 우상과 신당이 전국적으로 크게 번성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발하신 때입니다. 이 강산에도 우상 이단사슬이 얼마나 많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국민의 종교와 도덕윤리가 것이 땅에 떨어졌을 때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극도로 타락했습니다.
  ㈅⑹왕가가 죄악으로 타락했습니다. 왕권이 허약하던 때입니다. 통치자가 어떤 얘기를 해도 백성들이 믿지 않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부가 불신될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나타난 것입니다.
  ⑵엘리야가 불로 도전한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잡신에 대한 예배 사이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의지입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여 세운 사람과 사람이 세운 사람 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때를 맞추어 하나님의 사람을 보냅니다. 하나님은 비밀리에 그의 사람을 준비하시고 위기의 때에 출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반드시 잠자는 사람을 깨워야 합니다. 깨우다 보면 욕을 먹게도 됩니다. 낮잠 자는 사람도 깨우면 화를 내는데 영적으로 잠을 자는 사람을 깨우는데 왜 화를 안내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신앙으로 잠자는 사람을 깨울 때 화를 내거든 '옳지! 나도 뭐가 되는구나'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할/
  ⑶본문 속에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에게 제안할 것은 무엇입니까?
  '불로 응답하신 신을 하나님이 되게 하자!' 자신 있는 제안입니다.
  ㈀이 제안 앞에서 반대란 없습니다. ㈁불이 임하는 대로 '그 결과에 순복하자'는 것입니다. ㈂나도 나의 하나님이 불을 안 내리시면 너의 신 바알을 따르겠다는 고백일 수도 있습니다.

 

  ④바알 선지자들의 제단(기도)을 보자!
  바알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각 떠서 단 위에 놓고 바알을 불렀습니다. '바알이여! 바알이여! 바알이여!' 정오가 되어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며 부추겼습니다. '너희의 신이 잠들었는지, 잠깐 나갔는지, 명상 중인지 모르니 더 크게 부르라'
  그러자 그들이 더 큰 소리로 '바알이여! 바알이여!'하고 외쳤습니다. 나중에는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찢어 피를 흘리면서까지 바알을 불렀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바알이 잠들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없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왕이 섬기고 장관들이 섬길지라도 우상은 응답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이 없습니다. 우상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만든 조각품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상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⑤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의 제단을 보자!
  ⑴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했습니다. 30절에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당시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제단은 성황 했습니다. 그런데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은 황폐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황폐해진 제단을 다시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홀로 쌓는 외로운 제단입니다. 22절에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엘리야는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외롭게 제단을 쌓았습니다. 사람이 외로워져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모든 것이 막이고 단절될 때 비로소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여기 '나만 홀로 남았다'는 말속에 무엇이 떠오릅니까? 고독하고 외롭다는 말입니다. 이 고독은 절망을 만들고 가장 무서운 인생의 질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독에도 역설은 있습니다. 고독을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을 앙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그것이 오히려 믿음을 성장하게 하는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고독했습니다. 눈앞에는 바알 선지자 450인, 아세라 선지자 400인 그런데 '나 혼자' 그러니까 얼마나 고독했으며 얼마나 큰 절망입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엘리야와 함께 하며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엘리야는 눈앞에 있는 거짓 선지자를 보지 아니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엘리야를 배워야 합니다. 눈앞에 있는 고난과 역경과 문제, 사건, 질병, 부도, 자금난만 보지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엘리야에게 사방팔방이 벽으로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한 길이 뚫려져 있습니다. 하늘을 향한 신령한 문입니다. 이 문이 열려야 불이 임합니다. /아멘!/
  ㈁31절에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했습니다. 구약의 지파는 신약에서 12 제자로 이어집니다. 12 제자는 말세에 12 천국 문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32절에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다 무너지고 막히고 떠나갔습니까? 이제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할 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라는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단을 쌓을 때마다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하나님 중심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⑵엘리야의 제단을 무엇으로 다시 수축했는가?
  ㈀말씀의 회복입니다(36).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말씀의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을 그대로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에 그의 말씀이 있는 곳에 사랑이 생기고 은혜가 생기고 없었던 축복도 임할 수 있습니다. 계1: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할/ 우리 모두 말씀으로 새롭게 회복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기도의 회복입니다(36-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제단에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재물이 있기 전에 기도가 먼저여야 합니다.  성전에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에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창조의 기적을 가져오게 합니다.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한 기도는 천국 보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기도의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아멘!/
  ▶본문의 36-37절의 엘리야의 비밀스러운 기도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저녁 소제드릴 때에' 저녁 기도회 시간 때입니다. 저녁마다 하나님께 소제를 드렸는데 엘리야는 이때를 맞추어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때를 정해놓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기도하는 것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것은 계약의 하나님과 승리의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여기서 하나님은 '엘로힘' 즉 능력의 신을 의미합니다. '능력의 신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할/
  '내가 주의 종이 됨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엘리야는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확실하게 고백했습니다. 주인은 종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이들에게 알게 하소서'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이들에게 알게 하소서' /아멘!/ 엘리야의 기도는 지금 무엇을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오직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소원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할/
  ㈏'내가 하나님의 종 됨을 저들이 알게 하소서' 사람의 종이 아니라, 아합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소유권을 인정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임을 제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사람들을 알게 하소서!'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이 문제에 우리가 눈을 떠야합니다. 절대적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예수님 믿는 증거를 저를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나는 하나님 앞에 순종과 복종만이 내 삶의 의미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어야 할 일을 다만 내가 하고 있을 뿐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 대하여 특별한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 이런 신앙인의 기도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신앙은 어렴풋한 것이 아니라, 신학도 철학도 관념도 아닙니다. 확실한 믿음입니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은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이 수치를 당하면 하나님의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무너지면 하늘나라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시25:3절에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이 말씀을 확실히 부여잡고 나아갑시다.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⑶순종의 회복입니다. 거기 모인 이스라엘은 엘리야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는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15:22)고 사무엘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⑷사랑의 제단을 다시 수축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의 제단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의 사랑의 제단이 허물어 졌다면, 재건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의 사랑의 제단이 없어졌다면, 다시금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할/
  ⑸회개의 제단이 수축되어야 합니다. 당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돌 단이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의 극성에 돌 단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돌 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돌 단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입니다. 야곱이 돌 단을 쌓고 자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7)
  맞습니다. 돌 단은 곧 하나님의 전이었습니다. 지금의 하나님의 전은 어디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교회가 성전이고 우리 마음이 성전입니다(고전3;16). 그런데 돌 단이 무너졌습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마음의 성전이 무너진 것을 다시 고치라는 말입니다. 즉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기도하기 전에 회개부터 했습니다. 무너진 제단에서 송아지를 그냥 드린 것이 아닙니다.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먼저 수축했는데 회개의 제단을 수축한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기도응답의 비결을 간단하게 '회개 없이 응답 없다'고 했습니다. /할/

 

  ⑥엘리야를 보면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신앙의 부분은 무엇인가?
  ⑴내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의 역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의롭고 도덕적으로 산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인격과 세속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입니다. /할/
  ⑵완벽주의는 금물입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사백 오십 인과 아세라 선지자 사백 인을 다 죽이면 악한 세력이 없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알과 아세라는 또 나타났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끊임없이 바알과 아세라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삶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내일부터는 영원토록 문제가 없을까요? 오늘 내 자식의 어려운 문제 해결하면 평생 문제없이 효도만 잘할까요?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어려운 문제들이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⑦엘리야의 제단은 응답의 제단입니다(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는 지라'
  ⑴번제물이 탔다는 것은 주님이 제물을 받으셨다는 응답의 표시입니다. /할/
  ⑵나무가 탔다는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최선을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불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번제물 밑에 놓았습니다. 없어도 되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할 일은 다 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최선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⑶돌이 탔다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돌은 장애물입니다. 길거리에 돌이 있다는 것은 장애물입니다. 밥을 먹다가 돌을 씹었다는 것은 장애물입니다. 기도하는 이에게는 장애물이 없어집니다. 기도하는 이에게는 불가능이 사라집니다.
  ⑷흙이 탔다는 것은 기도하는 이에게는 저주가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날 소경이 예수님께 눈을 고쳐달라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흙에 침을 뱉으셔서 소경에 발라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소경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실로암'은 바로 예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실로암이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경은 그렇게 순종했습니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저주가 다 물러 갔습니다. 여기서 흙은 저주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물러갑니다. /아멘!/
  ⑸물이 없어졌다는 것은 성령의 단계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물의 역사 후에 불의 역사가 있음을 알려 줍니다. 불의 역사가 있으려면 물의 역사가 물러가야 합니다. 구름기둥이 사라지면 불기둥이 나타났습니다. 물세례를 받은 후에 불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불의 역사를 위하여 물의 역사는 단계이기에 사라져야 합니다. 한 차원 높아진 단계입니다. 우리는 불 세례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할/
  ⑹엘리야의 제단은 불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갈멜산'은 황폐한 산, 허망한 산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도 황폐하고 얼마나 허망합니까? 세상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심령들이 왜 이다지도 황폐하고 허망합니까? 그러나 하늘의 불만 받으면 갈멜산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말씀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마르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지금까지 속아온 정부와 바알선지자에게 대 오륙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한번 불의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실제가 임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불의 역사입니다. 아무리 교회당이 크게 서고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인다 해도 그곳에 성령의 불이 역사가 없다면 다 헛된 것입니다. 이곳 참 행복한 교회가 적은 곳이지만 성령의 불이 임하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을 던지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유명한 문학 작품이 우리 가슴에 불을 당기지 못합니다. 불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오는 것입니다. 멘/
  여러분 현대 이 죄악 세상 속에 누가 하늘의 불을 붙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 눈을 떠야합니다. 구약시대에는 거짓의 불, 멸망의 불, 바알의 불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거짓된 불이 이 백성을 삼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하늘의 불을 사모하는 당신의 종들과 사람들을 찾으셔서 그 사람을 세우시고 불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불 받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왜 오늘날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의 삶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합니까? 한마디로 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불을 받아야 합니다. 불은 능력입니다. 하늘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
  지금 현대 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그 어는 때보다도 최고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처럼 로마의 핍박과 박해가 없습니다. 최고의 조직을 가지고 있고, 학식, 두뇌, 풍부한 자원, 훌륭한 목회자들,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은 '현대교회는 아무 부족함이 없는데 단 한가지 불이 없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현대 교회가 불이 꺼졌습니다. 현대 신앙인들이 불이 꺼졌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최권능 목사님은 가는 곳마다 하늘의 불을 토했습니다. 기적과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불이 없는 신앙은 사회의 고통과 인간 심령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을 받아야 합니다. '주여! 불을 주옵소서, 진리의 불, 하나님의 능력의 불, 성령의 권능의 불을 나에게 주옵소서!' /아멘!/
  ▶지금도 하나님은 특별한 때에 불을 내리십니다. 어떤 때에 불이 임합니까?
  ⑴희생제물이 제단에 드려졌을 때 불이 내렸습니다. 희생은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져야 하늘의 불이 임합니다. 자기가 죽어진 만큼 하나님의 영은 오십니다. 반절 죽으면 반절 오시고, 아주 죽으면 아주 오십니다.
  기독교는 죽는 종교입니다. 죽을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을 때 찬란한 부활의 아침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제물은 마음의 정표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결혼 비상금으로 모아둔 옥합을 주께 받쳤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까지도 하나님께 받쳤습니다.
  ⑵더러운 것이 제거되었을 때 불이 내렸습니다. 35절에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물은 씻어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씻어내야 합니다. 도랑을 파고 각을 뜨듯 자신의 도랑을 파고 각을 뜨고 엎드려 회개의 눈물로 도랑을 적셔야 합니다. 그래야 불이 임합니다. /할/
  ▶불이 내린 결과입니다.
  ⑴모든 백성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불이 한번만 내리니까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한번만 떨어지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갈멜산에 불이 한번 내리고 나니까 그렇게 큰소리치고 떠들던 사람들이 전부 무릎을 꿇었습니다.
  바로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양했을 때 갇혔던 옥문이 열리자 그들을 가뒀던 사람들이 엎드려 말하기를 '그는 참 하나님이시다'라고 했습니다.
  ⑵불이 한번 내림으로 참과 거짓이 밝혀졌습니다. 이 땅에도 하늘의 불이 임하면 참과 거짓이 구분되고 하늘의 권위가 나타나며 천국과 지옥이 밝혀집니다.
  ⑶불이 내림으로 불가능한 것을 성취시켰습니다. /할/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심이 변하여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할/아멘!/ (2010년 11월 7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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