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예수님의 지구 방문 목적(4)/희 년/눅 4;18-2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2. 15. 10:35

예수님의 지구 방문 목적(4)/희 년/4;18-22.

 

 

예수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자신의 입으로 정확하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5가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4;18-19)

 

예수님은 은혜의 해를 선포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은혜의 해는 히브리어로 주빌리입니다. 주빌리는 희년입니다. 희년을 이루려고 오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희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같이 <희년법>을 주셨습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산할 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 오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세 자유를 공포하라.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년은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서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 갈지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에게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

희년 후의 년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 즉

연수가 많으면 그 값을 많게 하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 값을 적게 할 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라.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25;8-17)

 

희년이 무엇입니까?

 

1. 각각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는 해입니다.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본문에서 10, 13절에 두 번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기업이란 무엇입니까?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이나 직업이 기업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기업이란 바로 조상이 물려 준 땅입니다. 조상이 물려준 땅이란 가나안 정복때에 하나님께서 12지파에게 제비뽑기를 통하여 나누어 준 땅입니다. 자기들끼리 적당히 나눈 땅이 아닙니다. 제비뽑기한 땅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을 제비뽑기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려고 게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에 승리하게 하셔서 주신 땅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 있는 제비뽑기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땅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땅이 기업입니다.

 

2. 각기 가족에게로 돌가는 해입니다.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세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10)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제일 먼저 만드신 기관은 교회가 아닙니다. 학교도 아니었습니다. 가정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가정이 본의 아니게 파괴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나타난 생도가 대표적이 이야기입니다.

선지자 생도중에 한 사람이 빚을 남기고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채주는 빚을 갚지 못 한다고 두 아들을 종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빚을 갚지 못 하면 종이 되게 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요구였습니다. 생도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설음에 아들 두 명을 종으로 보내야 하는 아픔이 가중되었습니다. 이 때 엘리사가 나타나서 기름병에서 기름이 계속 나오게 하였습니다. 빌려온 그릇에 그득 차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이 종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희년에는 조건없이 각기 가족에게도 돌아가는 해가 희년입니다.

 

토지 무르기의 이중성

희년이 선포와 완성이라는 이중성이 있는 것처럼 토지 무르기도 선포와 완성의 이중성이 있습니다. 토지 문서가 이중으로 처리되는 과정을 예레미야 32장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롬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시더니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 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 데 은 칠십 세겔을 달아주되 증서를 써어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친 증인의 앞고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앞에서 그 매매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중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동안 보존케 하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라”(32;6-15)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하나멜로부터 밭을 사고 그 증서를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한 개는 인봉하였고 한 개는 인봉치 않았습니다. 인봉한 것은 누구든지 그 내용에 손을 대지 못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봉한 것은 누구든지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두 개의 증서를 만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따라서 토지 무르기를 하려면 두 증서를 적법한 절차를 따라서 처리하여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특별 명령에 따라서 인봉한 증서는 토기속에 보관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관습으로는 토기속에 보관하지 않고 성전 창고에 보관되었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토지문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봉하지 않은 토지 증서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대금을 지불하고 산 사람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를 한 사람은 두 증서를 없애야 하므로 이중적이 처리가 요구되었습니다.

 

(1) 1단계

공개증서를 받아서 무효화시키는 단계입니다.

 

(2) 2단계

성전 창고에 가서 인봉된 증서를 찾아내어 소각하여야 완전한 토지 무르기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봉된 증서를 찾아 인봉을 떼는 일은 토지무르기의 완성단계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제1단계인 무효화와 제2단계인 소각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요구되었습니다. 무효화는 대금을 치루고 받아 즉시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지만 인봉된 문서를 찾는 것은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정한 날에 정해진 사람에 의하여 제도화된 예식을 거쳐서 찾아내어 소각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간격은 바로 초림 예수와 재림 예수의 간격의 예표입니다.

초림 예수는 오셔서 마귀의 토지 문서를 무효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재림 예수는 다시 오셔서 인봉된 증서를 찾아 소각하며 희년을 이루실 것입니다.

 

토지문서의 무효화

희년이 되면 자연적으로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고 각기 가족에게로 돌아 갑니다. 그러나 희년 전에 토지 무리기를 하려면 토지 무를 자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토지 무를 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일단계 작업인 인봉되지 않은 문서를 무효화시키셨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명백하게 두 곳에서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공동번역 성경은 더 잘 이해되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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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들이 들어 있는 우리의 빚문서를 무효화시키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2;14)

이같이 분명하게 예수님은 마귀의 증서를 빼앗아 없애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무장해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개선의 행진을 당당하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작성되어 마귀에게 넘어간 인봉되지 않은 증서는 초림의 예수님께서 찾아 무효화시키셨습니다. 이제 마귀는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더러운 존재일 뿐입니다.

 

희년의 양각나팔

이미 언급한 대로 대속죄일에는 전국에 나팔을 불어 이를 알렸습니다. 나팔소리와 희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희년의 선포는 나팔소리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양각나팔이 아니라 복음의 나팔을 부셨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 하였도다.”

 

피리를 불 때에 춤추는 것과 애곡하는 양면이 있는 것은 바로 희년의 상황입니다. 희년에 각각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고 각각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이는 춤추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토지를 내주어야 하고 노예를 풀어주어야 하는 채권자는 애곡하는 날입니다.

희년의 피리소리는 채무자에게는 춤추라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채권자에게는 그 좋은 피리소리가 애곡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희년을 완성하실 때에도 나팔소리가 온 대지를 진동할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택하신 자들을....사방에서 모으리라”(24;3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성경에서 나팔소리는 희년의 삼대 사건과 연결이 되고 있음은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희년의 3대 사건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기업인 노예 해방, 토지의 기업인 토지 상환 그리고 관계의 기업인 부채탕감입니다. 이런 세 가지 사건과 나팔소리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몇 가지 성경적 사건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1)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쳐들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 때 적국 미디안이 다 도망가고 그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되었습니다(7;16-23)

(2)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돌 때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물론 양각나팔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그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되었습니다(6)

(3) 솔로몬이 왕이 될 때에 나팔을 불었습니다(왕상 1;33-35)

아도니아가 왕이 되려고 반역을 하자 그를 물리치고 그 땅을 다시 회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4) 포로로 잡혀 갔던 자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된 자와 애급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27;13)

(5) 시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과 율법을 받을 때에 나팔소리가 울렸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의 기업의 이루지는 날에 나팔소리였습니다.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19;16)

이같이 희년에 불었던 나팔소리는 희년의 사건이 생길 때에도 불어졌습니다.

 

희년의 사람 여호수아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 갈지니라”(6;5)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가량 애급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토지도 없었고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첫 차지한 가나안 땅은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에 나팔소리를 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복의 역사는 희년의 신호탄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희년의 양각나팔을 불 때 주인이 아닌 원주민의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환되었습니다. 토지의 반환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 첫번 성취될 때에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년의 3대 사건의 성취를 맛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순간에 노예해방이라는 희년 사건이 성취되어 생명의 기업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노예는 자유로운 생명의 기업의 없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인침을 받는 순간 관계의 기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순간 토지의 기업이 생겼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희년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희년에 부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지어 줄 때에 그 속에 간절한 소원을 담게 됩니다. 한국인은 아들을 좋아 합니다. 그래서 딸만 나는 집은 딸들에게 의미있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서분이라는 이름은 딸만 나서 서럽고 분하다는 표현이었습니다.“필녀라는 이름은 딸은 이제 끝이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후남이라는 이름은 이제 후에는 남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막음이라는 이름은 이제 딸은 그만 막겠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양반 사회의 가정에서는 딸만 계속 낳자 다음과 같이 이름을 붙여 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첫 딸의 이름은 일가라고 붙였습니다. 한 명 정도는 가하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도 딸을 낳자 이혹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혹시 아들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번째도 딸을 낳자 삼소라고 붙였습니다. 세번째도 웃겼다는 뜻입니다. 네번째도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딸 이름을 남보기에 부끄럽다 하여 나치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같이 이름에는 뜻이 있습니다. 부모의 소원이 이름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을 하나님이 붙이실 때에는 하나님의 소원이 그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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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시니라”(1;21)

 

예수라는 희랍어는 여호수아라는 히브리어와 동일합니다. 희년의 나팔소리를 울리며 새 땅을 점령한 여호수아의 사역은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모형이 됩니다.

여호수아가 첫 번으로 여리고성을 점령하면서 희년의 나팔을 울렸던 것은 예수님께서 사역의 시작을 희년의 선포 취임사로 대신하신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수아의 양각나팔소리와 예수님의 희년선포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수아는 희년의 사람이었습니다.

 

희년의 사람 아브라함

희년의 안경을 쓰고 아브라함을 보면 아브라함은 희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리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12;1-3)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누리며 살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살기 좋은 땅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초청하는 희년의 땅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버리고 희년의 땅을 향하여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음성은 희년의 나팔소리였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희년의 3대 사건을 일으켰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추측적인 사실들을 이야기하여 봅니다.

 

1사건은 생명의 기업입니다.

아브라함은 당시 종을 부리며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갈대아 우르 사람들은 모두 종들을 부리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부리던 종들을 모두 해방시켜 각각 집으로 돌려 보내고 홀로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유인에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종으로의 행진하였습니다. 종들은 해방시키고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땅, 희년의 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희년의 사람이었습니다.

 

2사건은 토지의 기업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다 포기하고 하나님의 땅으로 행진하였습니다. 자기 땅을 둘둘 말아 가지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토지 반환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자기가 경작하던 토지를 반환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의 땅으로 들어 갔습니다.

 

3사건은 관계의 기업입니다.

친척 본토 모든 관계를 청산하였습니다. 빚을 졌었다면 다 갚고 떠났을 것입니다. 빚을 받을 것이 있다면 다 탕감하고 떠났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인간관계를 다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의 기업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였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들어 간 것은 희년의 선포였습니다. 이 땅을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기업의 땅이라고 하는 시작 신호였습니다. 이 신호를 제일 먼저 받고 시작한 이가 아브라함입니다. 이 땅은 앞으로 50년에 한번씩 희년이 선포되어야 할 하나님의 땅, 희년의 땅입니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희년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지 희년을 성취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희년의 성취를 기다렸습니다.

그의 42대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희년을 선포하시고 그 분이 재림하셔서 희년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희년의 사람이었습니다.

 

희년의 사람 고레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습니다. 토지 기업을 상실하였고, 생명 기업을 상실하였고 서로의 관계 기업을 상실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토지를 빼앗겨 가난하게 되었고, 주권을 빼앗겨 노예가 되었고, 노예로서 당당한 관계를 빼앗겨 고독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 오려면 누군가가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방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바사왕 고레스를 선택하셔서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도록 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고레스다 희년의 사람의 될 것을 예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의 오른 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 하게 하리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꺽고 네가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의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44;28-45;3)

 

하나님께서는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년을 선포하여 자유와 기쁨을 주게 하셨습니다. 고레스는 희년의 사람이 되었지만 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음을 예레미야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올라 갈지어다.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대하 36;22-23)

 

이 말씀속에서 우리는 희년의 사람 고레스를 명확하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땅에 너희 성전을 건축하라라는 고레스의 말은 토지 반환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지 기업을 회복시키는 말입니다.

너희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올라 갈지어다라는 말은 노예해방이었습니다. 그래서 생명 기업의 회복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전을 건축하라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 기업의 회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이같이 고레스왕은 희년을 선포한 왕이 되었습니다.

구약은 수건을 벗고 보면 모두가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바벨론 포로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토지를 회복하고, 생명을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빼앗긴 토지와 생명과 관계를 찾는 것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고레스의 희년 선포는 그리스도의 희년 선포와 같습니다.

그래서 고레스가 선포한 말을 예수님이 인용하셔서 선포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6;11-3)

 

이 말씀을 예수님은 메시야 출정식에서 식사로 인용하셨습니다(4;18-19)

그런데 희년 사역의 진행은 희생없이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득권자의 포기와 희생이 있어야 해방과 회복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10만원 상당의 시계를 주었다면 나는 거져 받은 것이지만 준 사람은 10만원을 지불한 것입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토지를 회복시켜 주려고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 상황을 이사야는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내가 애급을 네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43;3)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대신에 애급이 대신 고레스의 손아귀에 들어 갔습니다. 구스와 스바를 점령하여 이스라엘 대신에 노예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왕에게 이스라엘에게 희년을 준 보상을 밖에서 찾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희년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고, 애급과 구스와 스바는 희년사역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희년 선포는 은총으로 되어지는 것이지만 댓가가 반드시 지불된다는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희년 선포는 우리 편에서는 은혜와 은총으로 거져 받게 되는 것같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거져 받지만 댓가는 주님이 치루셨습니다. 고레스는 여호수아나 아브라함처럼 희년의 사람이었습니다.

 

희년의 메시야 예수

아브라함이 시작한 희년의 역사를 구체화시킨 이가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가 구체적으로 이은 희년의 모습을 보여준 이가 고레스입니다. 그러나 이를 완성하신 분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

 

이미 언급한 대로 예수님의 복음은 희년의 복음이었습니다. 고레스의 희년 선포를 시작으로 복음의 방향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희년을 이루기 위하여 일하신다는 정책 방향 제시였습니다.

깜깜한 극장에서 창문을 열면 갑자기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 오는 것처럼 예수님의 희년 선포는 온 세상에 희망을 쏟아 부어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그 동안 맛보지 못 하였던 하나님의 사랑이요, 희년의 우렁찬 나팔소리였습니다. 희년을 시작하여 희년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역사의 두 기둥이요 건물의 두 창이요 다리의 두 교각입니다.

이렇게 하여 희년법은 초림과 재림이라는 두 단계를 걸치면서 완성되었습니다. 이를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희년법의 두 단계 완성

상황 선포적 성취 완성적 성취

죄 인 아담안에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안에서

아브라함 갈대아 우르 가나안 땅 본향

이스라엘 애급 약속의 땅 다윗왕국

포로 이스라엘 바벨론 예루살렘 성전 완성

모든 인간 큰 성 바벨론 현재 임한 하늘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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