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공포/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1
내가 만난 하나님 김 승 옥 소설가·세종대 교수
간증을 하는 이유
무신론자였던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혜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며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1981년 4월 26일 새벽, 하나님께서 내 영안(靈眼)을 여시고 그 분의 하얀 손으로 내 명치를 어루만져 주시며, "누구냐?"고 묻는 내 질문에 분명히 한국말로 "하나님이다."고 대답하시는 체험을 했다. 그 해 12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아침기도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 영혼이 내 육체를 떠나 새카만 상태 즉 하늘(영혼세계) 속을 매우 빠르게 날아가는 경험을 하였다.
내 체험이 다소 특이하기 때문에 듣는 분들 중에서 특히 믿음 없는 분들은 '소설가니까 아마 소설을 쓰고 있나 봐!' 그런 말을 할 정도여서 간증하기가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으면서 간증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다메섹 가던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 만난 체험을 얘기하니까 베스도 총독이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하던 그런 성경말씀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하나님 만난 체험을 나 혼자 간직하고 말았을 것이다. '바울이 미친놈 취급을 받으면서 간증하고 다녔다면 나도 미친놈 소리 좀 듣지 뭘.' 용기를 짜내어 여기 저기에서 간증을 하곤 했다. 그러나 심지어 어느 기독교 방송국에서 간증하고 나오니까 담당목사가 슬그머니 "하나님은 인간이 볼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몹시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일 때는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했다. 요한일서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하는 말씀 때문인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존재라고 설교하는 목사님들을 이따금 보곤 한다. 하나님을 오직 마음으로만 믿는다는 뜻으로'믿음'의 뜻을 한정시키는 것 같다. 나는 방송국 사회자에게 슬그머니 "목사님께 마태복음 5장 8절을 보시라고 말씀해 주시겠어요?" 말하고 나자마자 금방 후회가 되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하는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수훈 중 한 말씀인데 마치 내가 마음이 청결한 자여서 하나님께서 당신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자랑하는 꼴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도 있다는 성경말씀이 있지 않은가!' 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환기 시켜드리겠다는 뜻인데, 이거 참 주제넘게 건방진 소리를 하고 말았다고 몹시 후회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큰 죄인이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신 것인데 말이다. 바울도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죽이려 가던 크나 큰 죄인이기에 그 미친놈 같은 열성적인 마음을 옳은 방향으로 돌려 사용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것이라고 봐야 하듯이 나 역시 스스로는 구원 받기 어려운 크나 큰 죄인이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일 텐데 말이다. 내가 무신론자이던 시절에 하나님 도움으로 병이 나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종교 팔아서 돈 버는 사기꾼의 앞잡이'라고 상대를 내심 경멸하며 '종교란 윤리적인 생활을 하자는 사회적 운동이죠.' 점잖게 떠밀어 버리던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인간의 일은 인간끼리 할 테니 하나님은 가만히 좀 계십시오' 하던 프랑스 어느 시인의 시 한 줄을 좋아했던 나였다.
가령 함께 술집 다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나 하나님 만났어."하고 말한다면 나 역시도 '미친놈, 술 좋아하더니 결국 돌았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간증을 듣는 사람들의 온갖 착잡한 표정에 대하여 나는 그저 '저 사람 표정이야 당연하지 뭘! 그저 제발 날 미친놈 취급만 하지 말아다오.' 그런 생각으로 버틸 뿐이다. 그러나 각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체험한 믿음 깊은 분들은 간증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 하나 신입생이 늘었군!' 반가운 마음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야말로 하늘세계의 영원한 법칙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반가워 끌어안고 술집으로 가듯이 믿음을 가진 이들끼리는 서로 서로의 간증이 하나님께 향한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결국 끼리끼리 모여서 살게 하는 것이 내세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의 운명이기에 예수님께서 첫째 명령으로 '네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고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세상을 개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나서도 하나님의 밝고 창조적인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운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작과 종말은 이 '유유상종'이라는 우주법칙 때문인 것이다. '예수 믿으라'고 권하는 이유는 마음의 고통 없이 영원히 사는 팔자가 되자고 권하는 것이다. 성경공부하자고 권하는 이유는 하나님 사고방식을 나도 가지자고 권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니 권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한번쯤 '인간에게는 육체와 분리되는 영혼이 있고 인간을 사랑하시며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더라'고 내가 40세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성장과정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나는 1945년 광복 되던 해에 귀국하여 어머니의 고향인 전남 순천시에서 성장하였다. 1948년, 내가 여덟 살, 국민학교 1학년 때 여순반란사건이 터졌다.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가 적화되어 토착적인 남로당과 함께 여수 순천 등지를 점령하고 적화활동을 시작하자 진압군이 포위하고 토벌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우익이다 좌익이다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총살되었다. 삼십 대 초반이던 내 아버지도 그 사건 속에서 돌아가셨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대이기 때문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공포심 밖에는 없었지만 그러나 인간이 죽을 수 있는 존재란 사실이 절실한 나의 인생문제가 되어 버렸다.
왜 인간은 태어날까? 일단 태어났으면 영원히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죽어 없어질 바엔 아예 태어나지 말아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한편 좌익이다 우익이다 나누어서 서로 죽이는 이유가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어른들의 설명이다. 생각이 다르면 서로 죽여야 하는 게 인간이란 말인가? 좋은 생각이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생각일 텐데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생각이란 결국 나쁜 생각이 아닌가? 도대체 어떤 생각이 가장 좋은 생각인가? 그 3년 후, 내가 열 한 살이던 국민학교 4학년 때, 두 남동생 아래로 하나 밖에 없던 세 살짜리 여동생이 심한 열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내가 항상 업고 다닐 만큼 사랑했던 여동생이 죽고 나자 죽음이라는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슬픔이 지나쳐 미칠듯한 분노조차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제 말을 몇 마디 배워 "오빠, 밥 먹자."하던 아이, 추운 겨울날 땅에 파묻힌 아이를 생각하면 어디서건 나는 눈물부터 쏟아졌다. 왜 사랑하는 한 가족이 영원히 함께 살지 못할까? 그 보다 더 허무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언젠가 죽고 만다면 무슨 일이건 성취한다는 게 무슨 뜻이 있다는 말인가? 여동생이 죽은 이후 나는 장로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뭔가 희망을 걸고 참으로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다. 여동생과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세상에 홀로 남아 어린 아들 셋 키우시느라고 고생 많으신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했다. 방학 중엔 새벽기도도 다녔고, 평소엔 저녁식사 후 동생들 데리고 찬송가 여러 곡을 부르고서 공부를 하곤 했다. 믿음생활 덕분에 비교적 성실한 소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생회장으로 당선되기도 하고 학교 대표 배구선수도 하고 학교 교지도 편집하고, 후회 없는 소년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목사님의 설교를 열심히 들어도 인간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이 어떤 실감을 가지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죽으면 땅에 파묻는데 도대체 천국 간다는 게 무슨 뜻인가? 영혼이 간다는데 도대체 영혼이란 게 뭔가? 마리아라는 숫처녀가 남자교섭 없이 예수를 낳았다는데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얘기인가? 남자교섭 없이 애를 낳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남자 여자 사이에서 애 낳는 일이 그렇게 죄스런 일인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데 이런 동화 같은 얘기를 과연 믿어도 좋은가? 또 믿는다고 해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예수님은 '누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밀어 더 맞으라'고 가르치는데, 글쎄, 마주 싸우지는 않을 수 있지만 왼쪽 뺨까지 내밀어야 한다는 건 나에게는 좀 무리한 당부이다. 이런 식의 의문이 소년시절 항상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회출석을 그만두고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또는 무신론자로 변하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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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손을 보다./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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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배중독에서 해방되다/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4
하나님의 손
천국에 다녀왔다는 미국의 펄시 콜레 목사가 쓴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을 읽다 보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오른손과 왼손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성서적(聖書的) 지식이 아니기에 여기 함부로 쓰는 것이 옳지 않은 게 아닌가 염려하면서도 그 뜻이 그럴 듯하다는 느낌 때문에 여기 적어본다. ' 하나님의 오른손은 권세를 뜻하고 왼손은 자비(慈悲)를 뜻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당신의 왼손을 보여주시고 내 배를 쓸어주신 하나님은 바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당신의 자비하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로마서 10장에 나오는 말씀대로 자기 입으로 예수를 주(主)로 시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이른다고 하였는데, 여의도 광장에서 내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합니다!"고 외친 사실이 하나님의 용서를 이끄는 원인이 되었다는 뜻이 된다. 죄 없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한 이유는 죄인들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는데 내 경우가 바로 뚜렷한 그 증거가 된다는 인식을 나는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를 나의 주로 모심으로써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나의 죄가 용서함 받고 나에게 하나님과의 길이 열린 것이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사귈 수 있음이 모든 인생고(人生苦)에서 해방되는 지극한 구원이 아닌가! 예수의 십자가 고통이 나를 구원하신 것이다! 죄사함! 참으로 성경에 쓰인 문자가 나에게 현실적인 사물로 나타난 것이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몇 차례 들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결코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한 발음이 결코 아니다. 간결 명료하고 뚜렷한 발음이다.
하나님의 손에 관해서 또 한 가지 들려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 몇 개월 후, 지금은 온누리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하용조 목사가 1980년 당시 서울 신촌에서 두란노 서원이라는 선교단체를 조그맣게 갖추고 신도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하 목사님 요청으로 나는 거기에서 하나님 은혜 받은 간증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하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들려 주셨다. 영락교회에 나가시는 나이 드신 권사님 한 분이 하나님의 손으로 은혜를 받으신다는 것이다. 이 권사님은 환자들을 위해서 병을 고쳐 주십사고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인데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환자에게는 쭉 편 손을 보여 주시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주먹 쥔 손을 보여 주시는데, 편 손은 병이 낫는다는 표시이고 주먹 쥔 손은 살지 못한다는 표시라는 것이다.
내 명치를 쓰다듬어 주신 하나님의 손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니 다른 얘기가 나왔다.
아침 9시경 늦잠에서 일어난 나는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식사를 받으면서 알코올 중독의 습관대로 반주를 위해 소주 한 잔을 입에 댔다. 술 방울이 혀에 닿는 순간 무슨 청산가리가 이렇게 쓰겠나 할 만큼 술 맛이 너무 쓰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도 그 달던 술이 독약처럼 쓰게 느껴지고 그 순간 술에 대해서 온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의 의미였다. 나를 치료해 주신 것이었구나! 술을 끊게 해주신 것이었구나.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보약 마시듯 소주를 마셔댔는데 바로 그 술을 하나님이 끊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배를 쓰다듬어 주신 것을 나는 살아볼 용기를 주고 격려하기 위해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술을 한 순간에 깨끗이 끊어주신 것이었다. 정말이지 술에 대해서 조금도 미련이 남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망각이 가능할까? 집에 있던 술을 다 버렸다. 하나님이 끊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먼저 세상을 떠난 술친구들처럼 이내 눈을 감았을 것이다. 내 건강은 급속도로 좋아졌다. 나중에 성경을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해주시는 대표적인 몇 가지 일 중에 '병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배우며 감격을 누를 수 없었다.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님께서 내 담배 끊어주신 얘기도 해버리겠다.
하나님을 만나고 술이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니코틴 중독은 끊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 기도원(祈禱院)에 가서도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까 목사님이 '목사가 보지 않는 데 가서 피워 달라'고 사정할 정도이니 명색이 하나님까지 직접 만난 신자가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 꼴은 스스로도 가증스러웠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것을 알았으니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제 의지력으로는 담배를 못 끊겠으니 하나님께서 끊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며 담배를 피워댔다. 하나님의 손을 뵈온 지 일년쯤 되던 어느 날, 영화각본을 쓴다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어떤 기운이 온몸을 휩싸면서 입에서 방언(方言)이 터져 나오고 온몸이 참을 수 없이 떨리기도 하였다. 십 여분 이상의 그런 상태가 끝나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책상 위에 놓인 담배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견딜만 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십 분, 이십 분, 한 시간, 두 시간..... 드디어 담배가 끊어졌다. 담배 대신 입에서 나오는 것은 끊임없는 방언이었다. 내 의지로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담배가 끊어진 것이다. 특별한 은사 때문인지 그 후로 가령 직장 같은 데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곧 담배를 끊곤 하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그런 예가 많아서 나 역시 신기하게 느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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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을 체험하다/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5
회개기도의 중요성 1981년 4월 말, 하나님의 손을 뵌지 며칠 후, 나는 경기도 파주군에 있는 오산리 금식기도원으로 혼자 갔다. 지금은 현대적이고 거대한 시설로 발전했지만 당시엔 성전도 대형 천막에 지나지 않은, 개척중인 야산 기도원이었다. 기도원 원장은 지금은 소천하신 그 유명한 최자실 목사님이었고 부원장이 지금은 테헤란로에서 강남순복음교회를 담임하는 김성광 목사였다. 최자실 목사님의 아들로서 미국 뉴욕 순복음교회 목사로 있다가 이 기도원 부원장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를 전도한 대학선배 부부와 함께 우리 집에도 오셔서 "기도원에 한번 놀러 오세요. 박수치고 찬송 부르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좋습니다." 농담처럼 권하기도 했었는데 그 기도원에 꼭 가고 싶었던 것이다. 기도원이라면 병자들 모여있는 불결한 곳이라고 여기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한 기도원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이 기도원이었다. 김성광 목사는 반갑게 마지 하며 자신이 쓰던 방을 나에게 쓰라고 내주었다.
1960년 서울에 와서 대학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무신론자가 되어 기도하기를 그만두었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기도를 해보는 것이다.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 안쪽에 아주 가까이서 다 듣고 계신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을 뿐. 나는 더듬거리며 회개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10계명에 비춰보면서 죄라고 생각되는 모든 기억들을 하나 하나 입 밖에 내어 말하면서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고 고백했다. 생각나면 한 마디하고 또 생각나면 한 마디 하는 식으로 두 시간 정도 기도를 하고 있는데 문득 어떤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말할 수 없이 황홀한 기쁨이 온몸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마치 기쁨이라는 기체가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했다. 그 기쁨은 그 어떠한 생리적 기쁨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황홀한 기쁨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인간이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 기쁨, 이 인간에 대한 사랑의 느낌, 이 황홀감, 이것이 바로 성령(聖靈)이구나. 세상과 인간은 생명으로 가득 차게 느껴지고 참으로 힘차게 살아가고 싶은 의욕감으로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그 이후 뜻밖의 현상이 생겼다. 가령 방문객을 만나면 그 사람 마음이 다 읽혀지는 것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나를 찾아왔고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그냥 미리 알게 되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점쟁이가 된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 속을 알 수 있는 이 능력,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고, 이것이 바로 최초의 인간이 죄짓고 에덴에서 쫓겨나기 이전의 상태 즉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던 무죄(無罪)상태의 영혼이구나. 이것이 바로 예수 믿으면 우리가 받게 되는 '죄사함 받은 영혼' 상태로구나.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죄사함. 마치 때가 낀 거울을 닦듯이 죄로 덮인 우리 영혼을 닦아 영혼세계를 투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죄사함'. 모든 인간을 에덴의 행복으로 회복 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무엇인지 나는 알만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있다"던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가르침인지 알 수 있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자기 죄를 하나님 앞에 인정하며 사죄하는 일이 바로 성령 받는 비결이었다.
그 해 12월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악 아침기도를 시작하려는데 내 의식(영혼, 마음, 정신)이 머리통 전체를 통해서 몸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마치 치약 튜브에서 치약 나가듯이. 몸 밖을 벗어나자 새카만 어둠인데 그 어둠 속을 무슨 로켓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몸을 벗어버린 영혼은 오히려 더 초롱초롱하게 맑고 또렷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몸을 빠져 나오다니? 목적지도 모른 채 어둠 속을 날아가고 있으려니 그토록 외로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이구, 이게 하늘세계로 가는 길이구나!' 그런 깨달음이 드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죽고 싶으면 이곳으로 오면 되지만 이곳에서는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이 어둠 속을 날아다니고 있어야만 하는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아니 세상에서 지은 죄 때문에 지옥불길 속으로 가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면서 무서운 공포심이 밀려들기도 했다. 그런 공포심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려니까 다음 순간 내 의식은 다시 내 몸 속으로 돌아왔다. 거의 단절이라 할 만큼 빠른 속도로 돌아온 것이다.
이 체험으로 나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나누어지는 현상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여동생의 죽음에서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던 죽음에 대한 실제적 해답을 얻은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명령 1982년 10월, 나는 처음으로 외국여행을 하게 되었다. 문화공보부에서 문학인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문학인들 아홉 명에 인솔자로 문공부 직원 한 사람, 도합 10명씩 그룹을 지어 약 2주일 동안 세 나라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현지 문학인들과 교류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관광여행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가난한 문인들에게는 마치 기적처럼 파격적인 행사였다. 그때까지도 우리 국민들의 외국여행이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던 시대였다. 돈이 많은 사람들도 부부가 함께 외국여행을 할 수 없는 제도였다. 해외도피를 할 수 없도록 부부 중 한 사람은 국내에 남아야 한다. 외화(外貨)를 아끼기 위해서도 외국여행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외국의 장학금을 받게 된 유학생이나 공직자의 출장, 무역업자의 비지니스 그리고 운동선수의 국제경기참가 정도가 아니면 여권을 낼 수도 없던 시대였다. 아니 달러를 아무나 자유롭게 쓰고 여권이 쉽게 나오는 제도라고 할지라도 가난한 문학인들에게는 외국여행이란 꿈처럼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비용을 대어 문인들에게 외국여행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민주화 투쟁하는 문학인들 달래느라고 이 행사를 꾸민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당시 문공부 차관이던 실세 허문도씨가 '현대'의 정주영회장에게 비용을 부담시키고 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는 소문도 퍼졌다. 그 바람에 데모 등을 주도하는 문인들 중에는 이 여행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내가 속한 일행은 소설가 박연희, 이호철, 박완서, 시인 홍윤숙, 평론가 김치수씨 등등, 역시 열 명이 프랑스와 그리스 그리고 인도를 여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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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7 -인도인들을 전도하기로 하다
한동안은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이슬람 세력 때문에 힌두교는 벽지(僻地)의 민간 사이에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세력을 붕괴시키기 위해 힌두교 세력을 뒷받침 해 주어 오늘날처럼 부흥시켰다고 한다.
없애야 할 우상종교를 기독교 영국이 부흥시킨 것이다. 식민지를 '분열시켜서 지배하는'방식으로 힌두교를 부활 시킨 것이 영국이라고 하니 기독교에 의해서 강대국이 된 영국이 한 짓이 결국 하나님을 조롱하는 짓이었다. 기독교는 개인이 건 국가 건 강대하게 만든다. 그 힘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은 기독교 전도이다. 쓰러지려던 내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렇게 일어섰으니 당신도 예수 믿고 일어 서시오,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복음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이 인도에 한 짓은 경제적 착취뿐이오 우상종교의 부활이었다. 유럽인 속에 숨어있던 로마적 요소가 마귀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한 것이다. 마귀에게 굴종하는 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세계 최강의 영국을 거꾸러지게 하시고 제2국가로 쇠퇴할 수밖에 없게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이 기독교 복음을 전하며 인도의 근대화를 도왔더라면 지구의 역사는 아주 달라졌을 것이라고 나는 여행하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간지스 강에는 빨간 천으로 싼 어린이의 시체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어른들의 시체는 강변에서 장작불에 태우지만 아이들 시체는 그렇게 떠 내려 보낸다는 것이다.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유아 사망률이 아주 높다고 했다. 인도인들도 인간인데 배 아프게 낳은 자식들이 그렇게 많이 죽으면 그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려 있겠는가! 어쩌면 인도인들의 영혼은 쓰라린 고통으로 짓이겨져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나는 인도인들에게 성경의 이 말 하나만이라도 가르쳐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1장에 나오는 이 지옥을 벗어날 것이다. . 인도인들을 위해서 사업을 한다면 어떤 사업이 좋겠는가? 인도에서 가장 값싸고 가장 풍부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햇볕이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어 보급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인도여행을 했지만 내가 인도에 복음을 전하러 와야 하겠다고는 전연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인도여행을 마치고 한 달쯤 지난11월 하순경 어느 날, 시내외출에서 돌아와 피곤하여 거실마루에 벌렁 누워있는데 갑자기 약간 비몽사몽 같은 상태가 되며 머리 위에서 굵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인도에 가서 전도하라." 나는 얼결에 "전 영어도 잘 할 줄 모르고 찬송가 악보도 볼 줄 모르는데 어떻게 갑니까?"그렇게 대답하니까 음성은 꾸중하듯이 "왜 못해! 왜 못해!"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작년4월에 "하느님이다"고 말씀하시던 바로 그 음성이었다.
아아, 이번 인도여행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여행이었구나! 전두환 정권이 문인들 달래느라고 보내준 여행인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구나! 나에게 그리스도의 유럽과 힌두교의 인도를 보여주고 인도를 복음화하는 일꾼으로 나를 보내시기 위해서 이번 여행을 나에게 시키셨구나. 하나님의 손을 보여주시고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게 하시는 등 여러 가지 특이한 체험을 시키신 이유가 인도전도의 사명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나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셨구나.
모든 남자들의 인생이란 자기목숨과 바꿔도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방황하고 모색하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 찾으면 남자는 행복해진다. '그리스도의 명령'은 나를 고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행복하게 해주시기 위하여 내려지는 것이라는 점도 깨우쳐졌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가장 원하시는 것을 주시는 분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내 목숨과 바꿀만한 가치 있는 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지만 내 귀중한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살아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내 목숨이상으로 가치 있는 일,그것이 내가 알게 된 영원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된 것이다.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워커힐에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믿지 않은 사람은 아내인 것 같았다. 결혼 이후 살아오면서 쌓이게 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한(恨)과 당장의 생계적 고충들이 아내의 마음에 풀어지지 않은 채 남아서 나를 불신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기쁘게 협력하지 않으면 인도 전도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배부른 장로님이나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나는 기도원에 가서 일주일씩 금식기도도 했다. '원수가 집안식구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교의 출가(出家)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적(公的)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적(私的)인 정서(情緖)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장 큰 '원수'는 성모 마리아님 이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인간에게 한 마지막 부탁이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님을 부탁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하니 저들을 용서해주십사"고 기도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입으로 아무리 성경지식을 떠든다고 해서 그 완고한 힌두교인들이 돌아서겠는가, 그런 의문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녀들이 있겠지, 그 사람들만 돌아서면 되는 것이다, 성경에도 인간들 중 반은 구원받고 반은 자기네 고집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고 암시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내가 인도전도를 구 상하며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지만 그러나 더욱 크게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야말로 막막함이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없애주는 너무나 놀라운 주님의 은혜가 나타났다.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내 옆에 나타나 보여주신 것이다. |
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8 -40일 금식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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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서 기도하고 주시는 말씀으로 큐티를 하기위해 읽은 귀한 간증의 마지막 말씀 <깨어 일어나 기도하라>하심이 신기하도록 일치되는 말씀에서 시대적 사명의 긴박감을 느낍니다. 은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