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자! (계 3:7-1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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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자! (계 3:7-12)

 

  그리스도인은 그 생활의 일정한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활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간단히 표현하면 '청지기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 인간은 잠깐 이 세상에 와서 살 때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잠깐 맡아서 대신 쓰는 것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 인간은 그 잠깐 되는 삶을 바로 살수가 있습니다. 또한 가장 행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벧전4: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여러 가지 은사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청지기가 되어 자기 맡은 은사로 '서로 봉사하라'고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전4:2절에 보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맡은 자'라는 말은 청지기란 뜻입니다. 우리 교회가 다음 주일 오전에는 세 명의 세례식이 있고, 오후예배는 노회장님과 임원목사님들이 오셔서 임직 예배를 드립니다. 귀한 임직을 받는 분들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할/ 이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직분임을 분명히 알고 열심히 충성해서 하늘나라의 귀한 상급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할/ ◀제목 소개!▶

 

  한 집안에 여러 아이들이 있을 경우 그중 가장 잘난 아이를 보고, 아니면 큰아들을 보고 우리 집의 기둥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한 나라에 큰 인물이 있을 경우 이를 보고 국가의 기둥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기업을 보고 그 나라의 기둥 같은 기업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도 기둥들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그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우뚝 우뚝 큰 기둥처럼 세워집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도 두 기둥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순종을 뜻하는 기둥이요, 또 하나는 사랑을 뜻하는 기둥입니다.
  그런데 기둥을 하나로써만이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대들보가 있는가 하면 석가래를 바쳐주는 크고 적은 많은 기둥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시대의 많은 교회들 속에 교파와 교권을 초월해서 나라와 역사를 초월해서 지역마다 기둥이 되는 교회들을 세우십니다.
  여러분, 우리 큰 꿈을 갖읍시다. 한국의 약 5만여 교회 속에 우리 '참 행복한 교회'를 '기둥처럼 우뚝 세워보리라'고 하는 꿈을 가지십시다. 믿음은 바라는 대로 되어 집니다. 내가 교회의 기둥이 된다고 하는 꿈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엄청난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오늘 계2-3장에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향해 주님이 책망하시는 교회도 있고 칭찬해 주는 교회가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면서 우리도 주님 앞에 칭찬 받는 교회가 되고,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명에 충성하여 기둥과 석가래와 대들보와 같은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먼저 주님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일곱 가지의 예복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계16:15절에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창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에 자기들의 벌거벗음을 보고 부끄러워 무화과 잎으로 가리웠습니다. 그러나 무화과 잎으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가리우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죄 없는 양을 잡아 피 흘려 죽이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주실 때 완전하게 부끄러움을 가리울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입혀 주시는 예복만이 죄와 수치를 가리울 수가 있습니다.
  ⑴롬13:14절에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옷을 입어야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아멘!/
  ⑵엡4:24절에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⑶시132:9절에서는 '의에 옷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⑷눅24:49절에서 '하늘나라의 권능에 옷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⑸골3:12절에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으라'
  ⑹골3:14절에서 '사랑을 더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할/
  ⑺엡6:11절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십니다. 이 7가지의 옷을 '계'에서는 '흰옷'이라고 했고, 마22장에서는 '천국잔치의 예복'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7의 숫자를 완전수로 말합니다. 오늘 일곱 가지의 그리스도의 옷으로 덧입고, 일곱 교회의 교훈을 찾아 칭찬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곱 교회는 꼭 그 교회에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고, 오고 오는 전 세기적 세계 교회를 향한 메시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일곱 교회에 우리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⑴에베소 교회에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그리스도로'(계2:1).

  ⑵서머나 교회에는 '처음이요 나중이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로(계2:8).

  ⑶버가모 교회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으로(계2:12).

  ⑷두아디라 교회에는 '그 눈이 불꽃같고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주님'으로(계2:18).

  ⑸사데 교회에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로(계3:1).

  ⑹빌라델비아 교회에는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으로(계3:7).

  ⑺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으로' 나타나셨습니다(계3:14).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곱 교회 모두에게 빠짐없이 주어진 주님의 말씀은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17:14절에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할/
  그러므로 천국은 한 사람의 패자도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로 승리하고 개선하는 승자들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계2-3장에서는 이기는 자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게는 '생명나무의 과실'을(계2:7), 서머나 교회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는 것'을(계2:11), 버가모 교회에게는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계2:17), 두아디라 교회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계2:26,28), 사데 교회에게는 '흰옷과 생명 책에 이름'을(계3:5),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됨을(계3:12),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는 '보좌에 함께 앉게 해줌'을(계3:21) 약속하고 있습니다. /할/
  그리고 주님께서 일곱 교회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 중 제일 마지막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빠짐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들음은 요한계시록에 약속된 축복 중에 하나입니다. 계1: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들어야 합니까?

  ⑴성령이 교회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⑵들음에서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롬10:17).
  ⑶그 믿음의 결국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벧전1:9).
  ⑷말세에 승리에 대한 대비와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벧전4:7).
  그러므로 들어야 합니다. 확실히 들어야 하고,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깨어 들어야 하고, 소망하고 들어야 하고, 감사하며 들어야 합니다. 왜? 모든 영적인 전투에서이기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 당시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오늘 우리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순서대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에베소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과 함께 세워진 사도교회가 발전해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이 이곳에 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외치므로 뜨거워지기 시작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첫사랑과 첫 열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첫사랑과 첫 열정을 뜨겁게 간직해야 합니다. /아멘!/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성도들을 신부로 비유했습니다. 요새 현대인의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많은 가정이 이혼을 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그 아름다운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그렇게 좋은 그 감정만을 평생 가지고 산다면 아마 늙지도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사랑과 첫 열정만 간직하고 나간다면 에베소 교회처럼 책망 받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뜨거운 관계가 허물어지면 주일날 겨우 나와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헌금하고는 그냥 돌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잊고 삽니다. 모든 것이 의무와 형식으로 바꾸어집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형식주의, 의식주의가 되고 맙니다. 우리 신혼의 첫사랑을 주님 안에서도 가정에서도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②서머나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당대 많은 환난가운데에서도 우뚝 섰습니다. 계2:9절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환란과 궁핍을 당하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부요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로마의 박해와 총칼 앞에서도 우뚝 섰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순교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 서머나 교회는 '죽도록 충성했다'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사도요한의 후계자인 폴리캅 목사님이 세웠습니다. 로마의 관원들은 폴리갑 목사님의 인격에 감화를 받았습니다. 폴리캅은 86세에 순교를 당했는데 로마 관원이 '예수를 한번만 부인하면 선생님만을 살려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오자 '내 80 평생 주님을 한번도 부인하지 않았는데 이제 몇 해 더 살겠다고 주님을 부인하여 영원히 지옥에 형벌을 받는단 말이요, 어서 죽이시오' 할 수 없이 관원들은 폴리갑 목사님을 꿇은 기름 가마 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런 폴리갑 감독이 세운 교회이므로 서머나 교회는 신앙이 굳세고 흠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로마 정부의 250년 간의 그 박해를 서머나 교회가 제일 혹독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사의 증거에 의하면 폴리캅을 말할 것도 없고 교인들도 채찍에 맞아 살이 찢어지고 눈이 빠지고 팔 다리가 부러지고 창자가 흘러나오는 성도들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들의 모든 재산도 몰 수 당했고, 아이는 배고파 울고 노인들은 떨면서 바위틈에서 지내는 가족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할/
  서머나 교회가 그 환란을 받고 있을 때 주께서 처음과 나중이신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왜 주님이 오셨습니까? 서머나 교회의 환란과 핍박을 내가 다 아신다는 뜻에서 그렇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믿/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라도 우리 주님이 알아주신다는 것은 큰 은혜요, 은총입니다. 봉사할 때 어려움, 전도할 때 어려움, 이웃을 섬기면서 당하는 어려움을 우리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옛날 할머니들은 말할 수 없는 시집살이를 당했어도 신랑이 알아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부요한 교회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교회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행여나 주의 일 하다가 환란과 궁핍을 당한다 할지라도 서머나 교회를 보시고 위로 받으시고 더욱 힘써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③버가모 교회입니다.
  버가모는 서머나 교회 보다 북쪽에 위치한 당시 아시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큰 저택들이 많고 아름다운 궁전이 있고, 20만 권이 넘게 장서가 비치된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전통을 일어 버리므로 책망을 받습니다.
  정통을 무시한 교회는 문제입니다. 오늘날 이 정통을 무시한 이단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사도신경이 성경에 어디 있느냐, 성경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사도신경은 사도적인 고백입니다. 성경 66권의 요약이 그 안에 있고 그 당시 이단들이 많아서 이단을 분별하기 위하여 내려오는 정통입니다.
  또한 이 교회가 책망 받은 이유는 사도들이 뜨거움을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신학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정통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세속주의와 연합했습니다. 때문에 성결하거나 경건하거나 빛과 소금 같은 생활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었습니다. 교리가 절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으면 안됩니다. 이 교회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고난과 책망도 받게 되었습니다.

 

  ④두아디라 교회입니다.
  직물과 도자기와 피혁으로 유명합니다. 행16장에 나타난 바 바울이 최초의 전도에서 열매 맺은 빌립보 성의 자주장사 루디아가 예수 믿고 회개하여 온 가족이 그의 고향 두아디라에 세운 교회가 바로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전부 버가모 교회만 본 받았습니다. 버가모 교회처럼 하면 뭔가 되니까 그렇게 하자면서 교회의 온전한 정통을 잃어버렸습니다. 음행이 판치고 제사가 판치는 교회였습니다. 또 형식이 판치고 점쟁이가 판치는 교회였습니다.
  복 받는 길이라면 점치러 다니고, 신당에도 다닌 그런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도 이런 모습이 비친다니 통탄할 일입니다. 주님은 이런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믿/

 

  ⑤사데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고 주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외모로는 예배당 건물이 훌륭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고, 사람이 많이 모였으나, 주님 보시기에는 경건의 능력이 없고, 영적인 생명이 없는 잠자는 교회였습니다. '꼭 그렇게 믿어야 되는가?' 그저 점잖게 '주님! 저 왔습니다.' 와서는 꾸벅 졸다가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일어서는 교회가 바로 사데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기적의 씨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몇몇 흰옷 입은 성도들이 모여 눈물 흘리며 기도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다시 세우리라'고 하면서 그들 몇몇이 똘똘 뭉쳤습니다. 기도가 불붙으면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살게 됩니다. /아멘!/
  처음에는 주께 책망을 들었지만 후에 기도에 불이 붙어 기적이 일어나고, 여기서 시작된 기도운동이 교회를 세우는 원동력이 되어 빌라델비아가 세워졌습니다. /할/

 

  ⑥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이 빌라델비야 교회는 일곱 교회 중 가장 작은 교회로써 대단히 약한 교회로 시작했습니다. 교회 규모도 작고, 성도 수도 적고, 부자도 없었고, 실력자도 없는 약한 교회였으나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은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대번에 우뚝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잠자는 교회 속에서 세속주의 교회 속에서 마지막 남아 있는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일으켜 세운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사도의 정통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사도의 믿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또한 이 교회가 '잘 운다'는 것도 이 교회의 특징입니다. 운다는 것은 주 앞에 회개의 눈물을 의미합니다. 이 눈물이 빌리델비아 교회의 특징입니다. 또한 이 교회는 전 성도들의 이름이 '생명 록에 기록됨을 확실히 믿는 그런 교회'로써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이 교회는 삶의 원칙과 믿음의 원칙을 성경 한 권에 두었습니다. 성서적 기독교를 다시 세우며 성서적 신앙을 다시 찾자는 교회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도 오늘 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잠자는 교회에서 깨어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로 달려나가야 합니다. /아멘!/할/

 

  ⑦라오디아 교회입니다.
  상업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책망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⑴차지도 덥지도 않은 교회였습니다. 어제도 그만하고 오늘도 그만하며 작년도 그만하고 올해도 그만한 그런 믿음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행여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 이 말씀을 듣다가 찔림이 오거든 빨리 회개하고 뜨거운 믿음으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아멘!/
  ⑵이 교회의 특징은 영적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전부 소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너 해라, 나 듣는다'는 식으로 시종일관된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는 아무런 영적인 능력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깊게 깨달을 것은 '오늘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는 것'입니다. /할/
  ⑶또 하나의 특징은 '열심히 회개하려고 하는 욕심'들이 없었습니다. '뭐! 꼭 은혜를 받아야 됩니까? 예배만 드리면 되지 왜 그렇게 난리를 치며 예배를 봅니까?' 자기 합리와가 판치는 교회였습니다.
  따라서 춤도 추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점잖기 때문에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았고 애곡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계3:16절에서 책망하시기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싫으면 안나오고, 성경 말씀을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고, 그 말씀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를 주님은 책망하십니다.
  이상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는 책망을 들었고, 두 교회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칭찬, 받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약속을 받았습니다. 서머나 교회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했고,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네 면류관을 뺏어갈 자 없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약속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귀를 열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마지막날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어야 하며 이것은 결코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믿/ 우리 교회도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처럼 주님 앞에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난 빌라델비아 교회를 더 깊이 상고해 봐야 합니다.
  빌라델비아란 말은 '형제를 서로 사랑함'이라는 뜻인데, 이 교회는 그 뜻대로 성도간의 사랑이 넘쳐 났습니다. 이런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나타나셨습니다. 다윗은 왕이요, 열쇠는 권세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써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할/
  주님은 이 열쇠를 가지고 하늘 문을 여시고 또 이 열쇠를 가지고 은혜의 문과 구원에 문을 여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둔하고 완악한 마음에 문도 여십니다. 주님이 닫으면 열 사람이 없고, 열면 닫을 사람이 없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신 주님이 빌라델비아에 오신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 오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빌라델비아 교회는 몇 가지 좋은 특징이 있습니다.
  ⑴남녀노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높은 자와 낮은 자가 한 형제로 묶어진 교회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똘똘 묶어진 교회입니다.
  여러분, 저는 부족하지만 우리 교회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신앙으로, 사랑으로, 말씀으로, 믿음으로' 굳게 세워질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이곳에 행복한 교회를 세우신 것은 성수동 일대를 믿음의 도성으로, 더 나아가서 서울 장안을 믿음의 도성으로 바꾸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기독교를 핍박했던 로마 도성이 믿음의 도성이 되어진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행복의 기둥들을 통해서 이 인근각처 동서사방을 복음화시키려는 도구로 세워주신 줄 믿으시고 그 사명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십시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를 돕는 귀한 참 행복한 공동체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⑵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큰 일'을 했습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음에도 잠자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큰 힘이 있음에도 잠자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능력은 적은 힘을 가지고 큰 일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⑶빌라델비아 교회는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배반하는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베드로가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배신할 것처럼, 길거리에서 삶의 현장에서 돈 몇 푼에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절대로 배반하지 마십시다. /할/
  ⑷이 교회는 '믿음을 잘 지켜 나가므로 시험 때에 크게 승리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지막 시험 때에 우뚝 솟은 교회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성도에게 참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 보면 압니다. 엄청난 고난을 당할 때, 자기를 이기지 못하고 혈기로 원망으로 불평으로 지는 사람은 믿음의 축복을 못 받습니다. 그러나 큰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은 그 고난 가운데서도 벌떡 일어섭니다. /할/
  서도 바울이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빌라델비아 신앙은 고난 가운데 우뚝 드러나는 사람들도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고난 가운데 우뚝 서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빌라델비야 교회가 받은 복은 무엇인가? 열린 문의 복을 받았습니다. 8절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하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아멘!/
  ⑸신앙 관리를 잘 한 교회입니다(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다시 말하면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손에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하다가 자기 손에 있는 것까지 놓치곤 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 손에 쥐어 주신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건강도 주셨고, 가정도 주셨고, 가족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것은 '건전한 복음적 신앙, 순수한 정통 개혁주의적인 장로교 신앙을 주신 것'입니다. /할/
  우리 한국교회가 처음 복음이 이 땅에 떨어진 이후로부터 어떻게든 이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고 그래서 주일 성수의 신앙, 감사의 생활, 십일조의 신앙, 순종의 생활, 섬김의 생활을 얼마나 강조를 했습니까? 그래서 주일 성수와 십일조의 신앙은 세계교회들 앞에 자랑스런 한국교회의 상표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 교회가 적습니까? 문제는 교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참된 교회, 칭찬 받는 교회가 없어서 문제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도 주님 앞에 칭찬 받는 빌라델비아와 같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네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굳게 잡지 못하면 우리의 면류관을 빼앗깁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굳게 잡지 않음으로 빼앗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가치를 모르고 동생에게 그만 팥죽 한 그릇에 뺏기고 말았습니다.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도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그만 유다에게 빼앗겼습니다. 사울은 그의 왕위를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다윗에게 빼앗겼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가룟 유다는 12사도 중 하나였지만 그만 돈에 눈이 어두워 주님을 배반하고 마침내 그 자리를 맛디아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성도의 직분을 귀한 줄로 알고 굳게 잡아야 합니다. /아멘!/
  ⑹'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전은 솔로몬 성전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데 성경을 보면 성전에는 큰 두개의 기둥이 성전을 떠받들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각각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저가 세우리라' 즉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세우시면 능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주님의 교회의 든든한 기둥 같은 일꾼으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믿/
  특별히 빌라델비아 교회와 관련하여 볼 때 기둥이 된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의미가 잇습니다. 이 지역은 지진이 많은 지역인데 아무리 지진이 나도 흔들리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지키는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쓰임 받는 도구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아 가정의 기둥, 교회의 기둥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그런데 어떤 자에게 기둥이 되게 하십니까?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셨습니다. 12절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고난에서 이기고, 세상 욕심에서 이기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기둥이 됩니다. 그런데 이 이김은 믿음으로만이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요일5: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16: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아멘!/ 
  ▶여기서 '기둥이 되게 한다'는 말씀은 하늘나라에서나 세상 교회에서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요긴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성전에 기둥이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기둥이 되려면 '진실하고 정직해야 하며, 견고해야 하며, 튼튼한 기초 위에' 서야 합니다. 

 

  ▶교회 기둥의 기준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기둥 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능력이고 힘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보시는 영혼을 살린다는 것은 큰 일 중에 큰일입니다.
  ㉢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집을 짓는데 꾸부러지고 비뚤어진 나무는 쓸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둥도 정직하고 신실해야 합니다.
  시84:11절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교회 기둥은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기둥은 죽은 나무여야 합니다.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나무가 아무리 튼튼하고 좋은 나무라 할지라도 서 있는 나무로는 기둥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세상 정욕의 뿌리에서 베임을 당해야 하고, 세상일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결국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교만도, 이성도, 고집도, 아집도, 자랑들도 죽여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죽은 자가 영원히 삽니다. 주님도 십자가에 죽었기에 3일만에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할/
  ㉤기둥은 주춧돌에서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의 기둥은 머릿돌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둥들은 마음이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나가는 사람, 어디 가서나 마찬가집니다.
  ▶어느 교회가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와 성도들이 모여서 새로 교회를 건축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일 밤 기도했습니다. 그때 한 집사님의 부부가 슬그머니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제 교회를 지으면 건축헌금을 해야 하니 안 할 수도 없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에 가 보니까 그 교회도 내년에 교회를 짓기로 계획하고 기도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이번엔 새로 지은 교회로 갔습니다. 새로 지은 교회에 가야 건축헌금 안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교회를 건축하고 빚을 갚느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삶에는 감동도 용기도 변화도 끼칠 수가 없습니다.
  ▶영락교회의 일화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영락교회를 개척하여 교회당을 지을 때입니다. 당시 제직 77명에게 한 목사는 건축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북에 있었으면 벌써 죽었을 것인데 월남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자유를 주셨고, 재물을 주셨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전을 세우고자 하오니 당신들의 재물 중에서 열흘 먹을 것만 남기고 다 바치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77명중 55명이 참여했습니다. 그 후에 한 목사님이 영락교회를 은퇴할 때 이들을 살펴보니 한국 사회에 위대한 지도자들이 다 되었습니다. /할/
  오늘 여기 모이신 모든 성도들은 우리 교회의 기둥이 될 재목들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 주춧돌 위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충성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아멘/ 

 

  ▶기둥 같은 성도들은 주님 앞에 '충성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할/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가 희생이 없이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죽임을 당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변절하지 않아야 충성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죽는 순간까지'란 뜻도 있지만 '죽음이 앞에 닥치더라도' 변절하지 말고, 믿음을 배반하지 말고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평안할 때나 환난을 당할 때나 꾸준히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기분 좋을 때는 반짝 열심을 내다가도 욕을 먹거나 억울하게 오해를 받을 때는 싹 돌아서 버리고 변절하면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가령 공산당들이 들어와 총부리를 대고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하며 믿음을 배반하면 육신의 생명을 살려 준다고 할 때 변절하지 않아야 충성된 성도입니다.
  ㉢충성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한자로 '충'자는 가운데 中과 밑에 마음 心자가 있습니다. 마음 한가운데 중심을 바치는 것이 충성입니다. 또 '성'자는 말씀 言변에 이룰 成자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아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르고 형편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손바닥 뒤집듯 하는 사람은 충성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눈가림하고 남 보는 데서 뭘 하는 척하고 남이 안 보는 데서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충성된 사람이 아닙니다.
  엡6:6-7절에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충성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습니다. 게으르면 못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사실 게을러서 이윤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은 부지런히 바로 즉시 가서 이윤을 남겼습니다.
  ㉤작은 일에도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은밀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을 자랑하는 것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행하는 자를 더욱 소중히 여깁니다.
  ㉦겸손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됩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할 때 사용하시고, 겸손하게 만든 뒤에 사용하십니다.
  ㉧계산하면서 하는 충성은 가짜 충성입니다.
  ㉨불타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빌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할/
  ㈉중요한 것은 그래도 '예수를 잘 믿어야'합니다. 믿음이 능력입니다.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⑺하나님의 성전의 기둥들은 '천국의 새 이름으로 기록'됩니다(12).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름이 참 중요합니다. 미국 텍사스주의 광활한 들판에 가면 수많은 소를 키우는 목장에서 모든 소의 엉덩이에는 주인의 이름의 이니셜이 다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봐도 누구의 소인지를 알아 볼 수 있게 하고 혹 도둑이 훔쳐가도 금방 들통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이름을 쓸까요?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666이라는 사탄 마귀의 이름이 기록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의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영광된 축복의 약속들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오직 주님 앞에서 적은 능력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책망대신 칭찬만 받은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도 이런 축복의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2010년 8월 8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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