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송구영신}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빌 3;12-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1. 3. 18:43

{송구영신}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빌 3;12-16.

 

                                                                                                         

 

오늘 2014년을 보내고 2015년을 맞이하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마디가 있습니다. 하루를 가름하는 마디는 밤 12시입니다. 한 달을 가르는 마디는 월말입니다. 일년을 마무리하는 마디가 1231일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은 나이를 거꾸로 계산한다고 합니다. 70세를 기준으로 한 해 지나면 69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젊어진다고 합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은 어린 아이가 됩니다.

 

 

지난 주간 철원 지역 초교파 연합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김 일성이 철원을 빼앗기고 3일을 울었다고 합니다. 곡창지대입니다. 백마 고지를 지키며 철원을 빼앗은 김에 오성산까지 밀고 올라갔으면 금강산도 우리 땅이 될 뻔하였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지뢰밭이 많았습니다. 그 안에는 온통 도토리, 밤들이 풍성합니다. 도토리를 주우러 들어 갔다가 죄로로 다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멧돼지 발자국만 따라가면 지뢰를 밟지 않고 무사하다가는 것입니다. 멧돼지는 지뢰 냄새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간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송구 영신 예배를 드리며 본문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두 주간 정도 기도하며 찾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새벽기도 시간에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이 말씀이 돋보기를 쓰고 보는 것처럼 크게 마음에 들어 왔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3;12-16)

 

우선 바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항상 시작한다.

바울은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온전히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사실은 바울은 남이 할 수 없는 큰 일을 이미 이룬 사도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도 세웠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도 큰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아시아 곳곳에 수많은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드디어 유럽에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까지 세웠습니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라고 말하면 그러려니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일을 한 바울이 이런 말을 할 때에는 조금은 교만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항상 일에 대하여 갈증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이 정도 하였으면 만족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일하며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2. 항상 잡힌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큰 일을 하였든지, 성공적인 업적을 남겼든지 생각하지 않고 항상 그리스도 예수에게 잡힌 바 그 것을 잡으려고 달려만 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에게 잡힌 것이 무엇입니까?

다메섹으로 예수믿는 이들을 잡아 핍박하려고 갈 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아나니아를 통하여 바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

 

예수님은 바울에게 이방인, 임금, 이스라엘 자손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택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이렇게 자기를 향하여 부르신 뜻에 잡혀 있었습니다. 자나깨나 그것만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어질 때마다 두 가지가 나를 사로 잡습니다.

 

 

하나는 월남에서 베트콩 지역을 ?차를 타고 달릴 때 빗길에 엎어져 굴렀습니다. 개천에 쳐박힌 차속에서 나만 나오지 못 하고 있었던 그 장면을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작년 이 때 주일 설교하려고 하던 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질 뻔 하였습니다. 피가 동맥을 통하여 머리로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로 병원에 걸어 들어 온 환자를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주님께 복음 위하여 생명 바치자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상위에는 김 순선 선교사 살점이 들어 있는 삐얀야 고기를 놓고 살고 있습니다. 아마존강을 토인들과 함께 카뉴를 타고 건너던 중 악어가 배를 뒤집었습니다. 토인들은 능숙하여 재빨리 카뉴위로 올라 왔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경험도 기술도 부족하여 못 올라 왔습니다. 그물을 던졌습니다. 5분 정도 지났는 데 뼈만 남았습니다. 식인어가 달려들어 살점을 모조리 뜯어 먹었습니다. 그 고기를 잡아서 말려서 1000불씩에 팔았습니다. 나는 2천불을 헌금하고 두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고기가 항상 내 시야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큰 일을 하고도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어느 분이 교인들은 네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1. 물고기 교인이 있습니다.

물을 떠나서 물고기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에 늘 말씀을 묵상하고 항상 기도하며 언제나 은혜 가운데 사는 교인입니다.

 

 

2. 새 교인이 있습니다.

새는 9일 동안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 나오는 교인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말씀을 먹고 삽니다.

 

3. 개 교인이 있습니다.

개는 20일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입니다. 한 달에 한번 먹고 잘 삽니다.

 

4. 개구리 교인이 있습니다.

겨울 내내 한번도 안 먹고 땅속에 있다가 봄에 나옵니다. 한 철에 한번 정도 교회에 나오는 교인입니다.

 

5. 거북이 교인이 있습니다.

거북이는 300년 삽니다. 500일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습니다. 일년에 한번 정도 교회 나오는 교인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또 한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3-14)

바울은 우리에게 뒤엣 것은 다 잊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새 해를 맞으면서 무엇을 잊어 버려야 할 가요?

 

1. 죄를 잊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2;13-15)

 

도말한다는 말은 원어로 보면 엑살레이프사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페인트 칠한다는 뜻입니다. 문질러 닦아 낸다, 끍어서 없앤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도 뒤엣 것은 잊어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뒤엣 것은 잊어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만 하면 늘 주님이 나타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소문이 났습니다. 목사님은 정말인가 확인하려고 물었습니다.

정말 기도만 하면 주님이 늘 나타나셔?” “.>”

그러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무슨 죄를 지었었는 지 물어 봐줘!” “알았어요.”
며칠이 지나 목사님은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만났어?” “.” “물어 보았어?” “.”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무슨 죄를 지었대?”

여인이 말했습니다.

다 잊었대요.”

 

예수님도 모든 것을 잊으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여인이 남편과 크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출근하였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화가 끓어 올라서 속으로 <사고 나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분을 참지 못 하고 운전하다가 사고나서 죽었습니다. 아내는 매일 죄책감에 살다가 미쳤습니다. 14년 동안 매일 남편 무덤속으로 들어 가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과거 죄를 잊지 못 하고 간직하니까 미친 것입니다. 뒤를 잊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38;17-18)

 

시편기자도 말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103;12)

우리는 과거 지었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더 이상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죄 때문에 얽매어 아파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실수를 잊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수하는 것이 사람이고 용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연필을 만들 때에는 항상 위에 지우개를 달았습니다. 이 연필을 사용하는 동안에 실수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과거에 실수한 것을 자꾸만 회상하고 기억하고 꺼집어 내어 아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허물이 실수입니다.

 

너희의 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2;5)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려고 40살에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실수였습니다. 모래속에 암매장하였습니다. 사람을 죽인 과거가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내가 사람을 죽인 과거가 있다면 여러분은 나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그 실수를 기억하고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허물을 용서하여 주신다고 하셨으니 과거를 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이고 아주 좋은 가정을 파괴시켰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데려다가 살았습니다. 우리아는 나라를 지키려고 나가서 싸울 때 혼자 있는 아내를 데려다가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 하면서 그렇게 충실한 우리아 장군을 죽였습니다.

내가 어느 여인의 남편을 죽이고 그 여인과 지금 살고 있다면 이 강대상에 서서 설교할 수 있을 가요? 그러나 다윗은 다 잊었습니다.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농부가 지난 해 농사를 실수하여 잘 못 지었다고 금년은 포기할가요? 아닙니다. 다시 일어나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럴 수록 더 잘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실수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실수하였을 때 더 잘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과거 실수를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실수도 도말하셨습니다.

 

어느 아이가 옆집 소옆에서 놀다가 돌로 소를 맞추어 죽였습니다. 주인이 붙들어 경찰에 넘기려고 할 때 아버지가 와서 소값을 넉넉히 물어 주고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잘못 했어요. 용서하세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왜 야단치지 않으세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용서를 빌었으니 야단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3. 억울한 일당한 것도 잊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잊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요셉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끔찍이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내가 네 명이었습니다. 당시는 다 그랬습니다. 그 중에 라헬을 제일 사랑하였습니다. 라헬이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 하다가 늘그막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에게는 11번째 아들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였습니다. 손자같이 예뻤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질투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마침 물이 없어서 살았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종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인신매매입니다.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 죽도록 고생하였습니다. 그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유혹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없을 때 요셉의 옷을 잡아 당겼습니다. 아무도 없으니 동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요셉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동침할 수 없다면서 옷을 벗기며 도망을 쳤습니다. 보디발 아내는 화가 나서 남편에서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고 하였다고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감옥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종살이 감옥살이 밑바닥 인생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을 가요? 그러나 후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나같은 제일 먼저 한을 풀 것입니다.

그 년을 대령하여라.”

그러나 성경에 요셉은 전혀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기억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였다는 말조차 없습니다. 뒤에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어떻게 하였는 가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형들은 겁이 났습니다. 요셉이 아버지 때문에 자기를 건드리지 못 하였는 데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복수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선수를 치면서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50;16-17)

이 때 요셉이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50;19-21)

요셉은 억울함과 분함을 전혀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잊었습니다. 과거의 억울하게 하였던 사람, 분하게 하였던 사람, 이가 갈리도록 미웠던 사람을 잊어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입니다. 미래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숭이가 싸우다가 엉덩이를 들면 항복표시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습니다. 개가 싸우다가 꼬리를 내리면 항복입니다. 그러면 싸우던 개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짐승도 항복하면 싸우던 것을 잊어 버립니다. 사람도 용서를 빌면 끝내고 잊어야 합니다.

 

4. 선행도 잊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잘 한 일이 있습니다. 우쭐대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쁜 뒤에 것만 잊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입니다. 뒤를 잊으라고 하였습니다. 골라서 잊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잊어야 합니다. 어제 잘 했던 일도 잊고 내일을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마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6;1-4)

 

어느 시인은 말했습니다.

고상한 행동을 하고 나서 그것을 하루종일 꿈꾸지 말라.”

 

모세가 일으킨 기적중에 가장 큰 기적은 홍해를 가른 기적일 것입니다. 모세는 <내가 이런 사람이다. 홍해를 가른 사람이다>라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40년 간 광야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자랑스럽게 말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홍해를 갈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였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40년 된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실을 자랑하거나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복음만 전하였지만 과거에 일으킨 기적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뒤에 것은 잘 한 것도 다 잊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슬픈 일을 잊지 않으면 슬퍼집니다.

아픈 일을 잊지 않으면 아파집니다.

억울한 일을 잊지 않으면 억울하여 집니다.

쓰라린 일을 잊지 않으면 쓰라려집니다.

서운하였던 것을 잊지 않으면 서운하여 집니다. 그래서 다 잊어야 합니다.

그래서 망년회를 하는 것입니다. 다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는 지금부터의 삶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승리한 사람 바울이 우리에게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에게 주는 말은 이 말 한 마디입니다.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뒤를 잊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달려 가십시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피터 드러커 교수가 쓴 “New Society”란 책이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이 어느 나라가 가장 강한가에 대한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드러커 교수는 세계에서 기업가 정신이 가장 강한 나라로 한국을 꼽았습니다.

드러커 교수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일본 제국주의가 지배할 때 의도적으로(intentionally) 식민지 한국인에게 기업 정신, 리더십을 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 6·25 전쟁을 통하여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잠재되어 있는 기업 정신을 살려 잿더미에서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돋음하였습니다.

그는 이 병철 회장, 정 주영 회장, 김 우중 회장 등을 한국의 기업가로 지적하였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가난하였습니다. 맨 주먹으로 기업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아쉬운 분이 김 우중 회장입니다. 맨손으로 대우그룹을 일으켜 세계로 뻗어나가던 중에 하차하였습니다.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김 우중 회장이 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김 우중 회장은 6·25때 대구로 피난을 갔습니다. 14살 어린 나이에 4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그는 신문팔이를 하였습니다. 하루에 100부를 팔아야 가족이 끼니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에 신문을 받아 거리를 돌며 "신문 사세요"하고 외치며 한 부씩 팔았습니다.

그 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빨리, 많이" 파는 것이었습니다. 연구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은 방천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장 먼저 그 곳에 도착하기 위해 도중에 신문을 사려는 사람이 있어도 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일이 거스름돈을 주다 보면 손님을 빼앗김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스름돈을 하나씩 접어서 준비하였습니다.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욱 속도를 높이기 위하여 사겠다는 사람들에게 우선 신문을 돌리고는 신문 값은 나중에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방천시장에서 그는 모든 신문팔이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100부 이상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런 발상이 훗날에 대우기업을 일으킨 기초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과거를 잊고 앞만 보고 달렸던 이들이 한국의 큰 기업가들입니다.

 

바울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3;12-16)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