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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의 능력! 아멘의 축복! (고후 1:18-20)
역사는 어제나 선구자들에 의해서 개척되고 발전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뜻을 역사 속에 들어내실 때도 언제나 선지자를 불러서 한 시대에 선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즉 앞서가는 개척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시대의 선구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시대에 빛의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믿/ 그런데 선구자의 길은 언제나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때로는 뭇사람들의 비난과 조소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길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길이기에 우리는 그 길을 기쁘게 가야 할 줄 믿습니다. /아멘!/ 미국 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콜롬부스입니다. 그가 대륙을 발견하고 몇 차례 탐사를 마친 후에 고국에 돌아온 콜롬부스는 말년에 기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어 10년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거대한 땅을 발견했어도 한 평의 땅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콜롬부스가 발견한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해가서 부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숱한 부자들 보다 콜롬부스를 더 위대하게 추앙하는 것은 그가 자기 것으로 땅 한 평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새 대륙을 발견하고 개척한 선구자가 되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개척하는 선구자들입니다. 그런데 선구자들은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자신의 안일과 욕망과 싸워 이겨야 하고 자신 속에 들어 있는 악과 싸워 이겨야 하고, 불리하게 전개되는 환경과 조건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아멘!/ 그 다음 선구자들에게는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왜정 말기에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만주로 가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독립군에 지원을 했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세 가지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독립군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하나는 '너는 총에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또 하나는 '너는 굶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 다음에는 '너는 추위에 얼어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입니다. 한마디로 '죽을 각오, 희생의 각오'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선구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 민족이 해방의 기쁨을 누를 수가 있었고, 지금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으며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할/ 우리 모두 이 민족의 광복을 위해 생명을 바친 애국선열들에게, 그리고 조국의 평화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앞서가신 선구자들을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오늘 저는 아멘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모든 국가를 초월하고 통용되는 용어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할렐루야!'(주님을 찬양하라!)이고, '아멘!'(일반적으로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이고, '살롬'(평안)이고, '마라나타!'(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입니다. 특히 아멘은 제일 많이 쓰여지는 용어입니다. 성경에 아멘이라는 말이 구약에 26회, 신약에 51회, 총 77회 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멘'은 우리 기독교에서만 사용되는 천국 방언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전 세계의 성도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제목 소개!▶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 아멘입니다. 아멘은 크리스천만이 사용하는 고유의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철두철미하게 아멘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의 설교 속에 보면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 말의 원어는 '아멘, 아멘 에고 에이미'입니다. 예수님은 설교 때마다 아멘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멘은 하나님의 무한한 신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그리스도인의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교회는 아멘 공동체와도 같습니다. 교회는 아멘의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는 결국 아멘 인간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아멘 인간이 모인 곳이요, 아멘은 천국의 방언입니다. /할/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아멘이 많아집니다. 하나님은 아멘의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신앙생활의 높은 경지는 아멘 사람이 되는데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아멘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본문이 쓰이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주후51년경 2차 전도여행 중에 1년 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면서 세웠습니다. 이 교회는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많은 문제들이 발생되어 바울사도에게 심한 염려를 끼쳤습니다. 교회가 심한 분열병을 앓았고, 음란죄가 교회 안에 들어와 음행의 사건으로 어수선했습니다. 또 교회 안의 문제를 세상법정에 고소하여 시끄러웠습니다. 결혼과 부부생활의 성문제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과 우상숭배 하는 문제로 복잡했습니다. 나아가서는 성령의 은사문제로 다투고, 심지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다 없다는 것으로 논쟁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사도바울이 잘못된 그들의 신앙을 바로잡기 위해서 많은 눈물로 편지를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계하지 않으므로 직접 방문해서 책망하였으나 아무 성과 없이 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디도를 그곳에 보내어서 교회의 잘못된 신앙행위를 시정하게 했습니다. 몇 년 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도를 만나 교회소식을 들었는데, 그들이 많이 회계하고 사도 바울을 사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두 번째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고린도후서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하고서는 가지 못하고 연기를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그에게 심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이 바울을 중상모략을 했습니다. 바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들은 비난했습니다. 바울은 '예' 해 놓고 '아니오'하는 이중적인 사람이고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욕했습니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도 믿을 것이 못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린도에 오겠다고 말하고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의 어떤 말도 진실일 수 없다고 선전하면서 그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 말씀도 믿지 말라고 악 선전을 했습니다. '저렇게 거짓말을 한 사람을 어찌 믿을 수 있는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믿을 것이 없다.' 라고 바울의 적들은 떠들어댔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편지로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하나님에게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거짓 없는 약속이 그의 아들 예수 안에서 그대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단지 '아멘'으로 받기를 바란다. 다만 내가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증인이다. 결코 의도된 거짓말이 아니고 너희들을 위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이해하여 달라' 바울은 원래 고린도에 잠깐 들렀다가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으나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득이 그의 여정을 변경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계획 변경은 신실치 못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약속을 하고서도 종종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과 같이 더 좋은 유익을 위해서 약속을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순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기는 경우는 큰 문제입니다. '예' 하고 약속하고는 '아니오' 하는 경우입니다. 아담의 경우와 같이 처음에는 '예' 했는데 나중에 그 과일이 탐나서 '아니오' 했습니다. 자기 욕심에 의하여 '예' 해 놓고 '아니오'로 돌아설 때가 문제입니다.
▶아멘은 무슨 뜻입니까? ①'진실로'란 의미입니다. 진실은 참을 의미합니다. '옳습니다. 그대로 믿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확증할 때 아멘을 사용하셨습니다. 계3:14절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예수님은 아멘 자체만을 증거하셨습니다. ②'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강단에서 떨어지는 축복의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③'그렇게 하겠습니다.' 순종의 의미가 아멘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눅1장에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 하자 그때 마리아의 태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어다.'하고 순종하는 아멘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할/ ④'동의, 동감'의 표시입니다. '아멘'이라고 할 때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말씀이 주어질 때 아멘하며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대표기도를 드릴 때도 아멘하며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계22: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시자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화답했습니다. 또 다윗이 솔로몬을 자기의 후계자로 결정한 다음에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불러서 이 일을 차질 없이 잘 시행하도록 당부를 했습니다. 그 때에 아도니야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일부 추종자들과 모의하고 있어서 어수선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충성을 다 바쳤습니다. 특히 충신 브나야는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합니다.'(왕상1:26)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멘은 동의, 동감을 표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행위에 있어서 회중이 한 목소리로 화답하는 말이 곧 아멘입니다. 기도, 축도, 송영, 후에 모든 것이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라는 동의, 동감의 표시입니다. ⑤아멘은 성도의 최후에 소망이기도 합니다. 계22:20절에서 예수께서 재림을 약속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시자 요한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화답했습니다. 이 말은 아람어로 '마라나타'입니다. 이 말씀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었고, 요한계시록의 결론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오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 속에 사시기 바랍니다. 계1:7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아멘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①하나님의 약속은 아멘이십니다(20). 하나님은 아멘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에 대하여 아멘(진실)입니다. 또한 우리를 축복하기로 약속하심에 대하여도 아멘입니다. ②예수 그리스도는 아멘이십니다(19).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아멘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성육신도, 십자가의 죽음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아멘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요6:38절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또 마26:39절에서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할/ ③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아멘 하셨습니다. 요1:29절에서 세례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즉 인류의 죗값을 청산하시기 위해 재물로 오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분은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우리 구원을 완성하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롭다 함을 위하여 약속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할/아멘!/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언제든지 아멘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아멘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①아멘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멘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배언어이며 헌신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멘이라면 우리는 아멘을 하나님께 많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아멘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성경 가운데 최고의 아멘의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 늘 마음에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생각하기를 '자기 집에 오래 같이 살고 있는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15장에 보면, 이상 중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원망 조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사람은 너의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나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시고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아!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브라함이 '아멘! 믿습니다.'하고 외쳤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 말씀을 '아멘!'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할/ 이것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는 신앙의 모습이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신앙고백이며 이 믿음이 아멘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멘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그를 의로 여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아멘입니다. /할/ 믿음과 아멘은 일치합니다. 믿음 따로, 아멘 따로가 아닙니다. 신앙은 고백에 있습니다.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우리가 아멘 할 때 예수님을 나의 구조로 믿는 신앙고백이 되며 구원을 확증케 하는 계기가 됩니다. /믿/
②아멘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도 아멘으로 살았고, 그의 백성들 앞에서도 아멘으로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그 인격자체가 아멘이십니다.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오셨고, 십자가의 죽음도 아멘으로, 그래서 아멘의 열매로 부활의 찬란한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아멘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아멘의 화신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는 아멘의 발자취가 서려있습니다. 모든 기사와 이적의 역사가 아멘의 열매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당시 불치병으로 고통 받던 혈루증의 여인의 치료로 다 아멘의 열매입니다. /할/ 요8:29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아멘의 생활입니다. 아멘은 철저한 순종과 헌신과 자기의 희생의 습관입니다. 아멘은 철저한 순종과 헌신과 자기희생의 동반이 따라야 됩니다. ▶예수님의 일생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사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에 아멘하는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바로 아멘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인격을 닮는데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인격을 닮을 수 있습니까? 바울은 그의 비결을 빌2:5-8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또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절대 순종의 마음이 아멘의 마음입니다. 그분은 근본으로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을 아멘으로 비워 종의 자리에까지 낮아져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종의 모범'을 보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은 절대 아멘의 인격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 그런즉 '이제부터는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 것이라' 이런 삶이 아멘의 삶입니다. 엡2:2-3절에서 보면 우리들의 옛사람의 모습을 '불순종의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아멘'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 우리들의 옛사람의 모습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했는데 그 말도 '아멘'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진노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아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할/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예(아멘)하는 마음과 아니요 하는 불순종의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도 우리의 마음속에 이 두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교회로 가야 하나? 동창 모임에 가야 하나?'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참 행복한 성도들은 모두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 번 인사합시다.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셨군요!' /아멘!/ 오늘 이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요, 내 인생의 길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 날입니다. /아멘입니까?/ 오늘 머리 숙인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범사 속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여러분, 신령한 성도는 아멘의 성품이 자신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성도는 마음은 원이로되 아멘하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바울도 '마음은 원하는 선(아멘)을 행치 못하고 원치 않은 악을 행하는 도다! 오호라 이 곤고한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고 탄식했습니다.
아멘의 인격은 끊임없는 훈련과 연단과 자기 결단에서 이루어집니다. 모세가 한 번에 아멘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연단을 통하여 '그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다.'고 민12: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도 40년 연단 세월이 아멘의 사람으로 바꿔진 것입니다. ▶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한 장로님이 성경책을 약탕기에 넣고 다려서 꽉 짰더니 두 방울이 떨어지는데 '아멘!'하고 떨어지더랍니다. 참 의미 있는 예화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철저하게 아멘(진실로) 받아들일 때 믿음의 주인공으로 축복의 주인공으로 들어 쓰십니다. 그런 사람은 비록 실수가 있어도 허물이 보여도 하나님이 들어 쓰십니다. /믿/
③아멘은 그리스도인의 축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멘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성취의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의 아멘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 받는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의 약속을 '아멘!'으로 받는데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이든지 주시지 안달하시는 분이십니다. 롬8: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에 '아멘!'하십시다. 아들을 주신이가 그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주실 이에게 '아멘!' 하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격도 그 믿음 안에 있고, 능력도 그 믿음 안에 있고, 축복도 그 믿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겠습니까?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은 믿음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아멘으로 복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멘은 신비의 은혜입니다. 아멘의 성도는 복을 받습니다. 아멘하는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할/ 그렇다면 아멘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계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주님 앞에 책망을 들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잘 알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멘이다. 나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다. 그리고 나는 창조주의 근본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바로 이런 뜻이 그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멘이신데, 당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아멘이 없었습니다. '나는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너희는 충성이 없구나! 나는 참된 증인으로 십자가위에서 죽었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증인이 되지 못하느냐? 나는 창조의 근본이신데 너희는 근본을 제쳐놓고 허탄한 것에 매여 있느냐?'고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리켜 '눈이 멀고 가난하고 가련하고 불쌍한 교회'라고 책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불로 연단한 순금 같은 믿음을 사서 심령을 부요케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좀 보게 하라'고 처방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든 문제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한마디로 진단하면 '아멘!'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충성이 없었습니다. 순종이 없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멘이 없다는 것은 그 속에 예수가 없다는 것이요, 그렇다면 그 속에 능력도 없고, 축복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얼마나 불쌍한 교회인가? 여러분, 이런 교회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교회의 일원입니다. 짧게 말하면 라오디게아 성도같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아멘입니까?/할/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교회요, 아멘의 교회라고 우리 주님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계3:7-8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여기 적은 능력이 무엇인가? 바로 아멘과 믿음입니다. /할/ 빌라델비야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대조적인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야 교회는 아멘이 있고, 라오디게야는 아멘이 없는 교회입니다. 아멘이 있는 교회는 능력을 받고 축복을 받고 하늘 문이 열린 교회입니다. 아멘은 하늘 문을 열게 합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능력이 오고, 축복의 문이 저절로 열리게 됩니다. 성경의 법칙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다 능력을 받고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아멘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④아멘은 맹세의 뜻이 있습니다. 신27:15절에 보면 모세가 회중을 향하여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자,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했습니다. 여기서 아멘은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맹세하고 실천하겠다는 그들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앞에 약속은 진실해야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한나라는 여인은 자식을 낳지 못해 성전에서 뜨겁게 서원 기도하다가 주의 종 엘리 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아멘으로 받고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한나는 서원한 그대로 아이가 젖을 떼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약속도 잘 지켜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신용사회가 되었습니다. 약속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약속은 지켜야 하고, 형제간에도, 친구간에도 이웃 간에도 약속은 잘 지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사람과의 맹세도 중요한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약속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잊어버릴 것이 따로 있지 어찌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⑤아멘은 주님을 찬양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대상16:36절에 다윗이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라고 하자 모든 백성들은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시106:48절에서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계5:13-14절에 보면 하늘 위와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 위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하자, 네 생물은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열심을 다하여 찬송생활을 해야 합니다. 약5:13절에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항상 아멘으로 화답하며 살아가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찬양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인들은 은혜를 노래하며 아멘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고 화답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을 외쳤습니다. 몸을 굽혀 경배하며 아멘을 외쳤습니다. 느8:6절에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할/
⑥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와 섭리에 아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는 신앙은 귀한 신앙입니다. 롬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또 욥의 고백을 보게요! 욥1:21-22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⑦우리는 이제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20).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아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의 삶을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요리문답에 보면 사람들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삶 전체를 바쳐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멘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우리에게는 은혜와 축복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제롬이 초대교회에 대하여 말하기를 '공중기도와 찬송가의 끝에 백성들이 내는 아멘 소리는 바다의 파도소리와 우렛소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 66권속에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무려 32,500가지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지금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아멘의 하나님이십니다. /할/
▶설교의 대가이신 스펄죤 목사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⑴'하나님의 약속은 광산의 광맥과 같다.'고 했습니다. 금광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파고 들어가서 감추어진 보화를 캐냄으로 자기를 부요하게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입니다. ⑵'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무기가 가득 차 있는 무기고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 영적인 싸움에 필요한 전신갑주를 입고 필요한 무장을 갖추어서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⑶'하나님의 말씀은 곡식창고와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굶주린 사람이 들어가서 필요한 양식을 마음껏 공급받을 수 있는 창고입니다. 하나님의 창고는 온 인류에게 주고도 남을 수 있는 양식이 있기 때문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할/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예와 아멘'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우리에게 약속한 어떤 것도 없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하늘나라에 가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뒤로 물러나 후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진행 중에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할/
⑧성경에는 노멘!(아니요) 할 때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단3장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온 백성에게 절하라고 했을 때 절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명령 앞에 '아니오'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아니오'했습니다. 단3:16-18절을 보면 그들의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왕의 명령에 노멘했던 그들은 7배나 뜨거워진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이것이 왕에게 노멘했던 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 '예'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풀무불 속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단6). 다른 신에게는 기도하지 못하도록 왕의 조서가 내려진 것을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결국 이 사실이 발각되어 사자 굴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는 '예'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바벨론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아니오'하면 그 결과는 '아니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하기 위해 이 세상에 대해서 '아니오' 할 때 하나님은 '예'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⑨능력을 받고, 축복을 믿는 믿음으로 아멘 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히6:14절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능력이 올 것을 믿고, 축복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아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질 것을 확실히 믿고 아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멘은 은혜입니다. 아멘의 삶은 깊은 곳으로 그물을 내리는 삶이요 만선의 삶이요 축복의 삶입니다. 행복 속에 사는 성도들은 세 가지 말을 자주합니다. 그 말은 '할렐루야! 샬롬! 아멘!'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 만국 공용어이며, 천국 언어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가 아멘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아멘 소리가 점차 사라지자 교회가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냉랭해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아멘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또 한 번 강조합니다. 성도는 아멘을 자주 해야 하고, 크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신27:26). 또한 아멘은 예수님이시며(계3:14), 하나님이 아멘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멘을 통해 창대케되었습니다. 요셉은 아멘을 통해서 형통케 되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아멘함으로 수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멘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아멘함으로 눈을 떴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아멘하고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아멘하는 사람들 중에는 결코 망하는 사람이 없고, 잘못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멘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택해 높이 들어주시고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아멘에는 '입술로 하는 아멘, 마음으로 하는 아멘, 행동으로 옮기는 아멘'이 있습니다. 입술로 하는 아멘이 마음에 감동을 주어 행동으로까지 이어져야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에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 소명에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가 받은 사명에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해야 할 헌신에 아멘, 내가 받을 복에 아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2009년 11월 8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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