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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라! (살후 2:13-17)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고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활동하는 어느 어린 소녀의 기도문입니다. '하나님! 고마워요! 오른 손으로 글씨 쓸 수 있게 해 주시고, 두 눈으로 엄마, 아빠 얼굴 볼 수 있게 해 주시고,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세계적인 종으로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증거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런 목사님의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는데 그때 목사님이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했다고 합니다. '우리 딸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목숨 잃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우리 딸이 두 다리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왼쪽 다리만 잃고, 오른쪽 다리가 남았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부인을 향하여 '여보! 우리 딸에게 성한 두 팔과 이목구비가 있지 않소, 우리 잃어버린 것은 헤아리지 말고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이 얼마나 멋있는 신앙인의 고백입니까? 사실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과 없는 것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리고 슬퍼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잃어버린 것, 없는 것은 바라보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하나님, 아직 이만큼 남아 있으니 감사합니다.' /아멘!/ 어떤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행복합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다릅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강합니다.' 누가 진짜 믿는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진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구별된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진짜 강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아멘!/ 감사라는 말은 '생각한다.'에서 나온 말로써 '깊이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니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야다'라는 말로 '마음의 샘 줄기'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마음에 따뜻한 샘이 흐르는 사람은 감사가 나오고 마음에 메마른 사람은 감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신약성경에 많이 쓰이는 감사는 '마음의 줄기가 달게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들어올 때는 우리의 마음의 줄기가 쓴 물로 왔다할지라도 나갈 때는 단물로 변화되어 흐를 줄 믿습니다. /아멘!/ ◀제목 소개!▶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입니다. 먼저 추수감사절의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성경적인 근거요, 또 다른 하나는 청교도들에 의하여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①성경적인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를 보면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이 있는데, 가을 추수 후 수확을 수장한 후 지키는 절기인 수장절이 오늘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23:16).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이미 3대 절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출23:14절에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는 유월절(무교절)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를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애굽을 나올 때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열 가지의 재앙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첫 생명을 치실 때, 유대인들만은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그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유월절을 지키고,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무교절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오순절(맥추절)로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과 첫 번째 수확하는 곡식인 보리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로 우리가 드리는 맥추감사절입니다. 이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날로 초대교회가 세워진 날입니다. 셋째는 초막절(수장절, 칠칠절)로서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들과 포도와 무화과 추수를 감사하며 또 출애굽하여 가나안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지내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킬 때에는 광야로 나아가 초막을 짓거나 텐트를 치고 한 주 동안 그 안에서 조상들이 겪은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 보내는 절기입니다. 이 세 절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일을 시작하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일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신앙은 곧 감사의 삶이었습니다. /할/ ▶특별히 이런 절기를 지킬 때, 잔치하며 즐겁게 지키라고 합니다(신16:14-15). ⑴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宴樂)하여 잔치를 배설하라'고 했습니다. 온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⑵온전히 즐거워하라! 이것은 '마음껏 즐거워하라, 충분히 즐거워하라'는 뜻입니다. ⑶가장 좋은 것의 상징인 첫 열매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는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봉헌의 정신인데, 신앙생활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봉헌 생활'입니다. 나의 순전한 마음을 드림으로써 봉헌하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드림으로써 예배하고, 나의 소중한 것을 드리고, 봉헌하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봉헌의 정신입니다. /할/ ②오늘 세계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저 미 대륙을 찾아갔던 청교도들의 감사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이미 미국을 향해 떠나기 전에, 영국의 종교박해 때문에 1609년 네덜란드로 제1차 순례의 길을 떠났던 순례자들입니다. 그들은 '암스테르담'과 '레이던'에서 12년 간이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도 그들이 바른 신앙 생활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또 카톨릭의 박해를 받습니다. 그 후 그들은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갔으나(1620.7.20)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장령을 발표하고 저들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다시 미국을 향하는 새로운 순례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나아갔던 땅 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원래는 '북 버지니아'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이미 영국의 왕권이 거기까지 미쳐서 그곳에서도 바른 신앙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겠다는 것을 먼저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허드슨 강 유역, 그러니까 오늘의 '뉴저지' 지역에 자리를 펴려고 지명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는데, 선장이 거기의 항구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이 사람들을 속이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65일 항해 끝에 '플리머스'라는 장소에 배를 정박하고 사람들을 내려줍니다. 이들은 아메리카의 지형을 모르니까 '여기가 허드슨 강이 있는 뉴저지 지역이겠거니' 생각하고 내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102명이 도착했는데 1년이 지나면서 반수 이상이 풍토병과 영양결핍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옥수수 씨를 얻어다 심고 경작해서 석 달 먹을 양식을 수확해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처음 한 것이 예배당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번 잘 믿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그래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자' 그래서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가서야 자기 집들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했습니다. 저들이 허드슨 강가로 가려고 했었는데, 거기는 당시에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을 찾는다고 탐험대를 조직해 그곳에 와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성이 난 원주민 인디언들이 백인이면 무조건 잡아 죽였는데 가장 극심하게 전쟁을 치렀던 장소가 바로 뉴저지 지역이었답니다. 만약 원래 가려고 의도했던 그곳에 배를 정박했다면 전혀 무장하지 않은 이 청교도들이 십중팔구 인디언들에 의해 죽었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사람의 거짓말까지 사용하셔서 그들을 살 수 있는 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길은 그 역사 배후에서 계속 준비하셨습니다. 애굽에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기 전에 요셉을 먼저 보내 준비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 눈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추수감사절이 유래가 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후 1789년 초대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 승리와 헌법제정을 축하해서, 11월 26일(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이날 전 미국인들은 교회에 모여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서로의 축복과 감사를 기원하였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1921년부터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먼저 감사의 차원을 세 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하고 건강을 주셔서 감사하고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풍성함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이것, 저것을 주셔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 단계의 감사인데 이 감사는 일반적인 감사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철학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은 깨달음을 통해 가지게 되는 감사입니다. 전에는 그것이 은혜인줄 몰랐고, 축복인줄 몰랐는데 깨닫고 보니 그것이 감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한 단계 더 높은 감사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신학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감사합니다. 이것이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할/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여기서 사도 바울이 감사할 이유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는데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땅히'라는 말은 문법 상 '반드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반듯이 절대로 기필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감사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①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3절에 '하나님이 처음부터 택했다.'는 말은, 태초부터 그리고 영원 전부터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엡1:4절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또 시139:13절에서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그리고 갈1:15절에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할/ 성경 전편에 유유히 흐르는 사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우리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바울사도는 그 사실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 선택이 감사의 조건이 됩니까? 예를 들면 언제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 거리 벽에 '당선사례, 감사합니다.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는 글로 동네를 도배한 것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뽑아 주셔서 그러니까 선택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입니다. 여러분! 지방의원이나 국회의원만 뽑아주어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금 배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반장만 되어도 뽑아 선택해 준 학생들에게 먹을 것도 주고, 상품도 준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더 극성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뽑아 준 것이, 선택해 준 것이 고마워서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선택이 그만큼 귀합니다. /할/ 지금은 좀 시들해진 것 같은데 전에는 미스코리아선발대회가 큰 인기였습니다. 그 미인대회에서 진선미로 뽑힌 미스코리아들을 보면 눈물을 흘리며 감격들을 합니다. 사실 눈물을 흘릴 만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택은 그만큼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력시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나가서 기다리다가 뽑혀 일터로 갈 때 얼마나 그 발걸음이 가볍고 기쁘게 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려도 써 주는 사람이 없어 시간만 보내는 사람은 불안하고 속이 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자신을 불러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합니다. 하물며 일하기 위하여 선택을 받는 것도 즐거운 일인데 천국에서 영원히 주와 같이 살기 위하여 선택을 받은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고 감사할 일인가? /할/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세상 그 어떤 선택보다도 비교할 수가 없는 선택입니다. /믿/ 세상에서 뽑힌 선택은 찰나적이요, 순간적인 기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선택된 이 선택은 영원한 하나님의 보증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더욱 감사한 것은 우리가 선택될만한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칼뱅'은 이것을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만일 신체조건을 보고 환경을 보고 경제를 보고 인격과 지식조건 등을 낱낱이 따져서 선택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저 같은 사람은 그 측에 끼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조건 없이 선택하신 은혜로 나 같은 죄인이 선택되어 주의 종이 되어 오늘 이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감사할 일입니다. /아멘!/
②거룩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13절에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창3장 이전의 인간은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타락사건 이후 인간은 날이 가고 해가 더해 갈수록 더욱 더 무서운 죄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죄를 향하여 달려가던 사람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그냥 내팽개쳐 주지 않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분을 만나려면 사람은 거룩해져야 합니다. 추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입는 옷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집니다. 작업 시에는 작업복을, 파티에는 야회복을 입고, 결혼식 때는 면사포를 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설 때 입는 옷은 거룩의 옷, 의에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려면 거룩해져야 하는데 내 힘으로는 나를 거룩하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아멘!/ 그런데 그 능력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엡4:22-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에게 그렇게 살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노력하면 노력 한만큼, 결심하고 결단하고 몸부림쳐 지키려고 하는 자들에게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막9: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하려고 힘쓰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할/ 우리가 예수 믿기를 작정하고 구원받는 것은 새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그 새 옷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마치 아침에 다림질해서 입고 나간 옷이 때가 묻고 구겨지는 것처럼 추해지고 구겨지게 됩니다. 그때마다 성령께서 거룩한 영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세상을 살면서 때묻을 수도 있습니다. 욕심으로 신앙이 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거룩하고 깨끗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 주의 성령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③구원을 얻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13절에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본문에 구원의 조건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14:6).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 구원을 받습니다. 행2: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또 행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구원은 오직 예수입니다. 여기서 구원은 죽어서 천당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존재가 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는 그 어떤 곳에서도 건짐을 받습니다. 실패에서도, 낙심과 좌절에서도, 질병에서도, 파멸에서도 건짐을 받고 회복의 축복을 누리기 됩니다. /아멘!/ 출애굽 시 이스라엘이 사면초가에 있을 때 믿음의 사람 모세의 외침을 들어보세요! 출14:13절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그 위대한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시42: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오늘 이런 구원의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④불러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14절에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주셨습니다. /믿/ 여기 '이를 위하여'는 '선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을 주시려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모든 인간의 필요가 '이를 위하여' 속에 들어 있습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 성경에 보면 두 가지 부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탄의 부름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하시고, 축복하시고, 사랑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유혹하고 파멸을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요10: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크게 빨리 대답할수록 복을 받지만, 사탄의 부름에는 대답하면 망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부르심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가까이 곁에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혼자는 못삽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배신을 때리고 툭하면 배반하고 떠나갑니다. 자기 유익이 없으면 떠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떠나가도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함께 하셔서 위로해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다시 회복하게 하십니다. /할/ 사실 누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문제가 풀리고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그와 어떻게 교제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곁에 머물며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십시오, 그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십니다. /할/
⑤영광을 얻게 해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1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이 받은 영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현세에서 받은 영광과 내세에서 받은 영광이 그것입니다.
▶현세에서 받는 복이 귀합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즉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믿는 자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 딸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들 딸 되는 권세가 참 귀합니다. 아들, 딸을 키워보아서 아시겠지만 언제 지가 돈 벌었다고 실컷 놀다 와서는 '내 밥 내 놔라'고 큰소리칩니다. 아버지의 것이지, 어떻게 자기 것이 됩니까? 그래도 내 밥 내놓으라고 하고, 옷이 떨어지면 벗어버리고 새 옷 사내라고 야단입니다. 등록금 통지서가 나오면 걱정 안하고 당연히 무조건 내 줘야 되는 것으로 여기고 삽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소위 아들, 딸의 권세입니다. /할/ 그런데 그 아들, 딸의 권세를 여러분들이 돈을 주고 샀습니까? 내가 공로를 세워 권세를 얻었습니까? 아닙니다. 전부 공짜로 받은 것입니다. 맞습니다. 거저 받은 것입니다. /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가진 자에게 주님은 세 가지의 열쇠를 주셨답니다. ⑴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마16: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또 마18: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⑵만능 열쇠를 주셨습니다. 마7:7-8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⑶하늘보고를 여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말3: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은 세상의 재벌 집에 아들, 딸이 되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귀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귀한 영광을 값없이 시시하게 생각하고 거둘 떠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돈을 주고 사려면 평생을 벌어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은 것 밖에 없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거저 주셨습니다. 자녀가 된 권세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보고는 엄청납니다. 그 창고 속에 건강도 재물도, 행복도, 축복도, 성공도 다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내세의 영광이 큽니다. 기독교의 축복은 오늘에 소망을 두지 않고 미래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칭찬이나 영광이 없더라도 앞으로 받게 될 칭찬과 영광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롬8:18절을 보세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할/ 본문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얻게 된 영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미래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창세전에 작정하셨으며(엡1:4) 그 완성은 주님의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살후1:10-12). ▶독일과 불란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불란서의 어느 예수님을 잘 믿는 가정에 독일의 비행기가 폭격을 가했습니다. 집이 다 타고 가구하나 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이 와서 '다 잃어버렸군요!' 위로하고 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가고 난 뒤 남편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저분들이 다 잃어버렸다고 소망이 없는 듯 말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당신이 이렇게 건재하고 아이들도 무사하고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데 어찌 다 잃어버렸다고 하는지 모르겠네' 그르더랍니다. /할/ 이 사람은 재난 가운데에서도 부인이 자기 곁에 있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했습니다.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계심을 감사했습니다. 이런 감사를 우리 하나님이 기대하십니다. /믿/
⑥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16절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랑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징표가 요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롬5:8절에서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할/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멘!/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⑴아낌없이 주신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⑵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치 않습니다.
⑶늘 풍성한 사랑입니다. 마지못해 주는 감질내는 사랑이 아닙니다.
⑷자상한 사랑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앉고 일어서는 것까지 돌보고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머리칼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세심한 사랑입니까? /할/
⑦영원한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16절에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그렇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할 조건이 충분합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의 영원한 위로를 받고 사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소망의 핵심은 주님의 약속된 말씀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것'과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험하고 괴로움이 많은 세상에서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돕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서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이며, '세상을 이길 평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 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무너지고 변질되고 없어질 것들입니다. ▶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까? ⑴이 세상의 것은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행복도, 기쁨도, 평안도, 이 세상 것은 잠깐으로 끝나고 맙니다. 우리의 생명도 길지 않습니다. 천년, 만년 살지 못합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할/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시간적으로, 찰나와 영원은 비교가 안 됩니다. ⑵그곳은 정말 살기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죄도, 질병도, 경제위기도 미움도, 싸움도, 교통난도, 걱정거리도 없습니다. 인간이 수천 년 동안 꿈꾸어 오던 파라다이스의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믿/ ⑶주님이 그곳에 계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찬송 작가 '헌팅턴'은 찬222장에서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라고 노래를 했습니다. 남녀가 백년가약을 맺고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결혼식장을 떠나 삶을 시작하지만 그러나 결혼해서 백년을 함께 사는 부부는 거의 없습니다.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아내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어떤 감사를 해야 합니까? ①넘치는 감사를 하라! 골2:7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②말로 감사하라! 엡5:4절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많은 은혜를 입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③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감사하라! 골3:16절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④물질로 정성껏 감사하라! 출23:15절 '하나님은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3:9-10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⑤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으로써 감사하라! 시50:14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했습니다. ⑥표현으로 감사하라! 운동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겼을 때 그 자리에 앉아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얼마나 용기 있는 모습이고 표현하는 고백적인 모습입니까. 백 편의 설교보다 더 은혜가 됩니다. ⑦깨닫는 감사를 하라! 신앙생활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이 주는 진정한 힘은 어디에서 주어지는가 하면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사람이 깨닫게 될 때 거기서 힘이 나오고, 거기서 자발적인 동기가 발생되고, 모험심과 전진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용기가 발생되고, 기쁨과 감사한 마음이 자리잡게 됩니다. 눅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고침을 받은 후에는 그 중 한 사람만이 찾아 와서 감사를 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상종하기를 꺼려하던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렇게도 무시를 받고, 죄인 취급을 받고, 짐승 취급을 받고 살던 그 사마리아 사람만 다시 찾아와서 정중하게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모두 양반처럼 행세하며 교만하게 살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문화인이고 누가 도리를 아는 사람이고 누가 깨닫는 사람입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홉은 모두 어디 갔느냐?' 그래서 깨닫는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세진 것을 오랜 후에까지 기억하고 생각하고 고마워하고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그것은 쉬운 것 같지만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값은 이 같은 은혜를 아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도리를 알고 느끼고 갚는 데 있습니다. /아멘!/ ⑧믿음으로 감사하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 감사의 사람, 십일조의 사람, 석유의 왕이었던 록펠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재벌 록펠러가 우리나라 돈으로 약70억 원을 십일조로 바치면서 '만일 내가 내 첫 월급 6달러에서 십일조 60센트를 천국 밭에 심지 않았다면 내가 오늘날 70억 원을 십일조로 바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그런 록펠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광산업에 손을 대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친구에게서 금광을 하나 인수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미 캐내 갈 금은 다 캐내 갔습니다.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폐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은행에서 계속 빚 독촉은 날아옵니다. 또 광부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니까 그들이 폭도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는 결심을 하고서 광산 속 깊은 데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마음으로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의 깊은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깊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 깊이 파라.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면 아무리 깊게 파도 금이 나올 것 같지는 안았습니다. 그러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베드로가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축복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록펠러는 광부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깊이 파내려 갔습니다. 한참 파내려 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펑!>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흔한 지하수와는 달랐습니다. 분석해 보니까 석유였습니다. 유전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 왕이 되었습니다. 당대 세계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된 것입니다. /할/ 그런 그가 죽을 때 자손들에게 유언하기를 '나의 모든 사업은 십일조 축복으로 된 사업이니 너희는 이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사의 교훈으로 삼아라'고 유언함으로 지금도 록펠러재단에는 십일조만 계산하는 십일조 국이 있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 어떤 문제라도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하나님 앞에 더 매달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그 어떤 문제라도 해결의 문이 있습니다. /아멘/ 시50:23절에서 결론을 맺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2009년 11월 15일 추수감사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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