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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일설교]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셨다[2011/04/1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8. 09:10

♣2011년 4월 17일  종려주일/고난주일
  성경 ; 사50:4-9, 빌2:5-11, 마27:11-54
  제목 ;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누누이 들어온 말이 ‘생존경쟁(生存競
爭)’라는 한문으로 된 사자성어(四字成語)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는 이 말을 ‘사람을 비롯한 생물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보다
더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서 하는 다툼이다’라고 풀이하고 있
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
과 싸우거나 다투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생존경쟁’이라는 단어에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끓어버리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네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리는 한 자리 뿐인데, 그 자리를 차지하
려는 사람은 여럿일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말할 것
도 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노리는 사람들은 서로 그 자리
를 차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당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고 생각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
까지나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당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할 뿐,
그 후에는 주어진 결과에 흔쾌히 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 욕심을 쉽게 버리
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 중에는, 금전
이나 폭력과 같은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자리를 차
지하고자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세속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거울이 되어야 할 종교인들까지도
이런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살
더라도, 최고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종교인들은 그런 모습을 보
여주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십자가의 진리를 추구하는 목
사님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하건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
니,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의 추태는 지금 이 시대에만 있는 게 아니
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겉모습
만 종교인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을 뿐, 실상은 세상 사람들보
다 더 추하고 더러운 일들을 행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된 것도, 결국은 그 당시의 종교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
투한 나머지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의 종
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예수를 더 좋아하고 따르자, 예수님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예수님의 인기가 식어질 줄 알았는
데,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님께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
는 더욱 높아져만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드디어 예수
님을 잡아 죽이기로 마음먹고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유대총독인 빌라도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
복음 27장 17절과 18절을 보면, 빌라도는 유월절 아침에 총독
의 관저 앞에 모여든 군중에게 “내가 누구를 놓아주기 바라는
가? 바라바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인가?”하고
물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빌라도가 이렇게 물은 것은 ‘예수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유대 지도자들이 시기하
여 예수를 붙잡아 온 줄 잘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 당시의 권력자들인 종교인들이 예수를 시기 질투
한 나머지,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애매한 태도와 그릇된 결정에 따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아무런 능력이 없어서 그처럼 허무하게 십
자가형을 당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붙잡
히실 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쳐서 잘
랐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신 다음, 제자들을 바라보
시면서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도 더 넘는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전혀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억울하게 사형언도를 받고 죽으셔야 했던 것은, 이미 하나님께
서 정해놓으신 각본에 따르기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계
획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십자가의 사건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하나님
께 달려 있음을,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요컨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
을 알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사건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시기를 “누
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
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마16:25)”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를 “너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
용이 있겠느냐? 생명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마
16:26)”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로되, 자신이 살고자
해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
렇게 할 경우에는 영원히 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살 경우,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고자 자기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영
원히 보존하도록 섭리하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런 진리를,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죽으신 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람
들이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죽인 그 예수를, 하나님께서는 다
시 살리셨습니다. 요컨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십자가
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주님처럼 살아야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인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 인류에게 어떤 은혜와 사랑을 베
푸셨을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죄에서의 해방’입니다.
우리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려고, 아무런 죄와 잘못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영양주사만 맞으면서 병
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인이었는데,
의사가 아무리 진찰을 하고, CT촬영과 MRA검사를 해봐도, 병
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에 의뢰했으나 아무 이
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심리학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수 없이, 내과의사와 정신과 의사가 함께 의견을 모아서
그 병원의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과 상담하는
중에, 그 여인은 어려서부터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과, 그리고 결혼하기 전에 그만 순간의 잘못으로 정조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 일로 인해서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
고, 그와 더불어 점점 신체에 마비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
입니다. 그리고 숨구멍에도 마비가 오고, 식도도 기능을 잃게
되어서, 어떤 음식도 소화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갖고 있는 질병의 원인은, 바로 죄의식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여인
에게 죄의 용서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해준 다음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당신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예, 압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모든 죄는 이미 용서 받았습니다. 용서받은
증거로 성찬식을 행하실까요?”  
    목사님은 성찬기를 가지고서 단 둘이서 성찬식을 행했습니
다. “이것은 당시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살입
니다. 이것은 당신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
입니다.”라고 말한 다음, 떡과 포도즙을 함께 나눴습니다.
    목사님은 간곡하게 기도한 후에 성찬식을 끝냈습니다. 그런
데 놀라운 것은, 성찬식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마비 상태가 풀
렸다는 사실입니다. 영양 주사기를 뽑고, 그녀는 국과 밥을 먹
을 수 있게 되었으며, 차츰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를 얽매고 있던 죄의 굴레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을 열심히 구하고 있습니다. 의식주에 관한 것은 물
론이고, 명예와 권력과 재물까지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
유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얻게 되더라도, 진정으로 마음의 만족과 기쁨이 없게
된다면, 그 모든 노력은 헛수고에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가진 것은 다른 사람보다 그리 많지 않아도, 그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서도 마
음의 평안이 없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런데, 마음의 평안과 기쁨은, 세상의 그 무엇을 더 얻게 됨으로
써가 아니라, 죄에서 해방될 때에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가지 진리를 십자가에서 다 보여주셨습
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
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문제는, 사람들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고자 하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행복
하게 살고 싶어서 세상 것을 열심히 구하려고 애쓴다는 점입니
다. 하지만, 세상 것은 제한되어 있고, 그것을 얻고자 하는 사
람들은 많기 때문에, 서로 생존경쟁을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사람들이 생존경쟁을 하다보면, 자연히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당한 방법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당
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죄를 짓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의 지배를 받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애써 죄의식을 떨쳐버리고 싶지만,
죄라고 하는 것은 본래 피 흘림의 제사가 없이는 사라지지 않
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옛날 유대나라에서는 짐승을 잡
아 그 피를 바쳐서 속죄하는 의식을 행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는 모든 결과를 놓고서 한 번 따져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자기 주관대로 행복하게 살고자 해서
세상 것을 열심히 구했을 때,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애당초 하
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설계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그 행복이란, 보통 사람
들이 생각하는 행복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행복입니다. 하나님
께서 주시는 행복은, 육신적인 만족을 누릴 때에는 갖게 되는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인생을 살아감으로
써 누리게 되는 기쁨과 만족인 것입니다.

    그 올바른 인생길을, 주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보여주셨
습니다. 요컨대,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헌신하고 희
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의 길이 바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야 할 올바른 인생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 자세히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과 동일한 권리를 갖고 있었지만, 그
권리를 요구하거나 집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모든 권리와 영광을 다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위를
훨씬 더 낮추어서,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
니까,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인간의 자리에서 더
낮은 종의 자리로, 종의 자리에서도 더 낮은 죄인의 자리까지
낮아지셔서, 끝내는 죽임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통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사셨던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에 올라 더 큰
영광을 누리려고 애쓰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리면
서 점점 더 낮아지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높
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은 스스로가 높아지고자 애
쓰고 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방을 높여줌으로써 자신도
높아지게 되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
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강렬한 욕심 때문에, 상대방을 헐뜯거나
깎아내리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
고 미련한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진정한 겸손을 모르거나 부족하
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나를 낮추어야 상대방을 높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
가 싫은 것입니다. 요컨대, 자존심(自尊心)이라는 인간의 본능
적인 성품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라
고, 국어사전에서 풀이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존심이란 십자가
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
를 버려야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나를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
복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게 되는 것
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
나님의 권한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행복하게
되고자 애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살아가
야 합니다. 물론, 그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욕을 먹고 수모를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만이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
은 예수를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예수님을 향하여 욕을 퍼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고, 성경에
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담
당했던 그 집행관은, 그동안 이루어졌던 모든 일들을 보고 말
하기를 “이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고백했
습니다. 백부장의 이 말은, 결국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
한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항하여 조롱하며 비웃었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백부
장은 예수의 참모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예수님
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봤던 그 사람,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
형에 처하는 일을 직접 담당했던 그 사람만은, 예수를 다르게
평가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실하게 십자가의 길을
갈 경우, 우리를 향하여 조롱하거나 비웃을 사람들이 많을 것
입니다. 하지만, 바보처럼 충실하게 예수를 믿는 우리를 정당하
게 평가해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 마치고 천국에 갔을 때, 우리 주님께서 우
리를 적극 변호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은 미련스럽게 예수를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세상적으로 손해가 나고 피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조금
은 바보같이 우직하게 예수를 믿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
드시 그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썩어 없어지겠지만, 우리 주님을 위해서 애쓰고
노력한 모든 아름다운 일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를 믿되, 성실하게 십자가를 지는 저와 여러
분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 일로 인해서 분주하기 때문
에 십자가를 대충 짊어지고 가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열심히,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시는, 축복된 심령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스와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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