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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에도 왕성한 활동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65세에서 75세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7. 12. 14:25

SOCIETY 2015.06.02주간경향 1128호

[유인경이 만난 사람]96세에도 왕성한 활동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65세에서 75세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행복하게 계속 일하는 이들은 드물다. 60세로 정년이 연장되어도 50세가 되면 벌써 직장에서 눈치가 보이고 퇴직 후에는 가족의 눈치가 보인다.

한국 철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는 96세인 요즘도 곳곳에서 강의를 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책도 집필 중이다. 1960~70년대에 김형석 교수의 철학과 인생론에 관한 책을 보며 감동받았던 이들은 50년 후에도 건재한 김 교수가 경이롭기만 하다. 강의와 저작활동 외에 강원도 양구군에 있는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에 저서와 원고 등 1000여점의 자료와 평생 모은 도자기를 기증하는 등 풍성한 만년을 보내는 김형석 교수를 만났다. 40여년 전 책에 소개된 사진보다 조금 주름진 얼굴의 김 교수는 보청기, 틀니, 지팡이 등 노인용품(?)이 전혀 없이 그 어떤 질문에도 흐트러짐 없는 답을 했다.

96세에 그토록 왕성한 활동을 하는 건강 비결은 무엇인가요.
“건강 비결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 건강 비결입니다. 친구들과 ‘누가 더 건강한가’를 가끔 이야기하는데 그 기준이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는가입니다. 저도 50대까지는 그저 일만 열심히 하느라 건강은 신경도 안 썼습니다. 그러다 50대 후반에야 운동이나 하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테니스도 짝이 있어야 하고 골프 같은 운동은 너무 시간과 돈이 들어서 안 되고 등등 찾다가 혼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영을 선택했어요. 그 후 30년이 넘게 매일 수영을 합니다. 운동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하고, 건강은 결국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덕분에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곳곳을 다니며 강의하고, 쓰고 있는 글도 연말이면 책으로 나올 겁니다. 사상이 들어간 수필집입니다.”

교수님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다른 직업에 비해 학자들이 유독 장수하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학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합니다. 돈이나 명예에 욕심 없이 그저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기쁘니 스트레스도 덜 받아 장수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어릴 때 몸이 약했고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궁핍한 생활을 해서 동생이나 아들에 비해 키도 작습니다. 평소 건강이 안 좋아서 항상 무리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일이 많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아요. 다음 주에 강의가 세 군데 있는데 강의할 내용을 미리 준비해두고 다른 약속은 줄이고 산책을 하면서 조용히 구상을 합니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두니 스트레스도 안 받습니다.”


최근 인문학과 철학 열풍이 뜨겁습니다. 철학자가 베스트셀러 저자나 대중스타 같은 인기를 누리기도 하고요. 왜 지금 철학 붐이 일까요.
“하나의 과정입니다. 서양사회의 성장사를 보면 인문학 시대가 몇 백년 지속된 후에 사회과학이 이어지고 다시 자연·기계과학 시대가 왔습니다. 인문학으로 시작한 뿌리와 밑동이 튼튼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 과정을 밟지 못하고 갑자기 기계과학만 강조되었죠. 압축성장을 하며 공장 지어서 돈 벌면 된다는 사고가 만연하다 보니 정신적 가치가 빈곤해졌습니다. 왜 사는지 목적을 잃어버렸고, 그 가치를 찾다 보니 인문학과 철학에서 답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인문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철학적 사고, 역사적 관찰, 문학적 상상력입니다. 인문학적 사유와 가치관이 인간의 존엄성, 삶의 가치, 윤리성 등에 도움을 줍니다. 이제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그런 윤리성 등이 요구되니까 철학이나 인문학에서 답을 찾게 된 것입니다.”

인생철학, 정치철학 등 철학이라는 말은 참 자주 쓰이고 ‘그 사람은 철학이 부족하다’라는 말도 많이 합니다만, 정작 철학의 바른 의미를 아는 이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시작에서 끝까지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또 묻는 것이 철학의 기본입니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인정해줄 수 있는 가치, 그것이 생활의 진리이고, 철학입니다. 일상에서 예를 들자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무엇인가’란 말은 정치에 대한 종합적 사상을 뜻합니다. 철학은 개인적으로 보면 인생관이고 사회적으로 보면 가치관이죠. 더 높게 보면 그 분야에 있어 전문 지도적인 사상, 더 넓게 보면 세계관을 의미합니다. 법학도 민법·형법 등으로 나뉘지만 왜 법이 있나, 법이 사회에 주는 영향이 무엇인가, 사회질서와 어떤 관계가 있나를 연구하면 법철학이 됩니다. 미국의 경우 군인이 대령이 되면 국방대학원에 꼭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군사전술 등이 아니라 민주주의 윤리, 사회학 등 철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윤리와 철학을 배워야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 교육을 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국격이 달라집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수시로 싸우고 상스러운 막말을 하는 이유는 정치철학은 물론 인문학과 윤리 교육을 안 받은 탓 같습니다.”

철학은 막연히 어렵거나 딱딱하게만 여겨집니다. 인문학·철학을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철학·문학·역사인데 모든 인문학의 식량창고는 고전입니다. 얼마 전 목사 100여 분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목사님 가운데 <논어>를 읽은 분이 있나요’라고 물으니 정말 몇 분이 안 되더군요. ‘학교에서 안 배워서 모른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님들이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많은데 목사나 신부가 쓴 책은 잘 안 팔리고 사회적 공감대도 적은 이유를 알겠다’고 했죠. 예수도 교회를 크게 만들거나 잘 운영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만 이야기했죠. 종교인은 물론 모든 이들이 수시로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논어는 아니더라도 고전을 차근차근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문학 붐이 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는 분노와 울분이 너무 가득합니다. 화를 부르는 사회구조도 문제이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악성 댓글을 보면 성악설이 맞는 것 같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너무 화를 많이, 자주 내는 듯합니다.
“정서가 메말라서 그렇다고 봅니다. 너무 성적이나 취업 등 경쟁사회에서 각박하게만 살다 보니 정서의 빈곤이 그런 분노를 가져왔습니다. 하버드 등 미국 명문대에서는 입학 조건이 성적, 운동, 예술, 리더십, 봉사경험 등이고 그 조건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안 뽑습니다. 공부만이 아니라 건강한 몸, 다른 이들을 통솔하면서도 배려할 수 있는 능력, 악기건 그림이건 예술을 통한 정서, 그리고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국방부 교육지도위원을 맡은 적이 있는데 여러 분야에서 조사해보니 중·고생 시절에 봉사 경험이 있는 이들은 군대에서 절대 사고를 안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건의해서 중·고교에서 봉사활동을 점수화하자고 했는데, 일부이지만 어머니들이 자가용 태워 가서 도장만 받아오는 것으로 변질되었어요. 남을 위해 사는 것을 경험하고, 더불어 사는 것을 청소년 시절에 체험하면 분노나 울분을 다스릴 능력이 생깁니다. 선진국의 가정교육 특성도 첫째가 거짓말을 하지 말라, 둘째가 남을 욕하지 말라입니다. 거짓말은 그저 실수나 습관이 아니라 인격의 병으로 여깁니다. 제가 다닌 미국의 대학에서는 시험칠 때 교수가 감독을 안 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교수를 배반하지 않으려고 커닝을 하지 않고 친구를 편법이나 거짓말로 이기려고 하지 않죠.”


한 방송에서 강의하시면서 물질적 가치에서 벗어나 정신적 가치를 알게 됐을 때 행복한 느낌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신적 만족을 더 자주 느끼자는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언젠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 제안을 사양하며 회원들을 초대해 최고급 프랑스 와인을 접대했다는 기사를 보며 혼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기업인들이 시인이 시를 완성한 후에 느끼는 환희를 알까, 학자들이 새로운 연구를 한 후에 느끼는 희열감과 그 와인 맛이 비교나 될까…. 제 지인은 나이 들어 뒤늦게 독일어를 배워 괴테의 책을 읽었답니다. 무척 보람 있고 행복해 하더군요. 정신적 행복감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재산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그걸 신경쓰느라 더 불행할 것 같습니다. 자식들에게도 가훈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적으로는 상류층으로 살고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으로 살자.’ 그것만 받아들이면 행복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공자는 40에 불혹, 50에 지천명 등 연령대별로 분류를 했습니다. 교수님은 90여년을 살아보시니 각 나이별로 특징이 있던가요.
“김태길, 안병욱 교수와는 셋 다 동갑이고 전공도 같아서 친분이 깊었습니다. 이젠 두 사람 다 고인이 되었지만 90세까지는 살았죠. 어느 날 우리끼리 ‘계란에 노른자가 있어서 병아리도 나오는데 우리 인생에서 노른자의 시기는 언제일까’란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65세에서 75세까지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이라고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인간적이나 학문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였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더군요. 오랜 경륜으로 후배들이 질문을 해도 적절한 조언을 해줄 능력이 생기고요. 김태길 교수도 60세에 사회철학 책을 쓴 후 ‘나 또 하나 시작했어’라고 하더니 15년 후인 75세에 ‘가치관’에 대한 책을 펴냈습니다. 그러나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75세 이후엔 창의성이 확실히 정체됩니다. 제가 최근에 어느 단체에서 이사가 되었는데 3년 임기랍니다. 임기를 채우면 99세가 되기에 사임하겠다고 하니까 그냥 맡으라고 하더군요. 유달영 박사가 94세까지 이사직을 맡았는데 제가 그 기록을 깬 셈이라면서요.”

세 분이 90세 이상 장수하고 만년까지 건재한 비결이 따로 있습니까.
“안병욱 교수는 늙지 않는 비결로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공부하고 여행하고 연애하는 것을 꼽았습니다. 공부나 여행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연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맘대로 되진 않지만요. 세 가지 다 정신적 자극을 주는 것이라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고령화가 시작되었고 호모헌드레드, 곧 100세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온몸으로 100세 시대를 사시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100세 인생을 무사히 사는 법은 뭘까요.
“개인과 사회적 문제가 다르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이제 모두 70세까지 일해야 한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할 생각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나이 들어서도 자기 재산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70세 이상의 홀로된 남성들이 갖는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어느 정도 재산이 있으면 유산문제 때문에 자식들이 재혼을 반대한답니다. 아버지의 고독감이나 생활의 불편함보다 유산에 더 신경을 쓰는 거죠. 사실 70대가 넘은 남자들은 자식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용처도 없어요. 식사나 빨래 등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고독감과 상실감이 큽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성인이 된 자녀들이 노인 부모의 재산을 기대하지 않고, 노인들도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상처한 지 11년째인데 자식들이 제 결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한 친구가 익명으로 ‘96세의 남자가 재혼 상대를 찾는다’고 광고를 내보라고 하더군요. 실명으로 낸다고 누가 신청하겠습니까.(웃음) 저는 그래도 고독을 극복했습니다. 어린 후배들이 이젠 친구가 되어주고 이런저런 일로 항상 바쁘기도 하니까요. 소망이 있다면 앞으로 1~2년만 요즘처럼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주님 오래 일할 수 있게 해주시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기쁨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았으면 합니다. 그거 못하면 찾아가셔도 좋고요’라고요.”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고, 늙는 것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김형석 교수에게서 노인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또 인터뷰 중에 전화가 오자 “여자친구예요”라더니 짧은 통화 후에 “친구들에게 무조건 여자친구에게서 전화 왔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합니다”라며 소년같이 천진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 철학계의 대부인 그분의 학문적 위대함보다 그런 귀여운(?) 유머감각이 더 인상적이었다. 주님은 분명히 김 교수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 같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