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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에게 임하신 부활의 은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22. 16:18

우리에게 임하신 부활의 은혜

예레미야 31:1-6

 

들어가는 말

할렐루야!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2011년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부활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 가지 측면에서 아주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사건입니다.

첫째로, 부활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아주 큰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죄와 허물로 죽게 된 것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오래전부터 갖고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인간 구원계획이 온전하게 이루어진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부활은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의 당사자인 예수님에게 있어서 부활사건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신 사건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할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유혹과 시험에 직면하셨지만 한 순간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는 일념으로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고난의 종의 길을 걸어가셨고 드디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으로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고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습니다.

셋째로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부활의 의미는 하나님께로 가는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축복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죄와 허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저주받을 운명에서 축복받을 운명으로, 멸망 받을 삶에서 영생을 얻는 삶으로 바꾸어진 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고 우리는 그 은혜를 누릴 주인공이 된 줄 믿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에릭 사우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성도의 부활로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개의 부활절 사이에 살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부활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곧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부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그 부활이 주는 믿음과 능력을 가지고 자신 있게, 힘 있게, 멋있게 우리의 부활을 향해 달려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속으로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 듯 보기에는 부활절 말씀과 별 연관이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잘 설명해주는 구약성경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본문의 상황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백성들이 나라가 망하고 머나먼 이국땅에 포로로 끌려와서 생활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현실적으로 벌어졌을 때 그들의 절망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절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예레미야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의 환상입니다.

마른 뼈와 같은 모습-생기도 없고, 희망도 없고, 삶의 의욕도 없고, 해골바가지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곧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은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음과 사망의 권세에 붙잡혀 있던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아주 흡사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인생을 가리켜 B로 시작하여 D로 끝난다고 말하였습니다.

BBirth 출생을 말하고 DDeath 죽음을 말합니다.

인생이 출생해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희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15:32) 했던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취하고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게”(3:13-18)된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있던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B로 시작해서 D로 끝나는 인생의 중간에 C Christ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출생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향해 가는 존재가 되는 줄 믿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인 주님을 따라 우리도 부활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 선지자도 절망적 상황에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 위로의 메시지,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계약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옛날에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내신 것처럼 너희들을 바벨론포로에서 이끌어내실 것이다.’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시온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이러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들 가운데 이루신 내용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계약의 회복

예수님의 부활은 제일 먼저 하나님과의 계약이 회복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절에서 예레미야는 파기된 시내산 계약이 회복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내산 계약은 레위기 26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고 시내산까지 인도하신 후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고 얼마나 축복된 삶입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계약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게 된 것도 이러한 계약을 어기고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깨어진 계약이 회복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약이 회복된다는 것은 그 관계를 단절시켰던 죄가 소멸되고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그 계약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과 우리의 깨어진 계약이 온전하게 회복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해결하셨습니다.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도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는 우리에게서 떠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시키셨음을 믿고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마음껏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적당한 예화가 필요)

 

영원한 사랑을 보여줌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3절 말씀에 보면,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부족의 추장이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이런 죄를 짓는 사람은 두 눈을 뺄 것이다.

너무 많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을 제일 먼저 어긴 사람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 추장은 자신이 내린 명령을 시행하지 않으면 기강이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들의 두 눈을 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두 눈을 뺀다는 것은 아버지가 할 일이 아니었고 그렇게 되었을 때 자신의 뒤를 이어 추장의 역할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이 추장은 범죄 한 아들의 눈을 하나 빼고 자신의 눈을 하나 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눈을 뽑는 공의도 만족시켰고 아들을 사랑하는 사랑도 보여주었습니다.

 

사랑은 공의와 더불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 하였을 때 그 죄를 심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그 범죄 한 인간이 죄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이 땅에 오게 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어느 누구도 감히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 사랑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기에 인자함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복락원의 삶

예수님의 부활은 복락원의 삶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계약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힘입은 그들이 어떻게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4절 이하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따게 되리라’,

시온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특별히 북 왕국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않고 벧엘과 단에 성전을 세우면서 분열의 골이 깊어졌는데 이제 북이스라엘이 회복되면서 시온에 올라가 유대 백성들과 함께 예배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이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시기에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삶은 곧 복락원의 삶이요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 선다싱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질문을 했는데 특별히 대학교수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오래 동안 젖은 전통의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즉 힌두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바꾸었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선다싱이 한 말은 너무나 유명한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지금도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심을 보여주는 확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에 대한 확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곳마다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확증입니다.

우리 속에 함께 하실 때 심령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가정 속에 함께 하실 때 가정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교회 속에 함께 하실 때 교회의 천국이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5:14)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고,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천국도 내세도 의도 자유도 평등도 사랑도 전부가 허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가 더욱 불쌍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3:11)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부활의 삶이 축복으로 은혜로 주어진 줄 믿고 이제는 담대하게 주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에 이르는 삶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부활에 이르는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barnaba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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