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갖 고난을 겪고 나면 행복한 순간이 오는 경우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75세로 세상을 떠난 다산의 일생을 살펴보면 온갖 괴로움 끝에 가끔은 큰 즐거움을 맛보던 때가 있었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28세까지 모든 노력을 기울여 과거 공부에 전력을 바치다가 끝내 문과에 급제하는 영광을 안았고, 좋은 성적으로 합격한 다산은 정조의 온갖 칭찬을 받으며 벼슬길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23세에 천주교 서적을 읽었고, 한때 천주교에 빠져 모든 사람들의 비방과 혐오를 뒤집어쓰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낼 때도 많았습니다. 끝내는 천주교 문제로 무고를 당해 감옥에 갇히고 국문을 받으며 생사의 기로에서 신음할 때도 있었으며, 18년이라는 혹독한 유배살이로 생애의 귀중한 시간을 괴롭게 보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문적 대업을 이룩한 유배살이는 뒷날 다산을 다산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행복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이란 즐거움의 뿌리이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씨앗이다.” [贈別李重協虞候詩帖序]라고 말하여 인생의 고락(苦樂)은 돌고 돌면서 삶이 진행되고, 화복(禍福)도 고락처럼 뿌리와 씨앗으로 연결되면서 한 평생이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18년의 모진 유배살이, 얼마나 큰 괴로움이었지만, 그는 끝내 귀양살이가 풀려 고향에 돌아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 기쁨이나 즐거움도 잠시, 그는 역시 외롭고 괴로웠습니다. “수많은 저서를 안고 돌아온 지 3년, 함께 읽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네[抱歸三年 無人共讀 : 한익상정언에게 보낸 편지]”라고 자신의 저서를 알아봐주고 읽어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무렵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박복한 운명으로 거의 죽어가는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후한 칭찬을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격스럽고 유쾌하기 그지없어 처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不知薄命不死 何以得此於垂盡之年也 感戢愉快 始有生世之意]”라는 글이 있습니다. 감격스럽고 유쾌하여 인생을 더 살아가고픈 마음이 들었다니, 다산 일생에 이렇게 진한 표현을 했던 때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822년 정월 29일 당대의 학자이자 문장가이던 안동김씨 명문 집안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다산 저서에 극찬한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쓴 다산의 답서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매씨상서평』이라는 다산의 『서경』에 대한 경학연구서를 읽은 독후감을 김매순은 “유림의 대업(大業)이 이보다 더 클 수가 없도다.”라고 서평을 썼습니다.
옳고 바르게 살며 괴로움과 고통을 당했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다산에게는 그런 칭찬이 따랐고, 마침내 다산은 18년의 귀양살이 노고가 한 순간에 풀리듯, 이제는 더 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쁘고 유쾌하다니 얼마나 큰 행복이고 즐거움이던가요. 화와 복, 즐거움과 괴로움은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 인생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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