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 (스펄전 설교전집 마태복음II 33)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신약성경 전체 중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분명하게 언급된 유일한 말씀이 바로 본절입니다. 온유함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분내지 않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겸손하고, 온유합니다. 분노나 자랑이나 증오가 없는 주님의 본성입니다.
또 한편 이 말은 앞으로의 허물도 기꺼이 감당하시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온유하고”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의 지난 날을 잊을 뿐 아니라, 지금 너희가 내게 범죄한다고 해도 나는 너희를 기꺼이 감당하겠노라. 너희가 마땅히 내게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하지 않아도 너희를 감당하겠노라. 앞으로 너희의 인격이 완전한 것을 기대하지 못한다 해도 내게로 오라. 나는 너희가 성화되고 인내하도록 도와 주리라. 너희가 내게로 오면 일곱번의 칠십배나 용서해 주리라. 또 너희가 자주 실수한다 해도 내가 채워 주리라. 너희가 자주 나를 슬프게 하여도 나는 용서하리라. 너희가 내 멍에를 진다면 때때로 그것이 너희에게 무겁더라도 화내지 않으리라. 너희가 내게서 배운다면 둔하다고 해서 너희를 탓하지 않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니 기꺼이 과거를 용서하여 현재와 미래의 너희를 감당하리라.”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예수님은 이렇게 거룩한 마음으로 죄인들을 영접하시는 것입니다. (Page 160-161)
III. 마지막 대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게서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 이 말씀은 내가 배우고 싶은 교훈이고 또 이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워야 할 교훈임을 느낍니다. 온유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온유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은 온유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본성이 부드러워서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 덕택일 것입니다. 진짜 온유함은 은총에서 나옵니다. 매튜 헨리는 말하기를, 성경 가운데 얼굴이 빛났던 사람은 모세, 예수님, 그리고 스데반 이 세 사람 뿐인데, 이들 모두는 온유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화내는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검게 하십니다. 크리스챤의 얼굴을 거룩하게 하고 빛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기꺼이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구속자의 감미롭고 아름다운 인격 중의 하나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기만 한다면 온유함의 능력은 놀라운 것입니다. 분노에는 도무지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자신을 낮추어서 목적을 달성하십시오. 경건한 신자인 도드씨가 방탕아를 책망하다가 그가 화를 내어 치는 통에 이가 두 개나 부러졌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람은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말한 것을 당신이 명심하고, 당신 영혼의 구원을 찾기만 한다면 나의 남은 이빨을 모두 부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엇인가를 이 좋은 사람에게 있는 것을 느끼고 그는 좀 더 좋은 마음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잔소리가 심했던 여자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신앙 때문에 그 여자를 가혹하게 핍박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감정이 치솟아 그 여자의 얼굴을 때려 땅바닥에 쓰러지게 했습니다. 그 여자는 일어나서 “하지만 여보, 당신에게 이익이 되고 당신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다시 맞아도 상관없어요”하고 말했더니 그러자 남편이 말하기를 “여보, 이 믿음의 사람들이 당신을 놀랍게 변화시켰구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도 부드럽게 말하지는 못했을 텐데. 이제부터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요”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 어떤 것도 온유함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이 온유함은 위선적인 것이 아니라 진실로 관대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죄를 범하면서 다른 사람을 짐짓 용서 해 주는 체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야비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책망을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이 온유한 체하며 믿음이 좋은 것처럼 꾸미는 것은 혐오할 일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분노를 제하시고 평화로 채워 주소서. 온유함으로만이 우리 영혼에 평화를 채워줍니다. 우리 마음이 거칠고 사소한 모욕에도 화를 낸다면 우리 마음은 평화롭지 못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배워야 할 것 중의 또 한가지는 “겸손”입니다. 어거스틴은 한때 신앙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나는 그의 해답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거기에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첫째로 본질적인 것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본질적인 것 이상입니다. 완전한 크리스챤의 인격 중에서 가장 희귀한 것입니다. 퀘인트 올드 세크는 말하기를 “가장 겸손한 크리스챤이 가장 고귀한 크리스챤이다”라고 했습니다. 빈 배는 요동이 심합니다. 테임즈 강에 가서 한번 구경해 보십시오. 빈 배는 물 위에 높이 떠 올라 몸 전체를 완전히 드러 내어 놓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봐 ! 내가 얼마나 큰가 !” 그러나 배에 짐을 가득 싣고 나면 몸체의 대부분은 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게 됩니다. 가득 찬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교만한 사람은 빈 사람입니다. 자만은 약함을 뜻합니다. 겸손함은 강함을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강하면서도 온유했고, 위대하면서도 겸손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교훈을 배워 “온유하고 겸손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17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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