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Spurgeon) 목사 설교

현재 보호받고 영원히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인(유24,25)/Spurgeon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1. 11. 10:18

[보존; 성도의 견인]에 관한 교리 설교

현재 보호받고 영원히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인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

                               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다서 24, 25

 

모든 서론은 생략하고, 유다가 묵상해왔던 내용을 이와 같은 송영으로 표현했을 때 유다의 마음은 어떤 상태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본문에 직접 접근하여, 유다가 본문에서 요약, 언급하고 있는 은혜가 무엇이며, 유다가 이와 같이 말하고 있는 그분께 우리가 돌려야 할 합당한 찬양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 유다는 어떤 영향하에서 이 송영을 썼습니까?

첫째, 이처럼 아주 간략하지만 충분한 내용을 담은 서신을 기록하면서 유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실패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실패를 심사 숙고하면서 유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능히 우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 유다가 애굽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날은 영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자마자 숙곳에 모인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은 자신들이 노역 감독의 채찍과 매질에서 구원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압제자들을 위해 궁전과 피라미드를 짓는 헛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영광스러운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홍해를 갈라 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깊은 바닷물이 산더미처럼 높이 수직을 이루며 멈추었고, 택한 백성은 그때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그날 밤 그들이 마른 땅을 통과하듯이 깊은 바다를 지나갈 때 찬송과 찬미를 드린 것을 여러분은 상상해 보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모두 맞은편 땅에 이르자, 그들의 지도자는 지팡이를 들었습니다. 그때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바닷물은 원래 상태로 흘러갔습니다. 자기 군사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다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간 얼빠진 애굽 왕은 그곳에서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바닷물에 휩쓸려 침몰당했고, 한 사람도 살아 남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때 모세와 이스라엘 자녀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졌음이로다라고 찬송했습니다.

홍해 가에 서서 하나님의 원수들이 전멸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바로 이 백성들이 몇 날이 못되어 애굽으로 되돌아갈 것을 요구하였고, 또한 몇 달이 지나지도 않아 자기들 중에서 지도자를 택하여, 그들이 노예로 곳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역사와 소안에서의 모든 재앙을 보았던 그들이 스스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 절하고 이스라엘아 이는 어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너희 신이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40년 방랑의 길에 얼룩진 이스라엘의 많은 슬픔을 눈물을 머금고 보십시오. 애굽에서 구원된 무리 중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요단을 건넜다는 사실을 두려운 심정으로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아론은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대문에 제사장의 흉배를 벗어야만 했고, 가장 온유한 모세까지도 느보산 꼭대기에서, 사실상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된 땅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 허락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지파 중에 신실한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이런 생각을 할 때, 그가 예루살렘과 그 밖의 지역의 교회 속에서 자신과 교제하고 있는 성도들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생각했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애굽으로부터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약속된 안식으로 들어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라는 찬미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음 구절을 읽는다면, 유다가 또 다른 실패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우리는 천사들에 관해 많이 알지 못하지만, 성경 속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마 밀턴의 반()영감된 사상의 어떤 것들을 읽어봄으로써, 우리는 천사들이 우리 자신들보다 더 우수한 영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천사들은 동등한 수준으로 창조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오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지력이 매우 훌륭할지도 모릅니다. 반면 인간의 존재는 겨우 한 뼘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사를 진정으로 존중하지만, 그러나 그들과 비교할 때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고귀한 존재에게 경배를 드리는 적은 없습니다.

이런 천사들 중의 하나가 아침의 아들 루시퍼라는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아마 그는 하늘의 무리 중 지도자였고, 하늘의 왕자 중 으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무리들과 함께 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을 배반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다른 천사들을 유혹한 것 외에 달리 천사들이 유혹받은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본래의 지위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하늘에서 쫓겨났으며, 빛나는 보좌들로부터 추방당했고, 그 이후 그들은 최후 심판의 날까지 흑암의 사슬에 묶여있습니다.

,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두려움이 없이 천사들의 타락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흑암으로 쫓겨난 새벽별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머리에 옹관을 쓴 천사가 수렁에 버려지고 그의 왕관이 먼지 속에 뒹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처럼 총명한 영들이 가증한 악령들로 변하여, 한때는 하나님을 위한 성전들이었던 그들의 마음이 지금은 모든 추악한 것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그들 스스로도 가장 부정한 것들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역시 처음 자리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없이 천사의 타락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또 타락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하실 능력이 있고, 엄청난 기쁨으로 그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서게 하실 자를 생각할 때, 또 다른 아주 짜릿한 기쁨이 없이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시온의 길에서 돌이켰을 때는,

   (! 얼마나 수없이 그리했던가)

   나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너는 또 나를 버리겠느냐?

 

   , 주여! 내 심정으로는,

   만일 주께서 나를 굳게 붙드시지 않는다면,

   나는 타락할 것이며,

   드디어는 그들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즐겁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을 바라는 영혼을,

   주께서는 그의 원수들에게 버려두지 않을 것이며,

   비록 모든 음부가 요동친다 하더라도,

   그 영혼을 주께서는 결코 버려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유다의 말을 따라야 하련만, 그렇게 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다가 그의 서신서에 기록하지 아니한 어떤 것을 보태기를 좋아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고 평화스럽게 살았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그는 타락하지도 않았고, 악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정직하게 만드셨고, 그는 정말로 순수했으며, 그가 죄를 짓든 말든 그것은 그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었습니다. 그 균형은 완전히 그의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떻게 그가 금단의 열매를 취해서 먹고, 그 결과 그 자신과 온 인류가 저주받게 된 슬픈 날이 왔는지를 잘 기억합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은 취함을 입었던 땅으로 보내져 땀흘리며 수고하여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가 떠난 안식처와 그의 죄로 인해 영원히 사라져버린 행복과 평화를 회상할 때, 여러분은 타락하고 부패한 피조물인 여러분에게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까? 인류의 시조 아담과 비교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느낄 때, 여러분은 , 하나님! 어떻게 아담이 넘어진 곳에 내가 설 수 있겠습니까!라고 당장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으니, 곧 여러분과 함께 시작하신 그리스도 그분은 여러분을 완전하게 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다와 같이 능히 너희를 보존하사 거침이 없게 하실 자라고 오래할 수 있습니까? 배교자를 생각하고 죄인이나 동료들의 타락을 볼 때마다, 나는 충격을 받아 무릎을 꿇고 주께서 나를 붙드시면 내가 완전하리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의 구주 하나님께

   영원한 권세가 있으며,

영원한 위엄의 면류관과

영원한 찬미가 있을지어다

 

주는 우리 영혼들을

하나님의 영광 앞에

크고 거룩한 기쁨으로

흠이 없고 완전하게 서게 하시리라.

 

 

이것은 본문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이지만, 서신의 또 다른 실례 속에서 사도의 마음에 나타난 다른 사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사도는 타락한 자의 자리의 본질과 타락한 자의 철저한 파멸과 멸망의 본질에 대해서 아주 생생하고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말한 것을 주의하십시오. 그것은 멸망될 것이었습니다! 멸망! 이것은 지나가는 자들에게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 광야에 묻힌 하얀 해골과 뼈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신앙을 고백한 이들이여,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복음의 자유와 같은 어떤 것을 얻을지는 모르지만, 파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속적인 신앙인은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남겨둔 안식에는 들어가지 못하며 멸망할 것입니다. 멸망이라는 말을 당신의 귀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님께 도움을 구한다면, 타락으로부터 능히 보호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유다는 타락한 천사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다만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탄은 세상에 계속 돌아다니도록 허락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슬에 묶여 속박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섭리와 직접적인 권세로 사탄을 어떻게 결박할지를 아십니다. 우리는 이런 영들이 흑암 아래 있으며, 어느 곳에 있든지 음울하고 칠흑 같은 어둠이 영원히 그들의 마음을 뒤덮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심판대 앞으로 그들 반역한 피조물을 소환할 때까지 그들은 기다리고 있으며, 그때 그들은 심판을 받아 다시금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만일 영원한 사랑이 이것을 막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역시 영원한 사슬에 묶여 어둠이 예비된 곳에 들어가 영원한 불을 견뎌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타락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될 것이며,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그만두고라도, 다음 구절을 계속 읽는다면, 유다가 더욱 생생한 표현을 소개하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해가 지면서 생기가 돌았습니다. 주민들은 떠들썩하게 즐거워하고, 곳간은 풍성하며, 저택 안은 사치스러웠고, 소돔 평원은 기름지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재앙의 날 저녁, 해는 저물었고, 이 저주받은 도시인들에게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태양이 지구 위를 막 비추기 시작한 여명, 천사들은 그 성에서 롯과 그의 가족을 이끌어내었고, 그들이 소알의 작은 성에 이르기도 전에 곧 하늘이 초자연적인 화염으로 붉어지더니, 마치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지옥을 퍼부으시듯이 무시무시한 불이 쏟아졌습니다. 그 성에 불과 유황이 비오듯 퍼부어졌고, 그들의 고통이 연기가 되어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서쪽 멀리 떨어져 있던 아브라함도 솟구치는 구름기둥을 볼 수 있었고, 무서운 불빛은 마치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사람들은 사해로 지나가면서 죽음이 지배한 이날을 생각하게 됩니다. 무수한 파편들이 바다 표면에 뜨고, 거기에는 살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헤엄치는 물고기가 하나도 없는 혼탁한 시내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확실히 증거했습니다.

유다는 이것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듯합니다. , 하나님, 이 세상에서든 다가올 세상에서든 모든 배교자들의 최후는 불로 타 버려질 것이므로 우리를 그러한 심판으로부터 보존하소서.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모든 성도들에게 풍성한 보호의 손길로 복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므로,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실 자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나는 저자의 이름이 유다라는 사실에, 또 다른 유다를 생각하고는 놀랐습니다. 유다가 이 말씀을 기록할 때, 가룟이라는, 이름이 같은 유다를 기억했었을까요? 유다는 가룟 유다를 알고 있었고, 한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를 존경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이 있던 밤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니이까?라고 말하는 가룟 유다를 주목했습니다. 아마도 유다는 주님과 함께 그릇에서 빵을 집는 가룟 유다를 보았을 때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밖으로 나갔고, 주님께서 밖으로 나간 자가 자기를 배반하리라는 말씀을 했을 때, 유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을 것입니다. 유다는 어떻게 가룟 유다가 인자에게 입맞추고 은 삼십에 주님을 팔았는지 틀림없이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가룟 유다가 어떻게 스스로 목을 매어 창자가 터져 나왔는지 알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한 유다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자기에게 드리워진 가룟 유다의 파멸의 그림자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주 강조적으로 능히 타락으로부터 보호하실 자, 영원토록 영광받으실 자라고 기록한 듯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처럼 지금 우리는 사람들이 빠져들어갔던 두려운 길과 그들의 실패에 관한 유다의 생각을 추적해가고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유다는 배교자들이 빠진 죄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성경 전체에서 타락자들과 배교자들의 죄에 대해 유다서보다 더 무서운 묘사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어느 날 저녁, 여러분에게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말씀한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전한 무서운 메시지로 여러분이 얼마나 두려워했으며, 또 나 자신도 무서워했음을 기억합니다. 그러한 말씀이나 비유를 유다서 외에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배교자들의 죄는 굉장합니다. 그들은 항상 인간의 범죄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스스로 죄악을 확대시킵니다. 아무도 그런 악령들을 이전의 천사들처럼 만들 수도 없으며, 또 아무도 그런 타락자들을, 이전에 하늘 나라를 위해 공정하게 명령하던 자들로 삼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유다가 말했듯이, 추악하고 육욕적인 꿈에 빠져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사실 자신을 사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수욕을 당케 했을 때, 인간이 갈 수 있는 한계를 우리는 어디서 정할 수 있겠습니까?

,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런 배교자들이 빠진 죄를 생각할 때, 나는 유다와 함께 하나님을 이렇게 찬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보호하사 타락하지 않게 하시고 [to keep you from falling]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분이니라.

 

. 유다가 언급하는 찬미의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유다는 이 송영 속에서 적어도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세 가지 찬미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타락으로부터 보호하시는 능력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위험한 순간에도 이 능력 때문에 이와 같은 존귀한 찬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은 매우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만큼 위험한 길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어려움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을 오르기 위해서 좁은 길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곳은 우리와 죽음 사이가 한 발자국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발 d 1마일이나 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럽지만, 우리는 이미 무사하게 지나갔습니다. 하늘로 가는 길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쉽게 얻은 길이지만, 한번 잘못된 말을 내디디면 우리는 궁지의 상태에 빠집니다. 우리는 미끄러운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주일 동안에도 자신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기회가 무수히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험준한 산에는 사람이 전혀 갈 수 없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만약 그곳을 가야 한다면, 그들은 여러 해 동안 훈련받은 능숙한 등산가(alpinist)가 되어야만 합니다. 아마 약간 튀어나온 험한 바위를 제외하고는 발로 지탱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암벽을 타거나 덤불이나 바위에 매달려 계속 버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일어나 추락하기 때문에, 위험을 등뒤로 하고 기어가야만 됩니다. 물론 추락의 결과는 생명과 육체의 파멸입니다. 이것은 정말 하늘의 뜻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난관들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내 발이 형통할 때나 넘어질 때도 능히 보호하시는 주님께 영광이 영원토록 있을지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을, 여러분은 인간의 연약함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길을 여행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형제 순례자인 여러분은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을 믿고 영광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길인데도, 여러분이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약한 무릎으로는 비틀거리는 몸을 거의 지탱할 수 없습니다. 지푸라기가 여러분을 뒤덮고, 자갈들이 상처를 줄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보호를 받고자 한다면, 날마다 자신을 지키는 인내력의 은혜가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죄를 반성하여 보십시오. 초라한 두뇌의 경솔함과 거짓된 마음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얼마나 쉽게 위험을 택하며, 얼마나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많으며, 서는 것보다 도리어 넘어지는 경우가 많은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이전보다 더욱 감사하며 능히 보호하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릴지어다라고 찬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자신을 공격하려는 많은 적들에 대해 더욱 주의해야만 합니다. 길은 너무 거칠고, 우리는 너무 연약합니다. 여기저기에 매복해 있는 적들이 우리가 소홀한 틈을 타서 우리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거나 던져버리려고 애씁니다. 나는 여러분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절벽에서 줄을 타는 사람을 가서 볼 정도로 어리석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경우, 나는 여러분이 살인죄를 자초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절벽에 매달린 사람을 실제로 보았다면, 여러분은 인생에서 다시는 기회가 없는 그 절벽 끝으로 떨어지는 불쌍한 인간을 보았을 때, 여러분의 머리는 쭈뼛해지고, 여러분의 몸은 뼈 속 깊이 오싹해졌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분명코 여러분이 선 자리를 떠나 절벽 끝에서 도망치며 나를 굳게 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이칠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타락하는 자를 본다면, 또한 그 사람을 밀쳤던 그 괴물이 여러분을 내던지려 한다면, 그리고 특히 여러분이 물처럼 나약하여 그 거대한 마귀에 저항할 수 없다고 느꼈다면, 여러분은 너무도 놀랄 것입니다.

, 바로 이 경우가 여러분의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을 대적하여 버틸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육체는 여러분의 영이 지배할 것입니다. 어린 계집종은 베드로에게 그의 주를 부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때때로 그녀는 우리 중 가장 강한 자를 두렵게 만들 것입니다. , 우리를 파멸시키려 하는 강력한 적들로부터 보호된다면, 우리는 능히 보호하시는 자를 찬양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늘 나라로 데려갈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인간을 굶주리지 않도록 할 수는 있지만, 그를 천국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으며, 왕을 알현케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반역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그를 추격자들로부터 숨겨주어 그의 도피를 도울 수는 있지만, 그를 왕 앞에 데리고 가 왕의 성 안에서 살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을 분노케 하며 날마다 그의 의를 거스를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분께서는 하늘 나라에서 왕 중의 왕으로 나타나십니다. 이것은 위대한 복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항상 살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여기 낯선 나라에 있음을 발견하며, 기쁘게 그곳으로 날아가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광야의 상태에 있지만, 우리가 들어갈 가나안을 알기에 기뻐합니다.

우리 천상의 여호수아는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아말렉과 싸우시며, 우리의 모든 대적들을 멸하시며, 우리를 타락에서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분께서는 우리를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시니, 더 좋은 나라인 하늘 나라를 보여주시며, 모든 무리를 이끌어 한 사람도 멸망시키거나 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보호하시며, 영화롭게 하시며,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들이여, 여기는 비할 수 없는 기쁨의 장소이며,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안전할 것입니다.

 

  하늘의 영화로운 영들은

   더 행복하지만, 그리 보호받지는 않네.

 

우리도 멀지 않아 그들처럼 행복할 것입니다. 주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고, 그 앞에서 그들과 함께 우리에게도 엄청난 기쁨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해야 될 것이 많지만, 이 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흠이 없이 나타날 때를 살펴봅시다. 우리 구주는 자기 사랑의 사역에 결코 부족한 상태로 머물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구주는 진흙 구덩이에서 건져내신 때처럼 자기 백성을, 마침내 겨우 소생하여 모든 얼룩과 더러움이 그대로 있는 모습으로 보이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때 용감한 자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여 처방하는 것처럼 그들 속에 단지 생기만 불어넣어 주는 정도로 끝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구주는 이 생애 동안 계속 자기 백성을 타락으로부터 안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어떻게 만드십니까? 흠 없게 만드십니다. , 흠이 없다는 이 말은 참으로 놀라운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고, 온통 결점투성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흠 없이 될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세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흠 없게 하실 것입니다. , 주님은 한 점 흠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인데, 이는 죄인들의 괴수가 하나님의 가장 순결한 천사처럼 희고 정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눈으로 보시고 너희 안에 죄의 얼룩이 한 점도 없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술주정뱅이나 도둑이나 간음자 등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긍휼하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신다면, 주님은 그의 피로 여러분을 철저히 씻기셔서, 여러분은 마지막에 얼룩이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즉 흠 없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마치 시궁창에 던져진 것처럼 죄로 더러워졌으며, 죄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시궁창 속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 더러움을 일삼았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우리가 자범죄와 원죄로 더러워진 것을 볼 수밖에 없다면, 분명 우리를 멸시할 것입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이 완전히 제거되어, 눈보다 더 희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보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옷이 희어져 빛나며, 직조공이 만들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희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이후에, 이 땅의 어떤 기술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희고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수정같이 깨끗한 유리 바다도, 어린 양의 피로 깨끗게 될 우리보다 더 희거나 순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오직 한 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결점이 없다고 해도, 그는 어떤 덕을 소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하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야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해야 합니다. 종교는 그저 악이 없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종교는 선과 진리와 순수성의 현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해도 무익한 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힘없고 죄 많은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더 높은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주셨습니다.

 

  죄의 그림자가

   나의 영혼 위에 머물지 않도록

   주께서 깨끗하게 하신 옷으로

   내 영혼을 덮으시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완전하고 흠 없고 훌륭한 옷을 입은 성도를 만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것입니다. 이 안에는 풍성함이 있어서, 나의 영혼을 기쁨으로 충만케 합니다. 나의 눈에는 어떤 사람이 결점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직한 사람들의 비난에서 벗어날 만큼 거룩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을 읽으며 사람의 내면을 대하는 목회자들은 인간의 시야에 비치지 않는 죄악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천사와 같은 사람들보다 더 분명하게 보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어떤 죄악이나 흠도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준에 도달하게 되며, 주님의 얼굴의 빛에 거하게 되며, 흠이 없다는 선언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더 이상 정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확대되어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그의 영광 앞에 우리를 흠이 없게 서게 하도록 하신 주님의 의로움으로 덧입게 될 것입니다.

넷째, 이것은 최상의 사실인데,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셨고, 그 일을 마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하며 거룩하게 만드시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성을 지니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동산에 있던 아담이 우리보다 깨끗하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악의 흔적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판단력과 기억력, 의지와 모든 능력과 열정은 악의 속박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변화되겠습니까? 우리의 경험이 사도 바울의 경험과 같은지 살펴보십시오. 바울은 자기 속에 한 강력한 법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가 선을 행하려 할 때 악이 자기와 함께 하였고, 그가 어떤 악을 피하고자 하였을 때 때때로 원치 않고 가장 싫어하는 바로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되지만, 찌그러진 공과 같아서 똑바로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녁을 맞추려 하지만, 휘어진 활처럼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시냇물을 온통 더럽히는 검은 물방울이 우리 마음에 있으므로, 우리 마음은 깨끗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변하며, 우리는 다시 창조되며, 모든 악은 영원히 사라집니다. 나아만이 요단 강에서 몸을 씻고 어린아이의 몸처럼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온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었습니까! 성의 파수꾼이 멀리서 그가 다가옴을 알았을 때, 온 식구가 성문까지 마중 나와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는지를 확인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의 관습으로는 아내가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의 아내는 창가에서 그의 얼굴을 어렴풋이 보고 문둥병의 반점이 없어진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고침받아 깨끗해졌네라고 얼마나 기쁘게 외쳤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환희의 그날 곧 영원한 문이 열리며, 빛 가운데 성도들의 모습을 대하며, 우리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게 될 그날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다른 예를 봅시다. 군대 귀신이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사람의 가정에 임한 행복을 살펴봅시다. 아마 더러운 귀신의 악한 영향 아래 있기 전 그는 가정적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자기 몸을 돌로 상하게 할 때, 그의 친구들은 가난하고 불행하며 비참에 처한 자의 광기를 의심할 여지 없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친구들은 자비와 사랑으로 그에게 차꼬를 채워, 스스로 고통과 상처를 가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금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그를 보려고 가까이 왔습니다. 친구들은 그가 변화된 사람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된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도리어 친구들은 여전히 그를 예전의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들어섰을 때,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단지 순례 여행의 이야기를 말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인사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침착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광기가 없었으며, 하늘을 찌르는 듯한 괴성을 지르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모든 행실은 정리되었고, 기쁨에 차 있었으며, 단정한 행동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친구들에게 알려졌을 때, 그들은 주님께서 그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을 들었습니다. 친족에게도 놀라운 기쁨이 충만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나도 이 장면 가운데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확실히 이것은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상에서 유일하게 나타난 진정한 인간 행복의 선택된 모습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다소의 사울이 본 낮의 눈부심처럼 가장 순수한 광선이 그곳에 비췰 때,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비록 그 기쁨이 컸지만 이 기쁨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어 의로운 마음으로 옷 입게 될 때 우리가 가질 기쁨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두운 죄악의 산속을 방황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며,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 가운데 거하도록 유혹받지도 않으며, 도리어 언제나 거룩하며, 항상 하나님을 따라 살며, 그를 따라 닮아갑니다. , 이것이야말로 정말 기쁨이라오! 하나님은 우리를 타락에서 지키실 뿐 아니라 실수 없이 보호하십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이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유다와 함께 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라고 틀림없이 말할 것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찬미를 원하지만, 누가 찬미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갈 때, 우리는 그곳에서 더 아름답고 더 크게 찬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벗어난 위험을 알게 되며, 우리를 보호하사 인생의 변화무쌍함에도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곳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주께 얼마나 은혜를 입었는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날까지, 우리를 굳게 하사 우리를 버려두지 않을 능력 있는 은혜를 결코 잊지 맙시다.

 

. 사도의 말을 생각해봅시다. 너희로 그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아직 본문을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제가 이야기를 앞질러서 했지만, 본문을 특별히 주의해서 봅시다.

누가 이 즐거움을 누릴까요? 형제여, 여러분이 이것을 누릴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생각해보셨을 것입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 주님의 비유들 중 가장 다정다감하고 교훈적인 이 비유를 거듭거듭 묵상했을 것입니다. 자 그 잔치에서 행복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탕자가 아니었겠습니까? 그의 마음을 터질 듯이 부풀어오르게 한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는 정말 기쁨에 넘쳤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곧 전혀 예기치 않았던 친절과 애정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유흥과 죄 짓는 즐거움으로 자기의 날을 보냈지만, 그가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여 옛 지붕 위에 울려 퍼지는 노래만큼 아름다운 노래를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살진 송아지만큼 맛있는 음식도 맛본 적이 없었으며, 그가 죄 짓던 잔치 자리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나 미혹자의 목소리가 먹고 즐기자는 아버지의 음성보다 귀에 더 감미롭게 들린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지쳐 돌아올 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며, 의를 찾아 굶주리고 목마를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줄로 묶어 아버지의 집에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먼 나라로부터 지친 순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때, 우리는 황금 길을 걷고, 진주 문에 안전하게 들어가며, 다시는 겪지 않을 영원히 지나가버린 과거를 볼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얼마나 클까요! 이 기쁨이 정말 천국일 것입니다. 죄는 이미 없어지고 사탄은 쫓겨남을 당하고 유혹도 영원히 사라질 때, 여러분은 현재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기쁨의 강이 여러분의 영혼으로 흘러 들어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결코 알지 못했던 은혜의 강물을 마실 것입니다.

, 지금, 계시된 미래의 기쁨을 보고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이후에 여러분은 영원히 하늘의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누가 행복하게 될까요? 물론 목사가 행복할 것입니다. 이새의 아들 젊은 목자 다윗이 사자와 곰의 입에서 양을 구하기 위해 싸우러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때 목자 다윗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다윗은 틀림없이 어린 양이 어미 양 잇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정말 기뻐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는 힘 없고 말 못하는 두 짐승이 서로 나누는 기쁨 속에서 기쁨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목자가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신실한 목자였고, 자기 양무리를 보살피고 돌보는 자들로,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는 사탄의 권세에서 보호받은 사랑스런 자들을 찬미로 맞이하면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맛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들은 이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자입니다.

수확한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올 때 우리는 특별한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나를 지켜 멸망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적 자녀로 주신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늘 문에 들어서면, 주의 발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에 가장 크게 빚진 자이며, 하나님의 자녀 중 누구보다 감사할 조건이 많으며,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능력과 권세를 영원히 돌릴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과가 여기 있나이다. 주께 찬양을 드리나이다라고 말할 때 천사들 역시 얼마나 기쁠까요? 그들의 기쁨은 정말 클 것입니다. 회개할 죄인 한 명을 보고 천사들이 기뻐한다면, 회개뿐 아니라 모든 더러움에서 씻음받고 모든 결점에서 벗어난 깨끗한 죄인 만 명을 보면 만 배의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 천사들이여, 그대들의 음악은 정말 웅장합니다! 그대들은 하프를 새롭게 조율하고 모든 줄을 뜯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에서의 영광스런 기쁨을 생각하면,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어라.

내가 다시 묻지만, 누가 기쁨을 소유할 것입니까? 정말 그리스도는 모든 기쁨 중 가장 큰 기쁨을 소유할 것입니다. 천사들과 목사들과 여러분 자신은 그리스도께서 기뻐할 기쁨만큼 그런 기쁨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양은 안전하게 우리에 들어갔습니다. 건물의 모든 돌이 적당한 위치에 놓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피로 사신 사람과 피로 씻은 사람들을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속할 것을 약속하신 이들을 효과적으로 구원하셨으며, 그의 계획은 모두 성취되었고, 그의 언약은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그 언약은 재가되었을 뿐 아니라 일점 일획까지도 다 성취되었습니다.

그날, 어느 누구도 위대한 보증인이신 주님만큼 행복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보고 기뻐하듯,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알 것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이 기쁨과 만족이 우리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때 모든 교회는 그의 영광 앞에 흠 없이 완전하게 섭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그때, 그의 모든 보화를 셈하여 하나도 빠뜨린 것이 없을 때, 그는 영으로 새롭게 기뻐할 것이며, 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 더 큰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날을 바라보셨고, 이날 때문에 잔혹한 고통과 부끄러운 죽음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는 자기 모든 지체들과 함께 그의 기쁨을 나눌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더욱 행복하여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그에게는 확실히 기쁨을 누리실 자격이 있음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누가 기뻐할까요? 물론 하나님 자신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기쁨이 언제나 무한하다고 말하는 것은 불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언제나 무한하시지만, 그때 주의 피조물들 앞에서 그 기쁨이 무한히 전개될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 여러분은 그것을 측량할 수 없으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이 말씀을 설교했지만, 어떤 점에서 이 본문은 성경 중 가장 놀라운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노래하시다니! 세상이 창조될 때, 새벽별이 즐거이 소리친 것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래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우 좋았다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거기에는 아무 노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 이것을 생각해보십시오. 택한 민족이 보좌에 둘러 모일 때,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시며,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무한하고 거룩한 노래를 발하실 것입니다.

나는 이 본문 속에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하려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본문의 모든 것은 여러분에 대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여러분도 해당됩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가장 작은 자요, 가정에선 가장 불쌍한 자요, 가장 미천한 신자입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켜 보호하시고,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것입니다. , 이 노래에 참여하여 나와 함께 이렇게 찬양하지 않으시렵니까! 오직 지혜로우신 하나님과 구세주께 영광과 위엄과 능력과 권세가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저 나이 많은 여성도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천국에 이르면 언제까지나 예수 그리스도를 입에 오르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는 영원토록 성도의 입에 오르내릴 것입니다.

 

  숨이 다할 때까지 나의 구세주를 찬양하리.

죽음으로 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찬미는 더 고귀한 능력을 쓰게 되리.

나의 찬미의 날은 결코 없어지지 않으리.

생명과 생각과 존재가 지속되는 동안,

아니면 불멸이 지속되는 동안.

 

나는 여러분이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한시도 홀로 설 수 없으므로, 은혜가 여러분을 지켜 지옥에서 건져내지 않는다면 두 번째로 멸망받게 될 것을 아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기 때문에, 멸망할 수도 없고,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의 손에서 여러분을 잡아챌 수 없습니다. 가련한 죄인들이여, 나는 오늘 밤, 여러분이 주님의 손 안으로 들어가고, 주님께 여러분을 의탁하여 일을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죽을 수는 있지만,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오 이스라엘이여, 너는 자신을 멸망시켰지만, 내 안에서 네 도움을 찾으리라. 그리스도만이 여러분을 구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자신을 그리스께 맡기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타락으로부터 능히 지키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심지어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그분이 여러분을 똑바로 세우더라도, 여러분을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1분도 바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성인(聖人)들이 보호받아야 한다면, 여러분은 구주의 상처 입은 옆구리의 안식처를 훨씬 더 찾아야 합니다. , 비둘기가 바위 틈새로 숨어드는 것처럼 거기로 피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매일 용서해달라고 부르짖고, 자신은 천국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음을 고백한다면, 여러분의 경우는 얼마나 훨씬 더 절박합니까? 여러분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 죽는다면, 여러분은 멸망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자신의 죄를 결코 없앨 수 없지만, 그리스도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죄와 더러움을 씻을 샘을 솟아 올리셨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을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편에 붙으십시오. 자신에 대한 믿음을 낮추시고,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단순한 믿음을 올리십시오.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 각자가 모두 느끼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노래를 한 절 부르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주의 성도들 가운데 나도 참여케 하소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 울릴 때

주의 웃는 얼굴 보게 하소서.

수많은 무리 소리칠 때 나 노래하리.

화려한 천국의 집은 크신 은혜 찬미하는 소리로 울리리.

 

 

 

출처:

발행처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칼빈주의 5대 교리 설교>에서 인용전재

찰스 스펄젼 지음/김군섭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