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강동호·이승준·손용석·김규성씨. 그래픽 송권재 기자
[토요판 커버스토리] 평범한 4인의 위대한 이야기
남의 위기에 자기 몸 던진 4인
이타적 인간은 어떻게 탄생했나
남의 위기에 자기 몸 던진 4인
이타적 인간은 어떻게 탄생했나
아름다운 본능을 찾아서
지난달 6일 아파트 경비원 박아무개(69)씨가 서울 오류동 출근길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여섯 사람이 그 곁을 걸어가고 차량 석 대가 지나쳤다. 그를 일으켜 세우는 이는 없었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숨졌다. 선장과 일부 선원들이 승객을 구조하지 않고 내뺀 세월호 사건은 304명의 희생자를 냈다. 누구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죽음과 상함을 방치하지 않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연대는 어디에 있을까. ‘연대’라는 말이 불의에 저항한 결집이라는 한정적 의미만 갖고 있진 않다. 연대는 죽음과 살아 있음에 폭넓게 이뤄지는 행위다. 어떤 목적도 예고된 약속도 없이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맺는 연대다. 절대적 순간에 생명을 구한 연대자로서의 사람을 찾아나섰다. 바다에서 술에 취한 남자를 구한 강동호씨(왼쪽부터)와 이승준씨를 제주에서, 택시를 타고 달아난 성추행범을 끝까지 쫓아간 손용석씨를 부산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시각장애인 여성을 구하려다 함께 죽음의 고비를 넘긴 김규성씨를 경기도 과천에서 만났다.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심만이 인간의 본질일까.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의 이타심을 어떻게 발현하는지 들여다보았다. 생이 선택의 연속이라면,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바로 나다. 우린 좀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니까. 그래서 그들을 만났다. 제주·부산/글·사진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지난달 6일 아파트 경비원 박아무개(69)씨가 출근하던 길에 비틀거리다 주저앉듯 쓰러졌다. 아침 6시5분 서울 오류동 한 거리에서였다. 한 여성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박씨 곁을 걸어갔다. 쓰러진 박씨 가까이 여섯 명이 지나갔다. 차량 석 대가 지나쳤지만 차를 세우고 내리는 운전자는 없었다. 그를 발견한 이는 같은 아파트 직장 동료였다. 동료가 6시10분에 119에 신고해 9분 만에 응급차량이 도착했다. 박씨가 쓰러진 지 14분 만에 병원에 옮겨졌다. 자가호흡도 맥박도 멈춘 상태였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2년 전 심장질환을 앓았던 경비원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급성 심정지 환자에게 산소가 공급돼야 하는 골든타임은 4분. 4분간 그를 지나친 여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그를 도왔다면 박씨의 죽음이 앞당겨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폭우에 쓰러진 60대 노인이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들 가운데 방치된 채 숨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노인은 불어난 물에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노인은 물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허난성 카이펑시의 도로 한복판이었다. 상가가 들어선 도로에 몇몇 사람이 다가왔지만 물에 잠긴 노인을 돕지 않고 돌아섰다. 성인 무릎 높이만큼의 물이었다. 무릎 아래에 손을 내밀면 노인이 잡힐 만큼 깊지 않았다. 노인은 60~70㎝ 높이의 물속에서 익사했다. 뒤늦게 다른 행인이 노인을 일으켜 세웠지만 호흡이 끊어진 뒤였다. 중국 허난티브이(TV)는 지난 8월30일 이 노인이 숨져간 동영상을 전했다.
어떤 목적도, 예고된 약속도 없이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맺는 연대
평범한 시민을 살린 평범한 시민들
그래서 ‘용감한 시민’이라 불리는
4인의 위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로에 떨어진 시각장애인 여성을
잡고 달려오는 전철 피한 김규성씨
술에 취해 바다에 빠진 남성을 잡고
바위에 매달린 강동호 이승준씨
어두컴컴한 새벽길 성추행범 쫓아
격투와 부상 끝에 붙잡은 손용석씨 오류동 경비원과 허난성 노인의 죽음 서울 오류동 경비원도, 중국 허난성의 노인도 사람들의 방치 또는 무관심 속에서 맞이한 죽음이었다. 선장은 퇴선 명령 대신 내빼기에 바빴고 일부 선원들도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던 이기심으로 세월호 침몰은 30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물론 법적 처벌의 대상인 세월호 사건을 오류동 경비원, 무릎 높이의 물속에서 숨진 중국의 노인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유기치사죄는 법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가 보호 대상을 내버려둠으로써 죽음에 이르렀을 때만 인정된다. 자신이 특별한 위험에 빠질 상황이 아닌데도 일반인이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으면 이를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프랑스와 스위스 등이 제정했지만 한국은 아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노인 곁을 지나는 시민에겐 타인에 대한 법적 보호 의무가 없기 때문에 무관심이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둔 고의성 여부와 이기심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타인의 대한 무관심과 이로 인해 앞당겨진 죽음들은 메마른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고통에 대한 무관심, 생명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우리 사회에 ‘작은 세월호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한두 사람의 죽음은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연대’라는 말은 동의하지 않는 정권이나 불의에 대한 결집이라는 저항적, 한정적 의미만 갖고 있진 않다. 연대는 죽음과 살아 있음에 폭넓게 이뤄지는 행위다. “잊지 않겠습니다” 노란 리본이 죽음에 대한 연대라면 누구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죽음과 상함을 방치하지 말며, 살아 있음을 방해하는 극한의 상황을 같이 탈피하려는 행동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연대다. 지난 9월 경남 김해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순간 화염에 휩싸이자 시민들이 불길 속에서 구해냈고, 지난 7월 경남 마산역 앞에서 여고생이 차량에 깔리자 이를 본 시민 스무 명이 달려들어 차를 들어올려 생명을 구한 행동은 살아 있는 자들의 ‘살아 있음’에 대한 연대다. 어떤 목적도 예고된 약속도 없이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맺는 연대다. 그러나 오류동 경비원 박아무개씨처럼 버려져 방치된 보통 사람들의 죽음을 언론에서 종종 접할 때마다 살아 있는 자로서의 연대가 상실돼 가고 있음을 느낀다. 평범한 사람이 또다른 평범한 사람을 살려낸 사건을 단신 뉴스로 다룰 때마다 ‘용감한 시민’이라는 단골 제목을 붙이지만 나는 다른 제목을 붙여주고 싶다. 인간으로서의 인간, 살아 있음으로서의 연대. 그래서 그들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용감한 시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찾아서 말이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죽음을 넘다
지난달 2일 오전 10시께 서울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선로에 시각장애인 여성 김아무개(63)씨가 떨어져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서 휑한 지하철 역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서울랜드 직원인 김규성(42)씨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플랫폼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 방향 플랫폼에 서 있던 남자 두 사람이 다급하게 큰 동작으로 신호를 보냈다. 선로 쪽으로 가보라는 신호 같았다. 김씨가 있는 플랫폼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김씨는 선로 쪽으로 걸어갔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시각장애인 여성을 보았다.
“살려주세요.”
선로에서 통화를 하던 시각장애인은 팔을 높이 올려 플랫폼 위의 김씨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받아보니 119 직원이었다. 위치를 설명하고, 대공원역 관계자에게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119 직원은 김씨에게 역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아보라고 했다. 근처에는 비상벨이나 전화번호가 없었다. 전철이 곧 들어올 것 같았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던 김씨가 뒤늦게 맞은편 플랫폼에 선 남성의 신호를 보기까지도 벌써 몇 분이 흐른 상태였다. 이러다 죽을 것 같았다.
우선 지하철 선로에 뛰어 내려갔다. 시각장애인 여성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힘에 부쳤다. 여성은 오른쪽 팔과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맞은편 플랫폼에 있는 남성들이 내려왔다면 금방 들어 올렸겠지만 선로에 내려오지 않았다. 다급한 상황에서 김씨는 맞은편 플랫폼에 남자 두 명이 서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선로에는 곧 다가올 전철을 기다리는 김규성씨와 시각장애인 여성, 두 사람뿐이었다. 평생 알지도 못하던 두 사람이 지난달 2일 오전 10시 대공원역에서 같은 운명의 선로에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시각장애인은 두려워하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 불을 밝히며 들어오는 전철이 보였다. 김씨는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전철을 향해 시각장애인 여성이 가진 지팡이를 몹시 흔들었다. 혹시 멈춰설까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짧은 순간들 사이로 전철이 두 사람 앞으로 질주해 왔다. 자꾸만 “아프다”고 말하는 시각장애인을 끌어안다시피 하며 전철 선로와 연결된 배수로로 숨어들어갔다. 김씨와 여자가 배수로로 들어감과 동시에 전철이 대공원역에 들어섰다. 귀 바로 옆에서 굉음이 지나갔다. 여성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큰 기계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심하세요. 여긴 배수로고 안전해요!”
전철이 대공원역에 도착해 출입문이 열릴 때쯤 119 관계자가 도착했다. 공익요원이 선로에 내려왔고 119 관계자가 사다리를 가져왔다. 김씨가 시각장애인을 붙잡고 선로 위로 올렸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은 죽음 대신 함께 살아 있음을 택했다. 전철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김씨는 어떻게 선로로 뛰어내려갔을까. 그에게 손짓을 한 맞은편 선로의 남자들은 왜 다른 선택을 했을까. 지난 18일 서울랜드 유통사업팀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식자재 납품을 담당하는 그는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일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시각장애인 여성을 구하러 선로에 들어가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나요?
“그게 당시에 무슨 힘인지는 몰라도 도와달라고 하니까. 지금 지나고 나니까 생각을 하지만 당시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우선 눈앞에 보이니까 뛰어 들어갔어요. 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순간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저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수분 내, 수초 안에 전철이 들어올 테니까요. 들어가? 말아? 이 생각은 안 들었어요.”
-그 순간이 길게, 또는 짧게 느껴졌어요?
“엄청 빨리,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더라고요. 여성분을 발견한 뒤부터 배수로로 숨기까지. 금방, 다다다닥. 그리고 전철이 들어오더라고요.”
-맞은편 선로에 있는 남성은 왜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그때 제가 있던 플랫폼에 사람이 많았으면 서로 눈치 보고 그랬을 수도 있어요.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잖아요. 몰래카메라식으로. ‘군중심리’라고 해야 하나. 여러 명이 아니라 혼자니까 망설이지 않았어요. 맞은편 플랫폼에 두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맞은편 두 남성도 그거 같아요. ‘저 사람이 들어가겠지.’”
김씨가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언급한 ‘군중심리’를 뜻하는 심리 현상은 ‘제노비스 신드롬’이다. 1964년 3월13일 미국 뉴욕주 퀸스 지역에서 스물여덟살 여성 캐서린 제노비스가 괴한에 의해 죽어갔다. 목격자는 38명. 누구도 신고하지 않고 방관했다.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줄어들어 결국 방관하게 되는 심리가 제노비스 신드롬이다.
-이타심도 본능의 영역일까요?
“네, 본능이 있다고 봐요. 그때 저도 완전히 생각이 안 들고 머리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였으니까요. 몸부터 움직이면 그게 본능 아닐까요.”
-집안 환경이나 근무 환경은 어떠세요?
“아버지는 철도공무원이었고 평범한 가정환경이었어요. 저희 직원들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서울랜드) 유통사업팀은 외인구단이라고 그래요. 밤에 일하니까 낮에 관리동에 있는 직원들과는 서로 몰라요. 5명이 밤 12시에 출근해서 서울랜드 직영점 매장에 식자재를 제공하는 일이에요. 싱싱한 거 납품하고 그럼 좋죠, 뭐. 물론 자질구레한 스트레스는 있겠지만 팀에서 서로 막 경쟁적으로, 이런 건 없습니다.”
-주위에선 뭐라고 그래요?
“니가 그럴 줄 알았다고. 오지랖이 넓다고들 하죠. 길 가다가 할머니가 리어카 끌고 가면 저도 같이 끌어요.”
-삶의 신념이 뭐예요?
“글쎄요. 생각이 안 나네.”
김씨는 인터뷰가 끝나고 사무실에서 대공원역 입구까지 차량으로 데려다주면서 뒤늦게 대답했다. “생각났다! 착하게 살자요.”
처음 보는 남자와 바다에서 덜덜덜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사이인 이승준(32·위)씨와 강동호(32·아래)씨는 지난 9월25일 새벽 2시30분께 제주시 용담해안도로 편의점 앞에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사는 게 팍팍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누구 없어요? 누구 없어요?”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승준씨는 어두컴컴한 가운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고 강동호씨는 주차된 차량에 시동을 걸어 이동했다. 강동호씨가 뒤늦게 도착해 친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이승준씨가 바다에 들어간 뒤였다.
이승준씨는 술에 취해 바다에 빠진 어떤 남성을 붙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닷속 바위에 의지해 매달려 있었다. “누구 없어요?”라는 음성은 바다에 빠진 남성을 목격한 행인 세 명이 지른 소리였다.
강동호씨는 바다에 빠진 남성보다 친구가 먼저 걱정됐다. 그도 조심스레 바위들을 디디며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친구와 함께 술에 취한 남성을 붙잡았다. 다른 목격자들이 이미 119에 신고한 뒤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구조대원이 올 때까지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성이 몸을 가누지 못할 뿐 아니라 추위로 인해 몹시 떨었다.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바위 위로 올려야 될 것 같았지만 힘에 부쳤다. 두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남성을 밀며 위로 올려놓았다. 새벽 시간대 어두컴컴한 바닷속 바위로 걸어가는 행위는 위험하다. 어떤 생각으로 뛰어들어갔는지를 물으려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승준씨는 “한 일이 없어서 인터뷰할 만하지 않다”고 했다.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 연구원 강동호씨를 설득해 지난달 19일 제주시 연동에서 만났다.
-친구 승준씨가 술에 취한 남성을 구하려 바다에 빠진 걸 봤을 때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큰일 났다는 심정이 들었어요. 뭐냐, 이거. 승준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먼저 들어가고 저는 친구가 걱정스러워 들어갔어요.”
-승준씨는 무슨 마음이 들어서 먼저 달려갔을까요?
“승준이는 굉장히 이타심이 강해요. 아무 생각 없었을 거예요. 그 친구랑 고등학교 17살부터 알았는데 정말 친한 친구가 된 것은 24살 때예요. 제가 제주대 총학생회장에 출마를 했는데, 그땐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자기 일보다 더 열심히 나를 도와줬어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너무 많이 도와줘서 사람들이 ‘강동호 옆에 이승준이 있어’라고 부러워할 만큼요. 이 남성분이 바위를 안 잡고 있었으면, 또 승준이가 들어가서 붙잡지 않았으면 쓸려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승준이와 친구가 되면서 변한 게, 예전엔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게 없었는데 이 친구를 만나면서 변하게 됐던 것 같아요. 친구한테 희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승준이 덕에 들어간 거예요. 승준이니까.”
-누구를 위기에서 구한 경험이 처음인가요?
“아뇨. 제가 군대를 의무 소방으로 나왔어요. 2001년에 서울 홍제동 화재로 소방관 여섯 분이 숨지고 소방인력이 증원되면서 이듬해 군 대체복무로 의무 소방원 제도가 생겼어요. 2003년에 입대했어요. 처음 듣는 말이 ‘너희들은 군인이다. 일반 군인들은 총을 듦으로 우리 국민을 보호하지만 너희한테는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가르쳐줄 거다’였어요. 그 말을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4주 교육받으면서 구급 심폐소생술 이런 거 배우고 현장에 배치가 되었어요. 보통 출동 나가면 소방관 2명에 의무 소방원이 보조로 따라가요. 제가 상병 때였는데 오토바이 타다가 고등학생 3명이 사고 나서 구급차 두 대가 출동했어요. 한 친구가 뇌출혈 증상을 보였어요. 구급차 안에서 호흡을 멈췄어요. 같이 있던 소방관이 저한테 심폐소생술을 시켜서 했는데 그 친구 호흡이 돌아오더라고요. 사람을 살린 경험이 너무 좋았어요. 의무 소방 경험 때문인지 교통사고 나면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더라고요. 상황을 보고 가게 돼요. 지금은 많이 잊어먹긴 했는데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알잖아요. 제가 신고를 하면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예를 들면 피해자는 몇 명이고 구급차는 한 대로 안 될 것 같다든지 하는. 제주가 좁아서 목소리 들으면 아는 소방관분들이 계시거든요. 한번은 교통사고 나서 전화했더니 ‘너냐?’ 하시더라고요.”
-타인에 대한 관심도 일종의 습관이 되면 좋아질까요?
“글쎄요. 그런데 의무 소방원 시절 이전과 이후는 달라진 것 같아요. 인터뷰를 승준이 이야기로 써야 하는데…. 승준이도 꿈이 소방관이에요.”
-승준씨 꿈은 왜 소방관인가요?
“제대하고 나서 의무 소방원 경험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어요. 사람 구했던 일이 너무 보람 있었다는 말을 제가 많이 했어요. 그런 영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승준이가 운동 신경도 좋고 적성에도 맞을 것 같다고 소방관이 되고 싶어했어요. 대한민국 경찰은 욕을 먹을 때도 있지만 소방서는 도민들이 신뢰하고 좋아하잖아요. 승준이가 이제껏 필기시험을 세 번 통과했는데 실기에서 내리 떨어졌어요. 사실 과목을 조금 바꾸어서 경찰 시험을 쳐도 되지만, 승준이는 꼭 소방관이 꿈이래요.”
-사람 구하고 나서 제주 소방서로부터 표창장도 받고 뿌듯하셨겠네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표창장 자체가 제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집에 잘 보이는 데 놔뒀어요. 우리 아기가 네 살인데 볼 수 있게. 저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마음은 있는 것 같아요. 표창장 안 받아도 좋았을 것 같아요. 승준이와 저의 추억이니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둘이 뿌듯하고 자부심 생기고 그런 거니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강동호씨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친구 이승준씨 집으로 찾아가는 길에 동행했다. 설득 끝에 이씨의 사진을 찍었다. 이씨에게 어떤 소방관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그냥 평범한 소방관이오. 사람 구하는.”
컴컴한 길에서 여자가 소리치니까
지난 6월19일 0시20분께 손용석(25)씨와 여자친구가 부산 구포대교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가로등도 없이 어두컴컴한 길이었다. 한 남자가 손씨 옆을 뛰어가고 그 뒤로 젊은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싶어서 가방을 친구에게 맡기고 손씨는 순간 남자를 쫓아갔다. 30m쯤 뛰어간 그에게 남자는 주먹을 휘둘렀다. 넘어진 손씨는 턱을 부딪혔고 다시 뒤쫓아갔지만 남자가 택시를 잡은 뒤였다. 손씨는 택시 문을 두드리면서 열어달라고 했지만 출발했다. 택시 번호판만 외워뒀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가방을 갖고 있는 친구 쪽으로 걸어갔다. 때마침 친구와 소리를 지른 여성이 어떤 커플의 차량을 타고 오고 있었다. 손씨의 친구가 두려움에 떠는 여성을 추스르고 지나가던 자동차를 세워 태운 것이다.
그 차량에서 내린 친구와 손씨가 주위를 걸어다니면서 택시를 찾고 있는데 때마침 지하철 모라역 근처에 어떤 택시가 정차해 있었다. 번호판을 보니 아까 외운 그 번호가 맞았다. 택시 문이 열려 있었다. 남자는 놀랐는지 넋이 나가 있었다. 손씨는 남자를 끄집어내려 했고 둘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손씨는 도망가려는 남자를 붙잡아 앉혀 놓았다. 조만간 도착한 경찰이 남성을 경찰차에 태웠다. 손씨와 친구는 경찰차를 타고 부산 북부경찰서에 가서 목격자 조서를 썼다. 손씨가 붙잡은 남성 이아무개(30)씨는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20대 여성을 200m가량 뒤쫓아가 가슴을 만지고 반항하는 여성을 바닥에 넘어뜨려 무릎을 다치게 한 혐의였다. 포기하지 않고 쫓아가 성추행범을 잡은 손씨를 지난 20일 부산시 남구 수영로 경성대학교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어떤 일이 벌어진지도 모르고 단지 여자가 비명을 질러서 뒤쫓아갔다는 건가요?
“일이 터진 것 같아서 잡고 이야길 들어봐야 되지 않겠나 해서 끝까지 쫓아갔어요. 거기가 엄청 어두운 거리였어요. 무슨 생각 같은 건 없었고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이 있으니까 여자분이 소리지르겠지 생각했어요.”
-택시를 타고 달아난 피의자를 찾아다녔다는 게….
“잡고 싶었어요. 누나가 두 명 있어서, 남 일 같지 않아서. 중학교 때도 누나들 마중 나가고 그랬어요. 누나 생각하니까 더 그랬어요. 잡힌 남자를 보니 인사불성이었어요.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았어요. 술 마셨을 거예요.”
-평소에도 남을 도운 경험이 있어요?
“이런 똑같은 일은 겪은 적은 없어요. 좀 추운 날에 길거리에 주무시는 분을 경찰서에 전화해서 인계한 적이 있어요. 두세 번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의경 나와서 그런 건지. 의경 하면서 치안에 관심이 생겼어요.”
-의경으로 복무하며 어떤 일을 했나요.
“모범 순찰을 돌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구나 느꼈어요. 시위 진압은 기동대가 하고 저는 방범순찰대였어요. (부산) 동부경찰서에서 복무했는데 어르신들 많이 계신 초량동 달동네 같은 곳은 치안이 무척 안 좋았어요.”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예요?
“잡으러 가야죠.”
-지금 하는 일은요?
“대학은 1학기 다니고 중퇴했어요. 경찰공무원 준비했지만 공부를 못해서. 지금은 실내건축 인테리어 쪽으로 자격증을 땄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배우면서 인테리어 관련 일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빨리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트럭 야채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를 경제적으로 도와야 하니까요.”
-이타심도 일종의 본능일까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제 경험에 비춰봐서도. 성장 배경도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성장 배경이어야 할까요?
“가족끼리 유대관계가 있고, 조금의 부족함을 서로 채워줄 수 있는 관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한 것도 이타심에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조금 부족하니까 내가 누굴 도와주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되잖아요.”
-앞으로 꿈이 뭐예요?
“그냥 뭐. 순탄하게 지금처럼. 음…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을 도와가면서 욕심 없이. 주변 사람들하고 잘 지내고 그게 다인 것 같아요. 내가 누구를 도움으로써 저 혼자 뿌듯해요. 누가 쓰러져 있다 그럴 때 그냥 지나가면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찝찝…. 마음이 불편해요. 어제 비가 왔거든요. 일 마치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떤 젊은이가 벽돌을 손 뒤에 들고 가더라고요. 버스에서 내려서 따라갔죠, 조용히. 비 오고 손 뒤로 벽돌 들고 모자 쓰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어서. 그 사람이 그냥 집에 들어가더라고요. 아무 일 없는 것 같아서 집에 왔어요.”
-그냥 지나치질 못하니 그래서 경찰이 꿈이었나봐요?
“미련이 없진 않죠. 현실을 보면 공부하기에는 좀 힘든 현실이에요. 지금은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부산 북부경찰서에서 표창장 받았잖아요. 적절한 보상 같나요?
“표창이 적당한 보상인 것 같아요. 뿌듯해지는 그런 느낌만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그렇게 큰 보상은 필요 없어요. 그런 걸 바라고 그러는(성추행한 남성을 쫓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소리가 나니까 본능적으로.”
-어떤 가정 환경이에요?
“어디 가서 모났다는 사람은 아니게 키워주셨어요. 어머니는 고1 때 돌아가셨어요. 저도 중학교 때부터 방학이면 아버지가 하는 채소 가게 나가서 도왔어요. 부산 사상구에 있는 새벽시장에서요. 어르신들이 고객인데 자연스럽게 대하는 법도 알게 되고요.”
-부정적인 사고를 잘 안할 것 같아요.
“좀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려러니 넘어가요.”
-친구들은 뭐래요?
“친구들은 장난이 심해서 기사 뜬 거 보고 제가 범인인 줄 알았다고 농담하기도 하고 원래 경찰 준비한 걸 아니까 ‘손 순경’ 어쩌고 하면서 장난하고 그래요. 제가 인복이 많았던 것 같아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친구들도 십년 넘게 알아온 친구들이고.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많았어요.”
-무관심 속에서 쓰러져 숨진 경비원 아저씨의 사례처럼 각박한 세상살이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땐 어때요?
“안타깝죠. 조금만 관심 가지면, 전화 한 통에 살리고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안타까워요.”
목격자 많을수록 책임감 가벼워
결국 방관하는 제노비스 신드롬
“그때 제가 있던 플랫폼에 사람이
많았다면 눈치 봤을 수도 있겠죠
혼자니까 망설이지 않았어요” “비오던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모자 쓴 젊은이가 손 뒤에 벽돌을
들고 가길래 조용히 따라갔어요
꼭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냥 집에 들어가더라고요” 구해? 말아? 생각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들이었으며
극도 경쟁환경에 처해있지 않았다
소박한 꿈을 꾸며 일상을 살았다 나는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 김규성씨, 이승준씨, 강동호씨, 손용석씨는 일생의 어느 순간 알지 못하는 타인과 사고처럼 맞닥뜨렸다. 외면하지 않았다. 김규성씨는 처음 보는 시각장애인 여성과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이승준씨, 강동호씨는 바다에 빠진 남자를 구해 바위 위로 올려놓았다. 손용석씨는 성추행당한 이름 모르는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바닥에 턱을 찧으면서도 끝까지 쫓아갔다. 생명을 살리고 범죄 피해자의 추가 피해를 막았다. 비슷한 점이 많았다. 누군가를 위해 본능처럼 달려갔다. 구해? 말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표창장이란 사회적 보상에 만족하며 추가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이 일로 죄책감이나 무감각이 아닌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었으며 친구, 가족 등의 유대관계가 단단했다. 극도의 경쟁적 환경에 처해 있지 않았다. 소박한 꿈을 꾸며 일상을 살았다. 의무 소방과 방범 순찰 경험, 리어카 끄는 할머니를 도우며 타인을 돕는 훈련과 습관이 돼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을 언어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자랑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계산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두려워하는가, 용기 내는가. 모른 척하는가, 손 내밀 것인가.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내가 아는 나는, 나의 전부가 아니다. 극도의 배고픔, 공포와 전쟁, 폭력에 내몰린 사람이 다른 선택을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저버리는 것처럼.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면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바로 나다. 사고처럼 어느 순간 마주한 타인들과 뒤엉켜 목격자, 신고자, 조력자로 인간으로서의 인간이 되어 주는 사람인지, 방관자인지. 김규성, 이승준, 강동호, 손용석씨가 그 순간을 지난 뒤 느꼈다는 뿌듯함은 타인을 도왔다는 보람이며 내 영혼을 확인한 것에 대한 기쁨이다. 이들의 행동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였다.
죽음을 방조한 선장과 일부 선원들의 이기심 등으로 304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국민안전처가 출범했고 관련 제도가 정비된다고 한다. 이타성의 출현이 적어진 사회에서 법, 제도, 관련 인력, 부처만 바뀐다고 ‘작은 세월호 사건’들도 막을 수 있을까.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살수차를 직선으로 맞아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가 중태에 빠졌음에도 잘못 사용된 공권력과 행정부 수장으로서의 사과, 중태에 빠진 생명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없었다. 사람에게 직선으로 내리꽂는 살수 가운데서도 비틀거리며 쓰러진 백씨를 끄집어낸 이도 평범한 시민이었으나 대통령은 시위하는 시민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아이에스(IS)에 비유했다. 공권력의 수장이기에 앞서 그는 정파와 진영,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간으로, 살아 있음에 대해 연대하는 사람인지 의문을 던져본다.
제주·부산/글·사진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맺는 연대
평범한 시민을 살린 평범한 시민들
그래서 ‘용감한 시민’이라 불리는
4인의 위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로에 떨어진 시각장애인 여성을
잡고 달려오는 전철 피한 김규성씨
술에 취해 바다에 빠진 남성을 잡고
바위에 매달린 강동호 이승준씨
어두컴컴한 새벽길 성추행범 쫓아
격투와 부상 끝에 붙잡은 손용석씨 오류동 경비원과 허난성 노인의 죽음 서울 오류동 경비원도, 중국 허난성의 노인도 사람들의 방치 또는 무관심 속에서 맞이한 죽음이었다. 선장은 퇴선 명령 대신 내빼기에 바빴고 일부 선원들도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던 이기심으로 세월호 침몰은 30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물론 법적 처벌의 대상인 세월호 사건을 오류동 경비원, 무릎 높이의 물속에서 숨진 중국의 노인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유기치사죄는 법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가 보호 대상을 내버려둠으로써 죽음에 이르렀을 때만 인정된다. 자신이 특별한 위험에 빠질 상황이 아닌데도 일반인이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으면 이를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프랑스와 스위스 등이 제정했지만 한국은 아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노인 곁을 지나는 시민에겐 타인에 대한 법적 보호 의무가 없기 때문에 무관심이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둔 고의성 여부와 이기심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타인의 대한 무관심과 이로 인해 앞당겨진 죽음들은 메마른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고통에 대한 무관심, 생명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우리 사회에 ‘작은 세월호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한두 사람의 죽음은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연대’라는 말은 동의하지 않는 정권이나 불의에 대한 결집이라는 저항적, 한정적 의미만 갖고 있진 않다. 연대는 죽음과 살아 있음에 폭넓게 이뤄지는 행위다. “잊지 않겠습니다” 노란 리본이 죽음에 대한 연대라면 누구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죽음과 상함을 방치하지 말며, 살아 있음을 방해하는 극한의 상황을 같이 탈피하려는 행동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연대다. 지난 9월 경남 김해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순간 화염에 휩싸이자 시민들이 불길 속에서 구해냈고, 지난 7월 경남 마산역 앞에서 여고생이 차량에 깔리자 이를 본 시민 스무 명이 달려들어 차를 들어올려 생명을 구한 행동은 살아 있는 자들의 ‘살아 있음’에 대한 연대다. 어떤 목적도 예고된 약속도 없이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맺는 연대다. 그러나 오류동 경비원 박아무개씨처럼 버려져 방치된 보통 사람들의 죽음을 언론에서 종종 접할 때마다 살아 있는 자로서의 연대가 상실돼 가고 있음을 느낀다. 평범한 사람이 또다른 평범한 사람을 살려낸 사건을 단신 뉴스로 다룰 때마다 ‘용감한 시민’이라는 단골 제목을 붙이지만 나는 다른 제목을 붙여주고 싶다. 인간으로서의 인간, 살아 있음으로서의 연대. 그래서 그들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용감한 시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찾아서 말이다.
지난달 2일 오전 10시께 김규성(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이)씨가 서울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선로에 떨어진 시각장애인 여성을 구하려다 죽음의 위기를 함께 넘기고 구출되는 장면. 뒤늦게 도착한 119 구조대원이 준비한 사다리가 김씨 옆으로 보인다. 사진 한국방송 화면
바닷속 바위에 의지해 떠내려가려는 남성을 구조한 강동호(맨 왼쪽)씨와 이승준(왼쪽 둘째)씨가 지난 10월5일 제주소방서장 표창을 받았다. 사진 헤드라인 제주 갈무리
추격 끝에 성추행범을 붙잡은 손용석씨가 지난 6월22일 부산 북부경찰서에서 서장 표창을 받았다. 사진 연합뉴스 갈무리
결국 방관하는 제노비스 신드롬
“그때 제가 있던 플랫폼에 사람이
많았다면 눈치 봤을 수도 있겠죠
혼자니까 망설이지 않았어요” “비오던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모자 쓴 젊은이가 손 뒤에 벽돌을
들고 가길래 조용히 따라갔어요
꼭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냥 집에 들어가더라고요” 구해? 말아? 생각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들이었으며
극도 경쟁환경에 처해있지 않았다
소박한 꿈을 꾸며 일상을 살았다 나는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 김규성씨, 이승준씨, 강동호씨, 손용석씨는 일생의 어느 순간 알지 못하는 타인과 사고처럼 맞닥뜨렸다. 외면하지 않았다. 김규성씨는 처음 보는 시각장애인 여성과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이승준씨, 강동호씨는 바다에 빠진 남자를 구해 바위 위로 올려놓았다. 손용석씨는 성추행당한 이름 모르는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바닥에 턱을 찧으면서도 끝까지 쫓아갔다. 생명을 살리고 범죄 피해자의 추가 피해를 막았다. 비슷한 점이 많았다. 누군가를 위해 본능처럼 달려갔다. 구해? 말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표창장이란 사회적 보상에 만족하며 추가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이 일로 죄책감이나 무감각이 아닌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었으며 친구, 가족 등의 유대관계가 단단했다. 극도의 경쟁적 환경에 처해 있지 않았다. 소박한 꿈을 꾸며 일상을 살았다. 의무 소방과 방범 순찰 경험, 리어카 끄는 할머니를 도우며 타인을 돕는 훈련과 습관이 돼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을 언어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자랑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계산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지난해 4월16일 오전 9시46분, 침몰해가는 세월호 조타실에서 속옷 차림으로 탈출하는 이준석 선장. 선장과 일부 선원들이 승객의 죽음을 방조하고 혼자 살려고 했던 이기심이 부른 참사였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