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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름] "하나님"에 대하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12. 26. 08:24

 [이름] "하나님"에 대하여

요즘 절대적 초월자를 가리키는  말로 "하느님"과 "하나님"의  두 가지 말을  씁니다. 
개신 기독교에서 주로 하나님을 사용합니다.  하느님은 구교 기독교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종교의 초월적 절대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

한때 "하나님"이 맞느니 "하느님"이 맞느니  하며 토론이 격렬했습니다만, 그거  별로
큰 싸움거리 아닙니다.  우선 두 말은 어원이 같습니다.   "하늘"에 "님"이 붙은 것입
니다.

하늘의 고어 형태는  아래 아(?)를  쓰고 히읗 종성체언이었던  "하 ㅎ"이었습니다. 
이것이 여러 백년을 거쳐서 현대어 "하늘"로 정착된 것입니다. 

그 "하늘"에 "님"을 붙이고, 님의 "니은" 때문에 "ㄹ 탈락"이 일어난 것이 "하느님"이
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입니다.  "하 ㅎ"의 아래 아 발음을 되살려 "님"을  붙
인 것이 "하나님"이지요. 

문법적으로는 "하느님"이 맞는다는 주장이 많습니다만, "하나님"도 "하   + 님"의 독
특한 진화형태로서 인정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의미론적으로는 "하느님"
이나 "하나님"이나 완전히 같은 뜻입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기독교의 초월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하느님"을 쓸 것인지 "하
나님"을 쓸 것인지는 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해방 이
후 5-60년대에는 국어학자와 신학자들 사이에 심각한 언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심각성의 면에서라면 19세기말 성경 번역자들이 부딪혔던 문제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였을 것입니다.  당시의 성경 번역자들은 천제(天帝), 상제(上帝) 등의  중국식
이름과 신(神)이라는 일본식 한자어  이름, 그리고 "하느님"이라는 고유어  이름 등을
놓고서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할지를 그야말로 심각하게 고민했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 모든 대안들을 버리고 "하나님"이라는  다소 당시 국문법상 논
란이 있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걸 잘했다, 잘못했다 따지기
전에 그분들이 왜 그랬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잘잘못은  그
다음에 따져도 늦지 않습니다.

한국에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등장하는 과정을 보기 전에 히브리, 헬라, 서구
에서는 기독교의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불렀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히브리 이름 - 엘로힘과 예호바

창세기에 보면 1장1절부터 하나님의 히브리 이름이  나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
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의 하나님은 엘로힘(     )입니다.  영어 흠정역에서는 갇
(God)이라고 했습니다. 

엘로힘은 하나님(God)과 가짜 신(false god)을 모두 가리키는  엘로아(     )의 복수
형인데, 형태는 복수형이지만 단수의 뜻을 가지기도 한답니다.  그럴 때에는  다시 진
짜 하나님(God)을 가리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쨋든 엘로힘은 모든 종류의  초월적 존재(편의상, 오늘날의  어법대로 신(神)이라고
하겠습니다)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입니다.  영어에서는 진짜 하나님을 가리킬 때에 대
문자를 써서 갇(God)이라고 따로 표시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엘로아(57번)보다는 엘로힘(2,606번)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엘로아든 엘로힘이든 진짜 하나님을 가리킬 때가 전체의 90퍼센트 이상, 그리
고 가짜 신을 가리킬 때가 약 10퍼센트 남짓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첫 몇 장만 보아도 벌써  하나님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나옵니다. 
1장1절부터 2장3절까지의 천지창조의 주체는 앞에서 본대로 엘로힘입니다.  그런데 2
장4절부터 3장 끝까지에는 천지창조이야기가 반복되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
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이 부분의 하나님은 예호바 엘로힘
(          )입니다.  새로 예호바라는 이름이 등장해서 엘로힘에 붙었습니다. 

4장1절부터 23절까지의 가인의 아벨 살인사건과  그 결과에 대한 기록에서는  그나마
엘로힘도 없이 그냥 예호바(    )입니다.  그러다가  4장24절부터는 엘로힘과 예호바
가 혼용되기도 하고 합용되기도 합니다.  

"엘로힘"이 일반명사라면 "예호바"는 고유명사입니다.   유태인들의 하나님을 부르는
독특한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제호바"(Jehova),  한국말로는 "여호와"라고 옮겼습니
다. 

이 여호와는 히브리말로 "있음"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히브리어의 "있
다, 되다"라는 뜻의 동사 하야(   )의 명사형입니다.   영어식으로 말하면 비(be)동사
의 명사형(being)쯤 되고, 한국말로는  "있다"의 명사형인 "있음"입니다.   "여호와"는
성경에 총 6천5백여번이 사용됐습니다.  "엘로힘"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관한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당신이 누구
요?"하고 물었을 때 주신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예호바 야슈르 예호바(         
   )"인데 직역하면 "나는 있음 그 자체이다"입니다. 

한국말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번역했고, 영어 흠정역에서는 "아이앰 댓 아
이앰" (I am that I am)이라고 옮겼습니다.   히브리어든 한국어든 영어든 멋진 말이
고 멋있는 번역들입니다.  섭섭한 것은 이 말은 내용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이
고, 그래서 우리가 써먹을 수가 없다는 점이지요.


하나님의 헬라어 이름 - 데오스와 퀴리오스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도 두 가지입니다.  엘로힘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름
이 "데오스"(    ), 여호와에  해당하는 이름은 "퀴리오스"(      )입니다.   데오스는
엘로힘과 마찬가지로 참 하나님과 가짜 하나님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반명사
지요. 

퀴리오스도 "주인, 소유자"라는 일반 명사입니다.  고유명사 여호와가  일반명사 퀴리
오스로 번역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태인들의 결벽증 때문입니다.  유
태인들은 성경이나 탈무드에 여호와(    )라는 이름이  나오면 그 이름을 함부로 입
에 올릴 수 없다면서 "나의 주"(my lord)라는 뜻의 "아도나이"로 읽었다는군요.  여호
와로 쓰고는 아도나이로 읽은 것이지요.  그러다가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에
아예 여호와를 번역하지 않고 아도나이를 번역해서 퀴리오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헬라어 신약성경과 그 전통을  이은 라틴어와 영어 신약성경에는  여호와라는
고유이름이 단 한번도 안나옵니다.  그 대신 "아도나이," "도미누스," "로드"라고 번역
했습니다.  구약에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4번  정도 제호바라는 말이 나오기
는 합니다.

 

 

 

 


*한국식 하나님 이름

개역 한글판 성경에서는  예호바는 일관되게 "여호와"로  음역됐고, 퀴리오스는 거의
예외없이 "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엘로힘과 데오스는 모두 "하나님"으로 번역
됐습니다. 

개역 한글판 성경에 나타난 한국어 하나님 이름 짓기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일반명사인
"엘로힘"과 "데오스"를 "하나님"이라는 고유명사로 바꿔놓았다는 점입니다.

우선 "여호와"라는 이름을 자유롭게 썼다는 점을 봅시다.  이는  히브리어, 라틴어 헬
라어, 영어 성경과 다른 점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일본어 성경과도 다릅니다.  오로
지 한국어와 중국어 성경에서만 "여호와"라는  이름을 거리낌없이 사용합니다.  출애
굽기 20:7의 말씀을 각국 언어로 역본별로 한번 보십시오.


개역한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공동번역   너희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표준새번역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KJV       Thou shalt not take the name of the LORD thy God in vain;
NIV       You shall not misuse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NASB     You shall not take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in vain,

新改譯     あなたは, あなたの 神, 主の 御名を, みだりに 唱えてはならない.
口語譯     あなたは, あなたの 神, 主の 名を, みだりに 唱えてはならない.
新共同譯   あなたの 神, 主の 名をみだりに 唱えてはならない.

Big5       不可妄稱耶和華 神的名 因 妄稱耶和華 名的 耶華和必不以他無罪
GB        不可妄 耶和 神的名 因 妄 耶和 名的  耶和 必不以他 无罪


영어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모두 대문자 로드(LORD)로 번역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
름을 피하면서도 대문자로 처리해 차별화시켰습니다.  일본  성경에서도 이를 일률적
으로 "슈(主, shu)"로 번역했는데 차별화는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어 성경
에서는 여호와가 완전히 일반명사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어에서는 야화화(耶和華) 혹은 야화(耶和)라고 예호바를 음역했고, 한국어
성경에서도 여호와 혹은 야훼라고 음역했습니다.  다만  한국어 성경 중에서는 "표준
새번역"이 영어 번역본을 따라서  "주(主)"라고 번역했습니다.  일본어  성경에서처럼
차별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성경은 신교에서는 개역 한글판, 구교에서는 공동
번역이므로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여호와" 혹은 "야훼"의 이름을 자유롭게 부
르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헬라인, 로마인,  영미인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심정적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
이라는 말에 그 점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 한국과 중국인들의 섬김의 대상은 "하늘(天)" 혹은  "티엔(天)"
이었습니다.  여기서의 하늘은 눈에  보이는 하늘(sky)이기도 하지만, 만물의  궁극적
원인이자 만물 속에서 있어서 만물을 만물되게 하는 원동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
니다.  한국과 중국인들은 하늘이 주관하는 인과응보를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하늘은
두렵고 멀리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친근하고 가까이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인내천은 사람이 하늘과 맞먹을 수 있다는 시날 평지의 바벨탑  건축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사람은 하늘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의 근본은 하늘이며,  사람의 본
성은 하늘의 그것과 같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늘의  본성이 리(理)라면, 사람의 본성
은 성(性)인데, 리(理)와 성(性)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주장을 조금만 더 밀고  나가되면 모든 인간은 하늘처럼 잘  대접받아야 한다는
믿음이 됩니다.  따라서 인내천(人乃天)은 아주 중요한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인자  중
의 하나입니다.

바로 이런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문화적 유전인자의 영향 때문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맞은 구한말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스스럼없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을 것이
라고 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만나게된 조선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하늘(天) 개념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일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친구끼리 이름도 못부르나?" 하는 식이었을 것입니다.  문
화적 유전인자는 생각보다 끈질기고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게다가 친근한 하나님의 이름  부르기는 성경이 권장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십계명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경고가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
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이지, 아예 부르지 말라는 것이 아
니지 않느냐고 해석되었을 것입니다.  요엘서 2:32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구
원을 얻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개역한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KJV      And .... that whosoever shall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shall be delivered:

新改譯      しかし, 主の 名を 呼ぶ 者はみな 救われる.

Big5        到那時候凡求告耶和華名的就必得救.


출애굽기의 기록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영어성경과 일본어  성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모두 "로드"(LORD)와 "슈"(主)로 번역했고, 중국어  성경에서는 모두 "야화화
(耶和華)" 혹은 야화(耶和)로 음역했으며, 한국어 성경에서는  영미와 일본의 예를 따
른 표준새번역만 제외하고는 "여호와"와 "야훼"라는 음역을 사용했습니다. 

글이나 문장에서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중요합니다.  다음의  세 문장을 비교해 보십
시오.

(가) "야, 임마, 우리 서로 말 까자."
(나) "여보십시오, 우리 서로 말을 높이십시다."
(다) "야 임마, 우리 서로 말을 높이자."

(가)와 (나)의 문장에서는 내용과 형식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에서는 내용
은 "말을 높이자"인데, 형식은 "말을 까"고 있습니다.  (다)와 같은 문장이 바로  위에
든 헬라어, 라틴어, 영어 번역 성경의  서술방식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구
원받는다"고 쓰면서도 정작 "여호와"라는 이름을 빼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어와
중국어 성경의 요엘서 번역에서는 내용과 형식이 잘 일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한국어 성경의 두 번째 특징은 전통적으로 일반명사였던 "엘로
힘"과 "데오스"를 번역하면서 초월적 존재를 가리키는 한국의 일반명사들을 제쳐놓고
서 굳이 "하나님"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사용한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태인들과 헬라인들은 2천년전에 고유명사  "여호와"를 일반명
사 "아도나이"와 "퀴리오스"로 바꾼 바 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의 한국인들은 일
반명사 "엘로힘"과 "데오스"를 다시 "하나님"이라는  고유명사로 뒤집어 놓은 것입니
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번역과 하나님 이름

사실 엘로힘과 데오스를 번역해야  했던 구한말의 기독교인들과  성경번역자들에게는
이미 여러 가지 선택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전래적으로 하늘의 초월적 존재를 가리키
는 말로 상제(上帝) 혹은 천제(天帝)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용어들은 구교와 신교 일부에서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혹은 상제나 천제
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변형하여 천주(天主)라는  말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
요.  그래서 구교의 이름이 천주교(天主敎)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성경 번역자들은  이런 용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
다.  그대신 "하느님," "하 님," "하나님" 등의 이름을 선호했습니다.  이 이름들은 기
존에 민간에서 흔히 사용되었던 "한울님,"  "하늘님," 하 님"등으로부터 직접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당시의 성경 번역사업이 한국 신자들의 강렬한 요청과 열망에 의해 추진되었
다는 점, 그리고 1887년에 조직된  한국어성서번역위원회가 부녀자와 하층민을 겨냥
하여 한글 전용 방침을 채택한 것과 관련이 깊습니다.

특히 이만열 선생님의 설명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선택하는 데에는 사회 계층별로
의견이 갈렸다고 합니다.  한문과 주자학에  절은 양반층들은 "천제"니 "상제"니  "천
주"니 하는 한자어를 선호했습니다.  게다가 그런  용어들은 이미 중국에서도 사용하
고 있으므로 "사대(事大)"의 예에도  어그러짐이 없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기독교로
개종하고서도 중국과 한문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초기
구교 신자들을 다수 점유했던 것이 양반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째서  구교의 하나
님 이름이 "천주(天主)"가 되었는지도 쉽게 짐작이 갑니다. 

반면에 신교에서는 신도의 다수가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한 상민들이었고 이들은 압도
적으로 한글 이름을 더 좋아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이들의 열망을 우호적으로 보았던
것이 한글 성경의 하나님 이름이 한글로 채택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
었습니다.

최초의 한글 성경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로스(Ross)가 의주 출신의 상인이었던
서상륜의 도움으로 번역해 낸 누가복음입니다.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이라는 이름으
로 만주에서 활판인쇄로 출판되었는데, 이것이 1882년의 일입니다.  이 성경에서는 데
오스(    ) 혹은 갇(God)의 번역어로 "하느님"을 채택했습니다. 

10년뒤인 1892년에는 국내 최초의  한글번역 성경으로 한국어성서번역위원회가 번역
한 "마태복음젼"이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하나님"을 사용했습니다. 

그 뒤로도 신약성경의 각 책이 속속 번역되었는데, 마침내 1900년에는 모든 신약 번
역본들을 모아서 한권으로 묶은 "예수셩교전서"가 출판됐습니다.  이 번역본은 장로
교 선교사들의 감수를 거쳐서 1906년 한국 최초의  공인역본 신약성서로 지정되었습
니다.  이 성경에서는 "하 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한문파(漢文派)의 반동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890년대 초에는 양반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성서번역위원회의 위원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면서 이들의  입김으로
"상뎨(上帝)," "상뎨님," "신(神)," " 신" 등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었습니다.  일부  복
음서와 서신서에는 이런 이름이 채택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문 이름들이 통용되자 상민층  사이에 혼란과 반발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성서번역위원회의 실권을 쥔 선교사들은 18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자어 이름
을 배제하기로 결정합니다. 

예외적으로 국한문으로 발간된 신약전서(1906, 1910, 1921)과 구약젼서(1922)에서는 하
나님의 번역어로 "상뎨"(上帝)를 인정했습니다만, 1920년대 이후로는 그나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자어가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는  "하 님"과 "하나님," "하느님"
이 경쟁적으로 사용되다가 점차로 "하 님"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1956년에 한
글맞춤법개정안에 따라 아래 아(?)를 쓰지 않기로 하면서 "하나님"으로 완전히 자리
를 잡게 됩니다.


"상제"(上帝)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

한국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정해지는 과정을 보면 재미있는 점이 두 가지 발견됩니다. 
우선 한문파와 한글파의 싸움에서  한글파가 승리했다는 점입니다.  아마  이런 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신채호 선생님은 고려시대 묘청과 김부식의 대결을 "조선  1천년내 제일 대사건"이라
고 하셨지만, "하나님"과 "상제(上帝)"의 대결에서  "하나님"이 승리한 것은 그야말로
"조선 5백년내 제일 대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국내파가 해외파를 이긴 것은
한민족 역사상 처음생긴 일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거기에는 외국 선교사들의 "편들기"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시♣막灌?반
상(班常)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많이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
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사람 수가 많은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을 테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한민족 최초의  다수결의 관철, 혹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제(上帝), 천제(天帝),  천주(天主), 신(神) 등의  한자어 이름을 제치고
"하나님"이 데오스와 엘로힘의 번역어로 채택된 것이 대단히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
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날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문법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데도 공식 용어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하느님"이 가장 적합한
이름일 것입니다.  "하늘"과 "님"의 합성어가 되었다가 리을(ㄹ)이 탈락한 형태이니까
요. 

물론 하늘의 옛말은 "하 "이었고 19세기말에는 히읗(ㅎ)이 탈락해서 "하 "로 변했습
니다.  이때 "하 "에 "님"이 합해지고 리을(ㄹ)이  탈락해서 생긴 말이 "하 님"이었
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하 "은 "하늘"로 변했습니다만, "하 님"만은 "하느님"을 따
르지 않고 "하나님"으로 남았습니다.  낱말의 문법적 진화를 따르기를 거부한 셈이지
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라는 말은 일반명사의 강을 건너 고유명사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낱말의 정당성을 놓고서 국어학계과 신학계의  심심찮은 논쟁이 있었습니다만, 그
것은 이 글의 관심이 아닙니다.  문법에 맞지 않은 "하나님"이라는 말이 "고유명사"로
간주되면서까지 유지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못 흥미로운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호와처럼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이 낱말
은 여타의 초월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는 전혀  사용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다른 초월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모두 신(神)을 씁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서는 신(神)은 일반명사, "하나님"과 "여호와"는  모두 기독교의 초월적 존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것이지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하느님과 하나님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개신교(改新敎)에서는 고유명사가  된 "하나님"을 사용하는 반
면, 카톨릭에서는 일반명사로서의 "하느님"을 선호한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한국어
어법으로는 "하느님"은 초월적 존재를 보편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하나님"은 "개신교
만의 초월적 존재"로 쓰이잖습니까? 

아시다시피 카톨릭이라는 말은 "보편적, 일반적"이라는  뜻의 헬라어 카톨루(       )
에서 나온 말입니다.  카톨루는 "--와 함께, --으로써"라는 뜻의 전치사 카타(    )와
"모두, 다"라는 뜻의 홀로스('     )가 합쳐진 말입니다. 

카톨릭은 그 이름의 속성상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수긍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에 머물려는 특성을 보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래서 한국의 카톨릭도 반론이나
이의의 여지가 없는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쓴 것 같습니다.

반면에 개신교(改新敎)에서는 "튈려고" 합니다.   개신교의 전통은 "이의를  제기하고
반항하고 뛰쳐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개신교(改新敎)라는 이름은 프로테스
탄트(Protestant)라는 원래 이름을 가리키는 데에는 그 뜻이 좀 약합니다. 

그런데 개신교(改新敎)라는 이름은 그다지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라는 남
들이 동의하지 않던 이름을 채택하고 관철함으로써 그 튀기 좋아하는  성격을 여지없
이 드러냈습니다. 

조정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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