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선한 일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마 6:1-4)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 29. 12:43

선한 일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마 6:1-4)

 

  사람들은 나타내고 들어내기를 좋아합니다. 모파상의 '목걸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마틸드는 꽤 괜찮은 여자입니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는 미모와 우아함을 타고난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화려한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가난한 하급 관리의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별로 보잘 것 없는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의 남편 로와젤은 문부성에 근무하는 하급 공무원이었습니다. 
  마틸드는 자신이 누추하고 가난한 집안에서 살아야 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어느 모로 보나 호화로운 저택에서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맞는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남편 로와젤은 장관이 베푸는 연회에 부부가 함께 와 달라는 초대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마틸드는 좋아하기는커녕 슬퍼했습니다. 입고 갈만한 화려한 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달래기 위해 옷을 맞춰주기로 했습니다. 무려 400 프랑이나 되는 큰돈이었습니다. 
  옷이 다 만들어져 갈 무렵 아내는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옷이 문제가 아니라 치장할 보석이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친구인 포레스터 부인에게 보석을 빌리기로 하고, 그에게 가서 가장 멋져 보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렸습니다. 
  드디어 장관의 관저에서 연회가 베풀어지는 날 마틸드는 평생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모든 남자들이 자기를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함께 춤을 추자고 청했습니다. 새벽 네시까지 마틸드는 춤을 추며 즐겼습니다. 아름다운 미모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목에 걸려 있어야 할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급히 뛰어가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큰 일이 났습니다. 그들은 빈 보석 상자를 들고 보석 가게를 돌아다니며 비슷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값이 무려 36,000프랑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물려받은 전 재산인  18,000프랑에 사채, 고리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마구 꾼 돈으로 그 목걸이를 사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엄청난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싸구려 다락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온갖 궂은 일을 다 했습니다. 남편은 근무 시간이 끝나면 밤에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0년 걸려 모든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동안 마틸드의 미모는 폭삭 망가졌습니다. 완전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칠어졌습니다. 그런 어느 날 상제리제 거리를 걷다가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그 부인을 만났습니다. 그 부인은 마틸드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늙어버린 그를 보고 놀랐습니다. 
  마틸드는 포레스터 부인에게 10년 전에 돌려줬던 목걸이를 잊어버려서 새 것으로 사다 줬다는 것과 지금까지 고생했던 이야기를 다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너무나 놀라면서 말하기를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 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모조품이었어' 
  이 이야기에서 작가 모파상은 독자들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남에게 보이려는 허황한 심리를 꼬집은 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어야 합니다. 사랑도 그렇고 어떤 선한 일도 은밀히 할 때 그 속에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믿/
  그렇습니다. 진짜 사랑은 은밀해야 합니다. 그와 나만이 아는 것입니다. 흔히 당하는 경험으로 밥을 먹다가 돌을 씹는 경우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남편 되신 여러분들 어떻게 반응을 하십니까? 세 가지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얼굴을 찡그리면서 당장에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돌을 씹었으니 기분 나쁜 것 사실입니다. 이빨이라도 부러지면 어떻게 합니까? 쌀을 잘 일지 못한 아내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분 나쁜 것 아내에게 그대로 다 나타냅니다. 이런 태도 틀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사랑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미안한 아내의 마음은 티끌만큼도 생각지 않는 철저한 자기 중심의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돌을 보여주며 그냥 웃을 수 있습니다. 돌은 씹었지만 아 밥에 돌이야 쌀을 아무리 잘 일어도 간혹 나올 수 있는 것이니 당신 원망하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내를 생각하는 좋은 남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 하기도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자기는 즐거울 수 있을지 몰라도 부인은 즐거울 수 없습니다. 부인으로서 그 순간 미안하기는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돌 씹은 것을 숨기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혼자 몰래 처리해버리는 것입니다. 전혀 내색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셋 중 누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은 비밀스러운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은근하게 쌓이고 쌓인 것들이 충만하게될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됩니다. /아멘!/
  현대인들은 너무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별 것 아닌 것도 자랑하고 생색내려고 합니다. 은근하고 은밀한 맛이 없습니다. 알맹이는 텅 비어 속 빈 강정 같습니다.
  ▶스코틀랜드에 아주 인색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인색한지 자기의 아들 형제에게 도대체 돈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아버지를 몹시 원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먹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노랭이, 구두쇠, 수전노,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 아버지가 마침내 돌아가시는 날이 왔습니다.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불쌍한 우리 아버지' 자식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체를 치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맡에 유서가 있었습니다. '나의 남은 재산을 죠지 뮬러에게 주라' 고아원 원장인 죠지 물러에게 재산을 다 준다는 것이 유서의 내용이었습니다.
  자식들이 이 유서를 들고 고아원을 찾아갔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평생 동안 그 고아원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비밀리에 대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 이르러 남은 재산을 모두 고아원에 돌린다고 유서를 남긴 것입니다. /할/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그는 비록 사람들에 인색하다고 비난받았지만 은밀한 선행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그만이 누리는 행복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선행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과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다. /아멘!/
  오늘 주제는 선한 일에 관한 것입니다. 구제에 대한 이야기인데 요란하게 나팔 불지 말고 생색내지 말고 은밀히 하라는 교훈입니다. /할/ ◀제목 소개!▶

 

  믿음의 재벌 록펠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재미있습니다. 세계 제일의 갑부였던 죤 록펠러는 그의 손자들이 어릴 때부터 그들에게 철저한 금전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는 주말이 되면 자기의 어린 손자들을 다 불러모으고 그들 각자에게 25센트씩 용돈을 주었습니다. 물론 손자들은 받은 용돈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두 가지 조건만큼은 지키도록 했습니다.
  하나는 '용돈의 10%는 하나님께 십일조로 바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용돈의 또 다른 10%는 이웃을 돕는 일에 사용하라'고 가리켰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주말이 되면 또다시 손자들을 불러모으고 그들 각자가 자기들에게 주어진 용돈을 어떻게 썼는지 반드시 그에게 보고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일 어떤 손자라도 용돈을 바르게 사용했으면 그는 상으로 5센트를 더 얹어서 그 주에는 30센트를 용돈으로 주었습니다. 반대로 만일 손자 가운데 누구라도 용돈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벌로서 사정없이 5센트를 깎아 20센트만 용돈으로 주었습니다.
  록펠러는 자기 손자들이 어릴 때부터 물질의 선한 청지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자들에게 자기가 준 용돈을 통해서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며,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도록 가르쳤던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까? /할/
  ▶마5-7장을 '산상보훈'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할 교훈을 설교하신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지금도 여행 코스 가운데 팔복 산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설교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5:1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이렇게 시작하고 8:1절에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마6장에서의 예수님의 교훈의 특징은 '하나님께 하는 선한 일은 비밀스럽게 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기도를 드려도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다른 사람이 못 보게 은밀한 중에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고, 보물은 너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에 쌓아두고, 구제는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비밀스럽게 하라'는 교훈입니다.
  성경에 보면 좋은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의 칭찬과 복을 받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하기를 즐기다가 천사까지 대접해서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는 기록도 창세기에 나오고, 고넬료는 로마 군대 장교인데 유대 나라에 와서 구제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더니 천사가 나타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응답을 받은 기록도 성경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도르가라고 하는 여인이 구제활동을 많이 하다가 죽었는데 온 동네 사람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기도를 해서 그를 다시 살려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그러한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이 좋아야 한다고 지금 주님이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 당시 바리세인들은 길거리 모퉁이에 마차 위에서 나팔을 불고 구제행사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선한 일을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선한 일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바라볼 때 경이롭게 바라보고 극찬의 말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무엇을 나눠줍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할/
 
  ①우리가 선을 행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본문은 1-18절까지의 기록된 세 가지 종교생활에 대한 서론입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성도의 위대한 의무이며, 경건의 3대 요소입니다. 탈무드에서도 '구제, 기도, 금식'을 유대교 경건의 3대 요소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세 개의 창문이 꼭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기도의 창문, 금식의 창문, 구제의 창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도의 창문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사용하는 영적 대화를 위한 창문이라면, 금식의 창문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성찰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하여 사용하는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제의 창문은 바깥 세상과 교류하기 위하여 열려져 있는 문입니다. /할/
  그런데 이러한 행위를 할 때에 그 동기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이기 위함이며,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야 하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보다는 이웃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도들은 항상 세 가지의 신앙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⑴항상 자기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고, 지금 내 신앙이 바로 가고 있는가를 항상 체크 해 봐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가? 예수 밖에 있는가?'
  ⑵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아멘!/
  ⑶언제든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인간관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앞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믿/
  ㉢본문에 '의를 행할 때' 주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기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 앞에 두 개의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와 '그들 앞에서' 곧 사람들 앞에서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우리의 의를 행하려는 것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의 의를 행하는 것이 문제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두 가지가 다 문제입니까?
  그의 해답이 마5:16절에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할/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우리의 빛을 사람들 앞에서 밝히 비취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람들이 우리가 행하는 착한 행실, 곧 우리의 의를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의를 사람들 앞에서 행하는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병든 자도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셨습니다. 요5:30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그 모든 일을 '예수님의 원대로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원대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심으로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영광을 돌리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를 행하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행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데서 행하느냐?'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의를 행하는 동기가 어디에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기 위해서 의를 행한다면 사람들 앞에서 의를 행하더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할/
  ㉣본문 1절은 참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⑴'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나타내고 알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대는 자기 PR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보라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구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아멘!/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것은 성경에서는 외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위선 또는 외식의 뜻은 처음에는 웅변가라는 뜻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좀 변해서 배우라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배우는 참된 자기의 모습을 버리고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으로 변장을 합니다. 외식은 구약의 창세기부터 나타납니다. 성경에 보면 인류최초의 위선자는 가인입니다. 그는 겉보기에 그럴싸한 거짓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사는 하나님 앞에 드린 제사가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드린 위선적인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거부하셨습니다. 그러자 거짓이 드러난 가인은 그의 분노 때문에 자기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이는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신약에 나타난 최초의 위선자는 가롯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써 3년간 예수님을 가장 잘 섬기는 사람처럼 위선을 떤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단 한 번도 마음을 준 일이 없습니다. 그냥 같이 지내며 따라 다녔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은30냥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주님은 본문에서 당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의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가 큰 잔가? 누가 강한 자가? 누가 최고인가?'에 관심이 큽니다. 사람들은 나타난 겉모양에서 평가합니다. 사실 그 이상을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음에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사람들 앞에 외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할/
  '주의하라!' 무엇을 주의하라고 하십니까? 구제하든지, 기도하든지, 금식하든지, 헌금하든지, 봉사하든지, 주의할 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려고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께 보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아멘!/
  ⑵참된 신앙은 그 상급이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일을 했다면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목사님이 알아주지 않아도 절대로 시험에 들지 말고 섭섭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상급과 모든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본문은 외식하는 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바꿔 생각해보겠습니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 앞에 했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상을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할/ 다시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중간에서 우리가 가로챔으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옛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의 의를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영광을 자기들이 중간에서 가로채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상 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상은 고사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적인 의로는 결단코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상을 받는다.'는 뜻은 당시 상거래 전문용어로서 물건을 샀을 때 영수증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어떤 신앙적인 행위를 했을 때, 그것이 예배이든, 찬양이든, 지도이든, 봉사이든, 주일학교 교사이든, 헌금이든 간에 이미 영수증이 발급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참된 신앙의 행위에서부터 옵니다. /믿/ 바른 예배, 이 자리가 복 받는 자립니다. 바른 헌신, 봉사, 구제, 이것 자체가 복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의 길을 가는 성도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눈에만 잘 보여도 한자리합니다. /믿/ 하나님께 잘 보이십시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예전에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리 대한의 건아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선수들이 상을 받을 때 '과연 이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니 기자가 그것을 묻기도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하고 저들이 승리하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는 장면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목사의 백 번을 걸친 설교보다도 더 감동적입니다. 양궁의 조윤정양은 그의 어머니가 교회 집사로써 남의 집에 가서 파출부 노릇을 해가면서 그 딸을 키웠는데 거기에서 그런 어름다운 신앙의 열매가 맺어졌습니다. 여자 배드민턴 선수인 황혜영과 정소영양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무릎을 끌었을 때 괜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1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⑴선을 행하는 것이 의입니다. 선이란 무조건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게 이해가 되던, 안되던, 내게 이익이 오던 안 오던 그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선이고, 의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게 여기시는 것,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게 기쁘게 여기시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의입니다. /할/
  ⑵의라는 단어는 법정용어입니다. 법정에서 판사가 어떤 사건을 심의하면서 이 사람은 옳고, 저 사람은 잘못된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이 사람은 죄가 있고, 저 사람은 죄가 없다고 판결하는 것이 의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인간은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죄로, 허물로 죽어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구속해 주시고 모든 죄와 사망에 법에서 무죄를 선언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이 칭의는 곧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한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을 잘 감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로운 생활입니다. /할/
  ⑶관계 개념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가 의입니다. 이것은 바른 믿음의 관계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이웃(세상) 앞에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내 자신 앞에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②선한 일을 할 때 외식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아야 합니다(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외식하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마23장을 보면, 예수님이 6번씩이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질책하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대명사가 바로 '외식하는 자'였습니다. 그들의 구제가 어떤 점에서 외식적이었는가를 본문에서 세 가지 정도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물질의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영광이 돌아가더라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은밀히 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정반대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회당과 성전의 구석진 곳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구제를 위해서 마련된 방입니다. 곧 '침묵자의 방'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그 방은 들어가는 입구가 양쪽에서 나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제를 하는 사람이 구제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입구와 구제를 받는 사람이 구제 받기 위해서 들어오는 입구가 서로 달랐습니다.
  구제를 원하는 사람은 조용히 그곳에 가서 자기들이 가져온 것을 자유롭게 놓고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구제를 받기 원하는 사람도 다른 쪽으로 들어가서 자기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들고나올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구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구제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은밀하게 구제를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조치를 해 놓은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곳에서 얼마든지 은밀하게 구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마23장에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화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구제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⑴구제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어려운 사람은 도와주고 그 어려운 형편에서 건져 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가 하나님과 같이 베풀고자 하는 외적 행위가 바로 구제입니다.
  구제는 물질로서 남을 도와주는 일인고로 참으로 선한 일입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요, 칭찬 받을 만한 일입니다.
  시112:9절에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또 잠11:24-25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할/
  하나님 앞에 구제하는 것, 봉사하는 것, 복을 받은 일입니다. 그런데 구제할 때 주의할 것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잘 분별해서 겸손하게 왼손이 하는 것, 오른 손이 모르게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⑵우리가 구제를 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4남매의 자녀를 둔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네 자녀들이 서로서로 돕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굉장히 기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서기 위함입니다. 신문에 나가 위해서 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동기가 다릅니다.
  ㈂어떻게 구제할 것입니까? 2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하는 자같이 나팔을 불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하는 유혹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당시에 성전에 나팔이 13개가 있었는데 구제헌금을 할 때는 그 나팔을 불렀답니다. 나팔을 불 때, 사람들이 구제헌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나팔을 불면 사람들이 구제한다는 것을 알고 '야! 저 사람은 참 선한 사람이구나!'하고 칭찬을 했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습니까? 실제로 사람들은 조그마한 구제를 하면서 나팔을 불지 않습니까? 아무개는 가정이 아주 형편없이 어려웠는데 내가 도와주어서 살게 되었다고 은연중에 자기를 자랑을 합니다.
  차라리 누구에게 무엇을 주어서 그를 부끄럽게 하기보다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또 조금 도와주고 전달할 때 사진을 찍고 신문에 내고 합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언제나 작은 구제를 한 사람이 큰일이나 한 것처럼 광내고 소리칩니다.  신앙의 외식이란 바로 나팔을 불어 자기를 선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제는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진실한 신앙행위란 언제나 그 자체에 이미 축복과 상급이 담겨져 있습니다.
  2절 하반절에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에서 '이미 받았다.'는 말은 당시 상거래의 전문용어로서 완전히 총액전부를 받고 영수증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더 받은 것이 없이 계산이 다 끝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끝나버린 상황을 의미합니다. /할/
  ▶구제는 정말 귀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 때, 성령 받은 사람들이 전도만 한 것이 아니라 구제하고 봉사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업을 감당하라고 주셨습니다. 어려운 자들을 구제하라고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병원에 안가도 될 만큼 건강을 주신 것은 그 건강을 정욕으로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와 봉사하라고 주셨습니다. /믿/할/
  ㈏성실함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롬12:8절에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아멘!/ 아무렇게나 대강, 대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체면만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15:10절에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할/ 봉사할 때도, 헌금할 때도, 구제할 때도 우리 마음속에 '아 이거 아까운데' 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즐겨내는 자,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자는 기뻐하십니다. /아멘!/

 

  ③선한 일은 은밀한 중에 해야 합니다(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어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문자 적으로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말의 뜻은 구제할 때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모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생각해보면 '네 것이 아닌 것처럼 주라!'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조지 물러' 목사님의 전기를 읽어보면 참으로 감격스러운 간증 문이 많이 나옵니다. 조지 물러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한답니다. '하나님! 지금 오천 만원이 필요하오니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표를 주시면서 주시옵소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돈을 보내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무명으로 보내오면서 말하기를 '이 돈은 네가 당신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내는 것입니다.'라고 한결같이 말하더랍니다.
  그들은 '제가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기를 물러 목사가 이런 돈이 필요하니 기쁜 마음으로 주어라'는 음성을 들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고 말하더랍니다. /할/
  어떤 사람은 헌금한 것, 구제한 것을 꼭 자기가 그것을 확인하고 간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헌금이나 구제를 했으면 잊어버려야 합니다. 왜 그런지 이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쓰여지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어떤 사람은 내가 개척교회를 몇 개 세우고 목사님 양복을 몇 벌 맞추어 주었고, 피아노를 샀고, 자랑을 많이 합니다. 솔직히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⑴'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하라!' 우리의 왼손 곁에 서 있는 사람도 모르게 눈치를 채지 않도록 하고 또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⑵명예욕에서 구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제하면서 자신의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구제하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구제하는 것은 중단할 것입니다.
  ⑶도와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긍휼과 사랑과 자비심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4절에서 다시 한 번 은밀하게 구제하고 봉사한 것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⑷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제는 베풀고 나서 곧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 나서 머리 속에서 그 기억을 지워 버리라는 것입니다. 일기장에도 써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계 장부에다 누구를 얼마 도와주었다는 기록조차 말라는 것입니다. 은밀히 하라는 것은 주고 난 다음에 철저히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할/

 

  ④우리의 선을 하나님은 은밀하게 보시고 계십니다(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밀한 중에 보십니다.' /할/ 그런데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것뿐만 아니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18절에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것뿐만이 아니고 은밀한 중에 계십니다. 안 계시는 것 같은데 계십니다. 은밀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복음성가 가사처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평안히 길을 갈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다가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 그때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밀하게 계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시며, 그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시며 우리의 속마음을 감찰하시고 계십니다. /믿/ 은밀한 중에 봉사하시는 손길, 구제하는 손길, 하나님이 보시고 갚아주십니다. /아멘!/
  4절 이하에 말씀을 보세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여기 갚으신다는 말씀은 그냥 갚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30, 60, 100배로 갚아주십니다.
  눅6: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할/ 또 마10:42절에서 예수님은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냉수 한 그릇은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보잘 것 없는 것조차도 예수님은 잊지 않으시고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십니다. 오늘 예배 때 뿐 아니라 이른 새벽부터 나와서 충성하는 것을 보십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 이웃의 영혼을 위해 저녁에도 나와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하나님은 보십니다. /믿/아멘!/
  '하나님이 갚아 주리라' 오늘 희생하고 충성하고 헌신하는 손길을 하나님이 보십니다. 보시고 주님이 갚아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⑤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왜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까?
  ⑴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사람인지, 위선자인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위선자'는 헬라어로 가면을 쓴 연극배우를 말하는데 곧,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정직이 생명입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해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위선자이고,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믿/
  교회에서 보면 훌륭한 신앙인 같은데 교회 밖에서 보면 세상 사람과 똑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종교인이지 신앙인은 아닙니다. 신앙은 진실이 최고입니다. 기도도 진실해야 합니다. 다윗은 죄를 회개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51:6절과 10절에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죄를 범할 때 정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회개하면서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고, 정직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할/
  시84: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112:2-4절에서는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할/
  ⑵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십니다. 참 경건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죄를 지을 수 없고, 죄를 범하게 되면 두려워서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합니다.
  이것이 믿음이 있는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책망을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할/
  ⑶'세상 영광을 추구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가?'를 보십니다.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칭찬 듣는 것을 좋아하고, 인정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공치사가 많고, 자기를 과시하는 말을 하고, 명함에도 새까맣게 써서 자기 자랑을 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하려고 합니다.
  요12:43절에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종교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전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할/
  ⑷'세상 중심으로 사는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가?'를 보십니다.
  참 신앙인은 항상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려 얼마 못 산다고 해도 슬퍼하며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좋은 천국에 갈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 회개하고, 감사할 것 감사하면서 정리를 잘해서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신앙인들은 이렇게 하지만 종교인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세상만 바라보고 세상 중심으로 살다가 죽을 때는 두려움을 가지고 벌벌 떨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저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은밀히 보시는 분이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행하는 믿음의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3년 2월 24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