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하늘에 보화를 쌓는 믿음 (마태복음 6:19~21) / 윤요셉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2. 28. 17:11

하늘에 보화를 쌓는 믿음 (마태복음 6:19~21)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번 한 주간도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우리 벧엘 교회에 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두 한 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금년에도 변함없이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우리 성도님들의 여러 가지 도움과 또한 전국의 많은 분들의 찬조를 통하여 김장을 잘 마쳐 100여명의 독거노인 분들에게 잘 전달해 드렸습니다.

특히 금년에는 배추 값이 작년대비 두 배나 비쌌지만 이를 제공해 주시고 쌀까지 보내주신 김상길 장로님! 그리고 고춧가루를 넉넉하게 보내 주신 이명근 장로님! 또한 현금으로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바칩니다. 할렐루야!  

개인 사업을 하는 어느 집사님이 늘 시간에 쫓겨서 교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봉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혜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더구나 돈 버는 것이 매우 힘들어서 그런지 헌금에도 아주 인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목사님이 ‘기독교와 돈’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첫째, 돈을 많이 벌어라! 둘째, 돈을 많이 저축하라! 셋째, 하나님께 그 돈을 드리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집사님은 ‘돈을 많이 벌어라! 그리고 저축하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아 마음이 무척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은 ‘그 돈을 하나님을 위해 쓰라!’는 말씀에 이르러서는 실망이 되어 조금 전까지 받았던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처럼 제가 여러분들에게 물질에 관해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니 제 말씀을 인간적인 말로 듣지 마시고, 성경의 말씀에 입각한 진리의 말씀을 전하오니 잘 새겨들으셔서 한 분도 빠짐없이 이를 통하여 하늘의 보화를 쌓는 계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보물을 땅에 쌓아둔다는 의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고 쓰는 이기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대체로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물을 드리지 않을뿐더러, 이웃에게도 매우 인색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의미는 하나님을 위해 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벧엘교회는 여러분들께서 바치는 여러 가지 모든 예물들을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과 제가 이끌어 나가고 있는 여러 단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처럼 힘든 가운데서도 힘과 정성을 다하여 여러 가지 물질을 바치는 여러분들과 이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쓰고 있는 우리 교회는 하늘에 큰 보물을 쌓아두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마태복음 10장 40절로 42절 말씀을 한번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이처럼 나그네(교회, 선교사, 이웃)를 영접하고 대접하는 일들이 곧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일에 속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할렐루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이 육신의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을 쓰고, 이웃에게 베풀며, 어려운 목회자들을 잘 대접하고 도와주는 이 모든 것들이 곧 하늘에 보물을 쌓는 온전한 믿음의 생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너희가 가진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온전한 믿음으로 물질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예수 안에 거하며 온전한 믿음을 가진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드려서 이 나라와 민족을 복음화 하는데 앞장섰으며,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또한,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초대교회의 믿음의 성도들이 교회에 드리는 각종 헌금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예수님께서는 어느 날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셨습니다. 그 중에 가난한 과부 하나가 두 렙돈을 조심스럽게 드리는 것을 보셨으며, 부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헌금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때문에 단순히 헌금의 액수만 비교하여 본다면, 당연히 과부의 헌금은 매우 적은 물질이었으며, 부자의 헌금은 제법 많은 물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가 바친 헌금은 사실 많은 것 중에 있는 것을 조금 드린 것에 불과하였지만,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내일 당장에 쓸 것이 없는 가운데서 지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 이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액수만을 비교하여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까지도 꿰뚫어보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고린도후서 9장 7절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헌금을 할 때 각자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사람인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에, 어떤 여자 하나가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와서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일 데나리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이 들고 온 향유는 노동자가 1년 정도 일을 해서 쓰지 않고 모은 돈의 값어치와 같습니다.

이처럼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모두 드리는 것을 본 가롯 유다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이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느냐고 얹잖아 하면서 이 여인을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빈정대는 제자들을 향하여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들은 너희가 도울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지않아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이므로 이 여인은 나의 장례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처럼 이 여인은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처한 입장이었으나 온전한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예수님께 드려 주님을 매우 기쁘시게 했음은 물론이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크나큰 상급을 쌓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이 여인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처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낌없이 바쳐 하늘의 보화를 쌓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온전한 믿음으로 물질을 바칠 때, 저와 여러분의 신앙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언제나 복만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미신을 믿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샤머니즘적인 잘못된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그 같은 사람들을 보면, 밤낮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자식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만사형통하는 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를 모르는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복을 주는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다가도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교회를 떠납니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거듭난 참 성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온 몸과 미음을 바치며 사는 성도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기뻐하고, 장차 가서 살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참된 믿음의 성도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학개서 2장 8절에 보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도 땅도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든 예물에는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 들어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릴 뿐입니다.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 벧엘 성도님들은 그런 분들이 안계시지만, 물질 이야기만하면, 이를 믿지 못해 시험에 드는 분들이 있는듯하여 그 증거의 말씀을 한번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역대상 마지막 장인 29장 11절로 14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아멘!

또한, 역대하 32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물과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연장해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결국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이 같은 은혜에 구체적으로 보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자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십니다. 그때서야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 경험을 체험한 히스기야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은혜에 보답하며 행함으로서 하늘의 보화를 죽을 때까지 쌓아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윤 목사도 그럼 경험을 수없이 겪었지만, 우리 성도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이 낳은 분들도 있습니다.

하마터면 사고로 죽을 뻔했는데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분들도 계십니다. 때문에 그 당시에는 말로다 할 수 없는 감사를 하나님께 수천 수백 번 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하지만 다행인 것은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들이 안 계시지만, 다른 교회나 기도원에 집회를 가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니 이를 보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습니까? 더구나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진노의 사인을 주시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간덩이가 부은 사람들 아닙니까?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 가지 예물은 신앙의 고백이며, 동시에 감사의 고백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고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저와 여러분들이 사정과 형편 때문에 마음만으로 감사를 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절대로 미루지 말고 무언가 행동으로 감사를 표해야 합니다.

입술로만 감사하고 마음으로만 감사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즉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삶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처럼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전혀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귀한 것을 다 주어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이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전지전능 하신 은혜의 하나님 앞에 진실한 감사의 표시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곳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로 하여금 감사 표시를 여러 가지 물질로 나타내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돈을 매우 귀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예물은 저와 여러분들이 진실한 믿음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나타내는 사랑의 고백이며, 헌신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꿰뚫어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태복음 21장 2절로 3절에 그 증거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함께 동행 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면 아직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 새끼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니, 그 나귀를 주인에게 내가 쓰겠다고 하면 줄 것이다. 그러니 가서 내게로 가져 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곳에 가보니 과연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귀새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귀 주인이 헌신된 사람임을 보지 않고도 아셨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각종 물질을 드릴 때는, 자신의 귀한 재산인 나귀새끼를 주님께 드린 그 주인처럼 ‘주님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다 드리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모두 것을 아낌없이 주신 주님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라도 바치겠습니다.’라는 진실이 담긴 헌신의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바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온전한 믿음으로 물질을 바칠 때, 저와 여러분들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면 복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가장 부끄럽게 하는 것은 바로 욕심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깨끗하지 못하고, 관료들이 떳떳하게 일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세상적인 욕심 때문에 부끄러운 짓을 마다 않고 저지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욕심을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한 믿음의 삶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물질에 욕심을 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온전한 믿음으로 물질을 드리면, 제일 먼저 마음에 평강이 오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손만대에까지 복을 받고 상급과 영광을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보물을 땅에 쌓아두면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만족이 없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재산을 늘리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참 평안이 없습니다. 더구나 돈이 많으면 온 사방에서 그 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항상 피곤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을 해롭게 하는 정욕의 사람이 되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장 9절로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서 함께 큰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아멘!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도 여러 가지 물질을 이 육신의 땅에 쌓아두고 그것들만 사랑하다가는 결국에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됨으로서 스스로 멸망의 길인, 지옥의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9장 23절을 통하여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이 육신의 땅에 각종 보물을 쌓아놓은 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살지 않는 부자는 그 누구라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신명기 8장 12절로 14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걱정을 하셨던 것입니다.

“너희가 우양이 번성하여 배불리 먹고 좋은 집에 살면서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과연 하나님의 염려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질 때문에 타락하고 말았으며,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많은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을 이 육신의 땅에 쌓아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에 쌓아두는 행함을 보인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은 영 육간에 늘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마치기 전에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야 하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꼭 알아야만 합니다.

1.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천국에 들어갈 온전한 그리스도인들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신속히 날아간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육신의 땅에서 사는 삶은 매우 짧습니다. 그리고 요즘같이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평균 수명이 잘 산다 해도 칠 팔 십년이 고작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이 육신의 세상을 떠나면 영원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이 육신의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시며, 역사하는 우리 벧엘교회는 저와 여러분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천국생활을 훈련하는 곳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람들은 누구나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사람들은 누구나 보물을 어느 곳에 쌓아두었는지 보물이 있는 곳에 관심을 두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 육신의 땅에 보물을 쌓아둔 사람들은 이 육신의 땅에 마음을 두겠지만,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쌓아둘수록 더욱더 하늘나라에 마음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언제나 하늘나라에 두고 살게 하기 위해서 보물을 하늘에 쌓도록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지라도 구원은 믿음으로 동일하게 받지만, 축복은 행함으로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천국에 가면 각 사람마다 상급이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기를 “너희에게 줄 상이 있으니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온전한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항상 기쁜 마음으로 열심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함으로 주님께 잘했다 칭찬받고,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벧엘교회/윤요셉 목사 

 

첨부파일 윤요셉 목사 경력 및 활동사역.hwp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나눔의 사랑 원글보기
메모 :

벧엘교회 / 윤요셉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