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전5:18-20) / 대민성결교회 진리수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2. 28. 17:37

2011.09.11대민(주일낮)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전5:18-20)

 

인생을 생물학적인 면에서 보면 동물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심리학적인 에서 보면 희로애락의 존재이며 종교적인 면에서 보면 기도하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14절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라고 물으십니다.

어느 이름이 높은 성경학자는 늘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은 성경의 인간관을 이해하는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인생관이 바로 되어 있지 아니하고서는 신앙을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일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확인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인생은 여러 가지입니다. 인생은 나그네다. 안개와 같다. 풀과 같다. 그림자 같다.(벧전2:11,약4;14,시90:5,대상29:15)고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히브리서9장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한 것입니다. 즉 인생은 언젠가는 다 죽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면 이제 남은 세월 동안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피카소의 조각품 중에 '황소머리'란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피카소의 예술성과 독창성이 가장 잘 드러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재료는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낡은 자전거입니다. 버려진 자전거가 피카소에 의해 위대한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찮은 쓰레기도 누구의 손에 붙잡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만나면 변합니다. 예수님 만나면 달라집니다. 특별

히 복음을 듣고 깨달으면, 그는 놀랍게 변합니다. 성경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깨끗하고 거룩한 인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오늘 본문도 인생에 대하여 교훈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전도서는 종종 쾌락주의적인 책으로, 혹은 회의주의적인 책으로 간주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실상 전도서의 저자는 세상을 격멸하지도 우상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삶과 기쁨을 한껏 누리라”고 합니다.

기쁨은 인생의 행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돈 보다도 건강보다도 명예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쁨입니다. 기쁨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기독교를 기쁨의 종교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쁨이라는 말이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임이니라”(사62:4).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2).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항상 기뻐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일정한 몫의 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정한 몫의 복을 누리는 것이 참다운 인생입니다.

인생은 전체가 다 하나님의 선물이요 마땅히 즐겨야 될 내 몫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내 몫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내 몫입니다. 재물과 부요를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내 몫입니다. 육체를 움직이는 것도 내 몫이요, 가정을 이루는 것도 내 몫입니다. 이웃과 함께하며 친구를 사귀는 것도 내 몫입니다. 재능을 가진 것도 내 몫이요, 직업을 가지는 것도 내 몫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만족으로 보내는 것도 내 몫입니다.

인생은 결코 길 지 않습니다. 괜히 슬퍼하며 불행한 감정으로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낙을 누려야 합니다.(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전도서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성령께서 이스라엘의 명군이요 현자였던 솔로몬을 통하여 명쾌한 대답을 들려주시는 내용입니다.

솔로몬 왕은 그야말로 '안 해 본 것이 없는' 한 생애를 보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려 보았으며, 또한 영적으로도 최고의 전성기와 동시에 잠시 동안 곁길로 빠지는 실족의 시절까지 다 체험해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솔로몬이 이제 인생의 말년에 들어서서 자신의 지나간 전 생애를 돌이켜 보며 크게 깨닫고 회개하는 가운데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전도서입니다. 정말 인생에 대하여 제대로 배워 보고자 할 때 이처럼 완벽한 교본이 다시없을 것입니다.

온갖 희로애락과 흥망성쇠를 다 겪어 보았던 솔로몬이 이제 영적으로 완전히 성숙한 가운데 고백한 인생의 지혜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3장13절에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과 오늘 본절과는 같은 뜻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람이 가지는 그 외의 모든 육신적 욕구를 대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욕구들이 다 충족되는 것이 바로 "낙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사람이 그런 충족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수고함"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일을 함으로써 그 결과 소득을 얻게 되고 그렇게 얻은 물질을 가지고 의식주를 해결하며 더 나아가서는 여가생활의 낙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그 어떤 사람도 '놀고먹을 수는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그 대가로 곡식을 거두고 상품을 생산하고 돈을 버는 것, 그리고 그렇게 얻은 소득을 가지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예쁜 옷도 차려 입고 집도 사고 자녀도 키우고 하면서 자기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모든 인간에게 주신 육신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독교인들이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의 노동관을 보면 결코 노동은 천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섬기는 사실상 예배의 일부입니다.

출애굽기20장9-10절에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엿새와 이레의 법칙입니다. 이레 되는 날에 하나님 섬기는 예배를 위하여 엿새 동안에 힘써 일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마에 땀이 흐르게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축복스러운 과업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3장10-11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일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믿음은 매우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열심히 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약속한 대로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볼 때 그렇지 아니한 사람들보다 더 잘 살게 됩니다. 무위도식하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싫어합니다. 일을 하지 아니하며 먹는 자는 바로 사회의 기생충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 유대인들도 일에 대해서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육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를 안식하라는 가르침으로 인해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세상자체가 헛되거나 일 자체가 헛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생자까지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은 세상을 우리가 포기해서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일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이라 여기고 기쁨으로 할 때에 그 모든 일이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낙을 누리게 하시는 것은 헛되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이든지 춤추며 노는 것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낙이라면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영원한 낙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123편2절에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헛되지 않은 행복 된 삶, 즉 낙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수고함으로 즐거워야 합니다.(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땅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즐겁게 사는 것만 사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세월만 보내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서 길러도 그 자식이 부모에게 즐거움을 줄 때 효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성도가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입니다.

부부가 산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살아도 서로 즐거움을 주어야 됩니다. 만나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싸우는 사람은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이 사람과 결혼하기를 잘했지' 이런 마음이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과 결혼한 것은 결정적인 실수다.' 이런 마음이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인간의 모든 수고의 뿌리를 조사하면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즐거움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부자 된다고 즐거움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집을 샀다고 기쁨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서5장10-12절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잘 먹고 잘 자는 복입니다. 잘 먹는 사람은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요, 잘 자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죄 지은 것이 없으면 잠을 잘 잡니다. 근심이 없으면 잠을 잘 잡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잠을 잘 잡니다. 한이 없으면 잠을 잘 잡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 사람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즐거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구원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오늘 본절에는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재물과 부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은 아닙니다. 그 부가 하나님이 주신 복이 되려면 내가 그 소유에 만족해야 합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결핍만을 아쉬워하며 재산을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고 그 일에 심취해 사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좌절과 허탈과 후회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서는 결코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서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18절과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바...”,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모든 소유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많든 적든 하나님이 주신 현재의 소유에 만족하고 즐길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즉 “생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은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때 맛보는 은총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제 몫을 받아 수고함”이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각각 자기 업무에 정직하게 수고할 때 이것은 가장 훌륭한 신앙의 행위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성되이 잘 감당하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더 드러납니다. 일터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인 된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 고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일들을 우리는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을 다하고 즐거워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요 본인에게는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22절에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일을 보람되고 즐겁게 감당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자기의 일을 원망하면서 불평하면서 하기 싫어 억지로 하는 사람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자기 일을 즐겁게 하여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은 팥죽 사건으로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외삼촌이 되는 라반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을 삼촌 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러나 외삼촌 라반은 관습을 핑계로 라헬이 아닌, 그 언니 레아를 야곱에게 시집보내면서 다시 7년을 일하면, 라헬을 주겠노라 약정을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총14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14년 동안은 야곱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 외삼촌 라반의 살림을 증식하는 일만 한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재산이 불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마치 자신의 일을 하듯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 얻기 위한 일이라 하지만, 14년이란 기간을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하며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칠 년을 수일같이 여기면서 매우 즐겁게 일을 하였습니다.(창29:30) 야곱은 다른 사람의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일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예로 야곱이 일하는 동안 물려 찢긴 것이 있으면, 외삼촌에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충하였으며, 도둑맞은 일이 있다면 낮이든 밤이든 외삼촌에게 물어주었습니다. 사실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에게 이용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야곱은 그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아무도 노력하지 않고서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은 노력한 사람만이 차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거부가 되게 된 것도 운이 좋아서라거나 때를 잘 만난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노력해서 얻은 보상일 뿐입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땀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땀 흘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불로 소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모든 삶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반드시 정당하게 땀을 흘려야 합니다. 야곱은 열심히 일함으로써 거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 머무르는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거저 얻은 것이 없습니다. 두 아내도 노력 봉사를 통해서 얻었고, 그의 소유로 확정된 짐승 떼도 품삯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환경만 탓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인생을 잘못 경영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어떤 여건에 처하게 되든지 최선을 다하고 나서 주의 역사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수고함으로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이 응답하셔야 합니다.(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이는 우리가 기뻐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엄청난 은혜와 선물을 주셨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매일 찌푸리고 산다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누림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구원을 누리고, 복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신앙의 사람은 생명의 날을 걱정, 근심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게 삽니다. 받은 몫을 누리고 삽니다.

인생의 문제로 걱정, 근심, 불안에 떨지 않습니다.

과거의, 지난 고통이나 눈물의 날을 기억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가득 찬 희망에 넘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요, 더 나아가서 역경과 곤란을 극복하고 승리를 이끌어 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한편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일 즉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여 사회적인 지위도 얻고 경제적인 부귀를 누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대개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능력으로 먹고 마시며 수고한 즐거움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인 솔로몬은 말하기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본절에서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몫을 따라 평 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전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수고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과 재물과 부요를 받아 누리고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는 은총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인생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죽는 것이고, 제일 싫어하는 것은 늙는 것입니다. 여자는 22세부터, 남자는 25세부터 늙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40대는 청년의 마지막 때이고, 50대는 젊은 노인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조선의 이정보는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이 늙은 후에 또 언제 젊어볼꼬. 빠진 이 다시 나며 센머리 검을 쏘냐. 세상에 불로초 없으니 그를 설허하노라” 늙고 병든 몸에는 눈먼 새도 앉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잘 먹고 타고난 체질이 튼튼하고 환경이 좋아도 늙는 것은 늙는 것이고, 죽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얼핏 생각하기를 늙으면 무슨 필요한 게 있는가 생각하지만 사실 늙으면 모든 것이 더 필요해집니다. 젊을 때는 젊음 하나 가지고 다른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못 먹어도, 못 입어도, 못 살아도 되지만 늙으면 더 건강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좋은 환경이 필요하고, 마음의 평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짧고 덧없는지요? 30년은 준비기간이고, 30년은 활동기이고, 그 다음 10-20년을 대기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전도서9장10절에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적절한 일을 주셨습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일이 우리에게 주신 몫임을 깨닫고 그 일을 즐기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어떤 것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룬 것을 누리는 것도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받은 것을 누리는 것이 선이요 아름다움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17절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심은 그것을 누리라고 주시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인생 속에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할 것들을 깨닫고 ”누림“의 몫을 누리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평생 먹고 마시는 분복을 주십니다.

수고 중에 낙을 누리게 하십니다.

재물과 부요를 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의 날을 염려치 않고 마음에 기뻐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날마다 나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대민성결교회
글쓴이 : 진리수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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