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리고 그 네 마디/요 20:19-23 (2016,4,3)
미국 보스턴 근처에 골든 코넬 신학대학원이 있습니다.
이 학교가 세워지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러셀 코넬이 세웠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코넬 대학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군대 지휘관이었습니다. 전쟁중에 지휘봉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 지 몰랐습니다. 그는 어린아이 링에게 지휘봉을 찾아 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지휘봉을 찾다가 적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적진속으로 들어가서 지휘봉을 찾았습니다. 나오다가 총에 맞았습니다. 피흘려 죽어가는 몸을 끌고 나와 지휘봉을 코넬에게 바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나도 부홯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 때까지 코넬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신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오! 주여! 이 어린아이가 부른 주님을 위하여 내 모두를 바치겠습니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전 재산을 바쳐서 신학대학원을 세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그는 세상에서 최고의 평강을 맛보았습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멋지게 일하다가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면서 일곱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네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 말씀은 정말 귀중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4 말씀만 남기셨다면 10일에 한 말씀 하신 셈입니다. 그 네 말씀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제자들은 무서워서 숨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곳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전혀 공개되지 않은 은밀한 곳입니다. 지하실이었습니다. 지금은 알미니안 기독교 교인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숨어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1)
제자들은 두려워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죽인 무리들이 자기들도 잡아 죽일 것을 두려워 하여 숨어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문이 잠겼는 데도 불구하고 들어오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육체를 초월한 영이었습니다.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굴속에 있는 개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밖에 나와 있는 개미는 두렵습니다. 잘못하면 날라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으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 후 전쟁에 시달린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였습니다.
“평화”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부활절이면 늘 생각나는 문학 작품이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란 소설입니다. 1899년에 톨스토이가 발표한 작품입니다. 톨스토이(Tolstoi, Lev Nikolaevich, 1828~1910)가 법률가인 친구로부터 들은 실화를 배경으로 쓴 소설입니다.
귀족 청년 네풀류도프는 카추샤였습니다. 그는 나타샤라는 하녀를 유혹하여 임신까지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버렸습니다. 그 하녀는 주인 집으로부터 쫓겨 나고 말았습니다. 하녀는 그 후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 혹독한 고생을 하였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눈물나는 고생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견디다 못 하여 창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몸을 팔아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괴롭히는 남자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살인범이 되었습니다. 법정에 섰습니다. 그런데 임신하게 하였던 남자 네풀류도프는 그 동안 법을 공부하고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재판을 맡게 되었습니다.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자기가 한 때 불장난하여 그렇게 만든 여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돕게 되었습니다. 차마 사형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사형을 면하여 주는 대신에 시베리아 먼 땅으로 유형살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를 시베리아로 유배시키며 그 녀를 따라 가게 됩니다.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한 여인숙 방에서 밤중에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젊은 날의 방탕에서 벗어 났습니다. 그 후부터는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며 나머지 생을 남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죄의식에서 벗아나 세상에서 가장 평화스러원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 줄거리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됩니다. 마음에 평강이 깃들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활절이면 생각나는 소설입니다.
2. 성령을 받으라
부활의 예수님께서 두 번째 하신 말씀은 성령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22)
예수를 믿고 따라 다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후 첫 번 만난 제자들에게 성령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40일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하신 말씀도 성령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4-8)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성령받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믿은 후 어느 날 성령 체험을 하여야 합니다. 사마리아 교인들은 다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받은 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교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이 이를 잘 증거하여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3-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나를 믿었지만 이제는 성령을 받고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평강한 마음에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의 부탁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환영하고 모시고 사는 사람들 영속에는 성령이 임재하여 있습니다. 개가 사는 집이 개집이고 돼지가 사는 집이 돼지우리입니다. 대통령이 사는 집이 청와대입니다. 성령이 사시는 집이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모시고 살면 우리의 마음은 성전이 되어 늘 성령께서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영감을 주고 때로는 소원을 줍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3. 가라.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가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연관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첫 번 하신 말씀도 전도하러 가라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 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러라”(막 3;13-15)
마태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마가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定罪)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5-18)
누가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이러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예수님의 부활후 마지막 말씀은 선교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우리의 최초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 때문에 이 땅에 오셨고 영혼구원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가서 전도하며 영혼을 구원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
정말 양같은 제자들은 이리 떼속에서 모두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의 피가 오늘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알고 믿고 구원받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리 가운데로.”
이 말씀은 지역을 잘 알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날 세계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수가 코카콜라입니다. 두 번째가 커피입니다. 그런데 코카콜라 회사는 코카콜라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코카콜라 회사는 프랑스에 가서는 프랑스인들이 코카콜라보다 과일쥬스를 더 잘 마신다는 사실을 알고 프랑스에서는 코카콜라를 만들어 팔지 않고 과일쥬스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일본에 와서는 코카콜라보다 커피를 더 좋아 하는 것을 알고 캔 커피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생수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지역을 알아야 합니다.
4.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예수님이 네 번째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23)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교리문답이 있습니다.
“장소중에 가장 중요한 장소는 지성소입니다.
사람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대제사장입니다.
날중에 가장 중요한 날은 대속죄일입니다.
일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죄사함받는 일입니다.”
이유가 분명합니다. 죄사함받지 못 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흥 강사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부흥회를 설교를 하고 났을 때 한 사람이 돌아가면서 편지를 주었습니다. 자세히 읽어 보고 기도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편지를 읽었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젊어서 방탕하였습니다. 부도덕한 생활을 무질서하게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였습니다. 아주 훌륭한 처녀였습니다. 아내 덕분에 모든 과거를 다 버리고 이제는 새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아파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정밀 검사를 마친 의사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결혼 전에 생활이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직하게 방탕하고 무질서하였던 과거 이야기를 솔직히 말했습니다. 의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 방탕의 결과가 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고치지 못 할 병입니다. 만일 고친다고 할 지라도 평생 척추가 뒤틀려서 정신을 잃은 채 식물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연을 적고 편지 끝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목사님! 내 죄 값이 아들에게 지불될 줄을 몰랐습니다. 내가 뿌린 씨앗을 아들이 거두게 될 줄 몰랐습니다. 내가 던진 돌을 아들이 맞게 될 줄 몰랐습니다.”
부모가 던진 부메랑을 자녀가 받아 피해를 보았습니다. 죄는 용서받아도 벌은 받아야 합니다.
고질병에 점하나를 찍으면 고칠병이 됩니다. 불가능 이라는 뜻의 단어 Impossible에 점 하나를 찍으면, 가능하다는 I'm possible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셔서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 등록금을 몇 기분이나 밀려서 담임 선생님 앞에 선 적이 있었습니다.이제 그만 집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실 칠판에는 각 반 별로 등록금 못 낸 아이들 수와 명단이 적혀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이 지옥에 가는 것같았습니다. 그렇다고 결석할 용기는 갖지 못 하였습니다. 나는 장남입니다. 밑에 동생들이 4명이 있습니다. 그들도 이런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등록금 재촉을 부모님에게 하지 못 하였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조회시간에 선생님이 나에게 내미는 것이 있었습니다. 받고 보니 등록금 영수증이었습니다.
“이화여고 서명학 교장선생님이 네 등록금을 대신 내 주었다.”
나는 그 분을 찾아가서 고마움을 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미국에 이민 가서 사시는 동안에도 한번 찾아가서 고마움의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대신 내 주었기에 나는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이 다음에 심판대에서 하나님은 죄를 따지실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여 준 사실을 하나님께 아뢸 것입니다. 죄사함의 영수증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영수증을 지니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은 죄사함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사함 받았음을 믿고 천국 백성임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네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성령을 받으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죄사함을 받으라.”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목욕탕에서 되어진 이야기입니다. 목욕탕에 옷을 벗고 목욕을 하면 누가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알기 힘듭니다.
새파랗게 젊은 이가 목욕탕에 들어 왔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대야가 부족하였습니다. 젊은이가 노인 대야를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왜 자기가 먼저 사용하던 대야를 허락도 없이 가지고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당신 것이요?”
그리고 서로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그 때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아버지같으신 분이십니다. 대야를 드리시지요.”
이 말을 들은 젊은이는 중년의 뺨을 후려 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이 무엇인 데 남의 일에 콩나와라 팥나와라 참견이요?”
목욕을 마쳤습니다. 세 사람이 나와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옷을 입었습니다. 해병대 소위였습니다. 의기 양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중년이 옷을 입는 데 보니 귀신 잡는 해병대 대장이었습니다. 대장이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어르신! 분노를 푸십시오. 저런 놈은 혼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짚차에 소위를 태우고 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뒤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을 믿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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