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거룩한 산 제사(롬12장1-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8. 24. 17:09

거룩한 산 제사(121-13)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사도 바울의 위대한 서신 로마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이게 됩니다.1장에서 11장까지는 진리에 대한 교훈 곧 교리편이 있습니다. 그리고 12장부터 16장 마지막까지는 실제생활에 대한 교훈 곧 윤리편이 있는 것입니다.

 

12장 첫 절과 둘째 절은 생활에 관한 곧 윤리적 총 교훈의 첫 말씀이올시다. 그 말씀은 다른 말씀이 아니고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이 말씀, 거룩한 산 제사라는 말씀을 잠깐 생각할 때에 오늘 간증 주일을 맞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각각 친히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 말씀이 어떻게 시작하는가 주의해 보세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간단한 말씀 가운데서 그는 1장으로부터 11장까지에 있는 내용을 우리로 하여금 잠깐 회상하게 만듭니다. 사실 1장으로부터 11장까지 모든 말씀이 있지마는 한마디로 말하고자 할 것이면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가를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방 사람이나 유대 사람이나 다 죄를 지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정죄(定罪)아래에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당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이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해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그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는 의가 없으나 우리로 하여금 의롭다 함을 입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를 그의 크신 자비로 말미암아 만세 전에 사랑하셨고, 우리를 택하셨고, 때가 될 때에 부르셨고, 성령을 보내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게 하셨고, 그리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생의 후사를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矜恤)에 인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우리의 의무가 무엇이겠습니까?

보통 세상 사람들의 윤리 사상은 그 근거가 흔히 공리주의, 실리주의, 혹은 합리주의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의 근원은 깊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두는 것입니다. 하늘 같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사랑이 그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가 어떠한 윤리적 생활을 하여야 마땅하겠습니까?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우리에게 권면하셨습니다.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서경에 보면 몸에 대한 교훈이 여러 번 있습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니라.”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고 여기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산 제사라고 하는 말은 제사와 대조되는 말입니다.

 

옛날 유대 사람들은 짐승을 잡아서 죽은 제사를 사람의 죄 대신 드린 것입니다, 여기 권면하는 말씀은 몸을 산채로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라 하는 뜻입니다.

 

옛날 유대 사람들의 제사 제도를 보면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마는 가장 중요한 제사는 세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속죄제입니다.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둘째는 번제입니다.

헌신의 의미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셋째는 화목제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뜻으로 이런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어떤 제사를 사도 바울이 생각했겠습니까?

 

이것은 속죄제는 아닙니다.

왜 그런고하니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속죄제는 이미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드렸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제사는 다른 제사가 아니고 몸을 드리는,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가 분명합니다.

 

여러분, 옛날 유대 사람들이 어떤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삼을 때는 거기에 필수 되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짐승은 반드시 깨끗한 짐승에 속하는 짐승이어야 합니다. 옛날 짐승 가운데는 더러운 짐승이 있고, 깨끗한 짐승이 있었습니다. 되지 같은 것은 더럽습니다.

 

양이나 소는 깨끗한 짐승입니다.

깨끗한 짐승 가운데서 희생의 제물을 택했습니다.
둘째는 깨끗한 짐승이지마는 흠이 없어야합니다.

다리가 부러지든지, 눈이 하나든지 흠이 있으면 안 됩니다.

 

흠이 없는 깨끗한 짐승으로만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삼아 드리려고 할 것이면 먼저 우리 몸이 깨끗해야 하겠고 우리의 몸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산 제사를 드리는

첫 계단은 우리가 다 허물이 많고, 우리가 다 죄가 많은 까닭으로, 우리가 신앙으로써 속죄함을 받고 우리의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성결(聖潔)되어서 깨끗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온전히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세상의 죄악에서 갈라져서 성결되어 하나님 앞에 드릴 만한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번제(燔祭)는 다른 제사와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속죄제도 그렇고, 화목제도 그렇고, 다른 제사는 희생의 제물을 다 드리는 것이 아니고 일부만 드립니다. 그러나 이 헌신의 뜻을 표하는 번제는 희생물 전체를 드립니다.

 

하나도 남기는 것 없이 희생물 전체를 제단에 놓고 불로 살라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이 번제의 특색입니다. 너희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라. 산채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려고 할 것이면 우리 몸과 우리 몸에 속하는 일체, 인격, 지식, 감정, 의지 등을 빠짐 없이 하나님의 제단에 드려라 하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이라 하면 사지백체(四肢百體)를 뜻한다고 흔히 말합니다.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이 지체 가운데 하나도 빠짐 없이 하나님께 드리라는 뜻입니다. 제단에 드리게 되면 이미 나의 의지는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드린다는 말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제단에 올려놓은 희생물은 생의 목적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합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있게 됩니다. 제단에 올려놓은 희생물은 생의 중심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 말은 너희 몸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하고, 생의 중심을 하나님으로 삼고 생의 최고 목적을 하나님으로 삼아 온전히 하나님으로 하여금 네 생활 전체를 다스리게 하라.’하는 뜻입니다.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 몸 전체를 드린다고 할 것이면 우리의 손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손의 거룩해야 합니다.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손으로 선한 생업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발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발이 거룩한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안 갈 데를 가서는 안 됩니다. 갈 데만 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리의 눈이 볼 것을 보고 안 볼 것을 아 봐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귀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할 것이면 우리의 귀가 거룩해져야 될 것입니다. 들을 것을 듣고 안들을 것을 안 들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입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리의 입으로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습니다.
누추한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혀에 자갈을 물리라 하였습니다.

 

모든 맛을 소금으로 부드럽게 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게 있는 물질, 내게 있는 시간, 내게 있는 재능, 내게 있는 음성, 내게 잇는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써라 하는 뜻일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몸으로 거룩한 제사를 드리게 되면 한 가지 더 우리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번제는 불로써 그 희생물 전체를 살라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회개와 믿음으로써 온전히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서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행하게 된다면, 신령한 의미에서 그런 사람의 생활에는 하늘의 불이 임할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임합니다.

그리해서 더러운 죄를 살라버릴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불같은 뜨거운 마음이 불탈 것입니다.

그리해서 그 사람의 생활에는 광명 한 불빛이 나타날 것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 권면 가운데는 이와 같은 생활을 하라고 하는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여러분, 계속해서 이 본문을 읽어보세요.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리적 예배라고, 이치에 맞는 예배라고, 혹은 영적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이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서 매일 매일의 경건한 생활을 하는 자체가 곧 예배입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우리 외부 생활의 전부, 사교 생활이나 오락 생활이나 사업 전부가 곧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곧 예배만큼 거룩해져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 선생이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나,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나, 직공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공무원이 관청에서 사무를 보는 것이나, 장사하는 사람이 상점에서 장사하는 것이나,

 

부인들이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나, 바느질을 하는 것이나, 심지어 청소하는 것까지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서 그 영광을 위해서 살 때에 우리의 생활 전체가 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 종교적인 것과 비종교적인 것 사이에 분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거룩합니다.

특별히 속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거룩한 것이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 생활의 전부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은 진리를 말씀드립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사는 생활 뿐 아니고 우리의 죽는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볼 것이면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 성도의 죽음 자체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 까닭입니다.

성도가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영원한 예배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에 혹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이 다 예배라고 할 것이면, 따로 이렇게 모여 예배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백두산 위에 흰 눈이 많이 싸여 있습니다.

그 눈이 있기에 그 아래 천지라는 못에 물이 고입니다.

그 눈 녹은 물이 있습니다.

천지의 물이 있기에 두만강과 압록강의 물이 흐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매일 매일의 생활이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그 예배의 근원을 간단없이 생수로 넣어주는 예배의 근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 근원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한 마디 전했습니다.

이렇게 온전히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산 제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본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잠깐 있다가 없어질 풍조나 사조나 유행이나 사상이나 이런 것들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물론 세상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의 유행, 이 세상의 풍조 같은 것이 그들 생활의 표준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 표준은 따로 있습니다.

이미 말한 대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사도 바울 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권면한 말씀은너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온전히 변화해서, 새 마음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사람이 되라고, 곧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중심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라고, 디시 말하면 성령의 역사로써 자기 중심에서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변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 있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해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려면 온전한 중생이 그 선제 조건인 것을 우리에게 또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온전히 거듭나고 거듭난 생활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인 것입니다.

 

19세기에 있어서 제일 유명한 전도자로 존경을 받는 미국의 무디라고 하는 분이 30대에 영국에 한번 건너갔습니다. 어떤 청년 집회에 참여했는데, 그때에 혜네드 발네이라는 목사가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세계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온전히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으로 더불어 그를 위해서, 그를 통하여, 그의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온전히 그에게 헌신하는 사람만 있으면 그를 통해서 지금까지 나타내지 않았던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무디는 즉시 생각했다고 합니다.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 없었고 반드시 재주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무디는 마음속으로 나는 특별히 재주가 뛰어나는 것도 없고, 나는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지만 온전히 하나님 앞에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몸을 바쳤습니다.

바치고 나니 너무 기뻐서 눈물이 비오듯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 앉은 청년 남녀 여러분, 특별히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렸습니까?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전적으로 몸을 드리는 청년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19세기 있어서 여자 가운데 특별히 누구보다 제일 많이 인도적인 공헌을 한 사람을 우리가 생각할 때 나이팅게일 여사를 흔히 생각합니다.

그이가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생활은 하나님께서 한 평범한 여자를 봉사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다 하신 것입니다. 나도 물론 힘써 일은 했습니다. 다만 나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거절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말이 뜻 있습니다.

여러분, 다 그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거절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다 순복(順服)했습니까?

 

오늘 간증 주일 아침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여러분의 몸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

그 요구를 들으십니까?

 

참 헌신이 있는 곳에는 참 기쁨이 있습니다.

참 헌신이 있는 곳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참 헌신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자연히 나타납니다.

참 헌신이 있는 곳에 참 봉사가 나타납니다.

참 헌신이 잇는 그 곳이 곧 천국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살지마는 천국의 기쁨을 누려보시기 원합니까?

온전히 헌신하세요.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한경직 목사(서울 영락교회)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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