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닮기(10) 목마름( 요 19;28-30. 2016.10.9)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28-30)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단계에서 닮는 단계로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마름은 배고픔보다 더 큰 고통입니다. 배고픔은 40일 참을 수 있지만 목마름은 일주일을 참을 수 없습니다.
나는 목마름이 얼마나 힘든 고통인지 월남에서 체험하였습니다. 안케패스 전쟁때였습니다. 우리 국군이 산위에 있었습니다. 산을 적군 베트콩이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음식 공급이 불가능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군사들은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는 데 목마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판초우비를 깔아 놓고 잡니다. 아침에 이슬이 맺힙니다. 그것을 빨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우줌도 버리지 않고 받아 마시며 견디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다고 하는 말은 목마름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압 보려고 합니다.
무엇에 목말라 하는가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목마른 사슴은 시냇물을 사모합니다.
돈에 목말라하는 사람은 돈의 사람입니다.
명예에 목말라하는 사람은 명예의 사람입니다.
은혜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은혜의 사람입니다.
1. 예수님은 사랑에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목마름이 시작되다가 물을 보면 정신없이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목마름은 욕구를 만들어 냅니다. 강한 목마름일수록 강한 욕구를 만들어 냅니다.
히딩크 네델란드 코치가 우리 축구팀을 세계 4강에 들게 하고도 말했습니다.
“아직도 목마르다.”
세계 최고의 부자 로스 차일드가 돈을 많이 벌고도 계속 돈벌기에 급급한 것을 보면 이렇게 말헸을 것입니다.
“돈벌기에 아직도 목마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이는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그렇게 많은 땅을 점령하고도 계속 땅을 점령하여 나간 것을 보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직도 목마르다.”
지존파 두목 김 기환이 살인 공장을 만들어 놓고 많은 이들을 죽였습니다. 잡혔을 때 경찰을 놀라게 한 말이 있습니다.
“더 죽이지 못 하고 잡혀 억울 하다.”
아직도 목마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목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이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사랑에 목말라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사랑에 목말라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무엇이든지 먹습니다. 우리나라는 특별이 모든 것을 먹는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밥이나 과일만 먹는 것이 아닙니다. 더위도 먹습니다. 나이도 먹습니다. 욕도 먹습니다. 홍 수환 권투 선수가 한 말이 유행하였었습니다.
“엄마! 나 챔치언 먹었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먹으며 사진찍는 나라는 우리 선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굶주려서 원수까지 사랑을 먹었습니다. 사랑에 목마르게 되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나는 “동물의 왕국”에서 ‘개똥벌레 반딧불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급 공기에서만 사는 벌레입니다. 밤 하늘에 불을 밝히는 벌레입니다. 이 반딧불의 사랑 이야기는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한 곳에서 살던 반딧불은 집을 나섭니다. 15일 정도 짝을 찾아 헤멥니다. 15일 정도면 대개 짝을 찾습니다. 그러면 만난 기쁨을 즐길 틈도 없이 짝짓기를 하고 그 자레에서 숫컷은 죽습니다. 암컷을 알을 낳을 때까지만 삽니다. 암컷을 알을 낳고 바로 죽고 후손을 남깁니다.
사랑할 대상을 찾아 헤메다가 사랑할 대상을 만나면 흠뻑 사랑하고 죽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에는 우리 온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사랑 이야기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사랑에 목마름을 가지고 사셨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자녀 셋을 홀로 키우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 집에 온 여인이 그 녀에게 물었습니다.
"자녀 셋 중 누구를 가장 사랑하나요?"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막내가 병들었을 때, 그 때는 막내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둘째가 집을 떠나 방황했을 때, 그 때는 둘째를 가장 사랑했고요. 큰 아이가 학교성적과 이성 문제로 괴로워할 때, 그 때는 큰아이를 가장 사랑했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몸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실 깊이 들어가 보면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랑에 목마름 이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에 목말라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사업실패로 어렵게 사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몇 년 전 아들 결혼식에 축의금으로 백만 원을 한 친구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생활비를 보태 준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친구로부터 아들 결혼 청첩장을 받고 보니 축하의 마음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루하루 살기도 빠듯한데 어떻게 축의금을 챙길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축의금은 축하의 돈이기 이전에 받은 만큼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부부는 급하게 아는 사람으로부터 백만 원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의금으로 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친구로부터 등기 우편이 배달되었습니다. 웬 인사장을 등기로 보내지 하면서 뜯어보니 그 안에는 친구의 편지와 구십구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자네 친구야. 자네 살림 형편을 내가 잘 알고 있는데 축의금이 백만 원이라니, 우리 우정을 돈으로 계산하나. 우리 우정에 만원이면 충분하네. 여기 구십구만 원 보내니 그리 알게. 이 돈을 받지 않으면 친구로 생각지 않겠네. 그리고 힘든 삶에 내 아들 결혼식에 참석해줘서 너무 고맙네. 우리 틈이 나면 옛날 그 포장마차에서 대포 한잔하세.”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에 목마름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영혼에 목마르셨습니다.
지금 기독교인 수는 세계적으로 18억 7천만이라고 합니다. 일년에 7천만명씩 기독교 인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혼에 대한 목마름은 세계 인구 72억이 다 구원받아야 끝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4-8)
마태도 예수님의 영혼에 대한 목마름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예수님의 영혼 구원에 대한 목마름은 세계 영혼 모두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여야 갈증이 끝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영혼 구원에 목마름을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구령렬에 불타는 교회가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나는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우리 교회를 영혼 구원으로 더 성장시키고 은퇴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호박벌은 몸길이가 평균 2.5cm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를 가졌습니다. 그런 호박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하루에 약 200Km 이상 되는 먼 거리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신기한 곤충입니다. 체구와 비교하면 천문학적 거리를 날아다니는 셈입니다. 사실 호박벌은 태생적으로 날 수 없는 신체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몸통은 크고 뚱뚱합니다. 날개는 작고 가벼워서 날기는커녕 떠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호박벌은 매일 꿀을 모으기 위해 비행합니다. 동분서주합니다. 어떻게 그 작고 뚱뚱한 몸으로 기적 같은 비행을 하는 것일가요? 대답을 찾았습니다.
호박벌은 자신이 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오로지 꿀을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면 어떤 것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33년 전에 개척하였습니다
그 때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내가 직접 나가가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길거리에서 주면 받아서 버리거나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새벽기도를 마치고 신문 돌리는 사람 뒤를 쫓아 갔습니다. 그리고 신문지에 전도지를 끼어 넣었습니다. 일찍 가면 안 됩니다. 신문이 아직 안 떨어져 있습니다. 조금 늦게 가면 안 됩니다. 신문이 벌써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불과 한 시간 정도입니다. 땀을 흘려며 부지런히 넣었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교회의 전도지가 계속 우리 집에 일주일에 한번씩 들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 마침 구약 성경이 하나 있는 데 목사님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인가요? 만일 목사님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이라면 가지고 나가 볼 가 생각합니다.”
나는 빨리 말했습니다.
“가지고 와 보세요.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인지 보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즉시 그 성경을 가지고 교회로 왔습니다. 나는 그 성경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이군요.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이네요.”
이 쪽으로 보면 구약이고 저 쪽으로 보면 신약 성경이었습니다. 그가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7개월만에 200명 출석이 넘었습니다. 2년만에서 교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영혼 구원에 목말라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이 중표 목사님이 생존하여 계실 때 그 분이 시무하시는 한신 교회에서 부흥를 인도하였습니다. 그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대학교수 사모님이 나이가 지긋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죽음을 생각하여 볼 때가 되었음을 알고 이제 하나님 앞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 데 하나님 앞에 가면 무엇을 보고할 가 생각하니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 보고를 받으실 것이 무엇일가를 곰곰히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3-4)
그는 근처 국립묘지로 나갔습니다. 무덤을 찾는 이들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묘지 앞에서 한결같이 눈물을 흘리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 곳에서 200명 이상을 전도하고 하나님 앞에 가서 보고하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유언을 지키면 유언을 한 자가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땅끝까지 전도하라고 하시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하늘에서 우리가 전도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다. 유언을 지키는 것은 유언자를 기쁘게 하는 길입니다. 전도에 목말라하시던 예수님을 닮는 길은 우리도 전도에 목말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일에 목마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6-18)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일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일하다고 예수님을 박해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우주에서 제일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미국 휴스톤 나사에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모래알 수보다 우주에 있는 별 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 기절할 듯한 이야기입니다. 그 많은 별을 창조하시고 관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자동차 부속은 4만개입니다. 사람 하나는 5조개 정도의 세포가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있는 핏줄만도 5만 km입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루에서 수 만명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처럼 일하신다고 고백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일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일에 갈증을 느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4)
공자가 젊을 때였습니다. 길을 가다가 좀 이상해 보이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이 노인은 계속 싱글벙글 웃고 심지어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도대체 어떤 노인이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렇게 존경하는 모습으로 예의를 다해 인사를 하는 것일가? 중국에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데...나에게 인사하는 것보다 더 정중하게 인사를 하네. 왜 연고일가? 내가 보기에는 정신빠진 노인같은 데....”
공자는 노인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나서 물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어떠한 이유로 그렇게 즐거워하시며, 또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으시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노인이 허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젊은 양반이 무던히도 배우고 싶어 하는구먼. 내가 생을 감사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네. 첫째, 뱀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돼지나 개로도 태어날 수 있는 데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저 감사하네.
둘째는 내가 90세가 넘었는 데 건강하게 지내니 이 얼마나 감사한 조건인가?
셋째는 이렇게 나이가 많아도 즐겁게 일할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해서 일하다가 쉴 때는 즐거워서 춤도 추는 것이네."
일하는 즐거움을 공자가 말할 때 사용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에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목마름을 닮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은 사랑에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사랑에 목마름이 있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영혼에 목마르셨습니다. 영혼에 목마름이 있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일에 목마르셨습니다. 일에 목마름이 있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고 싶습니다.
외아들을 두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방탕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 한번만 외박하면 내쫓는다.”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들이 외박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 날 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에게 경고한 대로 집을 나가라.”
아들은 엄한 아버지에게 내쫓겼습니다. 추운 헛간으로 가서 누웠습니다. 추운 칼바람에 움크리고 잠에 들었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아내가 잠을 이루지 못 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여보! 지금 아들을 불러 따뜻한 방에서 자라고 하고 싶지만 단단히 혼을 내주어야 평생이 좋을 터이니 오늘 밤 참아요.”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참았습니다. 조금 후 아버지는 살며시 일어났습니다. 아내가 울다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아들이 자는 헛간으로 나갔습니다. 추워서 움크리고 자는 아들곁으로 가서 팔벼게를 하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잠에 들었습니다. 아들이 자자가 깨어 보니 아버지가 자기 팔을 벼게로 삼아 주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시울에서 흘러내린 눈물 자국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아들은 회개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을 우리를 붙들고 자고 계십니다. 그 분의 눈에는 나를 위하여 흘린 눈물 자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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