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새해에는 우리 모두 이렇게 삽시다! (엡 5:15-21)
명강사로 소문난 강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많은 사람이 모인 세미나에서 그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을 하다가 그 강사는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높이 쳐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돈을 갖고 싶지요? 이 수표를 가지고 싶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십시오.' 그러자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손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한 사람에게 이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 그러나 먼저 나의 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강사는 갑자기 쳐들었던 10만 원짜리 수표를 손으로 이리저리 마구 구겼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이 수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강사의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역시 거의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좋아요' 그 강사는 이번에는 그 10만원 짜지 수표를 땅바닥에 던지더니 구둣발로 밟으며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구겨지고 더러워진 그 10만 원짜리 수표를 집어 들고 아직도 그 돈을 갖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또 다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강사가 말하기를 '제가 아무리 10만 원짜리 수표를 마구 구기고 발로 짓밟고 더럽게 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10만 원짜리 수표는 항상 10만 원짜리 수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구겨지고 넘어지고 병들고 더러워졌어도 당신들의 가치는 고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존재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보시는 성도요,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들입니다. 결코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아가십시오.' 강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막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2014년 한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모두 바울 사도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 잘 들어보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①신년 새해에는 '지혜롭게' 삽시다(15)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돈도 필요하고, 재능도 필요하고, 학식도 필요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들이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지혜, 슬기라고 지어서 세상을 지혜롭게 살고, 슬기롭게 살라고 소원하고 있습니다.
⑴지혜라는 말은 우리말로 슬기입니다. 사전에 보면 슬기란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달아 밝히고 시비의 선악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⑵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말합니다.
약3:13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러니까 참된 지혜의 특징은 단순히 선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온유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아무리 참되고 선한 행위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강제나 폭력이 되면 안 되고 온유함으로 해야 합니다. /할/
⑶그렇다면 온유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따뜻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동화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몹시 추운 날 밤중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눈이 나뭇가지 위에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날씨가 추우니까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이 얼어붙었습니다. 나뭇가지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쳐져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바람이 그 옆을 지나갔습니다. 나무를 보니까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바람은 나무를 불쌍히 여기고,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을 털어 주려고 바람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어붙은 눈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람은 더 세차게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급기야 바람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뚝!' 소리를 내면서 부러졌습니다. 그러니까 바람은 나무를 도우려다가 오히려 나무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 것입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해님이 떠올랐습니다. 기진맥진한 바람은 해님에게 하소연했습니다. '해님아, 내가 저 나무들이 불쌍해서 도와주려고 하다가 그만 나뭇가지만 부러뜨리고 말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해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걱정하지마. 내가 도와줄게' 그러면서 해님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따스하게 동산을 비추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얼어붙었던 눈들이 녹으면서 물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님은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바람아, 이제는 네가 나설 차례야. 내가 너를 따뜻하게 비추어 줄 테니까 너는 그저 내 열을 받아서 동산 안을 조용히 지나다니기만 하면 돼. 그러면 쌓인 눈들이 다 녹게 될 거야!'
그 말을 듣고 바람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해님은 따스하게 바람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훈훈해진 바람이 동산 안을 조용히 다니니까, 해님의 말대로 과연 얼어붙었던 모든 눈들이 녹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동산은 본래의 제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의 따듯한 눈빛,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상처 입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참된 지혜 자는 따듯함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그 따듯함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따듯하게 말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멘!/
⑷또 온유함은 부드러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일화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아프리카연방의 통합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프리카 부족의 추장들 여럿을 초대하여 왕실에서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만찬을 베풀기 전, 아프리카 추장들에게 식사법에 대한 교육을 했지만 막상 만찬이 시작되자 눈치를 살피던 추장들이 포크와 나이프를 제쳐놓고 손으로 먹기 시작했습니다.
각료들과 신하들이 긴장한 가운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여왕이 자신도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손으로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눈치만 보던 분위기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모두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고 회의도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추장들은 여왕이 하는 일은 모두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왕이 인상을 쓰며 추장들을 나무랐으면 회의가 실패했겠지만, 추장들에게 맞춰줌으로 회의를 성공시킨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드러움이 추장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왕입니다. /할/
⑸참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잠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리고 약3:17-18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까요?
㈀성결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사람은 세상 사람과 구별됩니다. 가치관, 생각, 말, 행동에 있어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거룩하다, 성결하다는 말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지식과 지혜가 구별된 것처럼 세속적인 사람과 성결한 사람은 구별되는 것입니다.
'성결'이란 말은 '모든 악한 태도나 동기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기적으로 지식을 남용하거나 거짓된 지혜로 인간을 기만하지 않는 착한 행실을 뜻합니다. /할/
㈁화평한 삶을 삽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올바른 관계로 이끌어 줍니다. 여기 '화평'이란 말은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과는 물론이고 사람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삽니다.
㈂관용의 삶을 삽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관용을 널리 베풀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를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여기 '관용'은 주로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서 '용서'와 '온유'와 '자비'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또한 '정당한', '공정한'이란 의미도 있는데, 이것은 '타인을 자기와 동등하게 대한다'는 뜻입니다. 남을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우해줄 때 그들의 실수나 과오를 너그럽게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
㈃양순의 삶을 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과 호소에 마음의 문을 닫지 않고 양보할 줄 알게 합니다.
여기 '양순'은 '좋게'란 말과 '순종하다'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잘 순종하는' 혹은 '유순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종'은 '굴종'과는 달리 정의롭고 올바른 일에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겸손히 낮춥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서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심으로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긍휼과 선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돕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여기 '긍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주는 마음'입니다(약2:13). 지혜로운 사람은 도덕의 설교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아멘!/
㈅편벽과 거짓이 없는 삶을 삽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흔들리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영원한 진리와 통하기 때문에 결코 흔들림이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지혜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감추려고 거짓을 동원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는 구별이나 위선이 없는 공평함과 신실함이 가득합니다.
지혜는 정직을 추구하나 어리석음은 거짓을 따릅니다. 우리는 지혜의 아버지 하나님을 따라가야지 거짓의 아비인 마귀(요8:44)를 따라가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감추어진 거짓은 언젠가 분명히 드러나서 수치를 안겨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지혜는 '의의 열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게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할/
②신년새해에는 '세월을 아끼며' 삽시다(16).
왜 세월을 아껴야 하는가? ⑴세월은 한 번 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⑵세월이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서유석이란 가수는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하고 노래했습니다. 정말 이 노랫말대로 가는 세월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할/
⑶인생의 연수가 짧기 때문입니다. 창47:9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⑷세월의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서양 격언에 'Time is money' 즉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세월을 아끼라'고 하십니다. 세월(시간)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 살면서도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기회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연대와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는 주권자입니다. 모든 사람은 시간의 지배를 받을 뿐 그것을 자기의 임의대로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표대로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할/
㈁세월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의 기도문에서 인간이 관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간에 대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날수와 시간을 계산하면서 이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시90:11).
바울사도도 우리들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어 세월을 아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릅니다. 마음먹기 따라서 언제든지 자기가 필요할 때 기회를 만들어 쓰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기회의 소중함을 모르고 계획성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미련한 짓입니다.
㈂세월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흘러간 강물이 역류(逆流)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주어진 시간을 어영부영 허비해 버리고 다 지나간 다음에 '아- 옛날이여'하면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기회를 우리가 사야 합니다. 여기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헬라어로 직역하면 '기회를 사라'는 뜻입니다. '아끼다'라는 말은 '대가를 지불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일생일대에 소중한 기회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기회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멘!/
삶의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신앙 안에서도 기회를 사야 합니다.
▶예수님과 만나는 기회를 사야 합니다.
▶은혜 받는 기회를 사야 합니다. 고후6:2절에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할/
▶회개하는 기회를 사야 합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리고 훗날 땅을 치며 후회를 했으나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히12:17절에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봉사하는 기회도 사야 합니다. 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을 아끼라'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아껴서 믿는 일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할/
③신년새해에는 '주님의 뜻의 무엇인가?'를 분별하며 삽시다(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내 멋대로 살아가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라고 성경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14: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감정대로,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기감정대로, 본능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롬12: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할/
▶'몰간'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⑴예수님을 표준으로 삼는 삶입니다. 예수 바라보고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삽시다.
⑵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성적인 지각을 주시고 성문계시를 주신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시1:1-2).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1:3)
⑶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출13:21-22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⑴항상 기뻐합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고 했습니다.
⑵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고 했습니다.
⑶범사에 감사합시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라고 했습니다. /아멘!/
④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신년새해에는 '성령 충만의 삶'을 삽시다(18).
▶먼저 '술 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술은 묘한 것이어서 술을 먹는 사람들에게 술을 먹은 티를 나게 합니다. 술을 먹으면 '술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술 먹은 것을 보지 않았어도 술 먹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색이 달라집니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얼굴이 발갛게 되고 눈이 발갛게 되는 사람도 있고 창백하게 되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얼굴색이든지 술 먹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술 취하면 담력이 생깁니다.' 무서운 사람이 없게 됩니다. 길거리 지나가는데 술 취한 사람들 보세요. 아무나 보고 덤벼듭니다. '야! 뭐야? 왜 쳐다봐?' 그래서 실수하게 되고 사고를 치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까?
⑴정욕의 술에 취하지 맙시다. 삼손은 정욕의 술에 취하여 패망의 길로 갔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삿16:19)고 했습니다.
⑵탐욕의 술에 취하지 맙시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은과 두벌 옷을 탐하다가 저주받은 몸이 되었습니다. 왕하5:27절에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⑶세속의 술에 취하지 맙시다. 세상 문화는 썩어져 가는 문화입니다. 성경은 세속문화를 '방탕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이처럼 술을 먹은 사람의 행동을 보면 술 먹은 것을 직접 보지 않았어도 술 먹은 사람임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새 술에 취한 사람은 '새 술 냄새가 납니다.' 그 새 술 냄새는 예수의 냄새입니다. 진정으로 악취를 풍기던 사람이 예수 사랑 냄새를 내면 그가 어디서 왔던지 간에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술 취함 같이 새 술에 취한 사람은 '얼굴색이 달라집니다.' 기쁨과 환희로 차 있습니다. 슬픔과 근심과 걱정에 얽매여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생일지라도 다 죽어 가는 얼굴이 아니라 소망이 넘치는 그런 얼굴색입니다. 이 사람은 어디를 보아도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상 술에 취한 사람이 용감하듯 '새 술에 취한 성령의 사람 역시 용감합니다' /할/
▶2014년도에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아 위대한 승리자'가 됩시다.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 이 말씀은 몇 가지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⑴명령형입니다. 성령 충만은 명령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명령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받고 안 받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곧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 나의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할/
⑵현재형입니다. 지금 받아야 하고, 계속 받아야 합니다. /아멘!/
⑶복수형입니다. 성령 충만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특권이 아닙니다. 단지 몇몇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만 가질 수 있는 경험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하고 오늘 네가 받아야 하고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아멘!/
행2: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그들이'라는 말과 '다같이', 그리고 '한 곳에' 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바로 다같이 모인 곳에, 모여 기도하는 곳에 임한 것입니다. /할/
이처럼 개인적으로 임하지만, 아울러 공동체적으로 임합니다. 모두가 함께 하는 곳에 임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성령 충만을 받는 자리입니다. /아멘!/
⑷수동형입니다. 성령 충만은 인간의 의지나 능력이나 심지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이고 그분의 뜻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것을 우리는 받기만 하면 됩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그렇게 임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사모하며 힘써 애서 기도할 때 성령이 '홀연히' 임했습니다. 홀연히, 갑자기,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가 단비를 기다리듯이, 씨를 뿌리고 열매를 기다리듯이,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기다리고, 성령 충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면서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신앙과 삶은 언제나 기다림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소망이고, 기대감이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멘!/
㉡초대교회에 임했던 성령은 두 가지로 임했습니다(행2).
⑴하나는 '불같은 성령'입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출현이 불로 나타난 것은 성경에 아주 많이 나옵니다. 출3장에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는데 어디서 만났습니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계신 하나님과 이야기했습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 군사들이 엘리사 숙소를 다 에워싸고 이제 엘리사는 잡혀 죽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노예가 될 판인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다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군대를 성경이 뭐라고 표현했습니까? '불 말과 불 병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불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인류 역사 가운데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람은 엘리야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승천할 때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이 성경에 '불 말과 불 수레'라고 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했던 엘리야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불로 내려서 소멸해 버렸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성전 안에 항상 불을 피워 꺼지지 않게 하라' 그래서 항상 불을 피웠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불같은 하나님의 성령 임재가 항상 교회 안에 이렇게 타고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할/
개신교에는 그런 것이 없지만 성당에 가보면 왼쪽이나 오른쪽에 촛불이 수백 개입니다. 그 불을 왜 켜놓은 겁니까? 그곳이 어두워서 켜 놓은 것이 아닙니다. 구약대로 하나님의 임재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출24:17절에 산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제일 큰불의 역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밤에 불기둥으로 나타나셨을 때입니다. ▶그러면 왜 불로 나타나셨는가? 불의 성격이 있습니다.
불은 소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불이라면 모든 물체가 없어져버립니다. 잿더미가 되고 재가 날아가면 아무 것도 안보입니다. 간혹 우리 집안에 지저분한 쓰레기를 소각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태워서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이 성격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죄에 대한 소멸의 능력이 불같은 성령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은 불과 같아서 지저분한 인간의 모든 죄를 흔적도 없이 보이지 않도록 다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은 죄가 다 없어지는 겁니다. /할/
또 불은 심판의 상징입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할 때 불로 심판하셨습니다.
또 불의 성격은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해지면 열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에게 주어진 성령의 사역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부인이 아무리 말려도 안 됩니다. 남편이 아무리 말려도 안 됩니다. 또 자식이 말려도 안 되고 부모가 말려도 안 됩니다. 불같이 되어버린 걸 어떡합니까? 또 누구든지 당하지 못합니다. 죽음도 안 되기 때문에 순교자가 되기도 합니다. /할/
⑵또 하나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바람은 볼 수는 없어도 바람이 임하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성령의 역사도 바람같이 임하게 됩니다.
바람은 그 누구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 땅에 40일을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서워서 문을 꼭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을 열어드린 적이 없는데 예수님이 바람과 같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기독교 복음을 들어오지 못하게 아무리 문을 잠가 놓아도 바람은 들어갑니다. 성령은 들어갑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초창기 때 얼마나 굳게 문을 잠갔습니까? 그런데 성령님이 들어오셔서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에서 제일가는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할/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⑴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쓸모 있게 됩니다.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권능이 임하면 나의 재능이 빛을 발합니다. 세상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 갈수록 그 재능이 극대화되어 진가를 발휘해 기가 막히게 사용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어도 은사가 귀하게 쓰임을 받으려고 하면 권능이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받은 은사가 진가를 발휘합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자신이 잘났다는 것 외에는 달리 쓰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권능이 임하면 사람을 살리는 지식으로 변합니다.
베드로는 배운 것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니까 그를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던 기라성 같은 율법학자들의 기를 죽이는 말을 합니다. 그가 가진 지식이 비록 별것 아니었지만, 권능이 임하니까 하루에 삼천 명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돈을 가졌는데 권능이 임하지 않으면 돈의 권세에 휘둘리게 됩니다. 돈의 권세가 나를 지배하고 있으면 돈을 돈답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려면 하늘의 권세가 임해야 합니다. 돈의 권세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시달리고 괴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늘의 권능이 임하면 돈의 권세를 이깁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게 합니다.
또한 과거의 실패나 아픔도 주의 성령이 임하면 과거의 경험에서 지혜와 통찰력이 생기고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면서 능력 있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나의 직분에 주의 권능이 임해야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직분을 받았다고 일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직분에 걸맞은 권능이 임해야 합니다. 직분에 권능이 임해야 권위도 생깁니다. 권능이 임하면 시간의 질이 바뀝니다. 같은 24시간을 살아도 시간의 질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평생 하지 못했던 일을 하루만에 할 수도 있습니다. 일 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아이디어가 넘치고 집중력이 생깁니다.
또 각 기질의 장점들이 일어납니다. 기질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그 기질의 부정적인 부분은 감춰지고 강점들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권능이 임하면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행복지수가 높아집니다. 그리고 외부의 환경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가면 장애물을 만나면 가지 못하고 막히지만 비행기로 가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의 권능이 임하면 비행기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할/
⑵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모든 것이 풍성해집니다.
기름 부으심이라는 말은 풍성함을 연상시킵니다. 시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다는 구약적 표현은 오늘 신약에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충만하다'는 것은 '완전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요7: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흘러 넘치는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잘못된 옛 습관들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옛 습관은 나의 노력과 의지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불행해지고 실패하게 되는 것은 습관 때문입니다. 습관은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습관을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의 강한 결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습관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순종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결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중독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결박입니다. 정신적 질환도 생각 안에 나를 결박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습관은 밧줄로 묶여있는 것 같아서 습관이 오래되면 될수록 더 굵은 밧줄로 나를 꽁꽁 묶고 있는 것입니다. 중독이 심하고 습관이 오래된 사람들은 결박을 스스로 풀지 못하고 카운슬러, 정신과 의사를 만나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해결방법은 결박을 풀 수 있는 강한 능력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한 능력은 위로부터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압도하는 힘이 모든 결박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결박되어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용서하라는 설교를 들어도 생각은 되는데 몸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 노력의 한계입니다. 진짜 용서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임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는 증오심을 덮어서 녹입니다. 하늘의 권능이 내 힘과 의지를 넘어설 만큼 흘러 넘쳐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권능이 임해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경험을 하면 평안과 안식과 자유 함을 누리고 문제를 힘들지 않게 극복할 수 있도록 나를 강권하시는 힘, 내 인격을 지배하시는 힘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권능이 임하면 힘들지 않습니다. 스트레스 받고 눌리고 부담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고도 남는 힘이 남아돕니다. 그러면 사역에 속도가 붙고 일의 능률이 생기고 열매가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아멘!/
⑶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나에게 자유가 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있으면 자유가 오고 약하면 끌려 다닙니다. 권능이 임하면 죄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죄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그렇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죄는 이길 능력이 없으니까 짓게 됩니다. 권능이 임하면 죄의 권세를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능력이 없으면 죄의 권세는 대단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의 권세 앞에 꼼짝 못합니다. 죄의 권세를 굴복시켜야 비로소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시면 죄의 권세는 역사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고 권능이 임하지 못하면 죄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자유가 없고 육체의 소욕이 원하는 대로 살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 하나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러나 능력이 임하면 죄의 세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권능이 임하면 유혹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전에는 힘들게 느껴졌던 것이 쉽게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면 돈의 유혹, 명예의 유혹, 세상의 자랑, 이성의 유혹 모든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예수 믿는 사람이 권능이 없으면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도 하늘의 권능이 있는지 없는지 압니다. 삼손이 능력이 사라지면서 힘이 빠지니까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기둥에 메여 그 사람들에게 조롱 감이 되었습니다.
권능을 받으면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명자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엑스트라로 살았다면 권능을 받은 후에는 주연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디엘 무디를 보십시오.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구두수선공이었던 그는 설교하는데 문법이 수도 없이 틀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듣고 지식층들이 깨어지고 부서지고 녹아졌습니다. /할/ 권능이 임하시면 나이도 상관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소극적, 폐쇄적,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할/
㉣이제 우리는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능력과 은사를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풍성한 열매도 거두게 하십니다. 거기에다가 모든 시험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십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은 모두 좋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은 대단히 손해 보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 때문에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믿음의 성도에게 많은 축복들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
▶어떤 일들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가?
⑴믿기 이전의 불신자의 죄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성경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⑵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을 보시고 근심하십니다.
⑶경건생활의 게으름으로 인하여서 성령님은 근심하십니다.
⑶우리의 마음이 세속화가 될 때에 성령 님은 근심하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세상 적인 재미에 빠질 때 성령은 근심하게 됩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재미보다, 저수지에 앉아서 낚시하는 것에 더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이 바로 성령 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믿/
⑤신년새해에는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서로 화답하며' 삽시다(19).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삶의 첫 번째 특징이 무엇입니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아닙니다. 예언하는 능력도 아닙니다. 천사의 말과 같은 방언도 아닙니다. 단순합니다. 마음 속에 새 노래, 신령한 노래, 찬송으로 충만한 마음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술 취한 사람을 보면 어떻습니까? 노래방에 가서 한 곡조 뽑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사람도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노래를 부릅니까?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이런 노래가 아니라 새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 성령 충만한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할/
여기 '시'는 보통 구약의 시편을 가리키고, '찬미'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은 즉 찬송가입니다. '신령한 노래'는 일반적인 복음성가를 말합니다. 찬송은 상향선 이고, 복음성가는 하향선 입니다. 찬송은 주께로 온 것이기에 하늘로 올라가고 복음송가는 내려오는 것입니다.
'서로 화답하며'란 '서로 노래하며' 이런 뜻으로 화답은 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시대는 대화와 조화와 화답이 모자랍니다. 혼자 부르는 노래를 솔로라고 말합니다. 여럿이 부르는 노래를 합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리와 소리의 조화를 화음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합창의 경우 음의 조화, 박자의 조화, 강약의 조화, 등이 절묘하게 이루어졌을 때 수준 높은 합창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가대나 합창대원들은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서로 화답하며 조화를 잘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전체가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천국도 찬양이 가득한 곳입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에 기도하고, 찬송하고,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고, 축도를 받습니다. 이 5가지 요소가 기본입니다. 그 중에 찬송은 예배의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찬미와 신령한 노래는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불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찬미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고전14:15절(하)에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했으며, 히13:15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찬송은 기쁨과 평안과 능력과 신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할/
⑥신년새해에는 '감사하며' 삽시다(20).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성령 충만에 외적 표현입니다. 이런 감사를 누가 드렸는가? 욥이 드렸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열 아들 딸, 그 많은 재산도, 건강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강지처도 병신이라고 욕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욥은 감사를 드립니다.
욥1:21-22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불평은 마귀가 좋아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감사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멘!/
⑦신년새해에는 '피차에 복종하며' 삽시다(21).
여기 '피차 복종하라'는 이 말은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말고 나 자신이 솔선해서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성도들끼리, 이웃끼리, 서로를 존중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 존중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옵니다.
요일4: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 서로 피차에 복종합시다. 왜 피차 복종해야 합니까? 이 세상에 어떠한 인간이라도 상대방을 전적으로 굴복시킬 만한 완전한 절대자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가르침과 동시에 배워야 하고, 다스림과 동시에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죄인입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복종만을 요구할 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차 복종합시다. 왜 화평이 깨어지는가? 일방적으로 강요만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피차에 복종하는 삶은 아름다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는 연합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올 2014년도에는 우리 모두 이런 아름다운 신앙의 바른 삶을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4년 1월 12일 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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