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 (고후 12:7-10) 송수천 목사 2010년9월26대예배 설교
성경은 곳곳에서 역설적인 말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10절에서도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 즉 강자와 약자간의 역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 아주 비겁한 무사가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가면 무서워서 감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디 숨어
있다가 오기 때문에 전우들에게 늘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우연히 전쟁터에서 홀로
가다가 화살에 맞아 거의 죽어 가는 적을 발견하고 그 목을 짤라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의외로 적군의 아주 유명한 장수였답니다. 그래서 이 비겁한
무사는 일약 용감한 무사로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강자의 무용담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성경은 삼손의 힘 자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어릴 때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의 아가리를 찢은 것은 보면 보통 힘이 센 장수가 아닙니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항우
장사가 힘이 쌔고 고집도 쌨다고 합니다. 헬라 신화에는 '헤라크라스'가 힘이 장사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대에서는 개인적으로보다는 국가적인 힘을 과시합니다. '세계 8강이니 4강이니 또는 초대강국이니'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강자와 약자의 개념은 외견상 보이는 힘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신적이며 내적인 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어린이나 노약자나 병자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저자인 바울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전에는 강자였습니다. 강자로서 많은 사람들을 두렵게 한 사람입니다.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는
지혜 있는 자가 강자였습니다. 또 로마의 군사적 영웅이 강자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율법에 충실한 자가 강자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율법에 통달했으며 유명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율법에 충성을 다했으므로 민중에게 강자로 등장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배경까지 빌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투옥하고 죽일 때 앞장서는 강자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인즉 이렇게 강한 그때가 바울에게는 위기였습니다. 무서운 과오를 범하는 약자였습니다.
후에 그 자신이 딤전1:13절에서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라고 고백한 것을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폭군 네로가 베드로나 바울을 죽일 때는 주후 65년경이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만 죽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을 기둥에 묶고 몸에 기름을 뿌려 태우며 그 불빛 아래서 술을
마셨다고 하니 그의 광기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런 그가 3년 뒤 AD68년에
자기의 몸에 불을 질러 자살했습니다. 불과 수년 후에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을 미리 알았다면
그는 그런 폭정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가
네로의 본성을 우울증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강하게 보였을 그때에 네로는 오히려 가장 약했습니다. 여기서 강함은 육신 적인 강함을 말하고, 약함이란 정신적인 약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들의 약함과 무기력에 대하여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늘 고민하고 늘 고통스러워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늘 한탄하고, 추함을 늘 한탄하고 부족함'으로 늘 가슴을 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바로 '그 약함 때문에 우리를 택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한 민족,
지렁이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그러므로 약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그 고백의 순간에 하나님께 붙잡히는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아멘!/
오늘
주님 앞에 나온 여러분의 마음이 가난하기를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역설적인 교훈입니다. 여기 마음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가? 성경이 그 주석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마다 그 견해가 다릅니다. 실제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동서고금 어느 문헌에도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한 곳이 없습니다.
'집이 가난하다, 나라가 가난하다. 그
사회는 문화와 지식이 빈곤하다.'는 말은 할 수 있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애매 모호한 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도 마음이 얼마나 해야 가난한 건지 모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령의 가난은 영적인 가난'을 의미합니다. 심령은 '영' 또는 '마음'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어떤 가난을 말하고 있는가?
⑴하나님 앞에서 죄와 자기의 무능력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마음'입니다.
⑵겸손한 마음입니다.
⑶가난한 마음은 단순한 마음입니다. 복잡한 마음도 아닙니다. 두 마음도 아닙니다. 오직 한 마음입니다. 신앙은 두 마음을 품으면 흔들립니다. 약1:8절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간 두 마리 다 놓칩니다. 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아멘!/
⑷내려놓은
마음입니다. 비운 마음입니다. 욕심도 탐심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가난하십시오,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늘의 복을 탐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탐내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요, 빼앗는 자의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이것만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형식보다 마음을 더 중요시합니다. 잠23: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했고, 잠4:23절에서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무엇보다 먼저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할/
여러분! 놀라운 영적 비밀은 하나님 역사의 맨 앞줄에는 언제나 현명하고 강하고 고귀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답니다. 그 대신에 바보 같고 약하고 멸시받고 실패와 실수 덩어리인 보잘것없는 그런 사람들을 선택해서 하나님은 맨 앞줄에
세우시고 돌보십니다. /믿/아멘!/
모세를 보세요! 그가 바로 공주 밑에서 왕자로 있을
때는 하나님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제일 좋은 위치에 있을 때는 자기 자만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광야에 쫓겨 나와 나약함을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맨 앞줄에 세우시고
애굽 바로 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할/
삿6:15절을 보세요!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누구의 고백인가? 기드온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약하다고 고백하는 기드온을 통하여 미디안의 메뚜기 떼 같은 큰 군대를
단 삼백 명의 작은 숫자로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믿/
사도바울도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할 때부터 하나님의 맨 앞에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고백하는데 있습니다. 고전1:26-28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 말씀을 분해해 보면,
⑴부르심을 보라! 어떤 사람을 주님이 부르시는가를 보라는 말씀이고,
⑵능하고 지위 있고 문벌 좋고 권력 가진 자만이 세상의 큰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⑶하나님의 손에만 잡히면 미련한 사람도 지혜로워지고,
⑷천한 사람, 멸시 받는 사람도 귀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할/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집니다'(9)
사도바울은 고질적인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 했습니다. 무슨 병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에 밝혀져 있지 않으나 학자들의 주장을 몇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마귀의 공격'이라 해석했고, '터툴리안'은 바울의 '두통이 그의 가시'라고 해석합니다. '어거스틴'이나 '토마스 아켐피스' 같은 신학자는 바울이 '정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가시라고 했고, '칼빈'이나 '크리스소톰'은 '바울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돌을 던지고 죽이려고 한 유대주의자들과 이단자들이 그의 가시'였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심한 '안질과 간질'이 가시였다고 해석합니다.
▶한 부자가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 주시면 제 재산을 다 바치겠습니다. 살려 주세요' 조금 후에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 제 재산을 다 바치면 저는 어떻게 살겠습니까? 절반만 바치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육지가 보였습니다. '하나님, 절반이 아니라 천만 원만 감사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풍랑을 일으키셨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농담도 못합니까?' 사람은 그렇습니다. 어려울 때는 '이번에 도와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어려움이 지나면 그것을 깹니다.
이런 상태로는 복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가시를 통하여 찔러 깨닫게 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아멘!/
아무튼 그에게 있어서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 가시는 바울에게 몹시도 큰 고통을 주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마도 기간을 정해 놓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가시가 나를 찔러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 가시를 저에게서 물리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을 하셨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듣고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비록 그에게서 육체의 가시가 제하여지지는 않았지만 그 가시를 이길 수 있는 큰 힘을 은혜 가운데 얻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가시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그 가시가 오히려 자기에게 유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할/
하나님은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하셨습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강한 자 안에서 드러내면 그 사람 자신이 강해서 그런 능력이 나오는 줄 알지만 약한 자 안에서 능력이 나타나게 되면 이는 약한 자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인 줄 알게 됩니다. /할/
여기서 '내 능력'은 '주님의 능력'입니다. 또 '약하다고 하는 말은 인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고통, 질병, 고독, 슬픔, 환난을 당할 때 자신의 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기도하면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즉 그릇 만드는 사람의 능력과 기술은 흙의 부드럽고 반죽이 잘 되어질 때 원하는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수타 짜장면도, 수타 냉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장장이가 도구를 만들 때도 쇠가 뜨거워 연해질 때 쇠를 두들겨 마음대로 도구를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심령이 상처를 입어 약해질 때에 주의 능력이 우리 심령 위에 온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우리 심령이 약해질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사모합니다. 마치 탕자가 타국에 가서 궁핍하게 되니 아버지와 집 생각이 난 것처럼 사람들도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고 깨달을 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며 참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고 가시와 고통 자체가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가시의 고통에서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시밭 다음에 푸른 초장이 나오고 검은 구름이 있어야 찬란한 일곱 색 무지개가 나타난답니다.
바울은 인간의 약한 데를 통해서 주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남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오히려 약한 것들을 자랑하노라, 나는 고난 받기를 기뻐하노라!' 그 약함에 강한 능력이 나오고 고난을 통하여 자신이 강해짐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성자 프란시스는 본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부족한 것이 없이 살다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그 중병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변해서 새 사람이 되어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베토벤은 천재적인 음악가였습니다만 그가 귀가 멀어 듣지 못하게 될 때 오히려 전보다 더 위대한 작곡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는 책이 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입니다. 이 책이 쓰여진 배경이 있습니다. 존 번연은 신교의 목사로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구교(카톨릭)의 허락 없이 전도한다고 하여 구교에 의한 종교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시 대단히 활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감옥에 갇혀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제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속히 제가 이곳을 나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어느 날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세미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9절의 말씀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는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는 가운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비록 감옥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에게 변함 없이 족한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구나' 이러한 사실을 깨닫자 지긋지긋하게 여겨졌던 감옥 생활도 그에게는 천국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장장 12년 동안 갇혀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쓰여진 것이 바로 '천로역정'입니다.
그는 자신이 말로 복음을 전할 때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가 쓴 글을 통해서 주께로 인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그대로 그는 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오히려 더 크고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었습니다.여러분, 진주가 어떻게 생기는 지 아십니까? 조개가 깊은 바다 속으로 기어다닐 때 모래알이 조개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부드러운 살 속에 모래가 들어가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이 조개는 즙을 짜내어 이 모래 알을 감싼답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오랜 세월을 계속해서 조개 즙이 싸이고 감싸면 마침내 둥근 진주가 된답니다.
여러분! 가시가 찌릅니까? 우리는 진주를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엄청나게 값진 진주를 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가시가 있었는데 왜 우리에겐들 가시가 없겠습니까?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때로는 중병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성적이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업을 잘하는 사람도 때로는 실패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도 때로는 가시와 같은 존재를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그 가시를 우리에게 허용해 주셨을 뿐입니다. 그러니 가시로 인해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다. 그 가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우리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가시로 인해 약해졌을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쉽게 좌절해 버립니다. 때로는 자기의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가시가 우리를 찌를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⑴여러분에게는 어떤 약점이 있습니까? 그 약점을 사랑하고 인정하십시오.
인정을 안 하면 불만 때문에 비참해집니다. 또 사람들 앞에서 아닌 척, 있는 척 하면서 살면 더 불행해집니다. 체면 때문에 작은 집에서 살수 없어 큰집을 전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체면도 좋지만 관리비 내느라 빚을 얻어야 하는데 그 삶이 얼마나 비현실적입니까? 체면 살리느라 비싼 옷에 메이커만 사서 입어야 하니 허리가 얼마나 휘겠습니까? 나에게 주어진 약점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떳떳해집니다.
⑵약점을 만족해하십시오! 바울은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자랑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약함으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약점이 없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건강할 때는 기도하지 않지만 일단 병이 나면 더 기도하게 됩니다. 약점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내게 약점이 있으면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몸에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사람을 겸손케 하시려고 약점을 붙여 주십니다. 약점을 주셔서
하나님 보다 더 앞서 나가지 못 하게 하십니다. 또 내가 약점을 가지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만만하면 '다 필요 없다'고 큰소리를 치게 됩니다. 그것이 자만이고 교만입니다. 그런데 내게 약점이 있고 결함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약한 사람을 동정하게 되고 포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완벽한 자를 불러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 말은 교만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그만 약점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아주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골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만 자꾸 쳐다보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관되고 기쁨도 없어지고 자신감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만 남들과 비교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게
되면 나에게 주어진 장점은 보이질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있는 데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고 없는 데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람을 쓰신 것을 보아도 한결같이 결점이 있고 약점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불러내 쓰셨습니다.
▶미국의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참 가난했습니다. 아주 어려서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는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14살 때 양복점 점원으로 일하고 18살 때는 구두수선공의 딸과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가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오기 시작합니다. 뒤늦게 공부도 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그에게 가지고 있던 능력이 일취월장하는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40세에 달변가가 되고 명필가가 됩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만나면서 내면의 세계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링컨 대통령에 이어 17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리고 남북전쟁에서 갈라진 민심을
봉합하는 일을 해 냅니다. 그리고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사들입니다. 그때 아무 쓸데없는 얼음 산을 뭐 하러 사느냐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남들보다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어 그 얼음 산을 의심하지 않고 사 들입니다. 그런데 그 얼음 산이 오늘에 와서
얼마나 자원이 많이 묻혀있는 땅덩어리가 된지 아시지요? /할/
사실
하나님께 붙잡히고 깨닫고 나면 인간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는 가장 훌륭한 배경을 만들어 줌을 깨닫게 됩니다. 내 미련함과 부족함, 내 실수와 실패, 내 어려운 환경, 그것이 내게 있어서 걸림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는 가장 귀한 삶의 배경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제가 사업에 성공했더라면 예수님을 모르고 지금쯤 세상 죄악 속에서 심판대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사업이 망하고 이것저것 망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실수와 부족함과 결점 때문에 우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를 사용하신 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요, 기독교의 진수입니다.
여러분! 일반 종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선행을 강조합니다만 기독교는 죄를 강조합니다. 약함을
강조합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만일 하나님이 깨끗한
사람만 찾는다면 저를 포함해서 이 땅에 한 사람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천국 건설은 약한 자들을 들어서 강한 자를 넘어뜨리고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한답니다. 한마디로 성령이 우리의 마음만 열어주면 내 부족함, 내 약함, 내 결점이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배경이 된다는 지혜를 주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사람,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패만 하는 사람이 성공자가 되고, 저주 속에 살던 사람이
희망 속에 살게 되고, 병들어 고통 속에 살던 사람이 건강이 회복되어 새사람이 되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만 하는 사람이 변하여 사랑의 성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②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 강한데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약한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 강한 사람이 늘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약한 자가 강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 없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딴섬에서 쓸쓸히 죽어가면서 '나는 힘으로 세상을 정복했으나 망했고, 예수는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다'고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고 그 여세를 몰아 러시아까지 진격하려고 했습니다. 전날 밤 사람들을 모아놓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쳐 과신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귀부인이 '전쟁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너무 자만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폴레옹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부인, 전쟁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깁니다.' 이것이 자만이고 교만입니다. 아주 지독한 자기 과신입니다. 이런 태도는 사람들도 싫어하지만 하나님도 싫어하십니다.
모세가 그렇게 오만한 자세로 공사장에 나갔다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무술로
단련된 주먹으로 한번 치니까 그만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동족들로부터 칭찬을 기대했는데 그만 고발을
당해서 도망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지 않았습니까?
골리앗이 그렇게 거드름을 떨다가 망했습니다.
세상에 누가 나를 당할 것이냐 하고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렇게 실패한 후 광야생활 하는 동안 자신을 발견하고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부르심으로 지도자로 나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경거망동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실 때는 먼저 그 자만함과 교만함과 우쭐대는 것부터 꺾고 부수신 다음에 사용하십니다.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독재자들의 말로를 보십시오, 20년 동안 독재자로 그 강했던 필리핀에 마르코스도 그의 망명길에서 하와이 병원에서 병원비도 못 갚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은 다 강한 것 같지만 약한 존재요 허망한 존재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한번 보겠습니다.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만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여기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종이 자체는 약합니다. 그런데 종이를 철판에 붙이면 종이를 못 찢습니다. 구멍도 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철판의 힘을 빌리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약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품에 있을 때는 절대 안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머니의 능력이 자기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약합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있을 때 강합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해져서 주님의 능력에 붙잡히게 되면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은 산을 옮기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원리 속에 붙잡혀 살기를 소원합니다.
⑴여러분, 세상에 대하여는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늘 한없이 약해지시기 바랍니다.
⑵하나님 앞에 약하고 세상 앞에는 강했던 사람들이 믿음의 주인공들입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 강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강했습니다.
⑶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비참한 연약함을 통하여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기회를 제공한답니다. /믿어지면 아멘!/
▶서울의
한 장로님은 큰 부자여서 한 번에 수십만 원짜리 식사를 하면서도 교회 일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장로님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허망하게 떠났습니다. 그러자 '내가 잘못 살았구나' 깨닫고 바로 돌아서서 교회에 충성하고, 교회도 크게 짓고 많은 곳에 선교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시로 찔러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기도 하십니다. /할/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저능아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만일
내 딸이 저능아가 아니었으면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고 천대하였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우쭐댔을지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게 정신이 박약한 딸을 주셔서 모든 사람은 귀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이 가시 때문에 그는 일생 힘들고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사람을 귀히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필을 통하여 세계인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픈 가시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어느
과학고 3학년 학생이 반에서 67명중 60등을 했다고 합니다. 그 성적 가지고는 내신점수가 좋지 않아서
도저히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열등감과 낙오의식에 젖어 있다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도전의식에서 돌파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을 하고는 미국의 수능시험인 SAT시험에
도전했는데 거기서 만점을 얻어서 MIT공대에 지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통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참 묘합니다. 결점이나 불완전함이 새 길에 눈을 뜨게 하고 새 방법을 모색하게 해 줍니다.
▶미국에
조 코플로비치라는 50세된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중추신경
마비로 팔다리가 온전하지 않아서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음걸이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마라톤에
도전을 했습니다. 참 희귀한 일입니다. 걷지도 못하는 여인이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 그 먼 거리를 달리겠다고 나선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그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남보다 5시간 먼저 출발하여 결국 25시간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31시간만에 완주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뛰었느냐'고 물으니 이 여인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완전했더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시넝쿨에서 장미꽃이 핍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장미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시도 주셨습니다. 가시
없는 장미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면 저마다 고민이 있고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해 나갈 때 장미꽃이 피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40:29절에서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신다'고
하셨고, 사35:3절에서는
'약한 손을 강하게,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사업을 하는데 그렇게 잘 될 수가 없어요. 재산이 불과 십여 년 만에 그냥 수십 억의 재산이
됐습니다. 그 때부터 그 목에 깁스를 하고 목이 뻣뻣해졌습니다.
그는 은행에 집도, 공장도, 회사도
담보로 해서 돈을 빼서 사업을 더 크게 확장해
나갔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풍에 돛단배처럼 슬슬 풀려나가고 척척 잘 되어 갑니다. 그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안하무인이 되었습니다. 목사의 말도 잘 듣지 않습니다. 교만해져서 기고만장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닥친 이 IMF로 부도가 나고 가정이 파탄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경제범으로 사기죄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 때 그는 교도소 안에서 진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루는 목사님같이 생긴 어떤 사람이 자기 방에 쑥 들어오더니 자기를 보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예수 믿으시오'하고 전도를 하드래요. 그래 '저 교회 다닙니다'하고
대답했더니 '그런데 왜 교도소에 왔습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 안 듣고 까불다가 왔어요' 그랬대요. 여러분, 까불면
매맞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손댑니다. 하나님이 손을 대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찰스 콜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40년 동안 이 세상을 얻기 위해 전
생애를 투자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얻은 인생의 성공과 세상의 것을 다 잃고 차가운 감옥 바닥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나는 감옥이 하나님 사랑의 울타리임을 알게 되었다.'
찰스 콜슨은 교도소 선교 운동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는 닉슨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으로 부귀와 영화와 공명을 누렸으나 정치적
스캔들에 걸려서 모든 지위를 다 박탈당하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차디찬 감옥 바닥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그는 그 감옥 바닥이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변화되어 감옥에서 나온 이후로 그는 남은 여생을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도하는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는 고통이 그에게 가시가 되어서 비로소 인간 교만이 깨어지고 자기 우상화가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항복하게 되는 은혜를 체험했다고 그가 말한 것입니다.
⑷그러나 하나님 앞에 강한 것, 그것은 교만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연약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진리를 깨닫는
여러분, 사람 앞에서는 강하고 담대하고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세월이 갈수록 그리스도인의 겸손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잠22: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
저는 D.L무디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미국에는 무디 목사님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그 기념관에는 무디 목사님의 설교원고가 다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그 원고를 보면 실망을 한다고 합니다. 왜? 그
분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던 분이기에 설교원고의 문법도 철자법도 글씨도 모두 엉망이랍니다.
그리고 그 사진에 보면 외모도 아주 못생겼으며 그에 성대는 항상 거칠고 쉰 목소리였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그 시대 미국을 흔들고 영국 집회에서도 귀족들이 교수들이 그리고 깡패에서부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능력의 목사님이었답니다.
그 능력의 비밀을 알기 위해 영국의 신문기자가 무디의 인간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무디 목사님 교회에 일년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색다른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발견했는데 무디 목사님의 기도 실에서 흘러나오는 기도소리였습니다. '하나님! 무디는 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꼭 무디와 같은 인간적으로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들만 뽑아서 사용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현명하고 고귀하고 아주 지적인 부류의 사람들도 쓰십니다. 지적인
능력, 감정적인 열정, 질서정연한 논리, 높고 깊은 학식,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약한 사람임을 깨닫게 하신 후에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할/
③여러분! 위대한 인물, 위대한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약해지십시오! 그것은 자신을 늘 쳐서 복종시키는 생활인데 이것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약함에 대하여 철저하게 훈련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곧 약할 때에 곧 강함이니라' 모세의 전반기 삶은 실패자의 삶이었습니다. 학자풍의 젊은 왕자로 매우 자존심이 강했습니다. 늘 자기 힘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자만심이 들어있었습니다.
여러분, 준비된 만큼 주님은 쓰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처절한 고백이 나오기까지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때 모세는 7가지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했습니다.
⑴저는 역량이 부족한 사람입니다(출3:11).
⑵입이 부족한 사람입니다(출3:13). ⑶재산이
없는 사람입니다(출4:1). ⑷재주도 없는 사람입니다(출4:10). ⑸나이 많은 사람입니다(출4:13) . ⑹과거에 쓰라린 실패가 있는 사람입니다(출5:23). ⑺출6:1절에서 '저희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오늘 모세의 이 일곱 가지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이 고백에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이 큽니다.
⑴모세야 들어라! 바로 너의 그 구실들이 나 여호와가 너를 택한 이유란다. 나는 너의 그런 구실들을 기다리고 기다렸단다.
⑵내가 너를 부를 때에 그에 대한 준비가 없겠느냐? 나 여호와가 너의 부족함에
대한 모든 준비를 했느니라.
⑶이제부터 나 여호와가 너의 삶의 지배자가 되리라, 하나님이 삶의 주인공이
되리라. 얼마나 멋있습니까?
바울은 '이제 내가 내 안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전1:29절에서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약점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 약한 곳에서 강하여 지는 능력이
나옵니다. 여러분, 나에게 주어진 가시에 감사합시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가시가 기도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시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가시가 종국에는 '더 잘 되게 만들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2010년 9월 26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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