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로 정책추진 동력 잃은 드골
드골은 58년 제5공화국 헌법 도입에 관한 국민투표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자신의 정책 추진 동력을 국민투표로 끌어올렸다. 62년 9월 드골은 대통령 직선제를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10월 초 의회가 불신임 표결을 하자 드골은 의회를 해산했다. 10월 말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직선제 헌법은 63%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65년 12월 선거에서 드골은 7년 임기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민투표가 권력자에게 만능은 아니다. 드골의 정계 은퇴 역시 국민투표에 의해서였다. 69년 드골은 상원과 지방정부에 대한 자신의 개혁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고령의 드골을 사임시킬 필요성에 공감하던 프랑스 유권자들은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드골의 제안이 48% 대 52%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골은 결국 사임했다.
69년 국민투표는 드골이 정치적 난국을 극복할 목적으로 실시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국민투표로 흥한 자가 국민투표로 망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사실 드골은 자신의 진퇴 여부를 국민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독선적이라는 비판과 동시에 공사를 구분하고 강직하다는 평가를 받은 드골은 권력을 장악하거나 연장할 때뿐 아니라 물러날 때에도 국민 의사를 확인하여 결정한 것이다. 권력의 근원을 국민에게서 찾는 일관성을 보여주었다.
국민 의사를 확인하고 이에 따라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는 궁극적으로 어떤 의견이 다수이고 어떤 의견이 소수인지를 판정하는 절차이다. 종종 자신의 의견만이 국민 의사라고 서로 주장하는데, 말 없는 다수 대신에 목소리 큰 소수의 의견이 국민 의사로 잘못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에 정확한 국민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다수의 의견을 국민 의사로 볼 수 있을까? 1793년 프랑스 국민투표는 모든 성인 남성이 참가하는 보통선거로 실시되어 99%의 찬성으로 헌법을 채택했는데 사실 투표율은 26%에 불과했다. 더구나 그 헌법은 혁명의 와중이라 효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이 3분의 1 투표 참여 조항이 과도하여 주민 의사를 판별하는 데에 지장을 준다는 주장이 있는데, 반대로 소수 의견이 전체 주민의 의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막지 못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예컨대 찬성하는 16.8%와 반대하는 16.7%는 모두 투표에 참여했고, 나머지 66.5%는 무차별하거나 무관심하여 기권했다고 하자. 3분의 1 이상의 투표 참여만 있으면 주민 의사로 인정되는 조건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16.8%만 찬성하는 의견이 전체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 1%라도 기권 유도해 무산시킬 수 있어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찬성 투표자, 반대 투표자, 투표 불참자, 획일적 집단행동자 등의 비율과 불확실성을 감안하여 찬반 진영의 전략을 각각 계산할 수 있다. 기권 전략으로 가게 되면 사실상의 공개투표라는 속성을 숙지하고 계산해야 할 것이다.
2011년 8월 24일에 실시된 무상급식 지원범위에 관한 서울특별시 주민투표는 특정 안에 대한 가부가 아니라,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제1안과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는 제2안 가운데 택일하는 방식이었다. 몇몇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당시 서울시민의 선호는 제1안 20%, 제2안 15%, 무차별·무관심 65%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선호 그대로 투표했더라면 제1안으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최종투표율 25.7%로 개표 없이 무효로 결정됐다.
이에 한나라당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얻은 유권자 대비 25.4%(한명숙 후보 25.1%, 기권·무효 46.4%)보다 더 득표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반면 야당은 주민투표가 부결됐으니 제2안으로 결론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민투표는 양립 불가능한 대립적 의견을 하나로 결론 내리지 못했다. 대신에 소수 진영이더라도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 존재함을 보여줬을 뿐이다.
황교안 권한대행도 국민투표 발의 가능
1972년 유신헌법은 국민투표에 의해 채택되었다. 75년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의 존속을 국민투표에 부치고 그 결과를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2월 1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80%의 투표율과 73%의 찬성률이라는 선관위 공식 집계로 유신헌법은 존속으로 가결됐다. 유신헌법의 도입과 존속 모두에서 다수의 찬성이 있었지만, 다수가 소수의 기본권까지 박탈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었다.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는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를 12월에 실시하자고 제안했는데, 2004년 헌법재판소는 현행 헌법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무 정지를 당한 지금, 대통령 권한대행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도 당장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는 없더라도 국민투표를 제안하거나 약속함으로써 세력 편재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개헌도 국민투표에서 통과돼야 가능함은 물론이다. 국민투표에 무관심한 국민을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국민의 뜻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김재한 한림대 정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