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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최고 법정을 모욕한 엘리트 법조인 / 중앙일보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22. 14:29

[취재일기] 최고 법정을 모욕한 엘리트 법조인



 

서준석사회2부 기자

“그럴 거면 왜 헌법재판관씩이나 해요?”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20일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의 김평우(72)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을 향해 지른 고함이었다.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말허리를 자른 김 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당뇨가 있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어떤 내용이냐”는 질문에 그는 “음식 먹을 시간을 달라”고 엉뚱한 답을 했다. 이 권한대행이 “재판 진행은 저희가 하는 겁니다”며 변론 종결을 선언하자 그는 “왜 함부로 재판을 진행해요?”라며 다시 소리쳤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변호사는 법조계 엘리트다. 판사 출신인 그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으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직을 맡은 적도 있다. 경력으로 보면 한국 법조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가 ‘소동’을 일으킨 법정은 최고의 법인 헌법을 다루는 곳이다. 게다가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엄중한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국회 소추인단 측 변호사는 “미국 법정이었으면 ‘법정모독’으로 구금당할 행동이었다. 미국 경험이 있는 김 변호사가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부장판사는 “원칙대로라면 법정소란죄로 처벌받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헌재에서 변호사가 비상식적 행동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통령 측의 서석구(73) 변호사는 지난 14일 변론 시작 직전에 심판정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다가 법정 경위의 제지를 받았다.

이런 말과 행동은 법원의 권위가 존중받는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힘들다. 영국에서는 2008년에 400여 년간 법조인들이 법정에서 ‘위그(가발)’를 착용해 온 전통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영국 법원은 이를 고수하기로 했다. 재판의 엄중함을 유지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영국 법정에서는 변호사가 법관에게 의견을 개진할 때 말끝마다 ‘My Lord’라는 호칭을 붙인다. ‘재판장 귀하’ 정도로 번역되는 말이다. 상대편 변호사는 ‘My learned friend’라는 표현을 넣어 ‘친애하는 동료 변호사’로 부른다. 상대 변호사의 주장을 반박할 때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간과한 것 같다” 등의 정중한 화법을 쓴다. 법의 권위, 법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장치들이다.

한국 법정에서는 요즘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말을 듣기 어렵다. 1990년대부터 사용 빈도가 줄더니 최근엔 거의 사라졌다. 국격(國格)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때다. 법정의 품격이 국가 수준을 드러낸다는 점을 원로 변호사들이 잊지 않길 기대한다.

서준석 사회2부 기자


[출처: 중앙일보] [취재일기] 최고 법정을 모욕한 엘리트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