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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칼럼] 누가 ‘광장의 광기’를 부추기나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28. 03:55

[정석구 칼럼] 누가 ‘광장의 광기’를 부추기나

한겨레 등록 :2017-02-27 18:27수정 :2017-02-27 19:06

 

정석구 편집인


곡학아세하는 학자, 진실을 호도하는 언론인, 법치를 우롱하는 법률가 등이 대표적인 부역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권력자에 기생하며 출세를 위해 알량한 지식을 팔고,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고, 불의를 정의로 뒤바꾼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몽매한 상태에 머물게 하고, 광장의 광기를 방조하고 부추긴다.

광기의 시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리를 하는 헌법재판관을 살해하겠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파헤치고 있는 박영수 특검을 “죽여버려”라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상식과 이성이 실종되고 야만과 광기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

지난해 1000만 촛불이 평화롭게 타오를 때만 해도 우리 사회의 적폐를 깨끗이 청산할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것은 희망 섞인 낙관이었음이 드러났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는 세를 불리며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백색테러가 난무하던 해방정국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들 정도다. 탄핵 정국이 끝나면 사라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듯하다.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에 이른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는 왜 이렇게 후진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누가 ‘광장의 광기’를 부추기며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는가.

우선 공적 개념이 부재한 정치인을 들 수 있다. 정치인의 자격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인의식을 갖는 것이다. 공(公)이라는 것은 ‘사사로운 것과 서로 등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권력을 잡으면 이를 사사로이 이용해 자신과 패거리들의 이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곤 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공적 개념이 없는 정치인이 나라를 어느 정도까지 망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익 추구에 몰두하는 정치인은 그들 패거리만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른다. 국민 통합은 말뿐이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국민을 갈라치고 갈등을 조장한다. 촛불집회에 맞서 태극기 집회가 점점 세를 불리고 과격해지는 데는 청와대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박 대통령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친박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촛불 시민과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의 유혈 충돌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정치인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일부 영혼 없는 관료들이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산다. 공무원이 자신을 먹여 살리는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에 빌붙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관료들이 적지 않다. 특히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의 관료들이 유독 심하다. 국가를 법률에 따라 운용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고 주어진 막강한 권한을 자신의 출세와 사익을 위해 오용한다.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 소극적으로 복종하는 관료들도 있긴 하다. 문제는 자신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정치인들한테 충성하고 그 대가를 챙기려는 관료들이다. 특검 연장을 거부하며 박 대통령 지키기에 올인하고 있는 황교안 총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후흑 총리’답게 자신의 권력 의지를 교묘하게 위장한 채 박 대통령과 친박 세력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며 더 큰 대가를 챙기려 하고 있다. 그의 눈에 국민은 필요할 때 자신의 인기몰이에 동원하는 연극 무대의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공적 개념 없는 정치인과 영혼 없는 관료들이 해방 이후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그럴듯한 아전인수식 논리와 유리한 여론 환경을 제공해준 부역 지식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곡학아세하는 학자, 진실을 호도하는 언론인, 법치를 우롱하는 법률가 등이 대표적인 부역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힘센 권력자에 기생하며 출세를 위해 알량한 지식을 팔고,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고, 불의를 정의로 뒤바꾼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몽매한 상태에 머물게 하고, 때로는 광장의 광기를 방조하고 부추긴다. 그들은 그 대가로 출세와 부를 챙기지만 우리 사회의 정의와 도덕성은 실종된다. 해방 이후 70여년 동안 이 기본 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조만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이변이 없는 한 정권교체는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방 이후 곳곳에 누적된 친일독재의 잔재가 스스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적폐 청산 이전에 강고한 적폐 구조로부터 이득을 보고 있는 인적 구조를 청산하는 게 먼저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생각할 때 또다시 국민을 분열시키고 광장을 광기로 가득 채우려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는 그런 현상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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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4418.html?_fr=sr1#csidx253ae6a414d01db920bdca62302e5ba